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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검사, 마피아 되다-23화 (23/325)
  • 23화. 마법의 가루 (1)

    태산이 다방을 나가자,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상현은 그제야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니미. 뭐가 저렇게 사나워.”

    어리다고 무시할 놈이 아니었다.

    이상현은 밖에서 대기 중인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 그리고 가장 꼭대기 층에 있는 회장실에 들어가 천성 왕국의 지존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래. 잘 만나보고 왔나?”

    골프채로 자세를 연습 중이던 이철호 회장의 말에 이상현은 공손히 대답했다.

    “예, 회장님.”

    “어떻디?”

    “당돌하던데요. 천성의 후광이나 돈으로 흔들릴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예. 함부로 터를 바꾸는 것도 이쪽 세계에서는 쉽지 않다고 하는데, 그게 무서워 거부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냥 천성에 오기가 싫은 겁니다.”

    “하하. 우리 천성에 오기가 싫다?”

    이철호는 골프채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놈이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니야? 그게 화진에 있으니까, 거기 박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렇다고 화진파에 뼈를 묻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 게, 정확히 뭘 원하는 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흐음-.”

    재밌는 놈이다.

    천성이, 그것도 천성의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 제시를 했는데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놈이 또 뭐라고 말했는데?”

    이상현은 지금 생각해도 웃긴지 약간의 미소를 곁들이며 대답했다.

    “깝치지 말라고 하더군요. 화진을 깡패라고 무시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는 협박을 다 들었습니다.”

    “응? 뭐, 뭐야? 으하하하!”

    이철호는 정말 오랜만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것 같았다.

    “그놈, 내가 던진 게 미끼라는 걸 알아차렸구먼.”

    “미끼요?”

    이상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카우트 제의가 미끼였다니?

    “내가 그놈을 왜 스카우트하려고 했겠어? 그 영감 쌤통 한번 나보라고 그랬던 거지.”

    이번 일은 그저 이철호의 단순한 낚시질이었다는 것인가. 이상현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그놈은 내가 던진 게 미끼라는 걸 알아차린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너한테 그따위로 말할 리가 없지.”

    “그렇군요….”

    이상현은 자괴감이 들었다. 고작 영감탱이 하나 골탕 먹이겠다고 저지른 이철호의 장난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그 장난질에 맞춰 춤을 춘 건 이상현 혼자였다.

    “그거 말고 또 다른 말은 없었어?”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오겠다고 했습니다. 정당한 보수를 받고 도와주는 용병처럼 말입니다.”

    이철호 자신이 원했던 답변일지도 모르겠다.

    용병처럼 돕는다라.

    그건 정당한 보수를 받기만 한다면 개처럼 일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충성심을 강요하기보다는,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는 게 가장 적합한 방법이다.

    “아쉽구먼. 그놈을 잘 구슬려서 데려오면 그 영감이 무슨 표정을 짓나 보고 싶었는데.”

    역시, 이번 일은 이철호에게 단순한 장난에 불과했다.

    김태산이란 남자를 제대로 써보겠다는 생각은 정녕 없었던 것인가.

    “돈 좀 쥐여주면 쓸 만하겠지?”

    “아직 학생이지 않습니까? 떡잎이 다르다고 해도 지금은 너무 어립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예?”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놈한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해? 아니야. 단지, 권용일 그 새끼가 그놈을 옥이야 금이야 하며 옆에 끼고 다니니까 흥미가 생긴 거야.”

    이 모든 관심이 다 화진파 두목 권용일 때문이란 건가?

    가면 갈수록 이철호의 마음을 더 알 수 없게 되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그 영감 눈 하나는 정말 대차게 좋다. 사람 보는 눈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야. 그런 놈이 핏덩이를 옆에 끼고서 날 만나러 왔어. 그게 무슨 뜻이겠냐?”

    천성 왕국의 왕이, 고작 저잣거리 나부랭이들의 대장 노릇이나 하고 있는 사내를 신경 쓰고 있다니.

    더군다나 이철호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가 아닌가?

    “권용일에게 그 정도의 능력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그놈이 계속 깡패 두목으로 남을 거로 생각하는 거면 넌 내 비서로 있을 자격이 없다.”

    굳은 이철호의 목소리에 이상현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그놈은 일개 건달이 아니다. 언제고 나와 동일 선상에 올라올 놈이야.”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이철호가 권용일을 저 정도까지 높게 평가할 줄은 몰랐다. 깡패 새끼라고 무시할 게 아니었던가.

    앞으로는 좀 더 권용일을 주시하는 게 이로울 것 같았다.

    “아무튼, 재밌는 놈일세. 일단 그냥 놔둬. 정말 필요할 날이 오면 그때 쓰면 되겠지. 그놈 말대로 용병이니까.”

