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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31화 (131/325)
  • 131화. 호랑이 사냥 (2)

    “너,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멱 따 이기 전에 앉아, 아저씨.”

    번뜩이는 정식이의 눈빛에 권오준은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이진용이 사무실까지 끼고 온 조직원 수가 한 열 명쯤 되지만, 정식이에게는 식전의 요깃거리 밖에 되지 않는 숫자다.

    그런 놈이 살기 어린 목소리를 흘리고 있으니, 저런 졸보가 버틸 수 있을 리 없다.

    권오준은 이진용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지만, 그는 싸움을 크게 만드는 대신 타협을 택했다.

    “허허. 권 사장님. 그리고 김 사장. 기 싸움은 여기까지 하시고 자리에 앉으시죠.”

    그러면서 이진용은 최정식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뭔가를 느낀 것일까.

    정식이의 몸이 순간 경직되더니, 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칼을 내려도 되겠냐는 의미일 것이다.

    역시, 이진용도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건가?

    지금 당장 칼부림을 해서 좋을 것이 없기에, 나는 정식이에게 가벼운 눈짓을 해주었다. 그러자 정식이는 권오준을 향해 겨눴던 칼을 내렸다.

    “흠흠.”

    정식이가 칼을 거두자, 권오준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에 앉았다.

    “너, 지금 후회할 짓 하는 거야. 알아? 이런 건방진 새끼.”

    저게 정말 권용일의 큰아들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한심하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라 했다. 그런데 이놈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직도 자신이 권용일의 후계자라고 안심하는 건가?

    쓸데없이 겉멋만 든 새끼.

    권용일이었으면 끝까지 속마음을 숨긴 채로 내게 접근해 뒤통수를 쳤을 것이다.

    그게 가장 안정적인 방법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놈은… 글러 먹었다.

    “권 사장님.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오히려 지금 건방을 떠는 건 제가 아니라 바로 권 사장님입니다.”

    “뭐, 뭐야!? 이 새끼가 진짜 끝까지!”

    권오준은 다시 한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내 뒤에서 눈매를 번뜩이고 있는 정식이 때문인지 애써 화를 꾹 참는 것 같았다.

    이진용은 그런 권오준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권 사장님. 일단, 태산이가 뭔 말을 하는지 들어는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정하시죠.”

    권오준은 불퉁거리는 얼굴로 소파에 몸을 기댔다.

    이진용은 계속하라는 듯 운을 띄었다.

    “우리 김 시장, 계속 말해 봐. 아무래도 자신이 있는 것 같으니까.”

    능구렁이 같은 놈.

    언제 봐도 소름 끼치는 놈이 아닐 수 없다.

    “권 사장님은 큰 형님… 아니. 회장님이, 화진파를 기업의 모습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그러니까 그 냄새를 맡고 득달같이 달려와서 한자리 꿰차 보려는 것이죠.”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화진파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곳이다! 내가 아버지를 도와 키운 곳이라고!”

    저거야말로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권오준은 티끌만큼도 화진파에 쌓은 공적이 없다. 오히려 옆에 있는 이진용이 권용일을 도와 화진파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난 피식 실소를 터트리며 말했다.

    “정말 그렇습니까? 허구한 날 사고나 치면서 허세만 부리시던 분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권오준은 눈을 부릅뜨며 나를 노려보았다. 뭐라고 소리쳐 보려는 걸 이진용이 중간에 잘랐다.

    “김 사장. 말이 심하네.”

    “형님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권 사장님이 아까 말씀하셨죠? 제가 올라갈 자리는 여의도까지라고. 과연 그럴까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이미 화진파 절반 이상을 제가 장악하는 중입니다. 화진파가 완전히 기업으로 탈바꿈하게 되면, 그땐 더욱 돌이킬 수 없을 겁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흡수하고 있는 대양 그룹 대주주가 바로 저라서요.”

    권오준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듣지 못한 눈치였다. 그에 반해 이진용은 화진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속속들이 보고 받는 사람이 아닌가?

    “잘 알지. 화진 기업에 있는 지분과 대양 그룹에 있는 지분이 섞인다는 거 아니야?”

    “예. 아마 회장님 다음으로 제가 가장 많은 지분을 들게 될 겁니다. 어쩌면 제가 더 많은 지분을 가질 수도 있게 되겠죠. 어차피 지분 쌓아 놓을 돈은 많으니까요.”

