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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8화 (68/325)
  • 68화. 잊고 있던 약속 (1)

    “이창호와 동창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권용일에 대해 솔직히 아는 바가 많지 않다.

    검사 시절 때, 화진 그룹을 조사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미 죽은 권용일에 대해 알아보지 않은 탓이 컸다.

    그래서 권용일과 이창호의 관계를 미리 알지 못한 것이다.

    “내가 그놈이랑 같은 동네에서 자랐어. 부산에서 세력을 넓히긴 했지만, 그놈도 여기 천안 사람이야. 제 아버지랑 떨어져 살았거든.”

    이창호의 아버지가 부산에서부터 오성파를 일으켰다.

    그러다 이창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는 건데….

    둘이 이런 사이가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내가 그놈 아버지 밑에서 일을 좀 했었거든. 사실, 내가 그때 거기서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화진도 없었을 거야.”

    이건 또 신선한 충격이다.

    권용일이 오성파의 일원이었다는 건가.

    “그래서 이창호 그놈이 날 막 대하는 경향이 있어. 뭐, 그놈 눈에는 내가 배신자처럼 보였던 게지.”

    이창호 밑에서 구르면서 일을 배우고, 나중에 독립을 했다는 건가?

    대단한 사람이다.

    오성파 밖으로 나와서 독립을 하는 게 결코 쉽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오성파가 큰 형님을 순순히 보내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때만 하더라도 조직에서 나간다는 건 죽음을 뜻했거든. 물론, 지금도 그런 구식적인 방법을 쓰는 조직들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내 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어. 그래서 그때 평생 할 싸움을 다 했지.”

    아-. 쉽게 말해서 무력으로 다 뚫고 왔다는 소리군.

    그날 박두기를 두들겨 패던 권용일의 몸이 퍼뜩 떠올랐다.

    나이에 맞지 않게 강철처럼 단단해 보이던 몸. 험난한 세월을 거쳐 왔음을 알려주는 흉터들.

    이미 다 지난 일이라 저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겠지만, 그땐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겼을 것이다.

    역시, 이 영감은 참 보면 볼수록 지독한 사람이다.

    “근데 궁금한 건 그게 다냐?”

    “예?”

    “다른 걸 묻고 싶은 게 아니었어?”

    아차. 잠시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었구나.

    “일본 진출을 하기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두신 겁니까?”

    “맞아. 그래서 진용이를 부산에 보냈던 거지. 가서 깽판 좀 치고 자리 잡을 만한 구역이 있나 찾아보라고.”

    이진용이라-.

    하긴. 이진용이라면 충분히 일을 맡겨도 될 만한 사람이다.

    권용일이 성일환처럼 이진용을 신뢰하지 않던가.

    그만큼 수완이 좋은 사람이니까.

    “일본 쪽 야쿠자와 접점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면 정말 새로 루트를 만드시려고 그런 겁니까?”

    “접점이라고 해봤자 대단한 건 아니야. 내가 옛날 오성파에 있었다고 했지? 그때 내가 맡은 일이 야쿠자와 일하는 거였어. 확실히 해외에 있는 놈들이랑 일하면 실보다 득이 더 크더라고. 그래서 해외로 최대한 발을 뻗으려고 하는 게, 바로 그것 때문이야. 여긴 땅이 너무 좁아.”

    그랬던 건가.

    권용일이 왜 해외 쪽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한국에만 있는 건 우물 안 개구리를 자처하는 일이다. 하지만 권용일은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일을 해왔다.

    오성파는 광복 전부터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던 곳이 아니던가. 이들은 광복 후에도 친일과 손을 잡아 세력을 이어온 놈들이다. 그러니 권용일도 일본에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권용일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왔던 것 같다. 큰 물고기가 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 법.

    “외국을 많이 다니면 다녀볼수록 세상이 참 넓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게 뭔지 눈에 확 들어오기도 하지. 그러니까 너도 젊을 때 많이 돌아다녀.”

    “그래서 절 일본으로 보내시려고?”

    “허허. 그렇지.”

    쉽게 말해서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핑계로 일을 시키겠다는 것이군.

    “뭐….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어느 야쿠자와 거래를 하시려는 겁니까?”

    “말하면 어딘지는 알고?”

    “중소규모가 아닌 대조직과 거래를 한다면 야마구치 구미, 스미요시 카이, 이나가와 카이. 이 셋 중에 하나 아닙니까?”

    나를 비웃고 있던 권용일이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너… 야쿠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냐?”

    “이쪽 세상에 발을 담갔으니,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허허. 어린 녀석이 정말 모르는 게 없구먼.”

    권용일은 앞에 있던 찻잔을 들이켜며 목을 축였다.

    “그럼, 얘기하기가 편하겠구나. 방금 네가 말한 세 곳이 바로 일본 야쿠자 삼대 조직이다. 알고 있지?”

    야마구치 구미, 스미요시 카이 그리고 이나가와 카이.

    일본 야쿠자를 대표하는 삼대 조직.

