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117화 (117/325)
  • 117화. 몇 없는 VVIP (1).

    부시와의 만남을 끝낸 뒤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앞으로 부시의 대선 캠페인을 돕게 될 김아름에게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남겼고, 강철중에게는 메데인 카르텔과의 거래를 경계하라는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권윤아와도 짧게 데이트를 즐긴 다음, 나는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황송하게도 미래의 챔피언 태혁이가 직접 배웅을 해 주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사실, 미국에 좀 더 오래 있으려고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일이 하나 터지는 바람에 급하게 티켓을 끊게 되었다.

    그 일이라는 건 바로 대양 그룹과 관련이 되어 있었다.

    “회장님. 이런 식으로 뵙기를 원하진 않았는데요?”

    대양 그룹 회장, 하장만은 밀항을 시도하다 우리 조직원들 손에 꼴사납게 잡혀 왔다.

    내가 빌려준 25억으로 회사 위기를 잠깐 넘기긴 했다. 하지만 급한 불만 끈 거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

    결과적으로 내 예상이 맞았다.

    내가 빌려준 25억으로 하장만 회장은 대양 그룹을 내게 넘기는 꼴이 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밀항은 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대양 그룹의 회장이라는 분이 쪼잔하게….”

    나는 하장만 옆에 서 있던 동욱이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그가 품 안에서 손도끼 하나를 꺼내더니, 하장만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렇게 밑 장 빼시면 곤란합니다, 회장님.”

    줄곧 말이 없던 하장만은 손도끼가 나오자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 이보게! 내, 내가 잘못했네. 사실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어!”

    “어떤 의도요? 제 돈 떼먹고 가려고 했던, 그 의도요?”

    “그, 그런 게 아니지 않은가. 나는 정말 갚으려고 노력했단 말이야. 그래서 외국으로 나가면 어떤 기회라도 잡아보려 했지!”

    이 양반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늘어놓기는.

    난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하장만 앞에 쭈그려 앉았다.

    “원금 25억에 이자를 쳐 보니까 대충… 50억은 족히 넘을 것 같던데요? 이거, 어떻게 갚으실 겁니까?”

    “이자율 75%는 살인적이야! 그걸 나더러 어떻게 갚으라는 건가!”

    “그러면 그때 돈을 빌리지 마셨어야죠. 이미 계약서까지 쓰지 않았습니까? 당신 인장도 거기에 찍혀 있어, 이 양반아.”

    나는 하장만에게 계약서를 던져 주었다.

    그는 자신의 인장이 찍혀 있는 계약서를 쳐다보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었다는 걸 알 것이다.

    난 측은한 목소리로 하장만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빌려드린 돈은 못 갚으실 거 같은데…. 제가 손해 보는 셈 치고, 한 가지 제안을 하겠습니다.”

    “어, 어떤 걸 말인가?”

    “담보로 맡기신 25% 주식 있죠? 그거랑 나머지 15% 주식도 넘겨주셔야겠습니다.”

    하장만은 올 게 왔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이놈이 밀항을 하려 했던 건 전부 이 주식 때문이다.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도망을 쳐 버리면, 우리는 법적으로 지분을 가져오는 수밖에 없다. 그럼, 매우 일이 복잡해지고, 추가로 주식을 뺏으려 해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하지만 하장만을 붙잡아 놓고 새로 계약서를 쓰게 한다면?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그 손모가지 잘라 놓고 그냥 여기서 눈을 감으시던지, 아니면 이 새 계약서에 인장을 찍으시던가요.”

    새 계약서에는 하장만이 가지고 있는 대양 그룹 지분을 전부 토해 낸다는 내용이었다. 그 대신, 내가 빌려준 25억은 없던 것으로 된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장만은 나와 그의 옆에 있는 손도끼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한숨을 푹 쉬었다.

    “인장을 찍겠네.”

    역시, 이놈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회사의 경영권을 보호할 생각이 티끌만큼도 없다. 그저 자신의 안위를 살필 뿐.

    그래서 내가 집요하게 대양 그룹을 괴롭힌 것이다.

