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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레벨업-71화 (71/200)

< 충룡의 알 1 >

음습한 반지하 방, 눅눅한 장판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사내 한 명이 누워 있었다.

아니, 쓰러져 있었다.

그는 방금 전까지 가만히 앉아서 분신과 동기화 중이던 그림자, 최영진이었다.

설마 이렇게 허무하게 분신이 죽어버릴 줄은 몰랐다.

처음 타격을 받아 스킬이 풀리고 몸이 마비되었을 때, 강하진이 분신체를 심문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동기화를 풀지 않고 기회를 노렸는데, 그 때문에 곧장 이어진 강하진의 공격에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그 전에 동기화를 풀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는 바람에 충격이 본체로 전이된 것이다.

중간에 동기화를 풀었어도 충격이 제법 컸을 텐데, 동기화한 채로 죽었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물론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크윽. 강하진 이 미친 새끼······!”

최영진은 이를 갈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바닥에 쏟아진 피를 치울 생각도 하지 않고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일단 바닥 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해야만 한다.

최영진은 천천히 호흡하며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상대를 너무 얕봤어. 분신이랑 같이 움직였어야 하는 건데.’

굳이 동기화를 하지 않아도 분신은 알아서 잘 움직인다.

물론 동기화 했을 때보다 움직임이 살짝 굼뜨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수준의 능력치와 스킬을 보유하고 있으니 별 상관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분신만 보낸 것은 아무도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최영진이 믿는 사람은 이미 죽은 지창기가 유일했다.

당연히 최대길도 믿지 않았다. 최대길을 만난 것도 분신이지 본체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다시 분신체를 찾아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신체에 부여한 능력치와 스킬 숙련도를 되찾을 수 없으니까.

사실 그동안 제법 여러 차례 분신체의 죽음을 경험했기에 이런 상황 자체가 익숙하긴 했다.

지창기의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위험을 친구처럼 데리고 다녀야 하는 것이기에 아차하는 순간 죽는 것이다.

어떻게든 시체를 다시 찾아 분신체를 흡수하기만 하면 원래대로 돌아가고 아무 페널티 없이 분신을 또 만들 수 있다.

물론 분신체가 죽은 상태에서 새 분신을 만들 수도 있다.

실제로 언젠가는 그렇게 새 분신을 만들어 양동 작전으로 시체를 다시 회수한 적도 있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제 다시 시체를 찾지 않는 한, 강하진을 감시하고 그가 가졌을 중요한 물건을 확보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최영진은 과연 강하진이 시체를 어떻게 처리할지 생각해봤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산에 파묻거나 추를 달아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다.

거기까지 시체를 이동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그것도 아니면 태워도 된다.

하지만 현재는 시체를 처리하기 정말 좋은 방법이 있다.

“던전······.”

던전에 가서 괴물의 밥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 최고다.

아니면 던전에 가서 파묻은 뒤 던전을 닫아 버리거나.

살아있는 각성자는 던전이 닫히면 밖으로 나오지만, 시체는 던전과 함께 사라지니까.

최영진의 마음이 급해졌다.

아직 시체가 소멸한 건 아니었다. 소멸했다면 소멸 했다는 메시지가 온다.

이것 역시 각성 초기에 경험으로 확인한 사실이니 틀림이 없었다.

최영진은 분신체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분신추적]을 썼다.

분신체가 죽었을 때, 언제나 최영진이 그것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스킬이었다.

분신체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알려 주니까.

최영진은 당황했다.

“스킬이······ 안 먹혀?”

분명히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붉은 직선이 나타나야 한다. 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걸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스킬을 몇 번이나 취소하고 다시 써봤다.

하지만 아무리 스킬을 써도 분신체가 있는 방향은 표시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신체가 소멸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시체로 존재한다는 뜻인데, 그 시체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니 말이다.

“설마 벌써 던전에 들어갔나? 그럴 리가······.”

강하진은 가디언스 본부에 있었다.

한데 벌써 던전에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근처에 던전 자체가 없는데.

최영진은 다급히 밖으로 나갔다.

