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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157화 (157/200)

< 변화 1 >

제니퍼는 하와이를 벗어나자마자 자신의 권속을 불렀다.

마침 혹시 몰라서 근처에 대기시켜 놓은 권속이 있었기에 금방 그녀를 찾아왔다.

권속의 도움을 받아 디펜더스 본부에 도착한 제니퍼는 그 뒤로 꼬박 24시간 동안 기절한 뒤 깨어났다.

깨어난 뒤에도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해서 한동안 창백한 얼굴로 지내야 했다.

그래도 그나마 권속과의 링크가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만큼 혈백호와 이어졌던 계약이 강제로 끊어진 것은 굉장한 타격이었다.

사실 제니퍼는 지금까지 그런 경험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이건 얼마 전 제이슨이 겪은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때 제이슨이 경험한 건, 권속과의 링크가 끊어진 거였다. 그저 연결이 끊어진 것이다.

권속이 소멸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때 있을 반발은 상당부분 시스템이 감당하게 되어 있었다. 또한 권속도 반발을 나눠 감당한다.

그러니 정작 제이슨이 감당해야 할 반발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제니퍼가 이번에 겪은 일은 그것과 달랐다. 계약 자체가 강제로 끊어진 것이다.

그 반발을 모조리 제니퍼가 감당해야만 했다.

계약의 주체가 제니퍼였으니까.

아마 단순한 권속과의 계약이었다면 좀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의 거인을 매개로 이루어진 괴물과의 계약이었기에 상황이 많이 달랐다.

아무튼 몸을 추스르자마자 제이슨과 윌리엄, 스팬서가 그녀를 찾아왔다.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 지경이 된 거야?”

“안 그래도 하와이 공략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제니퍼는 창백한 얼굴로 세 사람을 한 번씩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일단 내가 그 던전에 들어가서 세운 계획부터 말해줄게요.”

제니퍼는 하와이의 던전에 들어갔을 때, 그녀가 확인한 정보들을 시작으로 어떤 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진행했는지 차분히 설명했다.

그걸 모두 들은 세 사람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괜찮은 계획인데? 구름 호랑이와 피의 거인이 같이 있었다면 당연히 시도할 만하지.”

“얘기를 들어보니 계획대로 잘 진행된 모양인데, 뭐가 문제야?”

“구름 호랑이를 혈백호로 진화시켜서 계약을 이어받게 하는 데까지 성공했죠.”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 들어간 놈들만으로 혈백호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혈백호에게 던전을 청소한 다음, 그게 끝나면 찾아오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제니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데 갑자기 계약이 끊어졌어요.”

“계약이 끊어져? 그게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에요. 계약이 강제로 끊어졌고, 그 반발을 제가 모조리 받았어요.”

제니퍼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 팔을 슬쩍 든 다음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래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계약이······ 그런 식으로 끊어진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도 없어.”

“나도 마찬가지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대책이지.”

제이슨이 냉정하게 말했다.

맞는 말이기에 다들 입을 다물고 제이슨을 바라봤다. 심지어 항상 나대던 스팬서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누가 이런 일을 했는지는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겠어.”

“강하진.”

“예전에 내 권속과의 링크가 끊어졌을 때도 심상치 않은 놈이라는 건 확인했지만,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제이슨은 그렇게 말하고 섬뜩한 눈으로 윌리엄과 스팬서를 번갈아 바라봤다.

“균열을 흔드는 일만으로도 솔직히 벅차. 군열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우리 힘이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거 다들 느끼지?”

윌리엄과 제니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스팬서는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는 아직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제이슨은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스팬서는 아무리 자신들의 시스템에 속해 있다고 해도 근원은 이쪽 지구의 사람이었다.

그러니 영향을 적게 받는다.

하지만 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결국 스팬서도 스스로 느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질 것이다.

“솔직히 인정할 때가 된 것 같군. 우리끼리 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는 걸.”

“그 말은······.”

“아쉬를 깨워야겠어.”

그 말에 제니퍼와 윌리엄이 경악했다. 반면 아쉬가 누군지 모르는 스팬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쉬가 누군데?”

“우리의 동료가 될지도 모를 존재지.”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아쉬는 처음 이쪽 시스템에 침략할 때부터 함께 왔던 존재였다.

