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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66화 (66/325)
  • 66화. 거리의 제왕 (2)

    “고등학생?”

    “예. 김태산은 현재 경서 고등학교 2학년생입니다.”

    이창호는 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경서 고등학교라면 저번에 누가 그랬는데…. 거기에 무슨 연합이 있다고.”

    “예. 그게 바로 경서 연합입니다. 김태산이 그 연합을 창설하고 서울에 있는 학교들을 대부분 통합했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화진파에 들러붙고 벌써 이만큼 세력을 확장했다는 거야?”

    “예. 영등포부터 인천까지, 모두 김태산의 작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재욱의 말을 들은 이창호의 안색이 팍 찡그려졌다.

    고작 고등학생 따위에게 이 오성파가 밀렸단 말인가.

    그는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간부들을 향해 눈매를 번뜩이며 노성을 질렀다.

    “너희들은 뭘 하고 자빠져 있기에, 그 어린놈이 우리 밥그릇 다 뺏어 가는 걸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어?! 정신이 있는 거야!”

    간부들은 자세를 고쳐 잡고 합창했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하면 결과를 가져와, 이 새끼들아! 영남파 일을 시원하게 말아 먹은 것도 모자라 인천에 있는 약도 날려 먹었어. 그리고 연합인가 뭔가 하는 걸 만들겠다고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 줄 알아!?”

    계속되는 이창호의 잔소리에 간부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님. 짭새들이 뒤통수만 치지 않았다면 이 정도로 몰리진 않았을 겁니다.”

    경찰들이 불시에 아편굴을 습격하는 바람에 오성파도 피해가 꽤 컸다. 아니, 모든 조직이 그랬다.

    약을 빼앗고 일터도 박살을 낸 덕분에, 양발이 묶인 것처럼 세력 확장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간부들도 억울함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그런데 왜 화진파는 멀쩡한 걸까?”

    이창호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간부들은 입을 꾹 다문 채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말해 봐. 왜 화진파는 멀쩡한 거지? 왜 그 새끼들은 날개라도 단 것처럼 훨훨 날아다니냐고?”

    이번에도 모두 벙어리마냥 대답을 하고 있지 않자 이창호는 앞에 있던 잔을 던져 버렸다. 그 잔은 함부로 혀를 놀린 간부의 머리에 직격했다.

    “다들 혓바닥이 없나? 왜 말들이 없어!”

    이창호의 꾸중에 간부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슬쩍 이재욱을 향해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큰 형님. 솔직히 이번 일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겁니다. 짭새들이 갑자기 아편굴을 뒤집어 놓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창호는 숨을 고르며 끓어오르던 화를 삼켰다. 유독 이재욱에게는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다.

    “나도 알아. 그런데 화진파를 봐. 저것들은 그 난리를 잘 피해서 돈을 다 쓸어 담고 있어. 그동안 우리한테 찍소리도 하지 못한 것들이 지금은 영등포에서도 왕 노릇을 하려고 하잖아. 이러니 내가 피가 거꾸로 솟지.”

    이창호도 간부들의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화진파를 제외하고는, 마약에 손을 댄 조직은 모두 피해를 봤다.

    좀만 대처가 늦었다면 대룡파처럼 조직 전체가 공중분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확실한 거냐? 김태산 그놈이 화진을 주무르고 있다는 게?”

    “예. 화진파 보스 권용일이 그 어린 녀석을 옆에 끼고 항상 조언을 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놈이 한 말을 그대로 이행한다는군요. 처음에는 화진 쪽 간부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워낙 그놈이….”

    “신기하게도 다 들어맞으니까 지금은 입 닥치고 있는 거다?”

    “예, 큰 형님.”

    갈수록 듣고 보니 신기한 놈이다.

    무슨 예지력이라도 있는 건가.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고등학생이 화진파를 좌지우지한다는 것도 웃겼지만, 그런 놈 하나를 앞지르지 못해 밀려나고 있는 오성파의 처지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놈은 정부가 우리 다 엿 먹일 거라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거야? 거기다가 네 말대로라면 천성이랑도 여의도에서 한판 붙었다는 건데, 왜 아직도 계속 날뛰고 있는 거야?”

