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재앙의 전조 2 >
사실 실종자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던전에 들어가 괴물로 변이한 거니까.
물론 그 전에 뭔가 사건을 겪었을 것이다.
강하진은 그 부분에서 복종의 팔찌를 의심했다.
그걸 가져 마르바스의 권속이 된 자들이 무슨 짓을 했으리라.
하지만 그건 그저 추측일 뿐이었다.
어쨌든 그 실종자들은 지금 어딘가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을 것이다.
그들을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두 번째 재앙의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겠지만, 그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강하진은 명인수의 스킬을 이용했다.
최소한 한국의 재앙은 최소로 줄일 필요가 있었다.
진짜 재앙인 거대 던전이 열릴 때쯤, 가디언스는 전원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출동해야 한다.
그러니 근거지인 한국의 피해를 최소로 줄여 놔야 안심하고 던전을 공략할 수 있다.
나머지는 던전 브레이커에 맡기면 되니까.
일단 괴물이 될 실종자 하나를 찾아내는 데에 명인수의 마력이 절반 이상 날아갔다.
실종자를 하나 찾을 때마다 마력포션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도 일단 실종자의 위치를 확정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 실종자를 잡을 수 있었다.
가디언스는 아직도 해외에 나간 길드원이 많아서 주로 던전 브레이커가 그 일을 했다.
그렇게 해도 모든 실종자를 재앙 이전에 찾아내는 건 불가능했다.
실종자가 워낙 많았으니까.
그래도 이걸로 피해는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현재 가디언스의 서포터가 있는 국가는 실종자를 찾아내기 위한 대책반이 만들어져 대대적인 수색에 들어갔다.
성과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여럿을 찾아냈다.
문제는 그렇게 찾아낸 실종자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였다.
나중에 괴물로 변할 게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잡자마자 죽여 버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튼튼한 건물을 지어 그 안에 모아놓는 것이었다.
괴물로 변할 게 확실하고, 그 괴물들은 이성이 남아 있지 않으니, 아마 자기들끼리 상잔할 것이다.
그렇게 싸우고 남은 괴물들을 미리 대기한 각성자와 군대가 처리하는 것이 실종자에 대한 계획이었다.
그리고 가디언스와 서포터들의 움직임에 디펜더스는 정말 당황했다.
이대로라면 자신들이 활약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실종자 색출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후폭풍이 되어 돌아올지 알 수 없으니까.
아직 디펜더스는 제대로 시작도 못 했다. 확실히 지구의 구원자가 된 이후라면 모를까, 그 전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조심해야 한다.
아무튼 상황이 그러니 제이슨은 또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팬서가 말했던 계획에 대한 결심이 더욱 확고해졌다.
이번 기회에 가디언스를 무너뜨려야 한다. 아니면 정말 힘들어질 테니까.
‘등장 시기가 늦어질 뿐, 달라질 건 하나도 없다.’
제이슨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 * *
강하진은 실종자 수색에 대한 보고서를 쭉 읽었다.
한국의 실종자 중에 총 37명을 찾아냈다. 아직도 찾아내는 중이었고, 명인수는 리타이어 되어서 잠들어 버렸다.
아무리 마력 포션을 마시면서 작업을 했다지만 지나칠 정도로 강행군했다.
아마 당분간은 능력을 쓰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명인수가 미리 제공한 위치를 통해 아직도 실종자를 찾아다니고 있으니 아마 이대로 가면 총 49명의 실종자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그때 한국에 나타났던 괴물의 수가 몇이었더라?’
굉장히 많았다. 게다가 하나하나 강력하기 짝이 없었다.
모습은 인간에 가까웠지만 크기는 5미터쯤 되는 거인이었고, 온몸에서 각각의 속성력을 뿜어내는 괴물이었다.
근처에 다가가기도 쉽지 않은 괴물들이 수십 마리 동시에 나타나 날뛰는 바람에 인적, 물적 피해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나라였다.
대대적으로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지만 한국에 비하면 찾아낸 실종자 수가 턱없이 적었다.
제일 큰 성과를 올린 미국이 고작 17명을 찾아냈으니까.