    감히 내 목숨을 노렸다는 괘씸죄도 있긴 하지만, 대양 그룹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재료들이 몇 개 있다. 그리고 하장만이란 인간이 결국 제 꾀에 넘어갈 거라는 것을 알았기에, 나는 과감히 25억을 투자한 셈.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전리품을 챙긴 것이다.

    “탁월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회장님.”

    나는 동욱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동욱아. 회장님 그만 놔 드려라.”

    “예, 형님.”

    하장만은 입술을 꾹 깨물며 새 계약서에 인장을 찍었다. 혹시 몰라 각서까지 따로 받아 둔 뒤,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저대로 집에 가서 목숨을 끊는다고 해도 대양 그룹의 지분은 전부 내 것이다. 그리고 이미 기관에서 사 놓은 30%의 지분이 있지 않던가.

    대양 그룹을 지배하는 건 이제 나 김태산이다.

    “동욱아.”

    “예, 형님.”

    “가서 차 대기시켜.”

    “어디로 가실 겁니까?”

    “어디긴. 내 회사로 가야지.”

    동욱이는 슬쩍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내 회사라.

    리턴 컴퍼니도 내 회사이긴 하지만, 대양 그룹처럼 실체가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좀 묘했다.

    아무튼, 앞으로 내가 관리하게 될 회사의 꼬락서니가 어떤지 한번 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 *

    하장만이 인장을 찍은 계약서는 바로 효력을 발휘했다.

    나는 대양 그룹에 있는 70%의 지분을 갖게 되면서, 사실상 대양 그룹의 주인이 되었다. 나머지 30%는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그리고 개미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들도 간당간당한 대양 그룹이 불안해, 시장에 주식을 대량 풀었지만 아무도 사질 않아 계속 애물단지를 안고만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새로운 대양 그룹의 선장이 되면서 그들은 적극 반기는 입장을 나타냈다.

    망해 가는 회사를 다시 일으켜 보겠다고 나타났으니, 그들 눈에는 내가 구세주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 전무님. 제가 왜 전무님 사무실로 찾아왔는지 아시겠습니까?”

    하장만의 큰아들, 하영석은 공손히 나를 맞이했다. 그는 긴장감이 역력한 표정으로 내 물음에 답했다.

    “저를 해고하시려고….”

    “하하. 아닙니다.”

    “그럼, 좌천을….”

    “이런. 그것도 아닙니다.”

    별안간 스무고개를 하게 된 하영석은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나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사실, 전 대양 그룹을 경영할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여기 말고도 제가 신경 쓸 것이 많아서요.”

    “그렇다면… 전문 경영인을 고용할 생각이십니까?”

    “뭐,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하 전무님이 누구보다 대양 그룹을 잘 이끌어 줄 거 같은데.”

    하영석은 적잖게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예?! 그, 그럼 지금 저를 대양 그룹에 CEO로….”

    “아뇨. 그냥 회장에 앉으세요.”

    이제 하영석의 눈이 뒤집힐 것처럼 보였다.

    “기, 김 사장님. 그 말씀, 진심이십니까?”

    “전 농담 같은 거 안 합니다. 제가 농담 따 먹기나 하는 사람처럼 보이십니까?”

    “그,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생각지도 못한 거라….”

    제 아비인 하장만을 개박살낸 것이 바로 나다. 그런데 내가 회장 자리를 던져 줬으니, 하영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오래전부터 대양 그룹을 면밀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이곳에서 가장 틀이 잘 박힌 게 하 전무님이더군요. 리더십도 있고, 직원들의 평가에서도 하 전무님의 이름이 항상 거론됩니다. 그만큼 총망을 받고 있다는 거겠지요.”

    “그냥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그룹을 잘 이끌 수 있을지….”

    “하 전무님은 충분히 능력 있습니다. 아! 물론, 제가 마냥 회장 자리를 주겠다는 건 아닙니다. 주주총회를 열어 회장에 앉혀드리는 만큼, 내려오게 하는 것도 간단하니까요.”

    하영석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장님의 뜻, 잘 알겠습니다. 부족할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대양 그룹을 키워 보겠습니다.”

