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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86화 (86/200)

< 신경 쓰이는 것 1 >

수십 명의 각성자들이 감개무량한 눈으로 던전이 있던 곳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저 안에서 한 고생을 떠올리니 눈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아니, 고생해서가 아니라, 저 안에 있는 괴물이 전부 언데드라는 것 때문이었다.

이번 던전 사냥에서는 얻은 게 하나도 없었다.

스켈레톤들은 어떻게 된 게 마석 하나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나마 얻을 거라고는 어둠의 기사들이 깃들었던 갑옷과 사령종자들이 깃들었던 로브가 전부였는데, 거의 쓸모가 없고 무겁기만 했다.

워낙 쓸모가 없어서 강하진도 그걸 챙기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러니 정말 싸움만 죽어라 했다.

몇 번이나 죽을 뻔했고, 몇 번이나 탈진하고 다시 일어나는 걸 반복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결국 던전을 닫았으니 얼마나 감정이 격해졌겠는가.

그래도 관리청에서 보상은 나올 테니 아예 헛수고만 한 건 아니었다.

뉴타입 던전이니 보상금도 제법 클 것이다.

다만 모두와 나눠야 하니 돌아가는 몫은 얼마 안 되겠지만.

물질적인 것만 생각하면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번 던전에서 그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을 얻었다.

바로 경험이었다.

이번에 싸운 경험은 두고두고 그들의 목숨을 몇 번이나 살려줄 테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은 인맥을 얻었다.

“가디언스의 마스터라고 미리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처음 강하진에게 반발했던 사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 그랬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것이다.

가디언스의 마스터가 실재하느냐에 대한 얘기가 각성자들 사이의 술자리에서 심심찮게 거론되곤 한다.

그만큼 존재감이 없다는 뜻이다. 잘 포장하면 신비한 거고.

그러니 가디언스가 대단하다고해서 그 마스터가 던전 안에서 역량을 발휘해 줄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그 각성자는 그저 그런 식으로라도 말해서 어색한 기억을 털어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또 함께 사냥할 수 있을까요? 언제든 연락만 주시면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명함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강하진이 그걸 대수롭지 않게 받자, 여기저기서 우르르 명함을 들고 달려왔다.

“어떤 조건이라도 다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언제든 불러만 주십시오.”

버프의 충격이 대단하긴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한 명도 차별하지 않고 모두의 명함을 받아주었다.

그걸 쓸 일이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다들 바로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강하진은 더 시간을 끌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대신 황수영이 따라오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다.

던전 브레이커 길드원들이 황수영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황수영이 눈짓과 손짓으로 그들을 따로 보내 버렸다.

다들 눈치가 있는지라 얼른 뒤로 물러나 다른 방향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미적거리던 다른 각성자들도 아하, 하는 표정으로 돌아갔다.

황수영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강하진 옆에서 나란히 걸었다.

그러자 강하진이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던전도 닫았으니 아까 하던 얘기, 마저 할까요?”

“예? 아까 하던 얘기요?”

그제야 강하진이 고개를 돌려 황수영을 쳐다봤다.

“그 얘기 하려고 따라온 거 아니었습니까? 일본이요.”

“아······ 일본이요. 맞아요. 그 사람들 구하긴 구해야죠.”

왠지 살짝 힘이 빠진 목소리였지만 강하진은 그걸 일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여겼다.

“일단 지금 일본의 상황이 어떤지 정확히 알아야 계획을 세울 테니 그거 먼저 확인해보죠.”

“그래요.”

황수영의 대답이 왠지 좀 짧고 목소리도 가라앉은 것 같았다.

“우린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됩니다. 아마 우리가 미리 일본에 갔었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예요. 그때 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온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 그렇죠. 그건 정말 그래요.”

황수영은 대답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휘휘 젓더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좋아요. 그럼 이번엔 우리 제대로 한 번 해보죠.”

황수영이 힘차게 앞서서 걸어가자, 강하진이 빙긋 웃으며 그녀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만일 회귀 전에 던전 브레이커에서 나오지 않고 끝까지 있었다면 그때의 세상이 좀 달라졌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강하진과 황수영은 가디언스 본부에 있는 강하진의 개인 회의실에서 테이블 위에 잔뜩 쌓인 서류를 읽고 있었다.