    천성의 이름이 나오자 이재욱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의도 일이 터지고 나서 천성과 화진은 잠잠합니다. 더군다나 천성에서는 김태산을 전혀 터치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이철호가 꼬랑지라도 내렸다는 거야? 천성의 회장이라는 새끼가?”

    “자세한 사정은 알 수가 없지만, 일단 겉으로 보면 그렇습니다.”

    천성이 화진에게 꼬리를 내렸다라-.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창호는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지금 화진이랑 싸우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이번에도 이재욱은 난색을 보이며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이창호가 그를 타이르듯 재촉했다.

    “괜찮아. 말해 봐.”

    그제야 이재욱도 속에 품고 있던 답을 내놓았다.

    “지금의 화진과 싸우게 된다면… 아마 힘들 것 같습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오성파는 화진의 위에 있던 조직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이렇게 상황이 달라졌다. 겨우 고등학생 하나가 판을 뒤집은 것이다.

    길게 한숨을 내쉬던 이창호는 자신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리고 있는 간부들에게 말했다.

    “봤냐? 이게 지금 우리 오성파의 현실이다.”

    그는 다시 이재욱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화진이랑 요즘 어떠냐? 마찰이 있는 곳이 있나?”

    “영등포에 있는 황규혁과 초반에 마찰이 있긴 했습니다만, 요즘은 저희 쪽에서 조심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황규혁이 가끔씩 똘마니들을 이끌고 찾아와 오성파 사업장에서 깽판을 부렸다고 합니다.”

    이창호는 의자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감히 그런 놈들이 오성파의 구역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다니.

    그러나 전면전은커녕 오히려 참고 있어야 하는 현실이 우스울 뿐이다.

    “그리고 화진파의 핵심 간부인 이진용이, 부산에 내려와 영역을 넓히려고 한다는 걸 봐서는….”

    이재욱의 말을 알아들은 이창호가 담배를 물며 실소를 터트렸다.

    “하-. 나참. 이것들 아무리 봐도 우리랑 한 번 붙자고 공사 치는 거 같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큰 형님.”

    오성파와 화진이 전면전을 벌인다?

    비록 화진이 성장세를 타고 있다지만, 당장 오성파와 부딪쳐서 좋을 일은 없다.

    아무리 오성파의 세력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대한민국 삼대 조직으로 거리를 군림하는 곳이 아닌가.

    화진이 사활을 걸지 않는 한, 당장 오성파를 무너뜨릴 순 없다.

    설사 무너뜨린다고 해도, 애써 키워 놓은 화진파이 얼마 못 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도발을 한다는 건 화진이 오성파에게 원하는 게 있다는 뜻.

    “오랜만에 그 꼴 보기도 싫은 얼굴을 보게 생겼구먼.”

    이창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덕분에 간부들도 가시 방석에 앉은 채로 조용히 침묵을 지켜야만 했다.

    * * *

    “지금…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있을까요, 큰 형님?”

    항상 천안으로 나를 부르던 사람이, 오늘은 손수 집 앞까지 찾아오는 황당함을 보였다.

    뜬금없이 찾아와 마치 사람 납치하듯이 차에 태우더니, 목적지가 어딘지 알려 주지도 않는다.

    “허허. 그냥 오랜만에 볼 사람이 있어서.”

    “그런데 저는 왜….”

    “이놈이! 그냥 같이 보면 보는 거지,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 양반은 자기가 불리할 때만 목소리를 높이는 버릇이 있다. 나는 결국 입 다물고 이 양반이 가자는 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저번 날 이진용과 불편한 식사 자리를 가졌던 그 육회집이었다.

    “들어가자.”

    “아, 예.”

    안으로 들어가 보니, 한창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설마, 식당 전체를 빌리기라도 한 건가.

    단순히 식사나 하자고 이런 사치를 부린 건 아닐 테고….

    얼마 가지 않아 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처음 보는 남자가 권용일에게 다가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그 뒤로 도열해 있는 조직원들의 수는 열 명이 넘었다.

    화진파 소속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재욱이냐? 오랜만이다. 여전히 키는 안 컸나 보네?”

    “하하. 그건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재욱? 잠깐. 설마 이재욱?

    찬찬히 얼굴을 뜯어보니, 맞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재욱이다.

    “아. 이쪽은….”

    내가 잠깐 멍하니 있는 사이에 권용일이 소개를 해 주었다.

    “누군지 대충 알고 있지?”