하지만 넘어온 순간 시스템의 반발 때문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제이슨도 그렇고 윌리엄과 제니퍼도 마찬가지로 그걸 기회라고 여겼다.

솔직히 아쉬는 함께 하기에 너무 위험한 자였으니까.

아쉬가 잠든 상태에서 모든 일을 마무리 하고, 마르바스와의 일까지 다 끝낼 계획이었다.

그 다음에 아쉬를 깨우면 위험 부담 없이 모든 상황을 끝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굳이 아쉬를 깨우는 이유는 마르바스와의 일을 처리한 이후의 일 때문이었다.

그때 정말 강한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설명을 다 들은 스팬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은 얘기만으로는 위험할 정도로 강하다는 거잖아? 그럼 좋은 거 아냐? 어쨌든 너희들 원래 힘을 다 쓰기 어려운 상태인데 강한 사람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최고지. 안 그래?”

그 말을 들은 제이슨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아쉬의 이명이 뭔지 알아?”

“이명? 너를 피의 군주라고 부르는 그런 거 말이야? 솔직히 별로 관심은 없는데······.”

제이슨은 스팬서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어둠의 군주라고 부르지.”

“피의 군주나 어둠의 군주나 비슷한데? 오글거려.”

제이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할 말은 끝까지 했다.

“그리고 우린 아쉬를 가끔 이렇게 부르지. 절망과 멸절의 마왕이라고.”

스팬서는 또 한 번 오글거림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굉장히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왠지 굉장히 꺼림칙하고 위험한 느낌이 드는데? 정말 그런 놈을 깨워도 되겠어?”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무책임한 대답을 하면 곤란한데.”

스팬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그래서 언제 깨울 건데?”

제이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준비가 필요해.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다. 힘도 들 거고. 그래도 해야 돼. 더 늦기 전에. 균열이 여기서 더 안정되면 아쉬를 깨우기 어려워질 테니까.”

제이슨의 말에 윌리엄과 제니퍼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먼저 윌리엄이 물었다.

“아쉬를 깨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지?”

“물론이야.”

제이슨이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이번엔 제니퍼가 물었다.

“정말 그렇게 결정한 거예요?”

“그래. 그것이 정답은 아닐지 모르지만, 답에 가까운 건 확실해.”

“당신이 그렇다면야······.”

제니퍼가 좀 풀어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윌리엄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의 동의를 받은 제이슨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스팬서만이 영문을 모르는 눈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 * *

하와이 원정은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무 피해도 없이 거대 던전을 닫았고, 미국은 처음 약속했던 대가를 정확히 지불했다.

막대한 양의 포션을 제공했는데, 역시나 원래 포션의 마이너 버전이었다.

그래도 지금 유통되는 포션보다는 뛰어났다. 양이 많으니 당분간은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제공 받은 레시피를 수정해서 제대로 된 포션을 완성하면 된다.

현재 가디언스에는 유능한 인재가 많으니 그들을 갈아 넣으면 충분히 빠른 시간 안에 뛰어난 포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는 거라면 모를까, 현재 강하진에게는 대부분의 지도가 그려진 레시피가 있었고, 그 중 핵심 부분에 해당하는 지식도 있었다.

그 둘을 모아 세부적인 조정만 하면 되는 일이니 충분히 가능했다.

미국에서는 하와이의 합동 작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거대 던전의 등장을 미리 알아낸 것부터 시작해 그걸 완벽하게 막아낸 것까지 전 세계의 언론을 이용해 쫙 퍼트렸다.

이번 일은 미국의 주도로 가디언스와 디펜더스가 손을 잡고 해낸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상황이 좀 묘하게 변했다.

거기에 던전 브레이커가 숟가락을 올린 것이다.

애초에 미국에서는 가디언스와 디펜더스의 이름만 쓸 생각이었는데, 교묘하게 던전 브레이커가 끼어들었다.

당연히 그건 윤경민과 명인혁의 작품이었다.

물론 던전 브레이커의 도움도 약간 가미되어 있었고.

사실 거기까지는 미국도 어느 정도 예상한 부분이었다. 던전 브레이커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했고.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디펜더스 소속으로 참여했던 100명의 각성자들이 돌연 던전 브레이커로 가버린 것이다.

함께 작전을 벌였던 사람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그들은 디펜더스의 서포터였다. 그러니 계약이 되어 있었고, 위약 조항도 상당히 강력했다.

