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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4화 (24/325)
  • 24화. 마법의 가루 (2)

    결국, 그 남자는 마약 과다복용으로 인한 호흡 정지로 사망했다.

    이렇게 약물을 과다복용해서 호흡 곤란이 왔을 땐, 나칸이란 약을 투여해야 살 수 있다. 하지만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약품이라, 이 남자가 살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오랜만에 올랐던 흥이 깨진 연합 간부들은 더 놀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는 일찍 자리를 파하면서 서로 약속했다.

    절대 마약은 하지 말자고. 마약을 손댔다가 괜히 그런 꼴을 당하지 말자고 말이다.

    하지만 난 그 약속을 온전히 지킬 순 없을 것 같았다.

    잔인한 일이지만, 그 남자가 죽으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마약을 한다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런 짓을 할 만큼 멍청하진 않다.

    마약을 뿌리는 것이라면 모를까.

    * * *

    곧 있으면 86년이 다가온다.

    여의도를 점령하고 나서부터는 나도 조직 일에 여간해서는 손을 댈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여의도를 총 관리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일 때문에 밀린 공부를 하느라, 머리를 혹사하는 중이었다.

    “남중고에서도 연락이 왔다. 연합에 들어오겠다고 하던데?”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연욱이는 피곤한지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길게 했다.

    “요즘 통합은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알아서들 잘 오고 있네.”

    “네가 연합 애들 끌고 가서, 여의도 차지한 게 소문난 거지. 그것 때문에 이놈들이 알아서 기어 오는 거야.”

    여의도를 차지한 이후부터 연합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학교 수가 부쩍 늘어났다.

    이 속도라면 조만간 서울 전체를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명단도 받아라.”

    연욱이는 갑자기 명부 하나를 내 앞에 던져 놓았다.

    “갑자기 무슨 명단?”

    “네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똘마니들 명단.”

    한심하다는 듯 연욱이가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때, 난 명부를 한 장씩 넘겨보았다.

    명부에는 대부분 경서 고등학교 3학년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야, 이거?”

    “게네들은 이번 연도에 졸업하잖아. 어차피 공부로 승부 볼 거 아니니까, 빠르게 길을 잡겠다는 거지.”

    “그게 내 밑이다?”

    “네가 여의도 장악한 거 다 아니까, 라인 타서 가 보겠다는 거지.”

    권용일은 성일환을 바지사장으로 내세우고 여의도 관리는 내게 맡겼다. 하지만 아직 졸업도 하지 못한 학생인 터라, 여의도를 관리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

    덕분에 성일환과 황규혁이 나 대신 고생을 좀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 이놈들 전부 화진파에 들어오겠다는 건가?”

    “아는 사람 통해서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거지. 네가 연합회장이기도 하고.”

    이놈들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나보다 1살 많은 선배라고 해도, 이들은 내게 전부 깍듯하다.

    누구도 나이가 많다고 내게 겁도 없이 덤비진 않는다. 이미 내 위 학년 사람들은 연합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정리를 끝냈다.

    이 사람들이 내 밑으로 들어온다고 해서 체계가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단지, 화진파에 들어올 만한 실력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근데 이것들 싸움 좀 하나?”

    “출신이 경서잖아. 기본은 하겠지.”

    내가 이곳을 쓸어버리기 전에는, 다들 사슬에 묶인 맹수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싸우기 바빴다.

    그렇게 단련된 놈이니, 기본 이상은 할 것이다.

    여의도에 인원이 부족해서 성일환이 죽어 나가는 소리를 어제도 들었다.

    이걸로 인원 보충을 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려나.

    일단 이건 성일환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너, 미국은 안 가냐?”

    “응?”

    “네가 그토록 꿈꿔왔던 도박왕, 그거 해야지.”

    도박왕이라-. 어감이 좀 이상하다.

    사실 나도 각만 재고 있던 일이다. 연욱이 말대로 도박판에서 왕이 되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무작정 미국으로 가자니, 벌여 놓은 일이 많다.

    그럴싸한 명분도 필요한데 말이다.

    “내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네 동생을 미국으로 보내면 어떨까?”

    “우리 태혁이를?”

    “그래. 걔가 권투 실력 하나는 진짜 대단하잖아. 마침 너도 돈 좀 있고…. 한국에서 트레이닝 받는 것보단, 미국에서 실력 키우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떨 때 보면 나보다 연욱이가 내 가족을 더 챙기는 것 같았다.

