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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46화 (146/325)

146화. 진화.

“미스터 김. 우리도 이제 슬슬 본심을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다른 놈도 아니고 다니엘 로페즈가 내 뒤통수를 칠 줄이야.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당장 그 총 내려놔.”

강철중을 비롯해 나의 조직원들도 가만있진 않았다. 그들 모두 각자 상대에게 총구를 겨누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다니엘 로페즈가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난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미스터 로페즈. 우리 사이에 문제가 될 만한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요.”

“하하. 미스터 김. 무른 말씀을 하시는군요. 전 한 번도 당신에게 제 진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그건 피차일반 아닙니까?”

나에게 진짜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라.

저 말대로 나 또한 로페즈에게 내 본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우리는 미묘한 비즈니스 관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왔을 뿐이지 않던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극적인 순간에 적으로 갈라서다니요. 미스터 로페즈답지 않군요.”

“허허. 사실, 저도 이런 건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래도 제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방금 전 그 살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요. 골든 마피아의 주인이 되시지 않았습니까?”

로페즈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그럴까요? 내가 진정으로 골든 마피아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눈 부릅뜨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데도?”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몰라서 묻는 겁니까? 당신의 뒤에 있는 그 리턴 컴퍼니는 전화 몇 통화로 미국 전역을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 골든 마피아의 핵심을 완전히 파멸시켜 버릴 만큼! 이런데도 내가 맘 편히 이 왕좌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저 양반,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군.

내가 백악관을 움직여 골든 마피아의 수장을 잡게 했다고 철석같이 믿게 만든 건 내 잘못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 로페즈가 과민 반응을 보이며 자신도 그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미스터 로페즈, 전 당신과, 아니, 우리 회사는 당신과 싸울 생각이 없습니다.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취지에서 연합 이야기를 꺼낸 것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게 문제예요. 당신의 회사는 도저히 멈출 줄을 몰라. 말이야 쉽지. 정말 그 연합이 결성된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파란을 일으키게 될 겁니다. 세계 정치권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단 말입니다.”

저 말은 리턴 컴퍼니의 욕심이 끝이 없다는 소리다.

“그래서, 당신은 그 야망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는 겁니까?”

“아뇨, 솔직히 말해서 가슴 뛰는 일이지 않나요? 세계를 움직이는 조직.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러나 단순히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 노예처럼 쩔쩔매고 살아야 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다니엘 로페즈가 우려하는 것이 뭔지 이제야 알겠다.

저 사람은 연합체가 구성되면 지금처럼 골든 마파이의 대부로서 사는 것이 아닌, 리턴 컴퍼니의 소유물로 변질될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뭐,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는 여지가 크긴 크지만 여기서 그걸 밝힐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진정하세요, 미스터 로페즈. 우리 회사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이 연합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규칙을 세상에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하하. 미스터 김.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뭔지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난 애초에 당신이 리턴 컴퍼니의 수장이라고 믿고 있어요.”

음? 갑자기 얘기가 왜 그쪽으로 쏠리는 거지?

거기다가 내가 리턴 컴퍼니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차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려나?

“오래전부터 나는 리턴 컴퍼니에 대해 조사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던 페이퍼 컴퍼니였지요. 하지만 요 근래 정식으로 출범을 하면서 모습을 드러냈어요.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리턴 컴퍼니와는 본질이 많이 다르더군요.”

“어떤 것이 다르다는 거죠?”

“나조차도 모르고 있는, 아니 백악관에서도 알지 못하는 정체불명의 회사가 갑작스레 나타나 미국 전역을 흔들어놓았어요. 이걸 믿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그 정도의 세력을 키울 때까지 누구 하나 눈치를 채지 못했을 리 없습니다.”

안 되겠다. 점점 이야기가 깊어지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미스터 로페즈, 리턴 컴퍼니의 원칙은 바로 이렇습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항상 어둠처럼, 그림자처럼 세계를…….”

“아아. 추잡한 설명은 거기서 그만하십시오. 내가 그걸 믿을 것 같습니까?”

“믿든, 믿지 않든 솔직히 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서 당신 손에 죽는다고 해도 리턴 컴퍼니의 계획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부터는 도박을 걸 때다.

반쯤 협박을 섞은 나의 발언에 다니엘 로페즈가 멈칫거리는 얼굴이 보인다.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말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낼 것인지.

하지만 확신하건대, 분명히 후자다.

“이런. 이번에도 왠지 미스터 김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것 같군요,”

역시, 다니엘 로페즈는 후자를 택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방아쇠를 당겨 나를 죽였다면, 로페즈도 결국 나의 조직원들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수많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골든 마피아를 거머쥐게 된 새로운 대부가 아닌가.

그런 그가 쉽게 생을 포기할 리 없다.

“미스터 로페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언제나 당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노예가 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골든 마피아를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더욱 세력을 키운다고 보시는 게 맞습니다.”

“앙드레 루이스처럼 멍청하게 끌려갈 일은 없다?”

“바로 그겁니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절대 권력.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회사도 그렇고요. 우린 그저 단순한 인간의 본능을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본능치고는 꽤 무서운 야망이군요.”

그 말을 끝으로 로페즈는 총을 내려놓았다.

협상이 통한 것이다. 하지만 로페즈의 의심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무 안심하진 마세요. 전 아직도 당신을 의심하고 있으니까요. 설령 일부러 리턴 컴퍼니의 실장인 척을 한다고 해도 탓하진 않습니다. 본인의 신분을 위장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닙니까?”

“하하. 집요하시군요. 그래도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는 우리 사이에 문제될 만한 건 없겠지요?”

“물론입니다. 방금 전의 무례는 용서해 주십시오. 그저 확신을 갖기 위해 한 행동이니까요.”