사실 그것도 대단한 성과이긴 했다. 미국 정도나 되니까 그렇게 찾아냈지, 다른 나라는 심지어 고작 두 명을 찾아낸 게 전부인 곳도 있었다.
강하진은 회귀 전 일어났던 두 번째 재앙을 떠올렸다.
두 번째 재앙의 시작은 거대한 던전의 출현이었다.
그건 러시아에서 나타났다.
그래서 그 어떤 나라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러시아는 자체적인 각성자의 수가 상당히 많은 국가 중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각성자 하나하나의 능력도 뛰어났다.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각성자 부대의 규모와 실력도 굉장했고.
당연히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한데 그 와중에 실종자 사태가 터진 것이다.
각국에서 수십 마리의 괴물이 나타나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괴물들은 하나씩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그래서 피해가 더 커졌다.
그래도 덕분에 각개격파가 가능했지만, 사실 모여 있었으면 더 편했을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각성자의 힘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괴물들 사이의 유대감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건 실제로 괴물 몇 마리가 모여 있던 나라가 있어서 경험적으로 확인한 사실이었다.
실종자 수색을 한 유일한 나라였고, 그 실종자들에 대한 조사 차원에서 경찰서 한 군데에 모여 있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괴물을 상대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던전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또 이런 일이 벌어질까봐 실종자 수색과 괴물에 대한 대비를 할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 던전은 오직 러시아의 각성자들만으로 공략해야만 했다.
그리고 던전이 터져 버렸다.
던전이 터진 곳은 러시아였지만, 그 피해를 받은 건 전 세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는 던전이 터지는 순간 일어난 마력폭발 외에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물론 마력폭발의 반경이 너무 넓어서 그럼에도 피해가 상당했지만.
터진 던전은 여러 개로 나뉘었다.
작은 던전 여러 개가 되어 전 세계로 흩어진 것이다.
각 나라마다 몇 개의 던전이 떨어졌고, 그 던전은 프랑스 파리에서 터졌던 던전과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세 시간 만에 던전이 터졌고, 근방을 유린했다.
파리 던전에서의 경험이 있었지만, 그 던전들에 제대로 대응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실종자로 이루어진 괴물들 때문에 각성자들이 흩어져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고, 실제로 던전을 찾아내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렇게 무수한 던전이 터졌고, 그곳은 괴물들의 세상이 되었다.
두 번째 재앙을 마무리한 다음, 나중에 전 세계의 수뇌부가 모여 회의를 했는데, 러시아의 던전에서 제대로 괴물의 수를 줄여뒀으면 피해가 훨씬 줄어들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파리 던전과 달리, 두 번째 재앙의 던전은 러시아 던전에 존재하던 괴물들이 튀어나왔으니까.
‘가디언스가 세계에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킨 게 두 번째 재앙이었지.’
물론 그 전에도 가디언스는 충분히 이름 높았다.
하지만 제대로 세계에 가디언스의 힘을 보여준 건, 분명히 두 번째 재앙이었다.
가디언스가 아니었다면 두 번째 재앙은 훨씬 더 거대한 재앙이 되어 세계를 덮쳤을 테니까.
가디언스는 당시 러시아 던전에 들어가 함께 괴물의 수를 줄였고, 그 뒤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괴물을 사냥했다.
일단 가디언스가 방문한 나라는 더 이상 재앙으로 인한 괴물의 피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가디언스는 순식간에 모든 걸 정리해 버렸다.
당시 강하진도 굉장한 활약을 했다. 강하진이 가졌던 버프와 힐링은 가디언스의 핵심이었으니까.
과거를 회상하던 강하진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어 상념을 털어냈다.
“자, 그럼 두 번째 싸움을 준비해 볼까?”
강하진이 눈을 빛냈다. 이번일의 성패는 디펜더스가 과연 어떻게 나올지에 걸려 있었다.
디펜더스도 재앙을 막는 데 힘을 보태면 괜찮다. 사실 그게 강하진이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제이슨도 제이슨이지만 윌리엄이나 스팬서는 절대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놈들이었다.
‘분명히 뭔가 수작을 부릴 거야.’
만일 수작을 부린다면 언제 어떻게 할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언제 할 건지는 확실하다.
