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21화 (121/325)

121화. 엎드린다. (2)

그토록 기고만장했던 동생 녀석이 드디어 꼬리를 내리니, 이강혁은 승리감에 젖은 얼굴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사장.”

“예, 부회장님.”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부회장 이강혁이 아니었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날 안심하게 만든 다음에 뒤통수치려고?”

이강찬은 정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부회장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대신, 나도 먹을 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회장님 되시고 나서 계열사 몇 개만 챙겨 주세요. 그걸로 만족합니다.”

이강찬의 말을 들은 이강혁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강찬아. 내가 미쳤니? 난 너랑 천성의 벽돌 한 장도 나눠 가질 생각이 없어.”

지독한 욕심이다.

콩고물 하나도 주지 않을 생각이란 말인가.

“부회장님. 아니, 형님. 내가 전적으로 돕겠소. 형님이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형님이 회장이 될 수 있도록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거지.”

흥미를 느낀 이강혁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되물었다.

“무슨 짓이든?”

“예.”

“그럼, 용우건설에서 먼저 손 떼. 그리고 내 계열사 밑으로 들어와. 경영에는 일절 손 떼고, 내 일이나 도우라는 거야.”

이강찬은 주먹을 꽉 쥐었다.

부르르 몸이 떨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지만, 그는 애써 머리를 차갑게 식히며 말했다.

“그렇게만 하면 돼요? 나는 아버지가 물려주시는 쥐꼬리만 한 계열사라도 들고 있을 거요. 내 노후는 챙겨야 하지 않겠어? 내 자식새끼들도 살아야 하니까.”

“흐흐. 네가 진짜 날 돕는다면 품위 유지비 정도는 챙겨 줄게. 대신, 조금이라도 반항을 하면….”

“그땐 형님 마음대로 하시오. 어차피 이 천성은 다 형님 거 아니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고…. 방금 전까지 철천지원수처럼 지내던 동생이 태도를 바꾸고 자신을 띄워주자, 이강혁은 절로 웃음부터 나왔다.

“그래그래. 너도 내 동생 아니냐? 형이 아우를 챙겨 주는 거지. 그러니까 조용히 찌그러져 있어.”

“…명심하겠소.”

“네 마음은 잘 알았으니까, 그만 가 봐. 그리고 아버지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까, 인사 발령 나면 군말 없이 오고.”

이강찬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무실 밖으로 나서는 순간에도 이 비참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그는 속으로 이를 빠득 갈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 수모를 갚아주리라 맹세하면서.

그에 반해 이강혁은 사라지는 이강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놈이 정말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지는 모르겠다. 그건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 아닌가?

만일 허튼수작을 부리는 것이라면 그땐 철저하게 짓밟으면 될 일.

그러나 정말로 자신을 따라 살길을 열려는 것이라면 꽤 쓸 만한 인재를 등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정하긴 싫어도 이강찬이 형제 중에서 머리가 제일 좋긴 하니까.

물론, 이강찬이 자기를 돕는다고 해도…. 이강혁은 계열사를 단 하나도 넘겨줄 생각이 없었다.

벽돌 한 장도 나누지 않겠다는 건 진심이었다.

* * *

1988년 7월.

미국 대선이 절정에 달하는 시기.

나는 김아름에게 계속해서 보고를 받고 명령을 전달하는 등, 미국 대선에 깊이 관여하기 시작했다.

리 애트워터가 했던 그대로, 나는 네거티브 선전을 펼쳐 부시를 위협하는 상대 후보들을 마구잡이로 공격했다. 거기다가 부시는 입담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덕에, 대선 토론에서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콘트라 게이트 사건이 보수 정당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막상 대선 전쟁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네거티브 전략이 제대로 먹힌 것이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 소장님.”

미국 대선도 신경을 쓰고 있긴 하지만, 내가 한국에 있는 이상 화진파 일도 이끌고 가야 했다. 화진파를 흡수하는 것도 내겐 중요한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대양 그룹에 있는 화학 회사를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 군부 쪽에 라인을 만드는 중이었다. 물론, 노일영의 오른팔인 이필기가 있는 이상 군부에 루트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 사장님이십니까? 듣던 대로 정말 미남이시군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여기는 대양 그룹의 하영석 회장님이십니다.”