    나도 동생을 미국에 보내는 걸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식새끼를 타지로 보내는데 어머니가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고, 동생 녀석이 잘 해낼지도 걱정이 됐다.

    “화진이 여러 방면에 손을 뻗은 상태잖아. 분명 미국에도 줄이 닿아 있을 거야. 네가 동생을 대리인으로 세워서, 매 경기 돈을 걸게 하면 되잖아. 설마, 네 동생이 그 돈 갖고 튀기야 하겠냐?”

    지금은 내가 살았던 스마트한 시대가 아니다.

    21세기였다면 앱 하나 다운로드 받아서 미국 도박판에 충분히 뛰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부족한 80년대가 아니던가?

    복싱이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을 하고 있긴 해도, 여기서 도박을 해 봤자 푼돈밖에 벌지 못한다.

    그렇다고 미국에 직접 가서 도박을 하자니…. 그럼, 거기에 계속 발이 묶이게 된다.

    곧 있으면 이 나라에서 하루하루가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할 일이 많은데, 자리를 오랫동안 비울 순 없는 일.

    그런데 내 동생이 미국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며 내 대리인으로 도박판에 뛰어든다면?

    연욱이가 머리를 꽤 썼다.

    “네가 조직 일 때문에 생각을 못 하는 거 같아서. 내가 대가리 좀 굴려 봤지.”

    고마운 녀석. 이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다니.

    아이디어는 참 좋다. 문제는 내가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태혁이를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한다는 건 좀….”

    돈 버는 게 아무리 좋다고 해도, 동생 녀석을 이 세계에 끌어들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그냥 단순하게 너 대신해서 돈을 거는 일이야.”

    “걔가 그쪽 브로커랑 부딪칠 일이 많을 거야. 아직 나이도 어린놈이라서 걱정도 되고.”

    미국의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이 도박을 하기 위해서는 브로커가 필요하다.

    브로커를 잘못 선택하게 되면 동생이 위험할 수도 있다. 워낙 막나가는 놈들이 지천으로 깔린 나라다 보니, 걱정이 됐다. 그래서 이런 일을 맡기는 게 영 탐탁지 않은 것이다.

    “브로커 고르는 건 네가 해야지. 그러니까 잘 골라. 어차피 이거 아니면 네가 단기간에 돈 벌 방법도 없잖아.”

    그냥 쉽게 주식 투자나 할 걸 그랬나.

    하지만 그랬다가는 일이 더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이건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고안한 방법이 아니었던가.

    “당장 급한 일은 아니니까, 좀 더 생각해 볼게.”

    “그려. 당장 결정할 일은 아니지. 일단, 태혁이한테도 의견을 물어봐. 그리고 화진파에다가도 미국에 줄이 있는지 잘 알아보고. 그쪽 도움받으면 일이 더 수월해질 거야.”

    “그래야지.”

    일단 이 일은 잠시 보류를 했다.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오늘 방학식 끝나고 집에 바로 들어가냐?”

    시간 참 빠르다. 벌써 여름 방학이다.

    “아니. 천안 가야 해.”

    “권용일?”

    “어. 오랜만에 얼굴 볼 일이 생겨서.”

    “무슨 일인데?”

    “다녀와서 말해 줄게. 그렇지 않아도 너한테 물어볼 것도 있고.”

    “그러든가.”

    연욱이는 내가 하는 일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내 걱정을 하는 놈이 아니던가?

    내 동생 장래도 걱정하는 놈이니, 가끔 보면 세상 걱정은 저놈 혼자 하는 것 같았다.

    * * *

    “요즘 다들 바쁜 거 같네요?”

    “당연히 바빠야지. 안 바쁘면 어떻게 밥 먹고 살려고?”

    황규혁 상 위를 보니, 담배꽁초에 술병도 여러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쉰 다음, 물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말도 마라. 아주 숨이 막혀 죽겠다.”

    난 현 상황이 어떤지 대충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른 척해야 할 때다.

    “무슨 일이신데요?”

    “오성파. 그 새끼들이 계속 우리를 쪼고 있어.”

    “어떻게요?”

    “우리 사업장들을 하나씩 건들고 있다. 벌써 세 곳이 당했다.”

    오성파 그놈들도 급하긴 했나 보군.

