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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22화 (122/325)

122화. 마무리 되는 88. (1)

항상 그렇듯이, 일식집 다음에는 여자가 있는 룸이었다.

뭐, 그 이후부터는 이영훈 스스로 즐기라고 내가 운영 중인 여의도 룸에 던져 놓고 왔다.

아마 그 양반, 다음 날이 돼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먹고 마시게 될 것이다.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말은 저렇게 해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하영석이었다.

그는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막상 거래가 시작되면 그 많은 물자를 어떻게 감당할 생각이십니까?”

이영훈이 요구하는 것은 전체 매출의 20%.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군납품을 제공해 줄 것을 요구했다.

대양 그룹과 화진파가 달려들어도 수십만 장병이 쓸 그 많은 물자를 어찌 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분명 하영석은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아직 방산 비리의 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이제 우리가 2차 입찰을 시작해야죠.”

“2차 입찰이요?”

“예. 설마 우리가 그 많은 걸 만들어서 군부에 직접 납품을 하겠어요? 이제 각 업체에 공고를 내서, 우리가 군대에 물품을 납품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죠.”

“아. 설마….”

이제야 하영석도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그 설마가 아마 맞을 겁니다. 이영훈 소장이 우리에게 20%를 요구했죠?”

“예. 그랬습니다.”

“우리와 거래를 원하는 중소기업에게 저는 30%를 요구할 겁니다. 물론, 그 사람들은 제가 도둑놈이라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게 있기 때문에 미친 듯이 달려들 겁니다. 어떤 놈은 돈 봉투를 슬쩍 내밀면서 제발 받아달라고 부탁할 거고요.”

내가 1차로 군부의 납품권을 받아내게 되면, 2차 판매권은 이제 내 손에 달리게 된다.

한번 내가 전체 납품을 책임지겠다고 한 이상, 누구도 군부에 납품권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군부에서 납품권을 내게 넘겼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군부 내에서 누군가가 깨려고 한다면, 이필기와 이영훈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즉, 다른 기업들이 군부에 물자를 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를 거쳐야 한다는 것.

앞으로가 훨씬 바쁠 예정이다.

“이제 회장님을 한번 뵈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아주 많아질 겁니다. 그때 잊지 말고 꼭 30% 수수료를 항목에 추가하세요. 아마 대부분 40%를 불러도 하려 들 겁니다.”

수십만 장병들을 위해 벌이는 사업이다.

30% 수수료를 갈취한다고 해도 남는 장사이지 않은가.

왜냐하면 질이 아무리 나빠도 계약 기간 내에는 그 제품을 반드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누가 30% 수수료를 내고 질 좋은 물건을 군부에 내놓겠는가?

대부분 오래 쓰지도 못할 것들을, 혹은 아예 먹지도 못할 것들을 제품으로 내놓아 팔게 될 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나라를 위해 강제로 봉사해야 하는 장병들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 * *

“1차 납품권?”

“예. 군부 쪽과는 이미 얘기가 끝났습니다.”

권용일은 흥미로운 얘기를 들었다는 듯, 시가를 입에 물었다.

“네놈이 또 나를 돈방석이 앉혀 죽이려고 작정을 한 게로구나!”

장난스럽게 말하면서 권용일은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양반이다.

“그래서, 내가 뭘 해 줬으면 좋겠는데?”

“물자 납품에 관한 건 제가 알아서 하겠는데…. 물자만 납품해서는 안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총이랑 미사일도 쏘고 탱크도 몰아야 하니까.”

“예. 그래서 혹시 그쪽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 해서….”

권요일은 오래전부터 화학 산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러시아 쪽과 미국에 영향력을 넓혀 오지 않았던가.

마약만 비즈니스가 아니다.

무기를 공수해 오는 것도 비즈니스의 일환이다.

“러시아랑 미국 쪽에 잘 쇼부치면 될 거야. 뭐, 기대는 하지 마라. 질 좋은 무기는 가져오기 힘드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냥 굴러만 가면 됩니다.”

21세기가 돼서도 한국군과 북한군의 전력 차이는 크지가 않다.

우린 분명 북한에 배가 넘는 국방비를 쏟아붓고 있음에도 무기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바로 권용일 같은 사람이 군부와 손을 잡고 뒤에서 장난질을 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내가 한창 검사질을 할 때만 하더라도, 나라를 팔아먹는 이 매국노들을 전부 잡아 쳐넣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으니….