돌아오자마자 최대한 일본에 관한 정보를 사방에서 모았다.

명인혁이 준비한 정보도 있었고, 황수영이 개인 인맥을 동원해 각성자 관리청에서 뽑아낸 정보도 있었다.

그리고 정아연을 통해 A-마켓이 확보한 정보도 구했다.

겹치는 것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다.

다들 귀중한 정보였다.

그 중 가장 정보량이 많은 건 A-마켓의 것이었고, 그 다음이 명인혁, 그리고 각성자 관리청의 정보가 가장 부실했다.

아니, 부실하다기보다는 다른 두 정보와 겹치는 게 너무 많아서 얻을 게 많지 않았다.

A-마켓은 일본에서 발을 뺄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바람에 손해가 막심했다.

거기 미련이 남아서 더 집착하다보니 엄청난 양의 정보를 뽑아냈다.

당시 정아연이 일본에서 굳이 DM과 싸우지 말고 한 발 물러나자고 주장했을 때, 기세등등하게 반대하며 정아연을 공격하던 자들이 지금은 반쯤 물러나다시피 했다고 하니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반대하던 자들은 그걸 기회라고 여겨 오히려 일본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라인을 일본에 투입했고.

정아연은 그 반대로 움직였고 말이다.

그래서 더 큰 손해를 입어야 할 걸 약간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정아연의 입지가 한 층 단단해졌다.

그래서 이번에 정보를 제공할 때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양질의 정보를 건네줄 수 있었고.

현재 정아연은 A-마켓의 아시아 지역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더 권한이 높아지는 중이었다.

이제 아시아 지역에서는 정아연이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정도 권한을 확보한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권한이 강화되면, 아시아 지역의 힘을 이용해 타 지역에 투자를 하는 것까지 가능해진다고 하니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글로벌 기업이 되는 셈이었다.

아무튼 강하진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정아연은 현재로서는 완벽한 강하진의 편이었고, 이번 일로 DM은 A-마켓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손실을 입었으니까.

그렇게 자료를 확인하는 사이에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하아. 만만치 않네요.”

황수영이 자료를 테이블에 놓으며 마른세수를 했다.

일본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빴다. 어쩌면 그들을 구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쪽에서도 탈출할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하니 거기에 기대 봐야죠.”

“정부 차원에서 일본을 위해 나서는 나라도 하나 없고······ 막막하네요.”

“다들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느라 바쁠 테니까요.”

“그거야 그렇죠. 솔직히 우리도 그렇게까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한국은 던전 공습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덕분에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던전의 등장도 제법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었고.

하지만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도 안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 또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니까.

벌써 몇 번이나 그래왔듯이.

“쓸 수 있는 항구가 없다는 게 문제네요. 다들 괴물 천지라. 하여튼 이 나쁜 새끼들.”

일본 정부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몰려든 괴물들이 항구를 점령해 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니, 지금은 일본 정부에서 일부러 쓸 수 있는 모든 항구에 괴물을 끌어들였다고 의심하는 시선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그러고도 남을 자들이었다. 지금까지 하는 행태를 보면 정말 그랬다.

“미국도 그래요. 그런 놈들을 대체 왜 받아준 거죠?”

황수영이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뽑아먹을 게 많다고 본 거죠.”

“하지만 그건 일본 정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잖아요. 그걸 자기들 마음대로 그렇게 물 쓰듯 쓰면 안 되죠.”

일본 정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빼돌린 자금과 물자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자금력은 굉장했다.

던전 공습 사태가 터진 직후, 위기 상황 돌파를 위해 각 기업과 개인들에게 기부를 받고 세금까지 매겼으니까.

강하진은 이번 일본 사태를 계속 지켜보면서 내내 뭔가가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실 굳이 일본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이런 짓을 할 필요도 없었다.

회귀 전에도 일본은 이와 비슷한 수순으로 망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자꾸 뭔가가 거슬리고 신경이 쓰였다.