하지만 던전 브레이커는 그 부분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다른 디펜더스의 각성자들에 비하면 실력이 좀 모자라지만, 그래도 디펜더스는 디펜더스였다.

디펜더스의 서포터가 되려면 실력에 관한 철저한 검증이 필요했다.

그 기준을 통과한 각성자들이니 어쨌든 평균 이상의 실력과 레벨을 갖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100명이나 한꺼번에 길드에 받아들일 수 있는데 던전 브레이커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윤경민과 명인혁은 그 사실을 교묘하게 퍼트렸다.

그것은 던전 브레이커와 가디언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디펜더스는 별다른 대응도 못하고 그저 현상유지에 급급했다.

그 모든 일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보고서를 강하진이 읽고 있었다.

“포션 연구는 성과가 금방 나올 것 같습니다. 레시피와 마스터께서 주신 정보를 받은 연구자들이 지금 의욕에 불타서 연구 중입니다.”

그들은 윤경민에게 [회복]을 걸어달라고 스스로 요청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강하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런데 디펜더스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합니다.”

윤경민이 그렇게 단언했다.

정말로 이상했다. 모든 일에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예전에 그들이 뭔가 다른 일에 열중하는 것 같다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지금 상황도 그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합니다.”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고요?”

“네. 일단······ 남극 쪽에 상당한 인원이 가 있습니다.”

“남극이요?”

남극은 환경이 극단적인 지역이다. 그런 곳에 각성자들이 가서 뭘 하겠는가.

“거기에는 괴물도 거의 없을 텐데요?”

괴물은 물론이고 던전도 거의 없는 지역이 남극이었다.

보통 극한 지역에는 괴물이 잘 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사하라 사막이라든가.

“다른 지역에도 이동한 걸로 보이는데, 아직 정확한 장소를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 조만간 확인해서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네. 부탁합니다.”

강하진은 생각에 잠겼다. 남극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별다른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강하진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냈다.

“레나트 교수는 요즘 뭐 하고 있습니까?”

“전에 보내주신 그 자료를 가지고 연구 중입니다. 조만간 첫 번째 연구가 끝난다고 하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유적 사냥꾼이다.

특히 던전, 아니, 시스템과 관계된 유적을 쫓아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금 하는 연구도 그런 유적과 관계된 것이리라.

“아주 거대한 유적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강하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뭔가 중요한 것과 이어질 듯한 예감이 진하게 들었다.

강하진은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백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백호는 기분 좋은 듯 갸르릉거리며 강하진의 다리에 뺨을 부볐다.

이 귀여운 고양이가 하와이에서 혼자 수십 마리의 괴물을 잡아먹었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을까?

‘데리고 다니다보면 레벨도 금방 2000이 되겠네.’

2000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건 좀 다른 얘기겠지만.

강하진이 백호를 쓰다듬는 사이 윤경민의 보고가 이어졌다.

“최근 거대 던전이 몇 개 나타났습니다.”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그동안 너무 진행이 느렸는데,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할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지원 요청을 한 나라는 태국뿐입니다. 나머지는 자체적으로 닫을 수 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최근 던전의 생성이 주춤한 상태라서 다들 전력이 남아돌았다.

“문제는 일본입니다.”

“일본이요?”

“일본에 초거대 던전이 나타났습니다.”

거대도 아니고 초거대 던전이라니. 대체 크기가 얼마나 되는 던전일까?

“위성으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지름이 500미터나 된다고 합니다.”

지름 500미터면 러시아에서 나타난 던전과 같다. 물론 그 던전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지금 러시아에서 벌어진 일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그런 거대한 던전은 미리 닫을 수 있다면 닫는 게 좋다.

“힘을 모아서 던전을 닫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겠군요.”

“정확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 가디언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여러 곳에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강하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예 멤버로 구성해 보세요. 이번 기회에 일본에 한 번 다녀오는 걸로 하죠.”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윤경민이 나가자, 강하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일본이라······.’

회귀 전에 일본에 대한 관심은 딱 페이크던전까지였다.

그 이후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둘 필요도 없었고.

하지만 지름 500미터짜리 초거대 던전이 나타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일 역시 회귀 전에는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이다.

강하진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며 백호의 등을 천천히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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