역시 세상사는 알 수 없다는 말이 정답이다.

“그런데 20%는 너무 사기 아니냐?”

“괜찮습니다. 저희는 30%를 떼어 버릴 거라서요.”

권용일은 쭉 빨고 있던 시가를 뱉어내며 소리쳤다.

“뭐, 뭐야? 30%? 이런 날강도를 봤나!”

“하하. 우리도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독한 놈. 아주 벼룩의 간을 빼 먹을 놈이다, 너는.”

“간 정도로는 부족하죠. 오장 육부를 다 빼 먹어야 속이 시원해집니다, 저는.”

피고 있던 시가를 재떨이에 비비며 권용일이 말했다.

“말이 1차 납품권이지, 아마 지들끼리 또 이것저것 다 해 먹을 거다. 그런 건 그냥 눈 감고 넘어가.”

1차 납품권을 내가 갖긴 했으나, 군 내부에서 알게 모르게 따로 해 먹으려는 놈이 있을 터. 그런 사소한 것까지 내가 터치할 순 없다. 그리고 괜히 그런 거로 감정이 상하기보단 그냥 조용히 넘어가 주는 게 좋다.

“예, 큰 형님.”

권용일은 오늘 기분이 아주 좋은지 잘 열지도 않는 술 뚜껑을 열었다.

“오늘은 한잔하고 가라. 우리끼리라도 축하해야지. 안 그래?”

“감사합니다.”

나는 권용일과 함께 오랜만에 술잔을 기울이며 밤이 새도록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 * *

1988년 9월 17일.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하계 올림픽이 열리게 되는 날.

그 유명한 88올림픽이 개막하게 되었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88올림픽은 무수히 많은 해프닝이 있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개막을 했다.

총 160개국이 참가한 이번 올림픽은 역사적으로도 많은 의미를 낳는다.

전쟁 이후 폐허만 남은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면서 그 옛 모습은 이미 지워버렸다는 걸 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일로 그동안 한국이 폐허만 남은 후진국이라고 생각한 외국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또한 보이콧을 주장했던 공산 국가들이 참여하면서 서울 올림픽은 더욱 빛을 발했다. 물론, 88올핌픽의 개최를 방해했던 북한의 참여는 끝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랜만에 학교를 가니, 못 보던 얼굴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제 나도 2학년이 되었다.

이제 누군가의 선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 선배 노릇을 할 생각은 좁쌀만큼도 없었다.

“안녕? 김태산, 맞지?”

“응? 아. 응.”

“오늘 우리 과모임이 있거든. 그러니까 빠지지 말고 꼭 참석해줘. 이제까지 한 번도 넌 참석한 적이 없잖아.”

하 씨 집안과 엮인 뒤로부터 가뜩이나 가지 않았던 학교에 더 안 가게 돼서, 같은 과 동기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음…. 나는 오늘 일이 많은….”

“그럼, 오늘 오는 거로 알고 준비할게.”

“응? 자, 잠깐만.”

내게 일방적인 통보만 남긴 여학생은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학과장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 학교에 온 것도 학과장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학과장님. 김태산입니다.”

내 이름을 듣자마자 학과장이 직접 문까지 열어주며 나를 반겼다.

“아이고. 김 사장님. 어서 오세요.”

“학과장님. 여기서는 그냥 학생입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허허. 그, 그런가요? 그래도 아무리 학생이라고 해도 서로 존중은 해 줘야죠.”

이 양반은 도박에 미쳐 돈을 다 탕진한 전과가 있다. 그래서 급전을 땡기기 위해 명동을 전전하던 중, 내게 돈을 빌리게 되었다.

도박꾼들의 최후야 말 안 해도 다 알지 않은가.

이놈은 내가 빌려준 돈도 전부 다 말아먹고 조직원들 손에 붙잡혀 왔었다. 그때 나는 빚을 탕감해 주는 대신, 내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잘 처리해 달라는 거래를 했다.

“그런데 오늘 여기까진 어쩐 일로….”

“너무 오래 안 온 거 같아서요. 혹시 문제가 될까 싶어….”

“허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시험은 빼놓지 않고 전부 보셨던데요? 더군다나 시험 점수도 좋아서 딱히 제가 힘쓸 일은 크게 없었습니다. 그냥 출석 문제 정도만 처리했죠.”

