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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53화 (53/325)
  • 53화. 화끈한 마무리 (1)

    저놈, 진심인가?

    최정식이 유명세를 날린 건 칼 한 자루 덕분이었다.

    회귀 전에, 저 녀석을 잡으려고 얼마나 많은 경찰 인력이 투입되었던가. 그때마다 저놈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 다른 조직을 혼자서 무너뜨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합에서는 한 번도 칼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아직 칼 다루는 법을 배우지 않은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저렇게 칼을 꺼내다니.

    그만큼 진지하게 싸워 보겠다는 건가.

    “이런 건방진 새끼들이 감히….”

    박두기는 입술을 파르르 떨기까지 하며 분노를 나타냈다.

    고등학생에 불과한 녀석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고 있으니 보이는 반응일 것이다.

    젠장. 정말 갈 데까지 가는 건가.

    영남파와 여의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상대는 화진파의 조직원이다. 저들을 상대로 우리가 패배할 리는 없겠지만, 피해가 꽤 클 것이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는 물러설 곳이 없지 않은가.

    한 번 멋있게 질러줬으면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박두기의 면상에 뭐라도 꽂아 넣지 않으면 속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정식아. 다 죽여도 돼.”

    난 정식이에게 묶인 사슬부터 풀어 주었다.

    “알겠어.”

    저놈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입꼬리가 씰룩이고 있었다.

    연합원도 전부 창고 안으로 들어와 포위망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런 좆만 한 새끼들이!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 거냐!”

    화가 폭발한 박두기는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게 뭔지 드러나자 모두 눈을 크게 떴다.

    “이 아저씨가…. 치사하게 총을 꺼내다니. 이러기야?”

    “시끄러워!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날뛰는 거야!”

    박두기에게도 총이 있었나.

    하긴. 간부들도 총 한 자루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호신용으로는 저만한 게 또 없을 테니까.

    “누구부터 죽여줘? 너부터 죽여줄까, 아니면 너? 너도 아니면 황 사장?”

    총 한 자루 들었다고 기고만장해지기는…. 하지만 아무리 한 자루의 총이라고 해도 파괴력은 대단하지 않은가.

    누구도 쉽게 다가갈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저 총에는 있다.

    “와봐! 다 쏴 죽여 줄 테니까!”

    박두기는 총구를 사방에 돌리면서 위협했다. 정식이 저 녀석은 조용히 기회만 노리는지 눈을 더욱 반짝였다.

    일촉즉발!

    당장 부딪혀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

    “아무도 안 들어와? 그럼, 내가 저 새끼부터 쏴 죽이면 되는 거지?”

    박두기는 총구를 내게 돌리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하필이면 나부터냐.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몸을 움직여 봐야지. 그나마 권총은 명중률이 상당히 낮다.

    하지만 총은 총이다. 총알이 발사되면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더군다나 발포 소리가 사람 몸을 굳게 만든다. 그것 때문에 총알 한 발에 사람 목숨이 날아가는 것이다.

    “너부터 죽어라, 건방진 새끼야.”

    이런. 진짜 쏠 생각인가.

    나는 손을 올려 연합원에게 신호를 내리려 했고, 박두기는 방아쇠를 당겨 내게 총을 쏘려고 했다. 그리고 반쯤 방아쇠가 당겨졌을 찰나!

    “자자. 이제 그만! 박 사장은 총 내려놔.”

    예상치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어이구, 학생들. 잠깐만 지나갑시다.”

    이진용이 친근한 목소리로 연합원들 사이를 삐져나왔다. 그 뒤로 수십 명의 덩치가 따라 나왔다.

    “형님. 여기는 어쩐 일로….”

    “허허. 사람. 그거부터 내려놓으라니까 그러네.”

    박두기는 살짝 벙찐 얼굴로 이진용을 바라보았다. 나도 박두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이진용이 갑자기 여기에 왜 나타난 거지?

    설마, 증원인가?

    저 정도로 똘마니들을 끌고 올 정도면….

    “어이구. 황 사장. 너무 상했네.”

    이진용은 옆구리 쪽에 피를 흘리고 있던 황규혁에게 다가가 특유의 살근한 목소리를 냈다.

    황규혁은 이진용을 따라 나온 조직원들을 바라보며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증원된 조직원 숫자에 우리 연합원들도 적잖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형님께서도 한패셨습니까?”

    독기 어린 황규혁의 물음에 이진용은 잠시 그를 내려다보다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이 사람아! 내가 이런 험한 일 벌이고 다니는 사람인 줄 알아? 내가 이런 거 얼마나 싫어하는데. 나 손에 피 묻히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야.”

