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30화 (130/325)
  • 130화. 호랑이 사냥 (1)

    흔히 말하는 노일영 라인의 군부 인사들은 단결회라는 내부 조직을 통해 출세를 한다.

    단결회에 들지 못한 군인은 절대로 이마에 별을 달 수 없다는 뜻이다.

    부조리한 시스템이긴 하나, 그만큼 지배력이 강하다.

    단결회 덕분에 군부 독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노일영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그의 라인을 잡고 있던 군인들이 제대로 꽃길을 걷게 되었다. 이필기도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인물이지 않던가.

    그래서 이들은 영원한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단결회를 더욱 결속시키려 한다.

    다음 대선 때 진보가 정권을 잡게 되면 언제라도 쿠데타를 일으킬 수 있게, 군부의 힘을 단단하게 하려는 것.

    하지만 이것도 몇 년 안 남았다.

    김강산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하는 일이 바로 단결회 숙청이다.

    속전속결로 순식간에 단결회 소속 군인들을 직위 해제시키는 등, 위세 높던 단결회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다.

    이필기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첫째는, 저는 우리의 공동체를 파괴한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서 이를 소탕해나갈 것입니다. 둘째는 민주사회의 기틀을 위협하는 불법과 무질서를 추방할 것입니다. 셋째는 과소비와 투기, 또 퇴폐와 향락을 바로 잡아. 일하는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노일영 대통령의 10. 13 선언.

    제6 공화국이 선포하는 범죄와의 전쟁이다.

    솔직히 말이 범죄와의 전쟁이지, 실상은 청명계획 스캔들을 덮기 위한 홍보 전쟁이다. 그러나 효과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서 정부는 수십 개의 조직을 소탕하고, 700명이 넘는 조직원들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번 범죄와의 전쟁을 하는 의도는 어디까지나 정부의 구린 점을 덮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주 크게 일을 벌여야만 했다.

    그로 인해 경찰들은 성과를 올리기에 급급하고, 애꿎은 사람을 붙잡아 고문하여 거짓 자백을 받아들이는 등…. 선량한 시민들을 범죄자로 몰고 가게 된다.

    나중에 UN에서도 이 일 때문에 한국은 인권유린이 너무 심하다며 비판까지 한다.

    “드디어 정부에서도 콜을 외쳤구먼.”

    노일영의 10.13선언이 끝나자, 성일환은 TV를 끄고 내게 몸을 돌렸다.

    눈빛을 반짝이는 것을 보니, 드디어 오성파와의 악연을 끊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오성파가 책잡힐 일은 아주 많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놈들이 인신매매를 악질적으로 하는 놈들이잖아요.”

    “맞아. 우리와는 운영하는 시장이 다르지. 우리야 마약으로 먹고 사는 곳이니까.”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마치 당연하게도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곳은 유흥 업소였다.

    배가 부르면 육체적 욕망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래서 오성파와 같은 큰 조직들이 여자, 남자를 가리지 않고 납치해 성매매를 시키거나 외국에 팔아버리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행했다. 실제로 80년대 기사를 보면 실종 기사가 굉장히 많다.

    다행히 화진파는 그쪽에 손을 대지 않고 있는 상태다.

    사람 장사로 한 번 걸렸다가는 마약보다 더 큰 피해를 볼 것이라는 권용일의 혜안도 혜안이지만, 마약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대한민국 마약 시장은 화진파가 주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던가.

    그래서 오성파가 사람 장사로 세력을 확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꼬투리 삼아 오성파를 묻어 버리려는 것이다.

    “정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 인신매매를 했다는 정황을 잡아 가져오라는 거죠.”

    “그러면 오성파를 뒤엎든, 솎아내든 상관하지 않는다?”

    “예. 그게 바로 거래 조건이었습니다.”

    꼬투리를 잡으려면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분명히 오성파가 납치한 사람들을 모아둔 장소가 있을 터. 그곳을 알아내어 경찰에게 넘긴다면 나머지는 정부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언제쯤 칠 생각이냐?”

    “가능하면 빨리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성파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채고 대비라도 하게 되면 일이 복잡해져요.”

    오성파는 거대 조직이다.

    아무리 화진파가 그들의 힘을 앞질렀다고 해도 호랑이는 호랑이라는 것.