“아! 하장만 전 회장님의 큰아들이시라는….”

“예, 소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하영석이라고 합니다.”

이필기와 마찬가지로 노일영 라인을 잡고 있다가 이번에 출셋길이 열린 이영훈 소장은 하영석과도 악수를 나눴다.

“이거, 오늘 반가운 얼굴을 많이 뵙는 것 같아 기분이 좋군요. 거기다가 비싼 일식집까지….”

“하하. 이거에 놀라시면 안 됩니다. 소장님을 위해 오늘 준비한 게 많거든요.”

내가 잔에 술을 채워주면서 운을 던지자, 이영훈은 은근슬쩍 내게 물었다.

“이러다가 탈 나는 건 아닐는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탈 나지 마시라고 약 한 봉지도 소장님 차 트렁크에 넣어두라고 했습니다.”

내가 설마 진짜 약을 줬겠는가?

약을 가장한 돈을 건넨 것이었다.

그제야 이영훈은 껄껄 웃으며 내 잔에도 술을 채워 주었다.

“역시, 젊으신 분이라 그런지 이야기하는 게 시원시원합니다. 앞으로도 기대가 되네요.”

“예. 그렇지 않아도 각하께서 화학 산업에 물꼬를 트고 싶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제가 대양 그룹 회장님을 직접 모시고 온 겁니다. 이런 중차대한 이야기는 소장님과 나눠야 할 것 같아서요.”

“아이고. 이 사람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기 띄워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그럴 리가요. 군부에서 얘기가 들어가는 건 이영훈 소장님을 거치지 않고서는 절대 이뤄질 수가 없지 않습니까?”

어울리지도 않은 겸양을 떨고 있던 이영훈은 더욱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자신을 높여 주니,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는 술을 쭉 들이켜고 나서 하영석을 슬쩍 바라보다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대양 그룹이 조만간 화진 기업과 합칠 거라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이영훈은 대양 그룹이 어떻게 박살 났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도 내 손에 갈가리 찢어졌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미 명동에서도 대양 그룹이 어떤 지경이 됐는지 소문이 쫙 퍼진 상태.

화진파가 대양 그룹을 먹었다는 건 기정사실화다. 그런데도 저렇게 묻는 건 왜 대양의 이름을 걸고 나오냐는 것이다.

나름대로 눈치가 있다고 해야 하나.

“소장님 말씀대로 대양 그룹은 조만간 화진 기업과 합병을 할 예정입니다. 그때 가면 여기 계신 하영석 회장님이 화진 화학의 사장이 되시는 거죠.”

“아-. 그렇습니까? 이야기가 벌써 그렇게 진행된 것이군요. 그럼, 초기에는 대양 화학으로 있다가, 나중에 이름이 바뀌게 되는 겁니까?”

“예. 당장은 힘들겠지만, 대양 화학이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저절로 화진에 흡수가 될 겁니다.”

이영훈은 마음을 놓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진이 나올 줄 알았던 자리에, 생뚱 맞게 대양 그룹 이름이 나오니 적잖게 황당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피곤한 일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허허. 김 사장님 말씀대로 요즘 일이 많긴 하죠. 저번에 간첩 하나가 항공기를 폭파하지 않았습니까?”

“안타까운 사건이죠. 그것 때문에 말도 많고요.”

“예. 안 그래도 요즘 그것 때문에 미치겠어요. 몇몇 잘나신 양반들이 그걸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걸 정부의 자작극으로 모는 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항공기 폭파 사건은 명백한 북한의 소행이라고 이미 밝혀졌다.

물론, 지금은 진보 진영에서 이것을 꼬투리 삼아 보수 정당을 공격하고 있기도 하다.

솔직히 누구라도 의심을 할 만하다.

대선 전날에 항공기 사건이 터지지 않았던가?

그 덕분에 김강산에게 밀리고 있던 노일영이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다.

하지만 항공기 폭파 사건은 나중에도 조사가 계속 이뤄지지만, 그때마다 이 사건은 북한의 소행이라는 게 밝혀진다.

“그러셨군요. 그래도 그런 사람들 말은 전부 무시하고, 소장님은 안보에 집중을 하셔야 되지 않나요?”

“그렇지요. 저라도 해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기회를 노리고 있던 하영석이 이영훈의 잔에 술을 따라주면서 불쑥 끼어들었다.