    이철호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골프채를 잡았다.

    대어를 낚진 못했지만, 그래도 짜릿한 손맛이 조금 남는 것 같았다.

    * * *

    여의도 일도 잘 끝났고 이사도 잘 했으니, 다시 난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장 할 일이 없으니까.

    아, 한 가지 있다.

    오늘은 연합원을 만나는 날이었다.

    정기적으로 연합 간부들과 만나는 건 연합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누군가가 저들의 고삐를 잡고 흔들어 주지 않으면, 줄 풀린 망아지처럼 반드시 날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만남이 썩 반가운 건 아니다.

    “오늘은 우리 회장님이 쏘는 날!!”

    “우오오오-!”

    간부 녀석들마다 개성 넘치는 놈이 태반이다.

    이놈들은 나를 정말 연합회장이라고 생각하기는 하는 건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그냥 내 주머니 털어먹으려고 간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경서 연합에는 총 12명의 간부가 연합을 지탱하고 있다.

    이 중에서 3명만 경서 고등학교 출신이고, 나머지는 다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

    “오늘은 너희들이 좀 내라. 이것들이 날 호구처럼 부려 먹기만 하네.”

    “응? 네가 연합회장 된 순간부터 호구된 거 몰랐어?”

    머리도 단정치 못한 놈이 킬킬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 실없는 놈이 바로 최정식, 현재 세현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내가 이놈을 특별히 간부로 뽑은 이유가 있다.

    전생에서 검사질 할 때, 내가 이놈을 직접 잡았었다. 그 당시 동원된 경찰들 수만 30명.

    그만큼 고위험군에 속한 놈이었다.

    그때 이놈은 사시미 하나로 조직원 10명을 인사불성으로 만들어 버린 전과가 있었다. 거기다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소규모 조직들을 여러 개 박살 내곤 자신이 속한 조직에 흡수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적도 많았기에, 금방 표적이 됐다. 그런데도 최정식은 칼 한 자루로 끝까지 버티며 자신의 조직을 지켰다.

    문제는 그 조직 두목이 최정식을 검찰에게 팔아넘기고 자신은 해외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나는 녀석에게 살인죄 등을 다수 적용하여 엄중한 구형을 요청했고, 결국 최정식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실없이 웃는 얼굴을 보면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 아닌가 싶다. 이런 놈이 나중에 그 무시무시한 칼잡이가 되다니.

    거기다가 내 손으로 붙잡은 놈이, 지금은 나와 한 동료가 되었다.

    “야, 삐졌냐? 갑자기 왜 말이 없어?”

    난 최정식을 말없이 바라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에휴-. 새끼. 앞으로는 이 형만 잘 따라와라.”

    “뭐야, 갑자기! 소름 돋게.”

    내 옆에 있던 연욱이는 한창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놈은 이런 만남을 처음에는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그런 쓰레기들과 함께 다닐 수 없다나 뭐라나.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가장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다.

    “롤러장이나 갈까?”

    “오-! 좋지.”

    “가자, 가자.”

    연욱이의 의견에 찬성표가 쏟아져 나왔다.

    남학생들은 롤러장을 당연히 반길 것이다.

    롤러장이 무엇인가?

    80년대를 휩쓴 롤러 스케이트장이다.

    나 같은 세대들은 나이가 들어도 추억의 롤러장이라고 해서, 스케이트장을 가끔 찾기도 하지 않던가?

    “역겨운 새끼들. 너희들끼리 가.”

    연합 간부라고 해서 땀내 나는 남학생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여자도 있었다.

    이세린, 이명 여자 고등학교 2학년생이다.

    여자라고 해서 써클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명 여고는 상당히 교육 수준이 높은 곳이다. 거기다가 공부 잘하고 돈 많은 엘리트가 들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 이세린이 왜 우리 연합에 들어왔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그냥 돈 많은 부잣집 딸의 일탈이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이세린의 미래는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훗날 이세린 아버지는 IMF 사태가 터져서 회사가 망해 버린다.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 당시 해외에 나가 있던 이세린은 한국에 다시 돌아오는데, 그때 무슨 일을 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무명 시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1999년.

    미국 여러 제약회사가 로비스트들을 동원해 자신들이 만든 진통제를 합법화하게 하는데, 문제는 이게 마약 성분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제약회사들의 뜻대로 진통제는 시중에 유통이 되었다. 마약 성분이 들어 있는지도 몰랐던 미국 시민들은 중독자가 되어 완전히 마약에 빠지게 된다.

    그때 로비스트로 일했던 사람이 바로 이세린이다.

    그녀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각 기업의 의뢰를 받아, 로비스트 일을 했다. 그러다 내게 덜미를 잡힌 이세린을 직접 구형하려 했다.

