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에서 2 >
강하진은 뤽상부르 공원을 둘러봤다.
여기서 그 문제의 던전이 생긴다. 아마 시간 내에 던전을 닫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던전이 터질 것을 감안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렇게 빨리 터지는 던전일수록 나타나는 괴물의 수준이 낮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무리를 해서 구멍을 뚫는 것일 테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마르바스가 이렇게 뜸을 들여 천천히 지구를 공략할 이유가 없으니까.
강하진은 일단 던전이 나타날 자리부터 찾아봤다.
회귀 전의 기억을 더듬어 당시 던전이 생성되었을 때의 정보를 뒤적였다.
‘대충 이쯤인 거 같긴 한데······.’
여기 나타나는 던전은 최근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뉴타입 던전보다 크기가 작다.
그러니 내부 규모도 크지 않고, 안에 있는 괴물도 그리 강하지 않다.
다만 귀찮을 뿐이다.
크기도 작고 몸놀림은 재빠른데,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은 놈들이었다.
그놈들을 전부 처리하지 않으면 코어가 나타나지 않는데, 작은 괴물답게 함부로 덤벼들지 않고 교묘히 숨어 다녔다.
한 마디로 쥐새끼 같은 놈들이었다.
그러다가 적이 약하다는 판단이 서면 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고작 세 시간 만에 그놈들을 처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던전이 터지길 기다리다가 쏟아져 나오는 괴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쉽다.
던전이 터지는 순간 일어나는 마력 폭풍이 문제인데, 일단 그것만 해결할 수 있고, 여기 각성자들이 잔뜩 모여 있기만 하면 막아내는 건 문제가 아니리라.
강하진은 슬슬 자신의 힘, 그리고 가디언스의 힘을 세상에 내보일 계획이었다.
디펜더스보다 먼저 자리를 잡는 것이 목표였다.
그 첫 번째 단추가 바로 이곳, 프랑스 뤽상부르 공원의 던전이다.
아마 지금쯤 엔조가 열심히 일하고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1차적으로 엔조에게 던전이 생성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레벨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 정보를 넘길 차례였다.
바로 이곳 뤽상부르 공원에서 던전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말이다.
지금 그 정보를 넘기기 위해 황수영이 프랑스 각성자 협회에 가 있었다.
북극성 던전을 미리 발견해 그 과실을 따먹은 당사자가 바로 황수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녀가 이곳에 던전이 나타날 것 같다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감이 그렇다고 말하기만 해도 프랑스 각성자 협회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극성 던전도 그런 식으로 발견했다고 주장할 테니까.
강하진이 이곳에 혼자 나와서 던전이 나타날 자리를 미리 찾아본 이유는 혹시 던전이 생길 때의 조짐을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최근 시스템과 연결된 감각 수련에 제법 많은 진척이 있었다.
특히 북극성 던전에 입장하는 순간, 그리고 던전을 닫은 후 거대한 힘이 내리꽂히는 순간이 아주 큰 계기가 되었다.
강하진은 던전이 나타날 자리를 서성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알 듯 하면서도 모르겠다.
심장어림을 간질거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정확히 어떤 건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그렇게 얼마나 집중했을까.
강하진은 갑자기 막혔던 둑이 뻥 뚫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확실한 힘의 흐름을 잡아냈다.
‘이게······ 던전이구나!’
그동안 여기저기서 느꼈던 자잘한 감각들이 한꺼번에 싹 정리되는 듯했다.
이게 바로 던전이었고, 시스템의 일부였다.
‘던전이라는 것만 알겠고, 이게 언제 열릴지는 여전히 모르겠네.’
강하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던전이 열리고 나면 아마 다음부터는 열리는 시기까지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경험이 데이터로 축적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여기서 계속 기다리면서 지켜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강하진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원을 거니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강하진처럼 바닥에 앉아 여유를 만끽하는 사람들도 제법 많이 보였다.
강하진은 그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공원을 구성하는 그림의 일부가 되었다.
* * *
“그러니까 여기쯤에서 던전이 나타날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제 느낌으로는 그래요.”
엔조를 비롯해 프랑스 각성자 협회에서 나온 각성자들과 직원들이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그리고 자신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마력 감지장치를 이용해 주변을 샅샅이 스캔했다.
하지만 딱히 별다른 점을 찾아낼 수는 없었다.
당연했다. 던전은 마력을 기반으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열린 후에 마력과 접속하는 거니까.
던전이 열릴 때까지의 메커니즘은 오직 시스템의 힘에 의한다.
결국 엔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미 있는 데이터를 얻는 건 불가능하겠군요.”
모두의 눈빛에 의심이 깃들었다. 정말로 여기서 던전이 열릴까?
“어쨌든 전 할 일을 다 했어요. 그러니 약속을 지켜주시면 좋겠네요.”
“약속은 반드시 지킬 겁니다.”
엔조의 확답에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협회장 승인은 물론이고 이사회의 허락까지 떨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던전이 열리지 않으면 의미 없는 약속이 된다는 건 알고 계시죠?”
황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리고 진짜 던전이 열리면 생각보다 들어주기 곤란한 부탁이라는 것도 잘 알아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한 쪽에 앉아 있는 강하진을 힐끗 바라봤다.
엔조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갔다.
강하진은 마치 뤽상부르 공원에 놀러온 사람 같았다.
“만일 던전이 열리면 최대한 모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각성자를 여기 모아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저기 앉아있는 강하진 씨의 지시를 충실히 따를 겁니다.”