    황규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건 나도 똑같다.

    박두기는 이진용의 사람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박두기의 이번 행동은 이진용의 허락으로 이뤄진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이진용의 계략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저 행동은 마치….

    “박 사장. 너무 일을 크게 벌렸어.”

    “예? 형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신….”

    콰직-!

    이진용이 손짓을 하기 무섭게 줄곧 박두기 옆에 있던 조직원 중 하나가 몽둥이로 그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박두기는 그대로 철퍽 바닥에 쓰러졌다.

    죽은 건가. 아니면 기절만 시킨 건가.

    또다시 머리를 내려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냥 기절만 시킨 것 같았다.

    도대체 이 전개는 뭐지?

    “미안해. 내가 아랫사람을 잘못 가르쳐서 이 사달이 났네. 뭣들 하고 있어? 얼른 저 두 사람 일으켜서 치료해 줘야지.”

    조직원들도 당황한 얼굴로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진용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고성을 질렀다.

    “당장 움직이라니까!!”

    “예, 형님!”

    상황이 참 웃기게 돌아간다.

    박두기가 죽이려고 한 우리 둘을 이진용이 도와주다니.

    도대체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김태산이. 내가 말했잖아. 항상 몸조심하라고.”

    이진용은 너덜너덜해진 내 옷매무새를 다듬어주며 독사의 미소를 지었다.

    “좀 위험했다. 그렇지?”

    “…감사합니다.”

    “허허. 아니야. 우리 태산이가 위험하면 내가 언제라도 달려와야지.”

    마치 말하는 폼새를 보면 자신은 이번 일에 어떤 관련도 없다고 변호하는 것 같았다. 이 양반은 무슨 속내일까?

    “많이 놀랐지? 내가 미안하다. 이래서 아랫사람 교육을 평소에도 철저히 해야 하는 건데, 내가 워낙 심지가 약해서 말이야.”

    꼴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는.

    “아닙니다, 형님.”

    “이해해 줘서 고마워.”

    이진용은 몸을 돌려 조직원들을 지휘하고 나섰다.

    “자자. 혹시라도 짭새 오면 골치 아프니까, 얼른 움직여. 그리고 우리 학생들!”

    크게 싸움이 벌어질 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던 연합원들은 어리둥절하며 이진용에게 이목을 집중했다.

    “아직 학생들은 어른 싸움에 끼어들면 안 돼. 그리고 오늘 본 건 어디 가서 떠들어대서도 안 돼요. 그러다가 괜히 짭… 아니지. 경찰들한테 잡혀가서 밤새 맞아가며 조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어.”

    저럴 때는 워낙 목소리를 친근하게 하는 터라, 연합원들은 저 양반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 줄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다들 나가봐요. 여기는 이 아저씨가 알아서 다 정리할 테니까. 그리고 별 탈 없이 일 처리도 해 놓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알겠지?”

    연합원들은 내게 시선을 돌려 눈치를 살폈다. 난 살짝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진용의 속셈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 말대로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김태산, 너도 황 사장 데리고 나가 있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알아서 정리를 한다라-.

    그건 저 약도 알아서 챙기겠다는 건가.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이진용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치사하게 저런 가루나 빼앗는 사람처럼 보여?”

    “아…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고 나가라니까 그러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난 떨떠름한 얼굴로 황규혁과 함께 창고 밖을 나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 겨울 바다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김태산.”

    “…예, 형님.”

    그는 창고 밖을 나서는 내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법이네.”

    “예?”

    “오늘 운이 좋은 줄 알아.”

    그 말을 끝으로 잠깐 가면을 벗고 있던 독사가, 다시 얼굴에 가면을 붙였다.

    “자자. 얼른 하고 집에 가자.”

    * * *

    “형님. 괜찮으세요?”

    “시발. 안 괜찮아.”

    황규혁이 엄살을 부리긴 하지만, 다행히 치명상은 입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찌어찌 해결이 됐네요.”

    “글쎄다. 구사일생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진용 저 양반이 중간에 포기한 거 같아.”

    “중간에 포기를 해요?”

    “내가 아까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가 싸웠던 박두기 조직원들 있잖아. 그놈들이 그렇게 실력이 좋지 않거든? 내가 볼 땐 분명히 이진용 쪽에서 지원 보내 준 놈들이야. 그쪽 애들이 칼 하나는 잘 쓰거든.”

    역시, 그랬던 건가.

