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재앙의 전조 1 >
제이슨은 계속해서 일이 꼬이자, 심기가 불편해졌다.
벌써 몇 번이나 계획이 비틀렸는지 모른다.
일단 시작은 영국의 파티였다. 그것만 제대로 했어도 그 뒤의 일이 이렇게까지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 번째 서포터 모집에 실패한 것이 가장 뼈아픈 실패였다.
하지만 뼈아프긴 해도 이렇게까지 일이 꼬일 정도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두 번째 서포터 모집이 난항을 겪었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주 명백히 알아냈다. 가디언스의 윤경민 때문이었다.
그렇게 디펜더스가 지지부진한 사이, 가디언스가 갑자기 훅 치고 올라가 애초에 디펜더스가 노리던 자리에 떡 하니 앉아 버렸다.
선점에 실패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디펜더스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가디언스의 아류가 될 뿐이었다.
그걸 벗어나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성공을 이뤄내야 할지 눈앞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가디언스 자체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그건 금방 포기했다.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단단한 결속력을 갖고 있었다.
그건 조직은 어설프게 건드리면 안 된다. 나중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으니까.
문제는 가디언스가 서포터로 포섭한 기업이나 조직들 역시 결속력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었다.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 가디언스는 차근차근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프랑스 사태야 그렇다 치고, 필리핀을 구해낸 건 정말 컸다.
그 이후 자잘한 의뢰들이 쏟아졌으니까.
가디언스는 이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애초에 디펜더스가 가져야 할 걸 모조리 빼앗아간 것이다.
그 와중에 제니퍼가 가디언스를 흔들어 보겠다고 나섰다. 좀 찜찜하긴 했지만 허락했다. 그녀와 그녀가 이끄는 권속들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한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니퍼가 실패한 것이다.
가디언스에 정신공격을 막아내는 아이템이 있다고 하니, 대체 얼마나 더 놀라야 한단 말인가.
“이것만 해도 놀랍기 그지없는데.”
제이슨은 세련된 디자인의 가방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건 가디언스에서 구입한 아공간 가방이었다.
아공간을 만들어낼 줄이야.
이번에 영국 박물관을 방문하게 해주는 대가로 5개의 아공간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구입은 영국 정부가 했지만, 그 중 세 개를 디펜더스가 가져올 수 있었다.
아공간은 원한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아공간을 구입하려는 사람이 디펜더스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 되어 있으면 절대 판매를 하지 않았다.
아예 경매 참가 자체가 불가능했다.
대리인을 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번에 얻은 세 개의 아공간은 정말 소중했다.
“뭐 하나 속 시원하게 뚫리는 게 없군.”
사실 아공간 제작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정말 많이 애썼다.
하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아공간 제작에 성공한 사람이 가디언스의 마스터인 강하진이라는 것과 아공간을 만들려면 반드시 그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는 것이 알아낸 전부였다.
지금도 디펜더스 소속 정보원들이 아공간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려고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은 지지부진했다.
이는 상대 쪽에 정보전에 능한 인재가 여럿 있다는 뜻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단한 놈들이야. 내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게 이상할 정도로.”
제이슨은 디펜더스를 위해 제법 오랫동안 준비를 해왔다.
그 첫 번째가 정보 수집이었다.
디펜더스에 방해가 될 만한 사람이나 조직, 그리고 디펜더스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나 조직을 선별해 내는 것이 첫 단계였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잘 해냈다고 자부했다.
한데 이런 균열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제이슨이 짜증을 내고 있을 때, 스팬서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에는 제이슨보다 더한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하여간 서큐버스 따위를 믿은 내가 병신이지.”
“말 함부로 하지 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지?”
“듣긴 누가 들어? 여긴 완벽한 보안을 자랑하는 곳인데.”
스팬서는 그렇게 말하며 천장을 힐끗 올려다봤다.
천장에 커다란 구슬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것이 이 방의 보안을 책임지는 아이템이었다.
이 안에서 하는 말은 절대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는다. 또한 그 어떤 방법으로도 이 방을 엿볼 수 없었다.
이 방은 시스템의 힘으로 정보가 보호되는 공간이었다.
“영국 파티를 벌써 잊었나? 그게 망가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 못했지. 저거 역시 마찬가지야. 앞날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거, 명심해.”
“나도 알아. 지금까지 겪은 일이 있는데 그걸 모를까.”
“알면 조심하기 바라지.”
스팬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제이슨을 바라봤다.
“네가 말하던 그 재앙이 슬슬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얼마 안 남은 건 확실해.”
“그 재앙, 우리가 이용하는 건 어때?”
“재앙을 이용한다고?”
애초의 계획 역시 재앙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재앙으로부터 멋진 활약을 해서 디펜더스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시킬 계획이었으니까.
가디언스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라겠지만, 그래도 일단 훌륭하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가디언스가 있으면 절대 치고 올라갈 수 없어. 가디언스라고 이번 재앙에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지.”
게다가 가디언스에는 강하진이라는 존재가 있다.
최근 속속 드러난 사실은 정말 경악할 만했다.
강하진이 버퍼임과 동시에 힐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정도로 대단할 줄은 몰랐다.
그런 강하진이 함께 한다면 이번 재앙에서도 아마 가디언스는 맹활약할 것이다.
“그러니까 재앙의 힘을 이용해서 가디언스를 치워버리는 거지.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그건······ 생각해볼 만한 문제로군.”
제이슨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스팬서의 눈에도 야비함이 깃들었다.
* * *
엔조는 자신에게 전달된 윤경민의 선물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윤경민이 전해준 건 멋들어진 팔찌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팔찌가 마력을 기반으로 제작된 아이템이라는 점이었다.
