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쉬 등장 >
강하진은 일본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유적을 찾으러 떠났다.
레나트는 그동안 강하진이 전해준 유적에 관한 모든 정보를 토대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지역 몇 군데를 추려냈다.
그 중 하나가 남극대륙이었고, 강하진은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었다.
남극으로 가려면 보통 칠레로 가서 이동한다.
칠레 남부, 푼타 아레나스에 도착한 강하진은 그곳에서 배를 하나 구해서 탔다.
과연 이걸로 남극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로 작은 배였지만, 상관없었다.
배를 끄는 건 백호가 맡았다.
로프를 배에 단단히 고정한 다음, 그걸 백호가 물고 헤엄쳐서 배를 끌었다.
벽을 두 번이나 넘은 괴물답게 백호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배를 끌고 이동했다.
그렇게 강하진이 남극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 디펜더스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하진은 배 위에서 느긋하게 앉아 태블릿을 통해 뉴스를 보고 있었다.
* * *
기자회견이 끝나자, 디펜더스 멤버들은 곧장 파티장으로 이동했다.
오늘은 디펜더스의 새로운 멤버를 발표하는 날이자, 디펜더스의 서포터들에게 아쉬를 소개하는 날이기도 했다.
균열을 확장했으니 이제부터 다시 던전이 쏟아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려서 가디언스를 누르고 디펜더스가 새로운 던전 시대의 주역으로 올라서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진정한 세계의 왕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제이슨, 오랜만입니다.”
제이슨은 친밀감을 표시하며 다가오는 사내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페데리코, 오셨군요.”
그는 스페인의 각성자 협회장인 페데리코였다.
최근 디펜더스의 행보가 너무 답답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에 뭔가 변화가 생길 것 같아서 바쁜 와중에도 참석한 것이다.
“일본 진출 소식은 들었습니다. 도움이 되어 드렸어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입니다.”
페데리코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도 아예 망한 건 아니라서 다행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디펜더스에서 힘을 써주시리라 믿습니다.”
“물론입니다. 이미 일본에 보낼 각성자들을 선별하고 있습니다. 최고의 각성자들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거 기대되는군요.”
페데리코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제이슨 옆에 서 있는 아쉬를 슬쩍 바라봤다.
“아, 이쪽은 아쉬입니다. 아까 기자회견 보셨죠? 우리 디펜더스의 비밀무기이자 새로운 멤버입니다.”
“솔직히 내가 예상하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좀 당황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디펜더스가 하는 일이니 믿고 있습니다.”
페데리코는 아쉬의 자격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사실 다음 멤버로 스페인의 각성자 몇 명을 미는 중이기도 했고.
그건 페데리코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가디언스에 눌려 있다고 해도 디펜더스가 가지는 위상은 상당했다.
그런 디펜더스의 정식 멤버가 되는 일은 더 없는 기회이자 영광이었다.
한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덜컥 새로운 멤버로 뽑혔으니 다들 얼마나 상실감이 크겠는가. 당연히 불만도 잔뜩 쌓였다.
제이슨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여기 아쉬는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기존 디펜더스 멤버 네 명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한 사람이죠.”
페데리코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는 제이슨이 얼마나 강한 각성자인지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윌리엄과 제니퍼의 강함도 알고 있었다.
스팬서는 잘 모르지만, 세 사람이 보증하는 만큼 상당한 강자일 거라 예상했다.
한데 그런 넷을 합한 것보다 더 강하다니, 그럼 대체 얼마나 대단한 각성자란 말인가.
페데리코는 할 말을 잊었다. 그 정도로 놀란 것이다.
그리고 근처에서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모두 똑같이 놀랐다.
그들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그걸 보며 씨익 웃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 *
강하진은 남극대륙에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디펜더스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디펜더스는 아쉬를 영입한 이후 굉장히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그동안 조용했던 것이 높은 점프를 위한 움츠림이었던 것처럼 닥치는 대로 던전을 닫고 괴물을 사냥했다.
최근 던전이 쏟아져서 전 세계에 난리가 났는데, 가디언스만으로는 확실히 모자라는 상황이었다.
한데 그 빈자리를 디펜더스가 완벽하게 메웠다.
자연스럽게 큰 임팩트를 디펜더스가 가져가 버렸다.
특히 새 멤버인 아쉬는 정말로 대단했다.
다른 디펜더스 멤버와 달리 언제나 홀로 움직였는데, 그럼에도 다수의 각성자들보다 훨씬 강력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강하진은 백호가 끄는 썰매에 앉아 열심히 태블릿을 확인했다.
명인혁이 아쉬에 대해 조사한 내용을 확인하던 강하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예 정보가 없다고?”
아쉬는 어느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나타났다.
사실 과거에 대한 정보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전부 만들어진 가짜였다.
명인혁은 아쉬의 정보가 가짜라는 걸 알아낸 다음 뒤를 캐기 위해 정말 애썼는데,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명인수의 힘을 이용할까 해서 강하진에게 허가를 요청했는데, 강하진은 허락하지 않았다.
뻔했다. 제이슨이나 제니퍼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상의 사람일 것이다.
왜 이제야 나타났는지는 몰라도, 틀림없었다.
‘언제든 넘어올 수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아쉬는 회귀 전에는 없던 사람이었다.
추가로 넘어온 사람이 아니라면, 그동안은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강하진의 표정이 굳었다.
어쩌면 지금 세상에 쏟아지는 무수한 던전과 아쉬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게 아닐까?
던전이 잘 안 생기면 가장 난감한 사람이 누굴까? 당연히 제이슨을 비롯한 디펜더스다.
그들은 던전을 이용해 세상을 집어 삼키려는 놈들이다.
‘원래라면 드러내지 않을 놈을 던전 때문에 드러나게 한 건가?’