이걸 확인할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 * *

강하진은 최영진 때문에 낭비한 시간을 복구하기라도 하듯 굉장히 서둘러 움직였다.

위치를 정확히 알긴 하지만 던전의 크기가 지름 2미터 정도인데, 산에서 나타나기에 찾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최대한 서둘러야만 한다.

강하진은 경기도를 벗어난 곳에 위치한 작은 산에 도착했다.

이름도 모르는 산인데, 근처에 민가가 없기에 산을 드나든 흔적이 거의 없었다.

이제부터 이 산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상 근처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아마 정상에서 시작해 탐색을 하면 그렇게까지 고생하지 않고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하진은 부지런히 산을 타고 올라갔다.

일단 정상에 가려고 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중턱을 지나 한창 올라가는데 급격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던전이 생겨나는 징조 중 하나였다.

회귀 전에도 몇 번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이었다. 당연히 이번 생에서는 처음이고.

재앙 때 나타난 무더기 던전은 뉴타입 던전과는 좀 달라서 마력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반면 뉴타입 던전은 마력 흐름이 확연했다. 갓 각성한 각성자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중에는 그걸 이용해서 던전 발생 탐지기도 개발했다.

강하진은 마력이 모이는 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사방에서 마력이 모여들어 새까만 구슬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강하진은 그 경이로운 광경을 집중해서 쳐다봤다.

회귀 후부터 어떤 일이 있든 감각을 집중해서 확인하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굳어져서 이럴 때마다 자연스럽게 마력 흐름이나 그 안에 내재된 여러 힘의 흐름을 파악했다.

강하진은 마력과 함께 흐르는 무언가를 감지했다.

그동안 그렇게 알아내고자 애쓰던 바로 그 힘이었다. 마력보다 더 높은 격을 가진 미지의 힘 말이다.

그것이 마력과 자연스럽게 얽혀 던전을 이뤄가고 있었다.

아니, 마력이 그것의 흐름을 유도하고 있었다.

강하진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좀 더 선명하게 힘의 흐름과 마력의 흐름을 느끼고 싶은데, 감지 능력이 모자라서 완벽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과 집중력을 모아서 그것을 확인했다.

이내 뉴타입 던전이 완성되었다.

“정말 운이 좋았네.”

설마 뉴타입 던전이 생성되는 과정을 보게 되다니.

회귀 전에도 겪어봤지만, 그때는 이렇게 초기부터 확인한 게 아니었다.

거의 막바지에 확인했을 뿐이고, 그나마도 이렇게 작은 던전이 아니라 훨씬 큰 던전이었다.

당연히 생성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기에 막바지에나마 생성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처음 생성되기 시작할 때부터 완성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그뿐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는 힘과 마력의 흐름까지 파악해 머릿속에 기억했다.

아마 이 기억은 언젠가 정말 제대로 쓸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강하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던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세상이 새까맣게 암전되었다가 다시 확 밝아졌다.

뉴타입 던전은 기존 던전과 들어갈 때의 느낌이 약간 달랐다.

기존 던전은 마치 젤리를 통과하는 듯한 느낌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반면 뉴타입 던전은 암흑을 통과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광활한 초원이 쫙 펼쳐져 있었다.

이 던전은 다른 뉴타입 던전에 비해 규모가 좀 작은 편이었다. 그래서 강하진이 굳이 혼자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이 던전도 회귀 전에는 터진 던전이었다.

그래서 여길 찾아올 때도 핀포인트로 장소를 찍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산 정상 부근 정도라는 것만 알고 왔다.

어쨌든 이제 던전에 들어왔으니 여길 닫아야 한다.

이 던전이 터지고서 쏟아져 나온 괴물은 다섯 종류였다.

하지만 지금 그걸 열거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

지난 번 던전이 터졌을 때 확인하지 않았던가. 내부에 있던 괴물과 외부로 튀어나온 괴물이 다르다는 걸.

당시 워낙 충격적인 일이어서 강하진은 회귀 전 기억을 정말 열심히 되짚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부분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심지어 나중에 강하진이 싸웠던 충룡은 회귀 전에는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때는 일곱 군데 모두에서 거인이 나왔으니까.

