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자 >
강하진은 천천히 걸어가면서 대체 이 느낌이 뭔지 계속 고민했다.
‘시선인가?’
누군가의 은밀한 시선이 닿아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하지만 그냥 시선만으로 이런 느낌이 든다고?
강하진은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는 분명히 뭔가가 더 있었다.
그리고 그 뭔가가 무엇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스킬.’
스킬 중에 직접적으로 마력을 이용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기에 마력이 감지되지 않아도 스킬일 가능성을 고려했다.
만일 스킬이라면 이걸 과연 방어할 수 있을까?
[능력은폐]는 항상 기본적으로 쓰고 다녔다. 자신의 수준을 파악당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여겼으니까.
한데 상대의 스킬이 능력은폐를 꿰뚫을 수 있다면 문제가 있다.
강하진은 몸에 닿는 이 기분 나쁜 느낌을 어떻게 배재할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 느낌을 주는 놈이 어디 있는지 찾았다.
느낌이 몸에 닿긴 했는데, 정확히 어디 닿았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느낌을 되짚어 추적하는 건 일단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일단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새 뉴타입 던전에 가는 건 미루기로 했다.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굉장히 찜찜한 상태로 던전에 들어가게 될 테니까.
뉴타입 던전부터가 진짜다.
아무리 강하진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간단히 사냥을 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굉장한 위험을 각오해야만 한다.
한데 이런 찜찜한 것을 달고 거기에 들어간다? 그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강하진은 산책하듯 주변을 거닐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였지만 차츰차츰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경로도 조금씩 바꿨다.
처음보다 조금씩 더 길드본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속도를 차츰차츰 높이면 누군가 미행을 하더라도 처음에는 이상한 점을 못 느낀다.
하지만 나중에는 쫓아가는 것 자체가 버거워진다.
속도를 자신이 조절하지 못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지금 강하진을 쫓는 무언가는 그런 식으로 체력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강하진이 원하는 건 체력을 깎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였다.
1시간이 넘어가는 시점에 강하진은 처음으로 상대의 흔적을 확인했다.
역시나 미행하는 놈이 있었다.
한데 거리가 워낙 멀어서 금방 알아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걸 미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상대는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강하진의 위치를 파악하고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만 건물에 들어가면 그 기분 나쁜 느낌이 사라졌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그런 종류의 스킬인 모양이네.’
정체를 알았으니 상대하는 법도 간단했다.
강하진은 지하철역을 찾았다. 지하로 가면 아주 간단히 해결될 문제였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자, 기분 나쁜 느낌이 사라졌다.
강하진은 일단 지하철을 탔다. 아무데로나 간 다음 이 기분 나쁜 시선을 완벽하게 떨어뜨린 다음 던전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대로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을 타고 충분히 이동한 다음 다시 지상으로 올라갔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그 시선이 느껴졌다.
‘하, 이놈 봐라?’
너무 쉽게 여겼다. 상대가 한 명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여러 명이 힘을 모으면 어떤 방식으로든 강하진의 위치를 계속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아까 지하철에도 조력자들이 어떤 식으로든 도와줬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끌어내는 수밖에 없다.
강하진은 빠르게 걸었다. 그리고 적당한 장소를 발견했다.
제법 한적한 곳에 놀이터가 하나 있었다.
강하진은 그 놀이터로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이제부터 몸에 닿은 이 기분 나쁜 느낌에 집중할 것이다.
과연 이걸 배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스킬이다. 그렇다면 어떤 스킬을 써야 할까?
강하진은 왠지 [능력은폐]에 계속 마음이 머물렀다. 아까 이 기분 나쁜 느낌이 닿은 순간부터 [능력은폐]가 떠올랐고, 그건 여전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능력은폐]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강하진은 스킬 하나에 집중해 그걸 파고들고 또 파고들었다. [능력은폐]에 걸어 놓은 정보가 조금씩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강하진이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하다보니 아예 거기에 매몰되어 버렸다.
그렇게 끝도 없이 [능력은폐]라는 스킬을 파고들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강하진의 망막에 정보가 훅 떠올랐다.
[조건을 만족해서 ‘기술발전’을 발동합니다.]
[기술발전의 효과로 ‘능력은폐’가 ‘은폐’로 진화합니다.]
그 순간 강하진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정말로 놀랐다. 설마 이 순간 [기술발전]이 나올 줄은 몰랐다.