“힘들지 않으시게 대양 화학에서 열심히 도와드리겠습니다.”

“회장님까지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니, 힘이 납니다그려. 그런데… 무기도 무기지만, 물자 쪽에도 필요한 게 참 많아요. 그 외에도 보급 물품이라는 게 워낙 많아서 말이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장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회장님.”

하영석은 힐끗 나를 쳐다본 다음, 이영훈에게 물었다.

“몇 퍼센트를 원하십니까?”

이영훈은 짧게 침음을 뱉으며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허허.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물으실 줄은 몰랐네요.”

“1차에서 편하게 해 드려야지 않겠습니까? 2차를 가서도 일 이야기를 하면서 부담을 드릴 순 없으니까요.”

하영석의 말이 맞다. 어차피 해야 할 이야기인 만큼, 빨리 마무리를 짓는 게 좋지 않겠는가.

구태여 시간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영훈도 그런 하영석의 제안이 썩 나쁘지 않다는 듯 미소를 보였다.

“좋습니다. 저도 오늘은 편하게 한 잔 걸치고 싶군요. 원래는 한 30%를 받아 챙기는 게 관례이긴 하지만, 제 윗분들의 말씀도 있고 하니 20%로 맞추고 싶습니다.”

30%라-.

이건 순 날강도나 하는 짓이다. 솔직히 20%도 그리 싼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많은 업체가 큰돈을 들여 군에 납품을 하는 건, 그만큼 남는 게 있기 때문이다.

방산 비리의 근본적인 문제가 바로 이것에 있다.

일반 사회에서 파는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소비자들이 고발을 하거나, 혹은 불매 운동을 벌여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다. 하지만 군대는 그런 기능이 없다.

조직적 활동이라는 규칙에 의해 모든 부대가 같은 제품을 써야 한다.

즉, 옆에 있는 사람이 먹으면 본인도 먹어야 하고…. 옆에 있는 사람이 입으면 본인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라는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인데, 군 체계를 뒤엎지 않는 이상 방산 비리를 막을 수 없다는 건 사실이다.

“20%…. 전체 매출에서 20%라고 하면 상당하겠군요.”

“하하. 이게 다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방산 비리라고 해서 우리를 깎아내리긴 하지만, 아시지 않습니까? 이건 생계를 위한 것이란 걸요.”

방산 비리가 아닌, 생계유지라는 건가.

내가 회귀 전 저런 개소리를 지껄이던 국방부 장관의 뉴스 내용을 보긴 했는데 말이다.

당장 국방부 장관도 저따위 소리를 하고 있는데, 그 밑에 있는 장성들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방산 비리를 조장하고 있는 입장으로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맞습니다. 나라를 지키시는 분들을 위한 일인데요. 손가락질할 만 한 일이 절대 아니지요.”

하영석이 맞장구를 쳐 주니, 이영훈은 그게 또 좋다고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젊으신 분들이라 생각도 깨어 있군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잘살아야 안보가 튼튼해지는 겁니다. 당장 우리가 비실비실 거린다고 생각해 봐요. 빨갱이 새끼들이 그 기회를 노리고 쳐들어온다니까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그냥 하는 소리인가.

부디 그냥 있기에는 뻘쭘하니 대충 생각나는 대로 뱉어내는 말이었으면 좋겠다.

정말 이 나라에 있는 장성들은 전부 저런 뭐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는 것일까?

“소장님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럼, 20%로 맞춰서 물품을 제공하겠습니다.”

“허허. 그렇게 신경을 써 주신다면야 더는 바랄 게 없지요. 앞으로도 대양을 적극 이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장님.”

방산 비리라고 해서 무기만 팔아 치우는 게 아니다.

병사들이 먹는 식량이나 옷도 방산 비리에 포함이 되고, 군용으로 쓰이는 사소한 물건까지도 비리에 좋은 도구가 된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 나라에 있는 방산 비리를 전부 없애 버리고 싶다. 적어도 우리의 안보가 걸린 일이 아닌가?

하지만 수십 년이 흐르고, 백 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이 고질적인 문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설사 우리나라가 먼 훗날에 통일이 된다고 해서 방산 비리가 없어질까?

오히려 그때 가면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군대라는 존재는 원래 그런 것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