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디로 갈 것인가 >
뉴타입 던전 두 개가 터져버린 이후, 남은 뉴타입 던전을 관리하는 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던전이 터지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었는지였다.
하지만 그걸 알아내기가 정말 어려웠다.
일단 던전 근처에 있던 각성자들은 대부분 죽었고,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부상이 너무 심각해서 대화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도 어찌어찌 정보를 모으긴 했는데, 워낙 정보량이 적어서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저 전조가 있었어도 그걸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정도가 알아낸 전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을 그냥 닫아버리긴 너무나 아까웠다.
그냥 버리기엔 뉴타입 던전에서 얻는 이득이 너무 컸다.
결국 그들은 방비를 더 철저히 하는 걸 전제로 던전을 좀 더 유지시켜 보기로 했다.
* * *
창공 길드는 원래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였다.
한데 최근 용사냥꾼 길드를 흡수하면서 덩치를 확 키워 이제 거의 첫 손에 꼽히는 길드가 되었다.
용사냥꾼 길드도 영향력이 상당한 거대 길드였는데, 그걸 흡수했으니 얼마나 커졌겠는가.
한국에서 첫 손에 꼽히는 길드가 되었다는 건, 웬만한 재벌 부럽지 않은 돈과 힘을 갖췄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각성자를 얼마나 많이 확보했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이제 그룹을 운영할 때 던전 사업을 빼놓고서는 얘기 자체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거대 길드의 영향력이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었다.
거대 길드가 보유한 각성자의 수와 질은 대기업을 능가했으니까.
창공 길드는 뉴타입 던전 중 하나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던전을 닫을지 말지를 결정할 시점이 되었다.
창공 길드의 마스터인 마태석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 뉴타입 던전은 노다지 같은 곳이었다.
사냥을 통해 얻는 마석과 괴물의 부산물도 그렇지만, 다른 던전에서 사냥할 때보다 특수한 아이템을 발견하는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
게다가 던전이 어찌나 넓은지 아직 그 끝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즉, 닫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결정의 저울이 점점 더 유지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대신 유지하려면 방비를 정말 철저히 해야 한다.
어설프게 했다가 괴물들이 빠져나가기라도 하면 그걸 수습하기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그런 마태석을 두 명의 부 길드장을 비롯한 길드의 간부들이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내 마태석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우리 길드가 단독으로 뉴타입 던전을 관리하는 건 더 이상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부 길드장이 얼른 물었다.
“그럼 던전을 공개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마태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야 없지요. 일단 요즘 말 많은 중소 길드들을 끌어들이고자 합니다.”
“중소 길드들을요?”
사실 아직 던전을 할당받지 못한 거대 길드도 여럿 있었다. 한데 굳이 중소 길드들을 끌어들일 이유가 있을까?
모두의 표정에 떠오른 의문을 읽은 마태석이 설명을 이어갔다.
“거대 길드들은 어차피 참여 안 할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새 던전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굳이 곁다리 역할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확실히 그건 그렇다. 물론 언제 던전이 다시 나타날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도 불과 얼마 전에 두 개나 되는 던전이 터졌으니 새 던전이 나타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았다.
“일단 중소 길드를 최대한 많이 확보하세요. 그리고 그들에게 던전 주변을 방어하는 걸 대가로 던전 사냥에 참여할 수 있는 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갈 겁니다.”
“그럼 이권을 너무 많이 제공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직 던전의 끝도 확인을 못 했습니다. 중소 길드에 일부 떼어줘도 충분합니다. 다만 던전이 닫힐 정도로 과도한 사냥을 해선 안 되니 상황을 봐서 조절은 필요하겠지요.”
마태석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과연 그런 일을 시행했을 때 어떻게 될지 머릿속으로 계산에 들어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방어 쪽에 인력을 뺄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사냥 팀을 더 많이 만들 수 있겠군요.”
“그렇죠. 그리고 중소 길드를 많이 끌어들일수록 던전 근처에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그 말에 부 길드장이 눈을 번득였다.
“장비 수리나 소모품을 판매해도 되겠군요.”
물론 허가를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 정도 불법은 각성자 관리청에서도 눈감아줄 테니까.
안 되면 뇌물 좀 먹이면 되고 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관건은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것과, 사냥 속도 조절입니다. 그 두 가지를 명심하고 진행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 이후에도 회의가 계속 이어졌다.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사냥 속도 조절을 어떻게 확인할 건지, 그리고 길드에 할당된 기존 던전 처리 문제까지 하나하나 정해 나갔다.
* * *
창공 길드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소문이 퍼져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그리고 다른 곳이 따라 움직이기 전에 최대한 많은 중소 길드를 확보해야 했다. 중소 길드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데에서 나서기 전에 서둘러야만 한다.
창공 길드는 조용하지만 신속하게 움직였다.
한데 생각보다 길드 모집이 여의치 않았다.
굉장히 많은 수의 중소 길드가 연합에 가입되어 하나처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하이클래스 길드가 있었고.