    더군다나 본진 하나만 부순다고 해서 무너질 조직도 더더욱 아니다. 그렇기에 속전속결을 위해서라도 대다수 조직원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메데인 카르텔 조직원들을 한국에 들여와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도 하고 있다. 물론, 메데인을 동원하는 건 위험성이 동반되기 때문에 아직은 때가 아니다.

    “큰 형님한테도 이미 말씀드렸어. 그래도 애들 다 모으려면 일주일은 걸릴 거야.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여야 할 테니까, 간부들이랑 미리 사인도 맞춰야 되고.”

    간부들과 사인을 맞춘다라.

    그렇다는 건 이진용도 포함이 된다는 건데.

    과연 그는 이번 작전을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데 형님.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내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성일환도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말해 봐.”

    “오성파를 치워 버리고 난 후의 일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후의 일?”

    “예. 오성파의 목을 치고 나면, 저는 곧바로 그 칼을 이진용에게 겨눌 생각입니다.”

    성일환과 황규혁의 표정이 동시에 달라졌다.

    “태산아. 이진용을 치겠다고? 너무 갑작스러운 게 아닐까?”

    황규혁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조직 내에서 이진용을 따르는 사람이 좀 많은가?

    하지만 이 기회에 이진용을 치지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생길지 모른다.

    “조직이 분열될 수도 있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성일환도 우려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둘 다 이진용의 힘을 두려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조직을 걱정하는 것인가.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없습니다. 지금 모든 힘이 한곳에 모여 오성파를 칠 때, 그 틈을 이용해 이진용을 쳐야 합니다.”

    “말이야 쉽지. 이진용이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야.”

    “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빌미로 제가 칼을 갈고 있다는 건 아마 모를 겁니다. 오성파를 치는 일에만 급급하다고 생각하겠죠.”

    내 말을 들은 성일환이 짧게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치자는 거야?”

    “엎어야죠. 솔직히 이진용만 사라지면 나머지는 알아서 우리 뒤에 붙을 겁니다.”

    “네 말이 맞아. 이진용이 뒤지면 나머지 놈들은 우리쪽 라인으로 갈아타겠지. 문제는….”

    성일환은 잔에 담긴 술을 한 번에 털어 버린 뒤 말을 이었다.

    “큰 형님이 이 일을 허락하시겠냐는 거지.”

    문제는 권용일이다, 이건가?

    하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형님.”

    “그래, 태산아.”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진용이 사라지게 되면….”

    성일환은 내가 다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손을 저었다.

    “나도 알아. 이제 네 세상이 되는 거지. 이진용만 사라지면 큰 형님 후계자는 네가 된다는 거,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랬던 건가.

    그런데도 내 옆에 있다는 건 나를 왕으로 받들며 살겠다는 것인가?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버릇없게….”

    “아니야. 오히려 당연한 거지. 그리고 네가 좀 난 놈이냐? 솔직히 너 아니면 큰 형님 뒤를 이을 사람이 없어요.”

    저건 절대 비꼬는 게 아니다. 그만큼 성일환도 내가 화진파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나도 성일환 형님과 같은 생각이다. 그러니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도 힘닿는 대로 도울 테니까.”

    성일환과 마찬가지로 황규혁도 나를 인정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둘은 믿을 수 있다는 것.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고 해야 할까.

    적어도 이 두 사람만큼은 내 손으로 갈아치우는 일이 없었으면 했으니까 말이다.

    “그럼, 일주일 안에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저도 최대한 조직원들을 모아 놓을게요.”

    “그래. 나랑 규혁이도 그렇게 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해. 다른 것도 아니고, 호랑이 사냥을 시작하는 거니까.”

    호랑이 사냥이라.

    틀린 말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 전쟁이 사자와 호랑이의 전쟁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테니까.

    * * *

    오성파를 점령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자, 화진파는 그 어떤 때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회사가 세워진 지 별로 되지 않는 것도 있고, 일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을 해야 하니 간부들도 머리가 아픈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오성파를 친다는 일에 반대를 하지 않았다.

    권용일이 강압적으로 밀어붙여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며칠 후면 오성파와 화진파의 숙명적인 대결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람과도….