“이거 아주 귀해 보이는데······.”
선물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금속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상자 안에는 팔찌의 감정서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어디 보자······ 정신 공격에 대한 방벽을 세워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귀한 선물이었다. 엔조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게다가 선물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프랑스 각성자 협회장의 선물도 함께 들어 있었다.
정신과 관계된 아이템은 굉장히 희귀하다.
한데 그걸 제작하다니, 확실히 가디언스가 대단하긴 대단했다.
“그나저나 정신 방벽이라······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선물을 보낸 건 아니겠지?”
엔조의 눈이 번득였다.
이런 선물을 했다는 건, 누군가 정신 공격을 할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심해야겠어.”
엔조는 선물을 들고 아버지인 협회장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가디언스와 친한 유력 인사들에게 정신 방벽을 선물로 돌린 것이다.
앞으로 이 팔찌는 가디언스의 서포터임을 증명하는 아이템이 될 것이다.
* * *
윤경민은 희희낙락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그는 생각이나 표정을 감추는 데 제법 능숙했다.
하지만 굳이 강하진 앞에서까지 표정을 관리하지 않았다. 이때만큼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리고 그건 명인혁이나 명인수도 마찬가지였다.
가디언스 내에서는 이렇게 강하진 앞에서만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좋으십니까?”
“그럼요! 이 팔찌 덕분에 우리 쪽으로 돌아선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다들 불안했다는 뜻이죠.”
각성자가 생겨나고 다양한 능력이 공개되면서 기득권자들은 특별한 스킬에 관심을 가졌다.
바로 정신에 간섭하는 스킬이었다.
그건 그들을 굉장히 불안하게 했다.
혹시 누군가 자신의 생각을 조종하거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실제로 정신과 관계된 스킬이 몇 가지 공개되기도 했고, 그들은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썩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그나마도 휘발성이 강해서 큰 위협이 되진 않지만.
그래도 가능성이라는 건 무시 못 할 위협이었다.
한데 그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아이템이 있으니 얼마나 환호했겠는가.
“이제부터 아주 제대로 이용해 줘야죠. 흐흐흐흐.”
“방금 그 웃음, 꼭 악당 같았습니다.”
“이런 걸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악당 같이 웃을 수 있습니다. 으흐흐흐흐.”
윤경민은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새로운 게 있으면 얼른 내놓으라는 듯한 압박이 고스란히 담긴 눈빛이었다.
“그렇게 보셔도 이제 더 없습니다.”
“에이, 무슨 말씀을. 유동훈 씨를 방금 만나고 왔는데, 입이 아주 찢어질 것 같던데요?”
강하진은 고개를 슬쩍 돌려 윤경민의 시선을 피했다.
유동훈에게 속성이 담긴 마석 부스러기를 전해줬고, 그걸 이용해 아주 다양하고 강력한 장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었다.
직접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듣기로 아이템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중이라고 한다.
“그보다, 알아봐 달라고 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그거. 마스터 말씀대로였습니다. 한데 그걸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중요한 일이니까요.”
강하진이 알아봐 달라고 한 건, 최근 실종자가 급증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처음 윤경민은 강하진의 말을 듣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한데 조사를 시작하면서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실종자의 수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들 던전 근처에서 실종이 되었다. 던전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윤경민이 파악한 건 경찰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한 정보이니 실제로는 파악한 것보다 훨씬 많은 실종자가 발생했을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실종자가 발생했는데, 아직 언론이 시끄러워질 만큼 유의미한 숫자가 아닌지라 조용합니다.”
“우리 서포터들은 좀 다르겠죠?”
“예. 실종자 대책에 대한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밀히 재앙에 대비하겠다고 했습니다. 뭘 하고 있는지는 솔직히 모릅니다. 인혁이한테 알아보라고 할까요?”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대책을 세우라는 우리 얘기를 들었다는 게 중요하죠. 어차피 말을 안들을 거면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안 들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죠.”
윤경민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우리 마스터의 특별한 예지력이 이번엔 어떤 사건을 예지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거대한 던전이 내려올 겁니다.”
“거대한 던전이요? 일본에 나타났던 그런 던전 말씀입니까?”
강하진이 고개를 저었다.
“그보다 훨씬 큰 던전입니다.”
윤경민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예? 그럼 그것도 페이크 던전입니까?”
그의 눈빛은 제발 그렇다고 말해달라는 듯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아닙니다. 하지만 파리 때처럼 일찍 터지진 않을 겁니다. 사실 던전은 크기가 크면 터지는 시기도 늦거든요.”
“그, 그렇군요. 그럼······ 던전에 들어가서 닫으면 되겠네요. 그런 던전이 몇 개나 생기는 겁니까? 또 나라마다 하나씩 생기는 겁니까?”
윤경민은 숫제 강하진이 모든 걸 알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듯 물었다.
강하진은 그런 윤경민의 태도에 기분이 살짝 묘해졌지만 그냥 담담히 대답해 주었다.
“하나입니다.”
“하나······ 그럼 전 세계가 힘을 모아서 해결하면 되겠군요.”
“과연 그렇게 될까요?”
윤경민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바에 따르면 그 어떤 나라도 전력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도울 수는 있겠지만, 생색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 던전이 떨어진 나라에서 해결해야 한다.
전력을 다해 돕고 있는 와중에 자국에서 던전이 열리면 곤란하다. 누구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윤경민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거랑 실종자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실종자들이 괴물로 변할 테니까요.”
윤경민의 얼굴이 경악에 물들었다.
확실히 이 정도는 되어야 재앙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