심지어 이번에는 나온 거인의 수도 더 많았다.

어쨌든 회귀 전에도 던전 내부에 있던 괴물과 터졌을 때 나온 괴물이 달랐는지는 당장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긴, 그게 뭐가 중요하겠어.’

닥치는 대로 던전을 닫으면 된다. 마르바스가 수작을 부릴 여유조차 없도록 만들면 끝이다.

강하진은 던전 안으로 쭉쭉 들어갔다.

사실 괴물을 끌어들이려면 [매혹의 향]을 쓰면 된다.

하지만 이 안에 어떤 괴물이 있는지 확인부터 하고 써야지 막상 썼는데 상대하기 버거운 괴물이 몰려오면 곤란하다.

강하진은 빠르게 이동하며 마력을 사방으로 뿌렸다.

탐색에 관한 스킬이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저 멀리 괴물 무리가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충룡의 유충이 모여 있었다.

예전 용사냥꾼 길드가 관리하던 던전에 서식하던 유충들은 단독 생활을 했는데, 여긴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면 충룡도 종류가 다양한 건가? 진짜 곤충처럼?’

곤충은 100만 종쯤 존재한다. 그러니 충룡도 다른 종류가 없을 거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

강하진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괴물의 정보를 확인했다.

[충룡의 유충]

[레벨 : 162]

[체력 : 99841, 마력 : 12400]

[화염의 비(A), 바람의 숨결(A)]

정보는 예전에 확인했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체력과 마력 그리고 레벨은 그저 약간 차이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스킬 하나가 아예 달랐다.

원래 강하진이 알던 충룡의 유충은 [맹독]을 갖고 있었는데, 이건 그 대신 [화염의 비]라는 스킬을 갖고 있다.

강하진은 스킬에 좀 더 집중해 충룡의 유충이 가진 정보를 더 깊이 확인했다.

[용종이 되기 전의 성질이 깃든 유충. 불꽃잠자리가 각성을 거듭해 용종이 되었고, 그 유충에 화염 특성이 깃들었다. 성체로 자란 충룡은 용종이 되기 전의 정보가 끊어진다.]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리고 자신이 용사냥꾼 길드의 던전을 닫을 때 [당당하게 엿보기]가 없었다는 사실이 정말 아쉬웠다.

강하진은 문득 자신에게 충룡의 알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알에서 깨면 유충이 되니 거기에도 용종이 되기 전 상태에 대한 정보가 있지 않을까?

강하진은 알 하나를 꺼내 정보를 확인하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 저 멀리 있던 충룡의 유충들이 미친 듯이 돌진해왔다.

강하진은 깜짝 놀라 충룡의 알을 다시 아공간에 넣었다. 정보를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충룡의 유충은 아무리 달라봐야 충룡의 유충일 뿐이다.

얼른 검을 뽑아 날아오는 유충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강하진의 눈이 날카롭게 유충의 역린을 확인했다. 그리고 확인과 동시에 검을 푹푹 찔렀다.

굳이 속성을 부여할 필요도 없었다.

충룡의 유충 정도는 그저 역린을 깊게 찌르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속성까지 씌우려면 진짜 충룡 정도는 되어야 한다.

충룡 정도 되면 아무리 깊이 찔러도 그것만으로 뇌가 다치지 않으니까.

강하진은 빠르게 충룡의 유충들을 정리했다.

아공간이 넉넉했기 때문에 사체도 모두 챙겼다.

이건 나중에 유동훈이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것이다.

한 무리의 유충을 정리한 강하진이 다시 충룡의 알을 꺼냈다.

정보를 보려는 게 아니라 이번엔 확인할 게 있어서였다.

알을 꺼낸 뒤 감각을 집중해 사방을 훑었다.

강하진의 표정이 굳었다. 사방에서 충룡의 유충이 몰려오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충룡의 유충이 자연스럽게 내뿜는 마력 때문에 피부가 저릿저릿했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 충룡의 알이 충룡의 유충을 부르고 있다는 걸.

문제는 그놈들이 왜 여기로 오느냐였다.

이제부터 그걸 알아볼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던전, 굉장히 쉽게 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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