‘러시아 던전에 들어갔을 때.’
러시아 던전은 거대하다. 예전 일본 던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지름이 500미터가 넘는 던전이니까.
그 정도는 되어야 쪼개졌을 때, 전 세계를 뒤덮을 수 있지 않겠는가.
크기가 큰 만큼 몰래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디펜더스가 공개적으로 그 안에 들어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비공개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제이슨이나 윌리엄, 스팬서가 직접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그들은 이번 일이 새로운 시작일 테니까.
만일 직접 움직였는데, 허튼 짓을 하는 광경을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또 만에 하나 자신들이 벌이는 일이 실패하기라도 하면,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너무 크다.
그러니 대리인을 보낼 것이다.
아주 실력이 뛰어나고 잔혹한 각성자들을 말이다.
제이슨 휘하에는 그런 각성자들로 이루어진 조직이 있었다.
그리고 윌리엄과 스팬서의 휘하에도.
‘더 강해져야 돼.’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모두 자신이 아직 약해서이다. 모든 걸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면 이따위 고민은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강하진은 결연한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짜 본격적으로 두 번째 재앙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다.
* * *
두 번째 재앙에는 몇 가지 전조가 있었다.
하나는 지금도 해결 중인 실종자들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일반 던전의 급증이다.
마치 이제부터 뭔가 일이 터질 거라고 예고하기라도 하듯 일반 던전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각성자들을 분산시키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 분명했다.
실제로 그 때문에 각성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으니까.
강하진은 그 일반 던전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지금 강하진에게는 레벨업을 위한 사냥이 필요했다. 더 성장하려면 더 많은 괴물을 잡아야 한다.
강하진은 미친 듯이 일반 던전을 닫고 다녔다.
던전이 워낙 많이 나타나서, 강하진이 그렇게 많은 던전을 닫고 다니는데도 별다른 불만이 생기지 않았다.
한국의 각성자들은 대부분 쏟아지는 일반 던전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그건 한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각성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필리핀처럼 던전 공습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 나라의 경우 더더욱 치열했다.
그곳에서 사냥을 하는 용병 각성자들이 괴물 사냥이 아니라 던전을 닫고 다닐 정도였다.
그나마 필리핀의 경우에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지라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몇몇 나라는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딱 그런 상황일 때, 러시아에 거대한 던전이 나타났다.
난리가 났다.
* * *
러시아의 각성자 관리 위원회의 위원장인 페데로프는 골치 아픈 표정으로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둘러봤다.
각성자 관리 위원회는 이름에 걸맞게 대부분의 책임자는 물론이고 그들이 관리하는 직원들도 각성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부 정찰 결과는 어떻게 됐지?”
“1차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2차 정찰 중인데, 아무래도 몇 번 더 정찰을 해야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질 것 같습니다.”
“보고서.”
페데로프가 손을 내밀자, 방금 보고했던 책임자가 공손히 서류를 내밀었다.
그걸 대충 훑어본 페데로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뻔한 보고서였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던전에 안에 있는 괴물은 강력했고,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우리 단독으로 던전을 공략할 수는 있는 건가?”
“기존 던전과 터지는 시기가 비슷하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기존 던전보다 오래 버틴다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어렵습니다.”
데페로프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물었다.
“갑자기 나타났다던 괴물들은?”
“절반 정도 처리했습니다. 나머지는 각성자를 파견한 상태입니다.”
페데로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인 나라는?”
“없습니다. 다들 갑자기 나타난 괴물들 때문에 정신이 없는 모양입니다.”
“흥. 정신이 없긴.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 거지.”
페데로프가 정색을 하고 책임자를 노려봤다.
“그래서, 우리 요청을 받아들인 곳이 정말 한 군데도 없다고?”
“아닙니다. 가디언스가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역시! 가디언스라면 그럴 줄 알았지.”
페데로프는 기꺼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디언스가 도착하면 원하는 모든 요구사항을 철저히 들어주도록. 그리고 던전 공략을 할 각성자 부대, 최대한 빨리 준비하고.”
명령이 떨어지자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었다.
만일 저 던전이 터진다면 러시아는 끝장이었다. 회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그날, 가디언스가 러시아에 입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