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레벨업-171화 (171/200)

< 남극의 균열 >

강하진은 모든 각성자를 구덩이에서 내보냈다.

다들 반신반의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강하진을 믿고 밖으로 나갔다.

가디언스와 디펜더스는 경쟁 관계이긴 했지만, 그래도 지구를 구하기 위한 목적은 동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을 버리지 못해서 다들 연신 뒤를 돌아봤다.

강하진은 저들이 하는 오해의 원인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지구의 다른 곳이 안정되면 이곳 균열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다.

지구가 안정되면 균열이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그건 당연했다. 세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힘이 다시 균열로 모여드니까.

여기가 안정된다는 건 균열의 힘이 지구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좀 느낌이 묘한데?’

강하진은 남극의 균열에서 느껴지는 힘이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면서도 또 생소했다.

그동안 던전을 볼 때마다 느꼈던 그 시스템의 힘이 아니었다. 뭔가 많이 엇나간 힘이었다.

강하진은 각성자들이 구덩이에서 나가 막사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왜 이 힘이 익숙한지 떠올려봤다.

“아!”

강하진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힘이 왜 익숙한지 알아냈기 때문이다.

이건 예전 제이슨을 볼 때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그때는 힘의 근원을 정확히 느낀 게 아니라, 그저 어렴풋이 겉핥기식의 느낌이었기에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긴가민가했는데, 정확히 제이슨을 떠올리고 나니 훨씬 명확해졌다.

강하진은 묘한 눈으로 균열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 균열이 제이슨의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인 모양이네.’

여길 뚫고 지구로 넘어온 것이다.

강하진은 균열 조절기의 힘을 이곳으로 집중했다.

정확히 균열의 위치를 알고 있으면 균열 조절기의 효율을 최고로 높이는 게 가능했다.

극도로 높은 효율의 균열 조절기에 의해 균열은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안정한 힘은 훨씬 커졌다.

아마 강하진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막사로 돌아갔던 각성자들이 다시 우르르 달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이곳에는 이미 왜곡의 장이 펼쳐져 있었으니까.

균열에서 발생한 힘은 왜곡의 힘에 의해 구덩이를 크게 휘돌아 다시 균열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균열은 침식의 구멍과 비슷하다. 그러니 균열에서 나온 힘을 균열로 되돌리면 점점 안정되고 크기가 줄어든다.

‘완벽하게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을 텐데······.’

분명히 방법이 있을 것이다.

원래 강하진은 은폐의 장을 펼쳐 균열이 보이지 않게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마 이곳의 균열이 사라졌다는 걸 알면 제이슨이 달려올 것이다. 그리고 라파시드의 패턴을 없앨 것이고.

그럼 원래대로 돌아간다. 저들은 강하진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 것이고.

거기까지 생각한 강하진은 구덩이에서 나가 막사로 향했다.

일단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 * *

당연한 얘기지만 각성자들은 강하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한 일이 지구를 지키는 거라고 굳게 믿었다. 한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너희가 지구를 망하게 하고 있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하지만 이들 역시 의심을 하고는 있었다.

너무나 타이밍이 공교로웠으니까. 또 아쉬가 방문한 이후 균열이 더 커졌으니까.

제이슨은 균열이 커지긴 했지만 안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했다.

이들로서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고.

“일단 균열을 보러 가시죠.”

강하진의 말에 각성자들이 우르르 나가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현저히 쪼그라든 균열을 확인했다.

“균열이······ 줄어들었군요.”

그 말에 강하진이 대답했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균열에서 나오는 불안정한 힘이 커진다고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 힘이 여기서 나오지 않으면 지구의 다른 곳에서 힘을 발휘할 테니까요.”

지구의 다른 곳에서 균열의 힘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게 던전입니다.”

강하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합리적인 의심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혹시 디펜더스에서 관리하는 균열이 여기 말고 또 있습니까?”

강하진의 물음에 각성자들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잘 모르기도 했고, 짐작만으로 할 만한 얘기도 아닐뿐더러, 아직까지 강하진을 확실히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만으로도 충분했다.

“짐작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군요.”

각성자들이 대답하지 않자, 강하진은 말을 돌렸다.

“그 마력 정제법이라는 거, 저에게도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안 그래도 아까 가르쳐줄 테니 균열을 막아 달라고 각성자 중 하나가 외쳤었다.

한데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나니, 그걸 가르쳐주기가 껄끄러웠다.

머뭇거리는 각성자들에게 강하진이 담담히 말했다.

“만일 그게 정말로 균열을 막는 정제법이라면 가르쳐주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그걸 쓰면 균열이 더 안정되는 거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도 마찬가지고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이 보기에 강하진이 균열을 조장하려는 것 같지도 않았다.

최소한 가디언스는 지금까지 열심히 던전을 막고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애써왔다.

“좋습니다.”

누군가가 나서자 모두 그를 바라봤다. 다들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강하진에게 마력 정제법을 알려주었다. 일종의 호흡법이자, 마력 운용법이었다.

그걸 모두 들은 강하진이 직접 그걸 해봤다.

생각보다 간단했기에 한 번 해보는 걸로 순식간에 익혀 버렸다.

그 순간, 강하진의 감각을 무언가가 건드렸다.

강하진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넓게 퍼트렸다.

자신의 감각을 건드린 게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했지만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강하진은 다시 마력 운용법에 집중했다.