    “이분인가요? 요즘 화진파의 불세출이라 불린다는 분이?”

    나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김태산이라고 합니다.”

    “아. 반가워요. 이재욱이라고 해요.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하신 분을 이제야 만나게 되네요.”

    저 남자가 건넨 손을 잡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회귀 전에는 이놈 손모가지에 수갑 한 번 걸어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이재욱이 누구인가?

    오성파 이창호의 오른팔로 있다가 나중에 오성파가 화진에게 흡수당하면서 권용일 밑에 남게 되는 인물이다.

    실력이 상당히 좋은 터라 권용일은 이재욱을 잘 활용해서 군부와의 루트를 만들고, 어마어마한 방산비리를 통해 회사 성장에 큰 기여를 한다.

    거기다가 이재욱은 합법적으로 마약성 약품을 만들어, 외국에 수출하는 방법까지 고안해서 회사의 뒷주머니를 두둑이 채워 준다.

    쉽게 말해서 화진의 제갈량 정도라는 것인데, 문제는 이진용이 이재욱을 스카우트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성일환은 꼼짝없이 이진용에게 당하게 된다.

    검사 시절 때, 이 남자가 연루 된 사건이 워낙 많아 조사에 들어가긴 했지만….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풀어준 일이 있었다.

    그 후에 재조사를 실시했지만, 이재욱이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면서 사건은 급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안에 그 영감은 있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재욱의 정중한 어투에 권용일은 살짝 눈웃음을 보이며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이재욱이 여기 있다는 건, 그것도 권용일이 직접 만나러 온 상대라는 건 누굴 말하는 것이겠는가?

    “늦었구먼.”

    바로 오성파의 주인 이창호였다.

    “왜 사람을 오가게 하고 지랄이야?”

    권용일은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는 이창호를 못 마땅하게 바라보며 욕설부터 내뱉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다시 가든가.”

    “그랬다가는 내가 저 밖에 있는 놈들한테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웃기고 있네. 시끄럽고 앉기나 해.”

    “에잉. 젠장 맞을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서로 억센 말을 주고받긴 했지만, 위화감은 없어 보였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인가.

    이창호는 잔에 담긴 술을 홀짝이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너야?”

    “…예?”

    “너냐고. 우릴 두 번이나 학 떼게 한 새끼가.”

    나도 모르게 순간 할 말을 잊었는데, 권용일이 대신 커버를 쳐 주었다.

    “왜 우리 애한테 지랄이야!”

    “저놈 신수 훤한 거 보니까 열불이 나서 그렇지. 저놈이 우릴 두 번이나 물 먹였잖아.”

    “그러니까 내가 항상 그랬지? 사람 좀 착하게 살라고. 가만있는 사람을 건드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하긴. 내가 오성파한테 두 번이나 엿 먹인 건 사실이다.

    이창호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없을 터. 하지만 말은 저렇게 해도 적대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목소리를 부드럽게 풀며 내게 은근슬쩍 물었다.

    “솔직히 말해 봐. 너, 짭새가 아편굴 칠 거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신내림이라도 받은 거냐?”

    신내림이라-.

    차라리 그랬다면 오히려 말이 통하려나.

    “그냥 추론했을 뿐입니다. 그때 경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거든요. 그래서 한 번 도박을 걸어본 것뿐입니다.”

    “도박?”

    “예. 도박이죠. 순전히 운이 좋았던 겁니다.”

    이창호는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권용일에게 말했다.

    “이 새끼 말하는 거 봐라. 도박? 네가 그런 도박을 하도록 가만히 놔둘 놈이냐?”

    “다른 놈이 그런 말 했으면 내가 모가지를 비틀었겠지. 그런데 이 녀석이 하자면 해야 돼. 이놈이 내일 웃통 벗고 밖에서 춤을 추라고 하면 난 그대로 할 거야.”

    이창호의 장난 섞인 목소리와는 달리 진중한 권용일의 대답에, 순간 분위기가 굳어졌다.

    이창호는 살짝 어두운 얼굴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대단한 새끼였구먼. 저 영감탱이를 저렇게 삶아 놓을 정도면.”

    그렇게 말한 뒤, 이창호와 권용일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 술잔만 기울였다.

    도대체 이 두 명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편한 이 자리에, 저 두 명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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