    우리나라에도 삼대 조직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도 당연히 삼대 야쿠자가 있다. 물론, 스케일은 우리나라와 완전히 다르다.

    일 년에 약 200번이 넘는 총격전이 벌어질 정도로, 이들은 미국 못지않게 살벌한 전투를 벌인다. 거기다가 정계에도 진출을 해서 세력을 넓혔다.

    훗날 일본은 야쿠자의 나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이번에 내가 거래를 트려는 곳은 야마구치 구미와 방계 계열 조직이야. 그놈들이 요즘 자리싸움하느라 바쁘거든. 원래 전쟁 나는 곳에는 모든 게 금값으로 치솟지 않더냐?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일본 삼대 조직 중에서 가장 세력이 넓은 곳은 바로 야마구치 구미다.

    3대 쿠미쵸였던 다오카 카즈오가 야마구치 구미의 전성기를 이끌어 일본 전역에 영향력을 떨친 탓인데, 다오카 카즈오를 시작으로 야쿠자의 정계 진출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권용일로서는 가장 큰 조직과 연결된 곳이 그나마 신용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누구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 터.

    하지만 이거 시기가 좀 좋지 않은데….

    “어떤 물품을 거래하시려고요?”

    “내가 말했지? 그놈들이 요즘 자리싸움하느라 바쁘다고. 그리고 그것들은 총 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 당연히 무기도 거래하고 약도 거래해야지. 누구 덕분에 내 약주머니가 두둑하니까.”

    아편굴 사건 때 내가 빼돌린 약의 무게만 해도 수백 킬로에 달한다.

    보통 25kg만 거래해도 상당히 많은 양으로 치지 않던가.

    이리저리 잡것들을 약에 섞어서 시중에 유통하면, 25kg가 250kg으로 불어나니까.

    원래 100% 순도의 약을 파는 곳은 VIP가 아니면 아예 없다. 대부분 크랙 코카인이라고 해서 다른 것들을 내용물에 섞어 판다.

    그러니까 지금 권용은 몇 톤짜리 약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마약을 가진 것이다. 그 많은 양의 약을 주체할 수가 없으니, 해외에다 팔려는 거라 볼 수 있다.

    “야마구치 구미가 쿠미쵸 선출 때문에 시끄러운가 봅니다.”

    난 짐짓 모른 척하며 권용일에게 물었다.

    “그 다오카 카즈오가 갑자기 죽지 않았냐. 거기다가 후계자였던 야마모토 켄이치 놈도 뒤져버리고.”

    야마구치 구미의 영웅이자 상징적인 인물로 거듭난 다오카 카즈오가 급사하는 바람에 조직 내에 혼란이 생겼다.

    8명의 거대 조직 두목들이 야마구치 구미를 지탱하긴 했지만, 결국 모두를 통솔할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판단.

    그들은 자체적으로 경합을 열었고, 최후의 2인이 뽑혔다. 하지만 최후의 1인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사고가 벌어졌다.

    “다케나카 마사히사가 경합 끝에 구미쵸로 뽑혔는데, 라이벌이었던 야마모토 히로시가 이를 거부하고 갑자기 독립을 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어.”

    조직 내에 일어나는 분열은 한두 번 보는 게 아니지만….

    야쿠자 경우, 그것도 삼대 조직 중 하나인 야마구치 구미에 경우에는 심각한 일이었다.

    81년 기준으로 13,000명의 조직원, 가입 조직만 580여 개, 일본 47개 현 중에 36개를 세력 하에 두고 있는 곳이다.

    지금이 85년이니까 저것보다 더 많다는 건데, 야마모토 히로시는 독립을 선포하면서 무려 6,000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빼 가 버렸다.

    “최근에 그놈들이 무기를 구하고 있는 모양이야. 로켓 발사기를 구한다는 소문까지 들려. 이놈들, 히로시를 아예 묻어버릴 작정인 게지.”

    로켓 발사기라는 소리에 확신이 들었다.

    야마구치 구미의 세력이 약해지는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이때 있다.

    1985년 11월에 미연방 마약관리국(DEA)이 함정 수사를 펼쳐서 야마구치 구미의 간부를 비롯해 삼합회 간부까지 잡아 들이는 쾌거를 이룬다.

    이때 야마구치 구미가 구매하려 했던 것이 로켓 발사기와 100정이 넘는 권총이었다. 또한, 200억 엔에 달하는 마약을 판매하려고까지 했다.

    주요 간부들이 일본도 아닌 미연방 마약관리국에 잡히며 야마구치 구미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결국, 다른 조직들이 성장할 기회를 줘버린 거다.

    “우리가 팔게 될 건… 아마 약이겠죠?”

    “그래. 코카인이 필요하단다. 요즘 그 비싸다는 스테로이드제도 원하고.”

    일본이라-.

    그것도 야마구치 구미와의 거래….

    하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야마구치 구미가 한창 시끄러울 때 루트가 생기다니.

    “왜. 싫으냐?”

    “솔직히 말씀드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너무 시끄러운 곳이니까요.”