아무래도 그것이 가장 정답에 가까울 것 같았다.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는 와중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대한 산이 보였다.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산이었는데, 강하진의 목적지는 저 산 어딘가에 있을 얼음동굴이었다.
일단 그것부터 찾아야 한다. 그게 시작이었다.
* * *
남극에는 디펜더스가 관리하는 균열이 있었다.
거대한 구덩이에 있는 균열인데, 아쉬가 가져온 페이즈 드래곤의 심장조각 때문에 균열이 확장된 상태였다.
그리고 그렇게 확장한 균열에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열심히 마력을 퍼부었다.
그냥 단순히 마력을 쏟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과정을 거쳐서 정제한 마력을 내보내는 거라서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일단 모든 마력을 쏟아내고 나면 정신적으로 지쳤다.
그렇게 지친 각성자들이 구덩이 밖에 마련된 막사에 들어가 널브러져 쉬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아쉬가 방문한 이후로 5교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균열에 쏟는 마력의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남극에 머무는 각성자의 수도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렇게 해도 그럭저럭 유지가 가능했다.
그들이 느끼기에 이곳의 마력은 점점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마력이 안정되면 세상도 안정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이곳의 마력이 안정된다는 건, 다른 곳의 마력이 불안정해진다는 뜻이니까.
오히려 이곳의 마력이 흔들려야 세상이 안정된다.
그 불균형을 없애려면 이 균열을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막 교대를 마치고 침대에 털썩 누운 각성자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일단 1시간만 자고 일어날 생각이었다. 정신적 피로를 풀려면 잠이 최고였다.
그렇게 잠들기 직전,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마력에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 뭐야!”
기시감이 들었다. 이와 비슷한 일을 예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다.
아쉬가 여기 방문하기 전, 지금의 두 배가 넘는 각성자들이 피를 토할 정도로 혹사당하던 그때의 느낌이었다.
“이런, 젠장!”
그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균열이 있는 구덩이에서 불길한 마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마구 뒤엉켜 점점 더 복잡하고 불길해졌다.
막사에서 각성자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다들 같은 걸 느낀 것이다.
“서둘러!”
누군가의 외침에 전부 구덩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불길한 마력을 뿜어내는 균열에 온 힘을 다해 마력을 쏟았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좀처럼 마력이 안정되지 않았다.
“대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각성자들의 안색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 * *
강하진은 무사히 얼음동굴을 찾았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유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유적을 시스템에 등록했다.
[균열 조절기]
[자연적으로 발생한 차원의 균열을 이용해 만든 조절 시스템. 자연적으로 발생했기에 어디로든 이어질 수 있고, 균열의 힘이 안정되어 있고, 모든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안정된 균열의 힘을 이용해 다른 차원의 균열을 조절한다.]
강하진은 균열 조절기를 시스템에 등록하면서 마력과 정신을 각각 100씩 획득했다.
다른 스킬이나 칭호를 얻지는 못했지만, 균열 조절기를 등록해서 그것의 관리자가 된 것만으로 충분했다.
강하진은 일단 균열 조절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주변으로 시스템의 힘이 쫙 퍼져 나갔다.
“이렇게 하면 던전의 수가 다시 줄어들까?”
아마 그렇게 될 것이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균열 조절기의 관리자가 되니, 그런 쪽의 감각이 생겨났다. 지구에 나타난 균열은 없앨 수 없었다.
아니, 한 번 발생한 균열을 없애는 건 불가능했다.
균열은 계속 커지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면 균열은 계속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균열을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건 가능했다.
그러려면 이 균열 조절기가 있어야 한다.
강하진은 균열 조절기를 라파시드의 서를 동원해 감춘 다음, 밖으로 나갔다.
강하진의 시선이 한 쪽으로 향했다.
방금 균열 조절기의 힘이 작동한 방향이었다. 그곳에 균열이 있었다.
균열이라는 건 침식을 통해 뚫은 구멍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러니 비슷한 방법으로 영향력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강하진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균열이 있는 쪽으로 가면 갈수록 균열이 아닌 다른 종류의 마력이 느껴졌다.
‘각성자?’
균열에 각성자들이 있었다. 강하진의 표정이 한껏 굳어졌다.
* * *
남극 균열을 막던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이 결국 전부 탈진했다.
그들은 절망어린 시선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균열을 바라봤다.
아무리 애써도 저 균열을 막을 수 없었다.
디펜더스 본부에 보고를 하긴 했지만, 추가 인원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끝날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지구는 끝장이었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 균열 앞에 누군가가 뚝 떨어져 내렸다.
다들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균열 앞에 강하진이 서 있었다.
강하진을 알아본 사람들이 눈을 크게 떴다.
“가, 가디언스 마스터?”
강하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슥 둘러봤다.
원래는 보자마자 전부 박살을 내버리려고 했다. 한데 돌아가는 분위기가 굉장히 이상했다.
그래서 화를 한 번 참았다.
“여기서 다들 뭐 하고 있는 겁니까?”
차갑게 가라앉은 강하진의 말에 각성자 하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애절하게 외쳤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지구는 끝장입니다!”
강하진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솔직히 지금 지구를 끝장내는 쪽으로 행동하던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지 않을까?
각성자는 강하진의 반응이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균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에 마력을 쏟아야 합니다. 마력 정제법을 알려드릴 테니 그렇게 해서 마력을······ 안 그러면 균열이 지구를 집어삼킬 겁니다. 벌써 저렇게 불안정해졌으니 이대로 두면 순식간에······.”
강하진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니까 저 균열을 안정시키는 게 목적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안 그러면······!”
강하진은 또 그의 말을 끊었다.
“안정이 아니라 아예 균열을 없애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예?”
모든 각성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그들의 표정과 눈빛이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