    물론, 대형 로펌들을 동원하는 바람에 최종 선고는 벌금과 집행유예로 끝났지만.

    아무튼, 지금은 난 검사가 아니지 않은가? 저 여자와 인연을 맺는다면 앞으로 도움받을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로비스트들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것도 유능한 로비스트라면 더욱!

    “뭘 그렇게 봐? 기분 나쁘게.”

    아차. 너무 뚫어지라 쳐다봤나.

    “응? 아냐. 아무것도. 그런데 진짜 안 갈 거야?”

    “넌… 가게?”

    “어쩌겠어. 저것들이 가자고 난리를 치는데. 너도 같이 가자. 매일 만나는 것도 아닌데, 한번은 같이 가 줘.”

    “뭐… 딱히 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갈 수도 없고.”

    이세린은 새침하게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저럴 때 보면 영락없는 부잣집 딸내미다. 좀 맞춰 줘야겠다.

    “그래. 이왕 모였는데, 같이 가자, 세린아.”

    “나, 스케이트 탈 줄 몰라.”

    “쉬워. 그냥 타면 돼. 쟤네들이 잘 타니까, 알려 줄 거야.”

    “넌, 안 타게? 네가 알려 주면 되잖아.”

    “나? 글쎄. 가서 보고.”

    “…됐어. 필요 없어.”

    이세린은 갑자기 불퉁거리며 내게서 몸을 휙 돌렸다. 그러고는 쿵쿵 걸음으로 일행을 따라갔다.

    “왜 저래?”

    가끔 보면 이해할 수가 없는 애다. 뭐가 또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원.

    “에라이. 병신 같은 새끼야!”

    그런데 연욱이는 내 뒤통수를 때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넌 또 왜 그래?”

    “시끄러워! 이러니까 네가 여자 친구도 없이 홀아비로 살다가 뒤진 거야. 알아?”

    연욱이도 세린이와 다를 바 없이, 무언가 잔뜩 짜증 난 얼굴로 일행을 따라나섰다.

    다들 왜 저러는 거지?

    * * *

    스케이트장은 항상 고등학생들로 붐볐다. 중학생들도 좀 있긴 하지만, 고등학생이 버티고 있는 곳을 어린애들이 겁 없이 다가오진 않는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쓰는 스케이트장이 따로 있고, 중학생들만 이용하는 스케이트장이 따로 있을 정도다.

    애들은 스케이트를 타기보다는 자꾸만 눈을 굴리기에 바쁘다. 이놈들이 설마 스케이트나 타자고 여기 왔겠는가?

    “넌 안 탈 거냐?”

    “됐어. 너나 열심히 타라.”

    연욱이 저놈도 벌써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잊었는지, 다른 남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눈알을 굴리고 있었다.

    웃긴 건, 이세린이 스케이트를 꽤 잘 탄다는 것이다. 아까는 못 탄다고 징징대더니. 엄살이었나?

    꽤 평화로운 일상이다.

    여의도 관리는 어차피 당장 하는 것도 아니니까, 시간에 쫓길 일도 없다. 이런 일상도 참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만약에 내가 검사도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것이라면…?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

    지금처럼 평화로운 일상을 만끽했을까?

    “꺄아악-!”

    잠시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스케이트장 가운데 쓰러진 중년 남성이 신음을 터트리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모두 겁먹은 얼굴로 주춤거릴 때, 쓰러진 남성에게 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나와 연욱이었다.

    “이거…, 발작 같은데?”

    남성의 상태를 보니, 이건 발작이었다.

    “혀에 물릴 만한 거라도 있어? 휴지라도 줘봐!”

    연욱이는 우리를 멍청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달려와 휴지 찢은 뭉텅이를 주었다.

    “이거라도 물려!”

    세린이었다. 꽤 순발력 있는 행동이었다. 다른 놈들은 잔뜩 겁먹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데.

    “정식아, 네가 119 불러! 얼른!”

    “아, 알았어!”

    이럴 때는 누군가를 딱 집어서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게 응급 구급의 기본 행동 요령이 아니던가?

    난 이 남성이 발작을 일으키면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히지 않게, 받침을 해 주고 있었다.

    “태산아….”

    그때 연욱이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왜?”

    “이거 아무래도….”

    그리고 남성의 왼쪽 팔 부분을 보여 주었다.

    팔 곳곳에 나 있는 주삿바늘 흔적.

    “이건….”

    “마약 중독자야. 이 정도까지 했다는 건….”

    난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얼굴이 사람 몰골처럼 보이지 않았다. 흔한 마약 중독자의 얼굴이다.

    그렇다면 이 발작도 단순한 발작이 아니다.

    이건 치사량에 가까운 마약을 주입했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마약 과다 복용으로 뇌 기능이 마비돼, 호흡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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