    “아이고, 김 사장. 내가 너무 바쁠 때 찾아왔나?”

    갑자기 여의도에 나타난 이진용은 익살스럽게 웃으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예상치 못한 그의 방문에 좀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표정을 풀며 그를 맞이했다.

    “아닙니다, 형님. 여기 앉으시죠. 그런데 이분은….”

    이진용 혼자만 온 것이 아니다.

    뭔가 익숙한 얼굴이 함께 왔다.

    “아아. 그러고 보니 우리 김 사장은 뵌 적이 한 번도 없지? 인사하게. 우리 큰 형님…. 아니지. 이젠 회장님이구나. 우리 회장님 첫째 아들이셔.”

    첫째 아들?

    그렇다면….

    “아. 네가 김태산이구나. 얘기는 들었다. 내가 누군지는 알지?”

    내가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권용일의 첫째 아들이자, 훗날 화진 그룹의 회장이 되는 사람을.

    “아…. 예. 안녕하십니까.”

    나는 권오준이 건네는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싹수부터가 인성이 글러 먹은 새끼다. 아무리 나이 차가 있다고 해도 다짜고짜 반말부터 찍찍 내뱉다니.

    “태산이 너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권 사장님은 성남 쪽을 맡고 계셔. 거리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까, 앞으로 자주 찾아뵙도록 해. 알겠지?”

    왜 권오준을 내 앞에 데려온 걸까.

    나는 이진용의 의도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일단 이 상황을 탈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들이 날 찾아온 이유를 알아야겠다.

    “그런데 여의도까지 발걸음을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냥 부르셨으면 제가 찾아뵈었을 겁니다.”

    “그래? 마치 내가 불편하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우리 김 사장. 내가 불편해?”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면상에 이미 써 있구먼. 나 불편하다고.”

    이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나는 애써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았다.

    그냥 시비 한 번 걸려고 온 거라면 내가 끝까지 참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허허. 권 사장님. 우리 태산이가 그럴 놈이 아니에요. 얼마나 깍듯하고 성실한 놈인데. 앞으로 권 사장님을 위해서 열심히 몸 바쳐 일할 겁니다.”

    “아, 그래요? 나도 듣긴 들었어요. 김태산이 화진파를 위해 열정을 다 바쳐 일한다고. 그런 일꾼이 있다면 나도 편하지.”

    일꾼이라.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정말 나를 일꾼으로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권용일의 마음이 이미 내게 기울지 않았던가. 그리고 내가 가진 힘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런데 나를 일꾼이라고 깎아내리는 건, 단순히 나를 견제하기 위함인가?

    “술이라도 한 잔 줘 보지? 뻘쭘하게 앉아있기만 하니, 좀 그렇네.”

    권오준의 거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잔을 건넸다. 그래도 나이 사십 먹은 사람이다. 아직 날 새파랗게 어린놈으로 보겠지.

    그는 내가 따라주는 술을 받으며 말했다.

    “김 사장.”

    “예, 사장님.”

    “너무 나대지 마.”

    순간 권오준의 잔을 채워주던 술이 뚝 멈췄다.

    난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술을 살짝 들이켜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내 말 무슨 뜻인지 몰라? 네가 올라갈 자리는 여의도, 여기가 끝이라고. 그러니까 더는 욕심 피우지 말라는 거야, 이 새끼야.”

    역시, 이 새끼는 날 견제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분명하다.

    쪼잔한 새끼. 고작 그런 협박이 나한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더는 이런 새끼한테 예의를 차려 줄 필요가 없다.

    난 술병을 내려놓고 소파에 등은 기댄 다음, 거만하게 다리를 꼬았다.

    “이보세요, 권 사장님.”

    그 말을 들은 권오준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에 반해 이진용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뭐, 뭐야? 이보세요?”

    “그럼, 반말로 해 줄까? 이봐, 권 사장.”

    “아니, 이 새끼가 지금 미쳤나!”

    권오준은 술잔을 바닥에 내던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내게 닿지 못했다.

    내 뒤에 서 있던 정식이가 쏜살같이 달려와 권오준의 목에 칼을 들이댄 까닭이었다.

    “아저씨. 모가지 따이고 싶지 않으면 천천히 손 내리지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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