    황규혁이 내게 말하려고 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다.

    왜 이렇게 실력이 좋나 했더니, 이진용이 따로 선별해서 키운 칼잡이들이었다.

    좀만 더 시간을 끌었다면 나와 황규혁은 동시에 황천길을 밟을 뻔했다.

    “넌 괜찮냐?”

    “다행히 전 괜찮습니다.”

    “새끼. 꽤 하네. 네 덕분에 산 것도 있지만, 이건 큰 형님 때문에 우리가 목숨 건진 거야.”

    권용일 때문에 이진용이 우리를 죽이고 싶어도 죽이지 못했다는 건가.

    박두기가 아무리 철저히 숨겨서 나와 황규혁을 죽인다고 해도, 권용일이 그 명석한 머리로 이번 사태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는 이미 사방에 자신의 귀가 되어 주는 연락책을 뿌려 놓지 않았던가.

    박두기가 우리 둘을 담갔다는 걸 권용일이 알게 된 순간, 그 불똥은 저절로 이진용에게도 튀게 된다.

    하지만 처음에는 은밀하게 일을 추진해 우리를 담그려고 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연합원이 나서면서 일이 커지자, 이진용이 브레이크를 걸었다는 것.

    지금으로써는 그렇게 계산이 된다.

    “큰 형님이 아니었으면 연합원이랑 저도 죽은 목숨이었겠네요,”

    “그렇지. 이진용 쪽 애들이 칼 들고 싸우면 네 연합으로는 안 돼.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던 거야.”

    그만큼 실력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연합원들은 아직 누군가를 죽여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이진용과 그의 조직원들은 다르지 않은가.

    그들은 살인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황규혁 말이 맞다.

    이번에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연합원들이 적절한 시기에 와 주지 않았다면, 박두기의 손에 죽었을 지도 모른다.

    “아고…. 일단은 일이 잘 끝났으니, 얼른 가서 쉬고 싶다. 그러니까 너도 어서 애들부터 다 보내.”

    “그래야죠.”

    난 황규혁을 놔두고 연합에 다가갔다.

    처음에는 기세등등했던 놈들이었지만, 이진용이 가세하면서 한껏 움츠러든 모습이 역력했었다.

    역시, 아직은 이놈들로 거대 조직과 싸우는 건 무리인 것 같았다.

    “쩝. 오늘은 제대로 써 보나 싶었더니.”

    물론, 최정식에게는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연욱이한테 인수인계는 잘 했어?”

    “어. 그 새끼 투덜거리면서도 일은 잘하더라.”

    박두기와 거래를 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연욱이는 상대가 너무 쉽게 미끼를 문 것 같다고 경고했었다.

    처음에는 비싼 약을 던졌으니 박두기가 당연히 미끼를 물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연욱이의 말을 곱씹어 보니 이상하리만큼 상대가 내 뜻대로 움직여 준 게 수상했다.

    그래서 막판에 연욱이를 부르고 최정식에게 부탁을 했다.

    만약 내가 끝까지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뜻대로 행동했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깡패 새끼한테 두 번이나 죽은 꼴이 아닌가.

    그래도 일이 잘 끝나서 다행이다. 이따 연욱이한테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 줘야겠다.

    “휴우-.”

    최정식 이놈은 아쉬운지 계속해서 칼을 만지작거렸다. 이 자식… 좀 위험한데?

    “그만 만지작거리고 칼 좀 치워. 정신 사나워 죽겠네.”

    “아. 오늘은 제대로 쓰나 싶어서 기대했단 말이야.”

    내 핀잔에 대답하던 정식이의 음성에는 정말 아쉬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난 은근슬쩍 정식이에게 물어봤다.

    “칼은 잘 쓸 수 있고?”

    “못 봤냐? 내가 칼 들면 여기 있는 새끼들은 다 죽었다고 봐야 돼.”

    “그래…?”

    내가 이놈 정체를 몰랐다면 허세 부린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정식이 저런 말을 하니, 왠지 믿음이 간다.

    그래도 아직은 이놈이 칼을 남용할 때가 아니다.

    언젠가 학교를 졸업하고, 정식이가 제대로 조직에 들어온다면….

    그리고 내 옆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가 바로 칼을 꺼낼 시기다.

    이놈은 분명 아주 쓸 만한 칼잡이가 될 것이다.

    “아! 회장님. 그런데 우리 자장면 탕수육은!”

    이 자식. 다른 건 전부 다 까먹더니 저런 건 절대 까먹는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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