그걸 다시 해보는 순간, 또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가 강하진의 감각을 건드린 것이다. 그냥 감각이 아니라 시스템에 관계된 감각이었다.

강하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왠지 원인을 알 것 같아서였다.

“이 마력 정제법, 누가 가르쳐준 겁니까?”

각성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제이슨이 직접 알려준 겁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강하진은 일단 고개를 저었다.

“그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겁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강하진은 다시 마력을 운용했다. 이번엔 훨씬 명확히 느껴졌다. 마력을 운용할 때마다 시스템과 관계된 감각을 건드리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게 의미하는 게 뭐지?’

강하진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본능에 맡겨 보기로 했다.

다시 한 번 마력을 운용했다. 감각을 건드렸지만 일단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마력을 정제했다.

그렇게 다섯 번을 반복했을 때, 강하진은 왜 이런 느낌이 들었는지 알아냈다.

이건 타 시스템의 마력 운용법이었다.

아직 이쪽 시스템에는 등록되지 않은 마력 운용법이었다.

강하진은 본능적으로 그걸 시스템에 연결시켰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노이스네미드 기본 마력 운용법(A)]

[노이스네미드에서 가장 기초적으로 익히는 마력 운용법.  차원명 노이스네미드의 마력 운용법 중 가장 범용성과 안정성이 높은 마력 운용법이다.]

방금 그 마력 운용법이 스킬로 등록되었다.

그렇게 스킬로 등록된 순간, 강하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모든 각성자들이 화들짝 놀랐다.

스킬로 등록되었으니 그들이 익힌 마력 운용법에 관한 스킬이 생겨난 것이다.

강하진은 더욱 집중해서 정보를 확인했다.

[타 차원에서 노이스네미드로 연결된 균열을 확장할 때 가장 효과적인 마력 운용법.]

이것이 핵심이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이 핵심을 저들에게 전할 방법이 없었다.

강하진이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을 때, 각성자들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게 대체 뭐지? 노이스네미드? 마력 운용법?”

갑자기 생긴 스킬에 다들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이 제이슨에게 배운 마력 운용법이라는 건 확실했다.

설명을 보면 노이스네미드라는 것은 다른 차원이 확실했다.

한데 다른 차원의 마력 운용법을 대체 제이슨이 왜 알려줬단 말인가.

게다가 설명을 확인하니 균열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였고.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대체 제이슨은 이런 걸 왜 가르쳐줬단 말인가. 그리고 왜 이걸로 균열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인가.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스킬 설명에는 없지만 이 마력 운용법에 균열을 막는 효과가 깃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이게 뭡니까?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겁니까?”

각성자 중 하나가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 역시 뭔가 답을 해줄 거라고 여겨서 물어본 게 아니었다.

그저 감탄사처럼 한 말이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저 대충 흘려서 넘길 생각이 없었다.

엿보기를 통해 집중하면 더 깊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걸 타인에게 전달해주는 건 과연 안 되는 걸까?

강하진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방금 생긴 스킬, 좀 더 집중해서 확인해 주십시오.”

“예? 무슨 말씀인지······.”

“여러분 반응을 보니 아무래도 저랑은 보고 있는 것이 다른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스킬 설명에 균열에 관한 건 안 나온 모양이죠?”

균열이라는 말에 다들 놀람으로 눈이 커다래졌다.

“역시 균열에 관련된 스킬이었군요!”

각성자들은 다들 저마다의 방법으로 스킬 설명에 집중했다. 뭔가 설명이 더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벌이는 행동이었다.

강하진은 그들에게 자신이 가진 정보를 주고자 집중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해봐서 나쁠 건 없었다.

이 스킬에 대한 정보를 강하진이 말로 설명해주면 저들이 믿을 리 없으니 무조건 이게 통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어! 떴다!”

누군가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그 뒤로 연이어 이어진 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설명을 확인하자마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은 극심한 배신감과 자괴감, 그리고 허탈함과 분노가 뒤섞인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어쨌든 덕분에 이들을 열심히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알았을 테니까.

자신들이 했던 일이 사실은 균열을 더 악화시키고 있었다는 걸 알았으니 더 이상 그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어쩌면 디펜더스에서 나올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들은 디펜더스 내에서도 제법 실력이 뛰어난 각성자들이었다.

그러니 저들이 이탈한다면 디펜더스의 전력이 약화되는 셈이었다.

이곳에서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강하진이 유일했다.

강하진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사실은 감춰두는 편이 나을 것 같군요. 그리고 앞으로 이곳 균열을 여러분이 지켜야 합니다.”

각성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싼 똥이니 자신들이 치우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무도 이 균열에 손대지 못하게 막을 겁니다.”

각성자 중 하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저······ 균열이 이상하다고 아까 상부에 보고를 했습니다. 어쩌죠?”

“제이슨이 직접 오지 않는 한, 별 문제 없을 겁니다. 추가 인원이 온다면 사실을 알려주고 같은 편으로 만드십시오.”

“우리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 그들도 반드시 우리 손을 잡아줄 겁니다.”

그들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은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서포터가 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구를 구하는 히어로가 된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만일 지구를 망치는 조직이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여기 남아 있을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그렇게 믿었다.

“만일 제이슨이 온다면 그를 속이셔야 합니다. 아마······ 제이슨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할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강하진은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마지막 질문을 했다.

“여기 말고 다른 균열은 어디에 있습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