두 번째 각성 던전을 정복하면서 얻은 스킬인데, 그동안은 어떻게 쓰는 건지 감도 못 잡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절묘한 순간 발동할 줄이야.
문제는 아직도 조건을 어떻게 만족하는 건지 제대로 모른다는 건데, 그건 나중에 다시 연구해 보기로 했다.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감은 좀 잡은 것 같으니까.
‘그나저나······ 은폐? 그게 더 좋은 건가?’
강하진은 서둘러 스킬을 확인했다.
[은폐(A)]
[자신의 정보를 조작해 관련된 모든 걸 은폐한다. 현재 마력, 존재, 능력을 은폐할 수 있다. 숙련도에 따라 상황까지 은폐할 수 있다. 실패 확률이 존재한다. 실패확률은 숙련도와 은폐 대상의 종류에 따라 달라진다.]
딱 지금 상황에 맞는 스킬이 되었다.
강하진은 스킬을 사용해 자신의 몸에 닿는 느낌으로부터 존재를 은폐했다.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벗어났다!’
강하진은 서둘러 그 자리를 피했다. 당장은 은폐를 통해 벗어났지만, 또 언제 그 느낌이 달라붙을지 모르니 일단 자리부터 피했다.
빠르게 놀이터 근처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이리저리 돌면서 복잡하게 움직였다.
혹시 여기도 미행이 붙으면 곤란하니까.
적의 스킬이 닿는 조건을 모르니 최대한 조심하는 편이 나았다.
강하진은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가 어딘가로 향했다. 제법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강하진이 사라진 놀이터에 두 명의 사내가 나타나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미 늦었다.
* * *
그림자는 놀란 눈으로 스킬을 풀었다.
너무 스킬을 오래 유지해서 마력이 바닥나기 일보직전이었다.
벌써 마력 포션을 세 개나 먹었는데, 이제 더 먹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목표를 놓쳤으니까.
“왜 그러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최대길이 붙여준 사내가 옆에서 물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저었다.
“스킬이 갑자기 먹통이 되었습니다.”
“예? 그럼 놓친 겁니까?”
“네.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습니다. 아니면 저기에 들어갔다 나오거나.”
그림자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 멀리 가디언스 본부 빌딩이 보였다.
“그럼 도울 사람을 더 부를까요?”
그림자가 고개를 저었다.
“혼자 들어갔다 나오는 게 편합니다. 중요한 물건이라면 금고에 보관하겠지요.”
“금고를 딸 수 있는 기술자를 즉시 섭외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더 금고를 잘 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마력 금고만 아니면 제 손을 벗어날 수 있는 금고는 없습니다.”
사내는 그런 그림자를 보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대체 능력이 얼마나 많은지 까도 까도 끝이 없는 양파 같았다.
그 능력이라는 것이 각성자의 스킬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냥 노력과 재능으로 익힌 기술들이었다.
예를 들면 방금 말한 금고 털이 기술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럼 지금 이동할까요?”
“알아서 다녀오겠습니다. 그냥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확인만 잠깐 하고 오는 거니까요.”
그림자는 그 말과 동시에 아래로 푹 꺼졌다.
사내는 허탈한 표정으로 방금 그림자가 있던 곳을 내려다봤다.
저 스킬을 쓸 때마다 그림자라는 이름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그림자를 유심히 살폈다. 혹시 거기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 * *
그림자는 빠르게 이동해 가디언스 길드 본부에 도착했다.
자신이 원한 곳은 어디든 들어갈 수 있기에 별 부담 없이 여기까지 왔고,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림자로 변해서 이동했다.
그림자로 변하면 빠른 이동도 가능했고, 타인에게 들킬 염려도 없었다.
그림자를 타고 움직이는 거라서 바늘구멍만 한 틈만 있어도 얼마든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그림자에 물리력을 부여할 수 있어서 그걸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전투에 이용한다거나 잠긴 문을 연다거나.
지금도 그런 식으로 그림자를 이용했다.
일단 강하진의 집무실부터 살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금고 비슷한 것도 없었다.
이렇게 휑한 집무실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제법 규모가 있는 길드의 마스터가 쓰는 집무실인데 말이다.
그림자는 미련 없이 거기서 나와 이번엔 강하진이 지내는 집으로 향했다.
강하진이 지내는 집은 길드 본부 옆에 있는 빌라의 최상층을 다 터서 만든 펜트하우스였다.