황수영이 고개를 저었다.
“최소 300명의 각성자를 모아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맞죠?”
“네. 맞습니다. 파리에는 아주 많은 각성자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던전이 열리기만 하면 이쪽으로 300명 정도 모으는 건 일도 아닙니다.”
엔조는 자신이 마음먹고 모으면 300명이 아니라 500명, 아니 700명을 모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힐끗 고개를 돌려 강하진을 바라봤다.
강하진 근처에는 언제 나왔는지 가디언스의 길드원들도 합류해 있었다.
그들도 그동안 숨 가쁘게 달려왔는데, 오랜만에 이런 여유로운 휴식을 가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은 듯했다.
엔조는 과연 저 사람에게 지휘권을 맡겨도 좋을지 잠시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강하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엔조는 강하진이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위압감에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났다.
“왜, 왜 그러십니까?”
꼭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읽고 달려드는 것 같아서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어진 강하진의 말은 엔조를 오히려 더 놀라게 만들었다.
“던전이 열릴 거 같습니다.”
“예?”
엔조가 멍청한 표정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대체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아예 떠오르지가 않았다.
강하진은 엔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던전이 열리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평소에 나오는 뉴타입 던전은 지름 2미터 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이건 그보다 훨씬 작아서 지름이 1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그 안에 들어가 있어야 던전이 열림과 동시에 안으로 들어가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프랑스 각성자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할 말이 생길 테니까.
강하진은 고개를 돌려 엔조를 쳐다봤다. 저기 아주 적당한 프랑스 각성자가 있었다.
강하진이 손짓을 해서 엔조를 불렀다.
엔조는 강하진의 지시를 아주 잘 따랐다. 처음 뒤집어 쓴 위압감 때문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게 있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거부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던전이 곧 열리는데, 여기 있어야 레벨이 오르죠.”
엔조가 미심쩍은 눈으로 강하진을 바라봤다.
“정말로 여기에 던전이 열린단 말입니까?”
“싫으면 다른 사람 부르고요. 반경이 좁아서 많이 못 들어옵니다.”
엔조는 얼른 강하진에게 바짝 붙었다.
“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둘을 지켜보던 황수영이 슬그머니 접근했다. 그녀 역시 강함에 대한 목마름은 강하진에 버금갈 정도였으니까.
그걸 보던 가디언스의 길드원들이 벌떡벌떡 일어나 후다닥 붙었다.
프랑스 협회 직원과 각성자들은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저게 뭘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
총 23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서로를 꽉 끌어안고 똘똘 뭉쳐 있었다.
벌써 그걸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잔뜩 모여들었다. 저마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자리에 던전이 훅 나타났다.
똘똘 뭉쳐 있던 사람들은 동시에 던전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니, 빨려 들어갔다기보다는 마치 원래부터 거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리라.
다들 얼떨떨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던전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사방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 *
엔조는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어느새 똘똘 뭉쳐 있던 사람들이 다 흩어진 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왠지 이런 일이 굉장히 익숙해 보였다.
하지만 엔조는 그럴 수 없었다.
‘정말로 레벨이 올랐어!’
게다가 자신은 레벨이 오른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단숨에 레벨이 올라 버렸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엔조의 시선이 강하진과 황수영을 찾아 움직였다.
‘이런 놀라운 정보를 거의 조건 없이 전해주다니!’
절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아쉽기 그지없었다.
‘우리 프랑스 각성자들이 이 과실을 함께 따먹었어야 했는데!’
프랑스에서는 오직 엔조 혼자만 들어왔다.
강하진이 손짓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엔조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밖에서 새로 생겨난 던전만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엔조는 강하진에게 정중히 고마움을 표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약속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입니다. 제 명예를 걸고 반드시 약속을 이행하겠습니다. 어차피 이 던전을 닫으려면 많은 각성자가 필요할 테니까요.”
강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 던전은 닫지 않을 겁니다.”
“예? 그게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닫지 않는다기보다는 닫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겠군요.”
지금 당장은 그렇다. 하지만 나중에 강하진이 좀 더 강해지고, 새로운 스킬을 더 얻으면 얘기가 좀 달라질 것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잠깐 둘러볼 정도는 될 겁니다. 한 번 보시죠.”
엔조는 강하진과 함께 주변을 돌아봤다.
쥐새끼 비슷하게 생긴 괴물이 우글거렸다. 꼬리에는 작은 가시가 촘촘히 달려 있었고, 두 눈에서는 새빨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한데 덤벼들지를 않고 사방으로 도망치기만 했다.
엔조의 표정이 대번에 굳었다.
“저놈들을 잡기가 만만치 않겠군요.”
“그리고 얻을 수 있는 것도 거의 없을 겁니다.”
마석도 거의 품지 않은 괴물이었다. 그러니 힘만 들고 시간만 버리는 종류의 괴물이었다.
“일단 나가죠. 할 일부터 처리하고 다시 얘기하는 게 낫겠습니다.”
강하진의 말에 엔조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각성자를 최소 300명 이상 모아 달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저런 괴물을 처리하려면 확실히 각성자의 수가 많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던전을 안 닫겠다고?’
엔조는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던전을 안 닫는단 말인가.
그리고 과연 강하진이 그렇게 하겠다고 할 때, 각성자들이나 프랑스 협회가 가만히 그걸 받아들일까?
엔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가시밭길을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