‘대체 뭐가 날 이렇게 건드리는 거지?’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처음 봤던 서류를 집었다. 혹시 놓친 게 없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러니까 다시 주인을 찾아줘야지요. 과연 어떻게 될지 궁금하긴 하네요.”

황수영은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설마 그들을 구해서 미국으로 보내시려고요?”

문득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제일 합리적인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제는 미국의 반응이었다.

황수영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더 생각하면 골치만 아프다. 복잡해지기 전에 생각을 말아야 한다.

그녀는 다시 정보의 바다에 몸을 던졌다.

* * *

일본에 잔류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었다.

거기에는 던전 브레이커와 가디언스, 그리고 중소 길드 연합이 참여하기로 했다.

대기업이나 거대 길드, 그리고 각성자 관리청을 위시한 정부쪽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들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확답을 주지 않았다.

강하진 역시 굳이 그들의 도움을 바랐던 건 아니었기에 그냥 준비를 진행했다.

아무튼 그들이 참여하지 않아서 계획을 강하진의 입맛에 맞게 짤 수 있었다.

일본에서 구한 사람들을 곧장 미국으로 보내는 계획 말이다.

그리고 구할 사람을 선별하는 것도 강하진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 조원영을 비롯해 한국에서 건너간 재벌 직계들은 일본 정부와 함께 일본을 빠져나갔다.

대기업에서 반응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가봐야 얻을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일본에 갔던 건 조원영 같은 재벌 직계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각성자였고.

그들은 말 그대로 버려진 것이다. 과연 그들이 살아 돌아가면 어떻게 될까?

다시 조원영 밑으로 들어가 충성을 다할까?

아무튼 재미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작전은 간단했다.

괴물이 점령한 항구를 되찾고 거기서 사람들을 배에 태워 보내는 것이다.

어차피 그 항구는 일본 정부가 탈출할 때 썼던 항구였다.

그러니 일본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상황이 너무 힘들어 항구를 확보할 여력이 되지 않을 뿐이었다.

항만 시설이 괴물 때문에 많이 부서졌지만 배를 가까이 대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대단한 걸 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실어 나르기만 하면 되니까.

당연히 미리 준비한 배와 물자가 필요했고, 그건 A-마켓에서 구해주기로 했다.

한두 대로는 안 된다. 최대한 구할 수 있을 만큼 많은 배를 구해 보내주기로 했다.

A-마켓의 힘인지 모르지만 미국에서 이번 작전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다양한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배도 최대한 제공해주고, 그 배까지 한국의 각성자들을 실어 나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작전은 정말 순조로웠다.

한국에서 조용히 빠져나간 가디언스, 던전 브레이커, 중소 길드 연합의 각성자들이 태평양에 인접한 항구에 올라갔고, 그때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강하진이 쏟아내는 버프의 맛에 중독되고 말았다.

그렇게 항구를 점령한 각성자들은 그곳에 베이스캠프를 만들고 주변 괴물들을 정리하면서 단단한 방어망을 구축했다.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실어 나를 때까지 방어망을 단단히 구축해야만 한다.

그리고 강하진의 버프를 받은 각성자들은 그 임무를 아주 훌륭히 수행해냈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다.

사람들을 차례대로 배에 태우면서 필연적으로 일본에 있던 각성자들과 군대가 구축한 방어가 조금씩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 역시 함께 후퇴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래도 정말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다.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배에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1억3천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수만 명뿐이었지만 그래도 다들 기뻐했다.

어쨌든 살아남았으니까.

그 과정에서 미국 정부에서 나온 요원들이 구한 사람들을 이끄는 수뇌부를 포섭했다.

미국이 개입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원래 자국의 각성자를 투입해서 해내야 하는 일인데, 그걸 강하진이 나서서 도와주겠다니 쌍수를 들고 반길 수밖에.

아무튼 그렇게 일본 작전은 마무리 되었다.

아니, 마무리 되는 듯했다.

강하진이 마지막에 일본에 혼자 남겠다는 얘기만 꺼내지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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