    일본에서 1년에 200번이 넘는 총격전이 벌어진 이유가, 바로 야마구치 구미와 히로시의 독립 조직 간의 싸움 때문이었다. 야마구치 구미가 무리해가면서까지 총기를 구하려는 까닭이 바로 이거다.

    너무 안 좋은 타이밍에 들어가는 것 같아 솔직히 좀 찝찝했다.

    “네 뜻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생각은 해 보고 있어.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나도 구태여 널 보낼 생각은 없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시려고요?”

    “글쎄다. 너만 한 놈이 없으니 누굴 보내야 할지…. 아예 안 보낼 수도 있고.”

    말은 저렇게 해도, 내가 끝까지 안 가겠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은 맡기가 꺼려졌다.

    야쿠자들의 전쟁으로 현재 일본 치안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 미국보다도 훨씬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무장한 HRT를 비롯해 각 주의 SWAT이라도 있지…. 일본 정부는 그냥 관전만 하고 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야쿠자의 전쟁이 극에 달할수록 국민들은 정부에 하소연할 것이고, 그건 곧 야쿠자들을 탄압할 막강한 법이 제정될 명분이 생긴다. 야쿠자가 정계에서 세력 넓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보수 정당이 머리를 쓴 것이다.

    당장 시작이 야쿠자인 정당 의원들도, 어쩔 수 없이 대세에 떠밀려 법을 발의하는 일에 찬성표를 던진다.

    실제로 90년도에 일본 정부는 폭력단 대책법을 발의해, 야쿠자를 소탕하는 데 힘을 쓰기 시작한다.

    아무튼, 권용일이 자꾸 입맛을 다시며 애처롭게 날 바라보고 있다고 해도 이번에는 갈 생각이 없다.

    괜히 잘못 갔다가 총 맞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 * *

    “어째 네놈은 날이 가면 갈수록 호빵맨이 되어 가냐?”

    “닥쳐.”

    일이 바빠 미국에 돌아온 후에도 연욱이를 만나지 못했다. 녀석은 날 보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어디 있냐?”

    “뭐가?”

    “장난하지 말고. 어디 있어?”

    “아니. 뭐를?”

    “야! 내가 부탁했던 거 있잖아!”

    나는 깜짝 놀란 척을 하며 입을 가렸다.

    “아, 맞다! 내가 너 시가 사 준다고 했었지!”

    “뭐야. 설마, 안 사 온 거야?”

    “아이고. 미안하다. 내가 깜빡했네.”

    “이 새끼가! 너 없는 동안 내가 연합 관리하랴 공부하랴 얼마나 힘들었는데! 진짜 이럴 거야? 당장 다시 돌아가서 사와!”

    역시, 한번 골초는 영원한 골초로구나.

    고작 시가 하나 안 사 왔다고 죽마고우를 죽일 것처럼 다그치다니.

    “에휴. 뭔 장난을 못 쳐요.”

    나는 고개를 흔들며 가방에 넣어 두었던 박스를 꺼냈다.

    “내가 설마 안 사 왔겠냐?”

    “오오. 이, 이게 설마….”

    “네가 그토록 원하던 거다. 이거 통과시키느라 힘 좀 썼다. 그러니까 자리에 앉아서 봐. 눈 빠지겠다.”

    연욱이는 박스에 있는 시가를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고, 냄새까지 맡아보는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흐흐. 맞네. 내가 이 냄새를 잊을 수가 없지.”

    “너도 참 대단하다. 그게 뭐가 그리 좋다고….”

    연욱이는 내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박스 안을 살펴보며 탄성을 질렀다.

    “이게 다 몇 개야? 100개는 되겠는데?”

    “맞아.”

    나는 오랜만에 연욱이 앞에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자 녀석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꽤 벌었나 보다?”

    “뭘?”

    “모른 척하지 마. 얼마 벌었어?”

    새끼. 눈치 하나는….

    “4,500만.”

    “4,500… 만?”

    “응.”

    연욱이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목울대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대박인데?”

    “이제 시작이지. 4,500만을 단 한 판 만에 번 거니까.”

    “하, 한 판 만에!?”

    “운이 좋았지, 흐흐.”

    내 음흉한 미소에, 연욱이는 그 정도 벌었는데 겨우 100개비만 사 왔다고 타박을 주었다.

    그렇게 연욱이와 미국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일을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딩동-.

    갑자기 집 초인종이 울리면서 나는 태혁이가 온 거로 착각해 별생각 없이 문을 열었다. 그런데 태혁이는 없고 생뚱맞은 손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 있을 녀석을 생각도 못 하다니….

    “안녕하십니까. 혹시 김태산 씨 되시나요?”

    깔끔한 정장을 입은 것으로 보아 조직원 같아 보이진 않았다.

    “예. 누구세요?”

    “아. 맞으시군요. 저는 천성 그룹 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수철이라고 합니다. 이강찬 실장님이 보내셔서 왔습니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천성 그룹의 이강찬이 내게 사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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