아마 금고는 거기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림자는 길드본부를 빠져나와 바로 강하진의 집으로 들어가 탐색을 시작했다.
그림자를 이용한 탐색은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집에도 금고는 없었다.
아니, 집 역시 집무실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휑했다.
‘여기 살긴 하는 건가?’
그건 확실하다. 몇 번이나 확인했으니까. 한데 정말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림자는 여러 번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그림자는 그곳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그림자가 나가려고 현관 쪽으로 방향을 돌린 순간 흠칫 놀랐다.
어느새 현관에 강하진이 서 있었다.
그제야 그림자는 자신이 너무 시간을 오래 끌었다는 걸 인지했다.
워낙 아무것도 없어서 집무실이고 집이고 지나치게 반복해서 살핀 모양이었다.
강하진은 자신을 살펴보던 그 기분 나쁜 느낌이 바로 저놈이었다는 걸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기분이 나빠졌으니까.
아까 놀이터에서 그 시선으로부터 도망친 다음, 원래 가려던 던전으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 다시 길드 본부로 돌아왔다.
자신을 놓쳤으면 분명히 여길 뒤질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상대를 최대길이 보냈을 거라고 확신해서였다.
최대길은 강하진이 각성 아이템을 갖고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으니 이런 기회가 왔을 때 확인해 보는 게 당연했다.
어쨌든 틈을 주면 안 된다.
일단 잡고 봐야 한다.
강하진은 즉시 달려들었다.
그림자가 스킬을 써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강하진이 한 발 빨랐다.
꽈득!
강하진의 손아귀에 그림자의 목이 잡혔다. 손에 전격 속성을 두르고 있었기에 그림자의 몸으로 전격이 흘러들어갔다.
파지지직!
그 충격으로 그림자가 쓰려던 스킬이 풀렸다.
강하진은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최영진의 분신]
[그림자의 손(A), 그림자숨기(A), 지켜보기(A), 그림자이동(A)]
[스킬 ‘분신’으로 제작한 최영진의 분신이다.]
강하진은 정보를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분신이라니.
일단 정보에 [분신]이 나와 있으니 그 키워드를 타고 스킬 정보를 확인했다.
[분신]
[본체와 똑같은 존재를 분리해낸다. 분신체는 본체 능력치의 절반까지 부여가 가능하며, 스킬은 숙련도를 나눠 부여할 수 있다. 분신체가 소멸하면 부여한 모든 것들이 함께 소멸한다. 본체와 분신체는 기억과 오감을 공유한다.]
강하진은 분신에 대한 설명을 확인하고는 미련 없이 분신체에 최대한 강하게 전격을 밀어 넣었다.
꽈르르르릉!
과도한 전격에 노출된 분신체가 새까맣게 타면서 숨이 끊어졌다.
강하진은 분신체를 바닥에 툭 던졌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다시 정보를 확인해봤다.
[사망한 최영진의 분신체]
[분신체가 사망하여 봉인 상태가 되었다. 모든 능력치와 스킬 숙련도가 봉인되어 있다. 본체가 직접 접촉하여 분신체를 흡수할 수 있다. 끊어진 본체와의 연결은 분신을 다시 만들지 않는 한 이어지지 않는다.]
강하진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시체가 마치 아이템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게다가 설명은 더 가관이다. 신체 접촉을 통해 다시 흡수할 수 있다니.
그럼 아무 페널티 없이 또 이런 분신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뜻 아닌가.
강하진은 본체와의 연결이라는 부분과 봉인이라는 부분에 관심을 뒀다.
그러니까 이제 최영진이라는 놈은 이 분신체를 통한 정보 습득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강하진은 망설이지 않고 시체를 아공간에 넣었다.
시체를 찾고 싶을 테니 분명히 다시 올 것이다.
물론 훨씬 더 조심하겠지만, 상관없다. 이제부터는 강하진도 더 철저히 준비할 테니까.
그리고 이 시체를 찾지 못하면 최영진은 계속 낮아진 능력치로 살아야 한다.
또한 분신체에 스킬 숙련도를 얼마나 부여했는지는 몰라도 아마 이 정도면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리라.
아마 이놈이 지창기 밑에 있다던 그놈인지도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직접 찾아올지, 아니면 또 분신을 뽑아서 보낼지 모르지만······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하고는 많이 다를 거야.”
강하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찜찜하던 일을 마무리 했으니 이제 원래 하려던 일을 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