    조금씩 도발만 하던 놈들이 이젠 사업장을 건드리고 있다. 그것도 세 곳이나 당했다는 건, 제대로 붙어보자는 신호가 아닌가?

    “이놈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다. 우리 가오가 안 살아.”

    황규혁도 참을 만큼 참았다는 건가? 세 곳이나 박살 날 동안 여기 앉아 있는 걸 보면 많이 참은 거다.

    “다른 곳에도 전화를 다 돌렸다. 오야지한테서 허락만 떨어지면 다 엎어버릴 생각이다. 오성파 놈들이 선을 넘었어.”

    오성파와의 전쟁이 이렇게 앞당겨지는 건가?

    아직은 오성파를 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오성파가 정부 손에 두드려 맞는 걸 두고만 봐야 한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형님.”

    “뭘 기다려?”

    “오성파 치는 일, 잠깐만 미뤄 달라는 겁니다.”

    “야! 그놈들이 우리 사업장 세 곳이나 말아 먹었다는 거 못 들었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기다려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황규혁은 잠시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무슨 꿍꿍이냐?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또 뭔 생각이 있다는 거 같은데?”

    “별거 없습니다. 단지, 좀 알아봐 주실 게 있습니다.”

    “뭘?”

    “요즘 짭새들이 뽀찌를 얼마나 받아먹고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내 이상한 부탁에 황규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또 갑자기 뭔 짓을 벌이려는 건지….”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잘 될 겁니다.”

    웃는 내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황규혁은 머리를 긁적였다.

    “끙. 그렇게 말하니까, 또 할 말이 없네. 아무튼, 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참을 순 없어. 지금이라도 당장 오성파 놈들을 다 씹어 먹어야 할 판이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곧 좋은 소식 물어다 오겠습니다.”

    이게 다 당신 앞길을 위한 것이니, 지금은 의문이 들어도 따라야 한다.

    좀만 있어 보면 내가 왜 이런 뻘 짓을 하는지 저절로 다 알게 될 거다.

    * * *

    “안녕하십니까, 큰 형님.”

    여기 와본 것도 얼마만이지?

    권용일은 여전히 정정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다.

    “아이고, 이놈아. 이제야 왔냐? 자주 좀 오라니깐.”

    호들갑을 떠는 것도 똑같았다. 딱히 내가 오지 않아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죄송합니다, 큰 형님. 요즘 학업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학업도 학업이고, 사실 권용일을 만날 만한 건수가 없었다.

    “네가 한 공부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주먹질도 잘하는데 공부까지 잘하는 건, 솔직히 난 놈 아니겠느냐?”

    “이놈이 꽤 난 놈이긴 하죠.”

    성일환은 권용일의 말을 거들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과찬이십니다.”

    “됐고, 자리 앉아서 이거나 마셔.”

    권용일이 따라 준 차는 언제 마셔도 참 맛있다. 차의 깊은 맛이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네가 내 얼굴이나 보자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테고. 뭐 때문에 왔냐?”

    “아닙니다. 큰 형님께 인사드리러 온 겁니다.”

    “개소리는 그만하고, 어서 말해 봐.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일환이까지 데려온 걸 보면 또 뭔 일을 치려는 거 같은데?”

    이 양반, 눈치 하나는….

    “요즘 오성파가 영등포부터 시작해, 마포와 포항에서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새끼들이야, 그게 일과 아니냐?”

    “예. 그런데 점점 도를 넘어 서고 있다던데요.”

    화진파의 세력이 여의도까지 뻗어 나가자, 오성파는 위기감을 느끼고 작업에 들어갔다. 이 수순이면 조만간 오성파와 화진파가 제대로 전쟁을 벌일 것처럼 보였다.

    황규혁도 사업장 세 곳이 무너졌다며 이를 갈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오성파랑 전쟁이라도 벌여 보겠다는 거냐?”

    목소리가 날카롭게 높아진 것을 보니, 권용일은 아직 오성파와의 전쟁을 바라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차피 나도 오성파와 멱살 잡고 싸울 생각은 없다. 일방적으로 두드려 패는 것이라면 모를까.

    “굳이 우리가 그놈들이랑 주먹을 섞을 필요가 있을까요? 화진이 아니더라도 오성파를 잡을 만한 칼잡이는 많습니다.”

    권용일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우리 영감님.

    오늘 놀랄 일이 좀 많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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