    그제야 권오준은 내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며 말했다.

    “그, 그게 정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그걸 가만히 지켜보셨다고?”

    이놈, 아주 착각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설마 이놈은 아무런 대가도 없이 권용일이 모든 것을 넘겨줄 거로 생각했던 건가.

    “권 사장님. 회장님은 아들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물려 주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이 화진을 누구보다도 잘 이끌 수 있는 사람에게 물려주실 뿐이죠. 큰아들이나 되시는 분이 그것도 몰랐습니까?”

    권오준은 시뻘겋게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였다.

    “웃기지 마, 이 새끼야! 그까짓 거 지금이라도 다 엎으면 돼!”

    “하하. 가능하시겠어요? 이미 화진은 대양을 흡수 중입니다. 근데 이걸 여기서 엎어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브레이크가 없는 기차에요. 이거, 잘못 건드리면 화진도 지금까지 쌓아 온 걸 다 무너뜨려야 할 겁니다.”

    난 바보가 아니다. 그리고 기업 합병에 대한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또한 어떻게 하면 나를 방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도 대책을 세워 둔 상태다.

    대양 그룹이 화진에 흡수될 때, 이 영향으로 화진의 주인이 누가 될지 결정될 문제를 이진용이 모르고 있었을까?

    알면서도 그냥 놔둘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만큼 내가 철저하게 방어막을 쳐 두었으니까.

    이미 현 정부까지 참여하고 있는 인수 합병이다. 여기서 딴지를 걸게 되면 다 같이 공멸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제 나는 권오준에게서 시선을 떼고 이진용을 바라보았다.

    애초에 권오준은 내 상대가 아니었다. 저 멍청한 놈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이진용이 나의 진짜 적이다.

    그는 잔에 담긴 술을 살짝 들이켠 다음에, 입을 열었다.

    “김 사장.”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무섭게도 차가운 목소리로.

    “이제 갈 데까지 가자는 건가?”

    그렇다고 해서 내가 움찔거릴 것 같은가.

    이미 나는 이진용보다 몇 배나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이미 화살은 떠났습니다. 누가 먼저 화살에 맞아 죽느냐가 갈림길이 되겠죠.”

    “하하. 그렇지. 원래 이쪽 세상이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어?”

    이진용은 잔을 깨끗이 비운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권오준에게 말했다.

    “그만 가시죠, 사장님. 김 사장과는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권오준은 나와 이진용을 번갈아 쳐다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그리고 내게 되지도 않는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두고 보자. 언제까지 네놈이 그렇게 기고만장 하고 있는지.”

    난 싱긋 웃으며 답해 주었다.

    “멀리 안 나갑니다. 조심히들 가십시오.”

    어차피 저런 놈에게 뱉을 침도 아깝지 않겠는가.

    * * *

    전쟁은 시작되었다.

    내가 권오준과 이진용에게 선전포고를 날린 이상,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바른대로 말해서, 나와 이진용과의 전쟁이다. 권오준은 들러리 수준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려와는 다르게 이진용은 바로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와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나를 먼저 짓밟기보다는, 먼저 오성파를 제거해야 되지 않겠는가?

    “안녕하십니까, 형님!!”

    여의도에 집결한 150명의 조직원.

    이중 70명은 내 밑으로 있는 조직원이고, 나머지는 성일환과 황규혁이 보내 준 똘마니들이다. 그들은 모두 허리를 반으로 접은 채 내게 인사를 올렸다.

    예전, 여의도를 처음 쳤을 때도 내 연합원을 백 명 넘게 모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무거운 무게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이게 학생과 조직원의 차이라는 걸까?

    나는 계단에서 내려와 조직원 사이를 유유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 연장을 들고 내 뒤를 따랐다.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히 정권과 범죄 조직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이제 이것은 오성파와 화진파, 둘 중 누가 살아남느냐가 달린 전쟁이다.

    정부에서도 차라리 둘로 나뉜 것보다는 하나로 뭉쳐 있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들이 통제하기가 편할 테니까.

    그래서일까.

    이렇게 많은 조직원이 내 뒤를 따라 이동하는데도 경찰 하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 중이라지만…. 완전히 사람들을 차단할 수는 없었다. 당연히 시민들은 두려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공권력이 간섭할 수 없는 전쟁.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조직 간의 전쟁이다.