“이해합니다.”

살벌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서로를 향해 총을 들고 있던 조직원들도 슬금슬금 손을 내렸다.

“자, 가서 축배를 듭시다. 오늘의 승리를 만끽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미스터 로페즈. 그런데 여기는 알아서 정리를 하는 거겠죠?”

“하하. 청소부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불러뒀으니까.”

한국에도 청소부가 있는 것처럼, 여기도 이런 쪽의 전문인 청소부들이 있다.

나는 로페즈와 함께 껄껄 웃으며 아수라장이 된 풀하우스 밖을 나왔다.

그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기뻐했지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다니엘 로페즈.

그래도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었는데, 이번 일로 생각을 바꿨다.

내게 필요한 건 생각하는 부하가 아니다.

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꼭두각시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다니엘 로페즈는 이미 그와 같은 의무를 다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영원히 왕좌에 앉아 있는 진정한 통치자가 되고 싶어 한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는 없는 법.

언젠가 다니엘 로페즈도 제거를 해 골든 마피아를 완전히 내 손아귀에 넣어야겠다.

오늘 그는 나와 협상을 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무덤을 팠을 뿐.

* * *

“이게 누구야! 우리 보스 워커 아니야?”

항상 그랬듯이 로이 루스테는 나를 격렬히 반겨주었다.

“잘 지냈어, 워커? 못 본 사이에 살이 좀 빠진 거 같네. 요즘 많이 바빴나?”

“그런가요? 로이는 여전하네요. 저번보다 덩치가 커진 것 같습니다.”

“아, 요즘 운동을 많이 했거든. 그러니까 워커도 운동 많이 해.”

글쎄. 내가 운동한다고 해서 서양인의 피지컬을 따라갈 순 없지 않은가.

유전적인 요소를 내 노력만으로 바꿀 순 없다.

“그런데 우리 애들은 왜 그렇게 많이 데리고 다니는 거야? 아시아 쪽도 그렇고 이번에는 골든 마피아 쪽이랑 시원하게 한판 했다며?”

로이는 아주 궁금한 게 많은 눈치였다. 내가 아직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 않아 그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다.

“그렇지 않아도 로이와 상의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나랑? 뭐를?”

무심한 척 물어봤지만,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로이, 메데인 카르텔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킬 때가 됐어요.”

“한 단계 진화시킬 때가 돼? 그게 무슨 소리야?”

“이번에 제가 골든 마피아와 싸운 게 아닙니다. 사실은 그쪽에서 쿠데타가 일어났거든요.”

“쿠데타를 일으킨 당사자를 네가 도왔고?”

내가 말은 안 했지만, 아무래도 대충 정보통을 통해 들은 모양이다.

“예, 그런 셈이죠. 솔직히 숟가락만 얹은 거긴 한데, 아무튼 골든 마피아와는 상의를 어느 정도 끝낸 일입니다.”

“도대체 뭘 상의했다는 거야?”

“연합. 세계 전역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각 조직과 거대한 연합을 만들 생각입니다.”

여유롭게 위스키를 마시고 있던 로이는 그만 입에 있던 내용물을 밖으로 뿜어내고 말았다.

“…조심 좀 하죠?”

“아, 미안. 그런데 그게 진짜야? 연합을 만들어?”

“예. 메데인 카르텔, 골든 마피아, 그리고 한국, 중국, 일본에 있는 대표적인 조직들과 거대 연합체를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국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네.”

역시, 로이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아차린다.

“바로 그겁니다, 로이.”

“오, 굉장한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야? 그렇지 않아도 아시아 쪽에 있는 우리 조직한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더니…….”

“설마요.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하하. 아니지. 우리 보스가 그럴 리 없지.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그 많은 조직들을 한곳에 묶느냐지.”

로이는 현실적인 부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한국, 미국,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묶을 수 있을까.

“어차피 그쪽 나라에 있는 영향력이 가장 큰 조직을 노리면 됩니다. 그들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면 그 밑에 있는 나머지 조직들은 어쩔 수 없이 따르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그 큰 조직들을 무슨 수로 우리 편에 끌어 들이냐는 거지.”

“이미 골든 마피아가 우리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메데인 카르텔과 골든 마피아가 손을 잡았다고 하면 과연 미국에서, 멕시코에서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습니까? 정부조차도 매우 조심스러워할 겁니다.”

그제야 로이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골든 마피아가 확실히 우리 편을 들어주는 거야?”

“예, 그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한테 남은 건…….”

“한국은 문제가 없을 테고……. 이제 다음 타깃은 일본이 될 겁니다.”

로이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본? 그 원숭이들?”

“하하. 로이까지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요?”

“뭐, 일본 좋아하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 그런데 그쪽이랑 갑자기 연합을 맺을 수 있긴 한 건가?”

일본에서의 연합이라.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미 오래전 그곳에서 만든 인연이 있으니까.

“예, 가능합니다. 일본과도 연결이 되어 있는 곳이 있거든요.”

“당연히 그 나라에서 가장 큰 조직이겠지?”

“물론입니다.”

“크… 역시, 우리 보스. 아주 문어발이야. 안 닿는 곳이 없어.”

로이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리며 박수를 쳐댔다.

“그럼, 바로 날아가는 거야?”

“가급적이면 빨리 일본으로 갈 생각입니다. 곧 있으면 한국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 있을 거라서요.”

“응? 중요한 사건?”

“그런 게 있습니다.”

나는 힐끗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무리했다.

거대한 사건이 과연 무엇을 뜻하겠는가?

이제 별로 남지 않았다.

한국에 몰아칠 어마어마한 태풍이 말이다.

어쩌면 난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통곡의 날, 바로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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