    “하하. 너무 부담 갖진 마세요. 제가 일거리를 계속 던져 드릴 겁니다. 앞으로 엄청 바쁘실 테니, 각오 단단히 하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하 전무님의 아버님은 일체 경영에 관여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럴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내 말을 다 듣기도 전에 하영석이 얼른 대답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집안일은 회사에 영향이 없게 잘 해결해 놓겠습니다.”

    역시, 내 생각대로 하영석은 하장만과 다른 사람이다.

    포기할 땐 포기할 줄 알고, 잡아야 할 건 바로 잡는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을 뽑은 것이다.

    사실, 새로 사람을 뽑는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구조는 하영석이 더 잘 알지 않겠는가?

    만약, 뒤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해임을 시켜도 문제가 안 되는 것이다.

    “하 전무님의 말씀을 믿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양 그룹이지만, 조만간 화진 그룹의 계열사로 들어가게 될 겁니다.”

    화진 그룹의 계열사라는 말에, 하영석은 조금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화진… 그룹이요?”

    “예. 아실지 모르겠지만, 화진이 건설업을 시작하면서 기업의 모습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계열사를 늘릴 생각입니다. 그럼, 금방 그룹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화진이 그 정도로 성장하다니. 역시, 이게 다 김 사장님 덕분입니까?”

    이놈 이거… 벌써 아부를 다 떨 줄 알고.

    역시, 하씨 집안에서 가장 개념이 박혀 있는 놈이다.

    “하하. 비행기 태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튼, 대양 그룹은 화학을 주력으로 삼아 성장을 꾀할 겁니다.”

    “화학이요?”

    하영석은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대양 그룹이 경영 위기에 빠진 건 전부 화학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연줄도 없이, 하장만이 대양 화학을 세워 운영하는 바람에 회사가 기울어진 것.

    화학업이라는 게 군부와 든든한 라인을 만들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어마어마한 방산 비리로 성장하는 곳이 화학업이지 않던가?

    대양 그룹이 망하게 된 이유가 화학업이긴 하지만, 앞으로 대양 그룹이 성장하게 되는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화학업이 될 것이다.

    내가 대양 그룹을 주목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화학업이기 때문이다.

    화진파가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엔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화학업이다. 그래서 나는 머지않은 미래에 가장 큰 주축이 될 화학 쪽을 선점해 놓은 것이다.

    추후 대양 그룹이 화진에 흡수되면, 주력을 차지할 화학업의 지분을 내가 가장 많이 갖고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앞으로 화진 그룹을 장악할 때 더욱 수월한 지분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화학 쪽은 군부와의 라인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하 전무님께 군부 쪽 장성들을 소개해드릴 겁니다. 그들을 설득하는 건, 오로지 하 전무님의 역할이니 열심히 하셔야 할 겁니다.”

    “장성들을 설득한 다라…. 돈이 많이 들겠군요.”

    나름 이쪽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은 알고 있는 모양이다.

    “예. 룸빵도 많이 돌려야 하고, 아시지 않습니까? 그쪽 계통 사람들이 좀 꽉 막힌 구석이 있긴 해요. 그래도 제가 잡고 있는 라인은 그들도 절대 불복하지 못하는 곳이니 크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군부의 장성들이 절대 불복하지 못하는 곳이요…? 그건 설마….”

    난 씨익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파란집에 있는 분이 제 라인이거든요.”

    하영석의 놀란 표정을 보는 게 점점 재미가 붙는 것 같았다.

    그는 크게 놀랐는지 기침까지 터트리며 말했다.

    “그, 그 말씀은 노일영 대통령을…!”

    “그것도 직통으로 연결이 가능한 사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아시겠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을 직통으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

    이 나라에 몇 없는 VVIP 중 하나가 바로 나다.

    이것으로 하영석은 나와의 격차를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절대 대항해서는 안 될 사람이라는 강력한 두려움을 낳게 된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대답하는 건 마음에 든다.

    확실히 하영석은 대기업의 우두머리는 힘들겠지만, 그 오른팔을 담당하는 건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그는 나의 훌륭한 오른팔로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물론, 만에 하나라도 내 뒤통수를 치려 하는 조짐이 보인다면, 그때 사장을 시켜 놓아도 늦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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