    “형님. 뒤로 서십시오. 제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동욱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다.

    오성파를 가장 먼저 치는 것도 내가 돼야 하고, 최후에 오성파를 끝장내는 것도 바로 내가 돼야 한다.

    “됐어. 잘 따라오기나 해.”

    “…예, 형님.”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걸어가는 이유는, 정부와 이야기가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번 싸움으로 우리가 승리하게 되면, 정부에서는 오성파에 속해 있는 조직원들을 전부 붙잡을 예정이다. 그리고 정부가 오성파를 처리했다는 식으로 발표를 하게 될 테니. 어찌 보면 그들의 수고를 우리가 대신 해 주는 것이다.

    물론, 언론에게 돈을 뿌려 입막음을 해야 하는 건 오롯이 나의 몫이겠지만.

    “여기입니다, 형님.”

    여의도에 깔려 있는 오성파의 구역.

    지금까지는 그냥 눈 감아 주고 있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나는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오성파 조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뒷걸음질부터 쳤다.

    나 혼자라면 일단 주먹부터 날리고 봤겠지만, 지금 내 뒤에는 압도적인 숫자가 함께 있지 않던가. 이들은 길게 생각하지 않고 건물 계단을 빠르게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줄행랑이라도 치겠다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천천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

    “여긴 손님 접대가 아주 개판이네. 이래서 장사 하겠어?”

    3층까지 가서야 사람 면상을 볼 수 있었다.

    이놈들, 나름 저항을 해 보려는 것인지 각자 손에 연장을 든 채였다. 그리고 3층에 모여 있는 조직원 숫자도 그리 적은 건 아니었다.

    물론, 내가 데려온 애들 숫자에 비교하자면야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여기가 어딘지 알고 발을 들인 거야, 이 새….”

    그놈들 중 행동대장으로 보이는 덩치 큰 남자가 정면에 나서서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내 얼굴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너, 너는….”

    아무래도 나를 알아본 모양이다.

    나는 상대가 당황하고 있는 틈을 타서 먼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콰직-!

    “다 죽여 버려!!”

    그것을 신호탄으로 내 조직원들도 건물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저항을 하던 적들도, 물밑 듯이 들어오는 조직원 숫자에 제대로 반항조차 해 보지 못하고 있었다.

    한 명을 다섯 명이서 두드려 패고 있으니, 누가 저 상황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가끔 실력 있는 놈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때마다 동욱이나 정식이가 나서서 처리했다.

    정말이지 숫자도 숫자이지만, 실력 면에서도 차이가 컸다.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질을 높이려고 돈을 투자했던 게 효과가 있던 것 같다.

    “형님.”

    나는 대충 정리될 때까지 널찍한 사무실 소파에 앉아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동욱이가 내 앞으로 어떤 놈의 머리채를 잡아끌고 왔다.

    난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뜬 채로 동욱이에게 물었다.

    “뭐야, 이놈은.”

    “아까 형님이 원큐에 날려 버리신 놈입니다.”

    아. 그놈이구나.

    저렇게 곤죽이 된 얼굴을 어떻게 알아본단 말인가.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놈은 쿨럭거리며 피를 쏟은 뒤 대답했다.

    “서, 선형입니다.”

    “선형? 위로 형님은 없나? 아니면 네가 여기 여의도를 맡고 있는 간부인가?”

    “그, 그렇습니다.”

    고분고분한 걸 보니, 상황판단이 빠른 놈이다.

    “내기 지금까지 오래 봐 준 거야. 언젠간 이럴 줄 알고 있었잖아, 선형아.”

    선형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여기 있는 놈들 다 죽여도 누구 하나 찾지 않을 거야. 이미 내가 약은 다 쳐 놨거든. 그러니까 우리 쉽게 쉽게 가자. 그래야 너라도 살 거 아니야?”

    살 수 있다는 말에 선형은 밤탱이가 된 눈을 반짝였다.

    역시, 제 목숨은 아까워할 줄 아는 놈이라는 건가.

    난 선형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걸 물어보았다.

    “이창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오성파의 보스, 이창호의 행방.

    그것만 알면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왕이 잡히면 끝나는 것이 게임의 룰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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