이럴 땐 참 돈이 편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렇군요. 괜한 걱정을 했나 봅니다.”

“제가 힘을 쓰고 있긴 하지만, 워낙 위에서도 김 사장님에게 최대한 편의를 드리라고 해서요.”

생색을 내는 것인가.

나는 슬쩍 미소를 보이며 품 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요즘 학교에 봉사하시느라 힘드실 텐데 이걸로 몸보신 좀 하세요.”

학과장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처럼 벌어지면서 넙죽 봉투를 받아 챙겼다.

“허허. 역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분은 김 사장님밖에 없습니다그려.”

“저도 졸업장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예. 그럼, 살펴 가십시오.”

내가 사무실 밖을 나가려고 하자 학과장은 머리가 땅에 닿을 것처럼 허리를 숙였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역시 돈 앞에서는 신분의 차별이 없다.

* * *

학과장도 만났고, 이제 더는 학교에 볼일이 없다.

과모임에 꼭 참석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오랜만에 강의를 몇 개 좀 들은 뒤, 나는 그만 여의도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몇 명의 사람들이 달려와 나를 포위했다.

“혹시 집에 가려는 거 아니지?”

아까 내게 일방적인 통보를 날렸던 바로 그 여학생이었다. 그 옆에는 남자 두 명과 여자 두 명이 함께 있었다.

“응? 아…. 오늘 내가 좀 바빠서. 미안한데 다음에 참석하면 안 될까?”

“응. 안 돼.”

“….”

단호박처럼 못을 박아버리는 여학생을 난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말했다.

“미안해. 오늘 내가 진짜 급한 일이 있어서….”

“안 된다니까? 이거보다 더 급한 일이 뭐가 있다고 그래. 그리고… 너 내 이름 모르지?”

“어…. 수진이였나?”

난 얼핏 들었던 것 같은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녀는 인상을 구기며 차갑게 말했다.

“박채린이야. 과대표고.”

“그랬구나. 아무튼, 난 꼭 다음에 참석할게. 아! 오늘 과모임 비용도 전부 내가 낼게. 그럼 됐지?”

나는 허겁지겁 강의실 밖을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박채린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안 된다니까? 아! 오늘 과모임 비용은 네가 전부 내. 남자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다.”

“아니. 날 보내줘야 그걸 내든가….”

“시끄럽고. 지금 출발해야 하니까, 따라와.”

박채린은 내 팔을 붙잡고 강제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학교 밖을 나갈 때까지 내 팔을 붙잡은 손을 절대 놓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봉 잡힌 거 같은데…?

“이거 놓고 가면 안 될까.”

“도망칠 거잖아.”

“안 도망쳐. 오늘 잠깐 얼굴만 비추면 될 거 아니야.”

난 포기하고 박채린의 뒤를 따라 학교 근처에 있는 술집에 들어갔다.

이미 다른 애들은 전부 모여 있는 상태였다.

“오! 태산이 왔다!”

“선배님! 이쪽으로 오세요!”

그냥 잠깐만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사방에서 나를 반갑게 부르며 자꾸만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이거… 잔에 담긴 술을 안 먹을 수도 없고.

“태산아. 내 이름 기억해?”

“나는?”

여학생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도 혼자 불려가 질문 공세를 받아야했다.

미안하지만, 여기서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태산이가 그 양아치 같은 놈 두드려 팼을 때 엄청 멋있었잖아.”

그게 멋있는 일인가.

난 아직도 그때 일만 생각하면 자다가 이불을 차게 되는데.

“맞아. 그때부터 선배들이 우리 학번은 아예 건드리지도 못했지.”

“으휴. 그놈이 얼마나 여학생들한테 치근덕댔는데. 태산이 덕분에 이제 그런 일도 없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는 이 잔만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려했다.

어색한 자리인 만큼, 길게 앉아 있기도 부담스러웠다.

“오. 왔다.”

“진짜 왔네!?”

“우와!”

그런데 남학생들 자리에서 감탄사가 연발되고 있었다.

분명 예쁜 여학생이 등장한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여학생 자리에서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며 불꽃 튀는 질투가 눈빛에서부터 분출되고 있었다

더 분위기가 차가워지기 전에 얼른 일어나야겠다.

“태산 씨.”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나는 설마 하며 얼른 고개를 돌려보았다.

“우리 한국에서 보는 건 처음이죠?”

지금쯤 미국에 있어야 할 권윤아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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