사실 창공 길드에서는 조용하고 빠르게만 움직이면 정말 간단하게 모든 걸 마무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최근 중소 길드의 상황이 굉장히 여의치 않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들의 상황이 나빠지게 만드는 데 창공 길드도 일조했기에 누구보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한데 아무리 돈으로 흔들어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유를 파악해 보니, 하이클래스 길드가 다른 중소 길드에 돈을 지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버티며 던전 할당제 폐지 운동을 벌이는 중이었다.
실제로 여론 흐름도 그들의 편이었고.
물론 그렇게 간단히 할당제가 폐지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흔들리다가 사고라도 몇 번 더 나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창공 길드는 일단 길드 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중소 길드부터 포섭했다.
그리고 하이클래스 길드 마스터인 최준혁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그것도 창공 길드 마스터인 마태석이 직접.
* * *
강하진은 테이블에 넓게 펼쳐놓은 지도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지도에는 현재 남아 있는 뉴타입 던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회귀 전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위치였다.
뉴타입 던전은 한국에만 나타난 게 아니었다. 다른 나라에도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강하진의 집무실 벽에는 세계 곳곳의 지도가 붙어 있었고, 각 지도에 뉴타입 던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물론 확인된 것들만 표시했다. 확인되지 않은 던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터진 던전이나 닫은 던전은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해 두었다.
그래서 그것만 보면 뉴타입 던전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현재 회귀 전과 뭔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원래 한국에 처음 나타난 뉴타입 던전 일곱 개는 먼저 두 개가 터지고, 그 다음에 또 두 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개가 동시에 터진다.
그 간격이 별로 길지 않았다.
처음 던전이 터지고 일주일 후에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니까.
한데 지금은 일주일이 아니라 보름이 넘었는데도 던전이 터지지 않았다.
회귀 후 회귀 전보다 더 빨리 사건이 터진 경우는 있어도 이렇게 늦어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재 분위기는 던전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었다.
처음 두 개의 던전을 던전 브레이커와 중소 길드 연합이 성공적으로 막아냈으니, 다른 던전 역시 터져도 조기에 진화가 가능할 거라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대기업과 거대 길드들이 각성자를 닥치는 대로 모으는 중이었다.
최준혁은 길드 연합의 분위기를 다독이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도 연락을 했는데,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는 중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길드 연합의 마스터들과 함께 있을 때, 마태석이 직접 찾아와 창공 길드와 손을 잡자고 한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마스터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창공 길드의 마스터가 직접 찾아올 정도니, 지금이 가장 몸값이 높을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값이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이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다.
최준혁이 각 길드에 지원금을 지급했기에 아직까지는 약발이 먹히지만, 그것이 사라지는 건 시간 문제였다.
다음 터지는 두 개의 던전은 처음 터진 던전보다 훨씬 위험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터지는 세 개의 던전은 앞에서 터진 던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그래서 두 번째 터지는 던전을 이용해 여론을 몰아 남은 세 개의 던전을 닫아버리고자 했다.
한데 그 계획이 흔들리고 있었다. 던전이 안 터지는 바람에 말이다.
강하진도 상황이 이런데 최준혁에게 무작정 기다리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적당히 상황을 봐서 끼어들어도 좋다고 했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할 거라는 경고는 해주었다. 그걸 받아들일지 말지는 최준혁의 몫이지만.
최준혁이 다른 길드는 몰라도 자신은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건 가봐야 알 일이었다.
“왜 안 터지는 거지?”
강하진이 지도 위, 다음에 터질 던전 두 군데를 손가락으로 탁탁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마치 그 얘기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윤경민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터, 터졌습니다!”
강하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윤경민에게 지도를 가리켰다.
윤경민은 지도 위 던전 중 두 군데를 짚었다.
“지금 드론으로 상황 촬영 중입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윤경민이 태블릿을 꺼내 화면을 띄웠다.
열여섯 개의 화면이 동시에 떴다. 각 드론이 촬영하는 영상을 다 띄운 것이다.
그 중 하나를 터치하자 화면이 커졌다.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지난 던전에서 확인한 폭발 반경을 비워뒀기에 폭발에 의한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튀어나온 괴물의 수가 훨씬 많았고, 그때보다 괴물이 훨씬 강력했다.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지만,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이대로는 정말 위험했다.
강하진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기억보다 괴물이 더 많고 강한 것 같은데?’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확실했다.
“다른 쪽 던전도 확인해 보죠.”
윤경민이 태블릿을 조작해 다른 화면을 띄웠다.
그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귀 전보다 더 많아진 괴물이 강력하게 각성자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이쪽은 관리하는 기업이 어떤 로비를 했는지 군대까지 있었는데 괴물이 군대를 말 그대로 뭉개 버렸다.
“던전 브레이커는요?”
“처음 보신 던전으로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각성자 관리청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관리청에서요?”
“네. 파주 던전 쪽으로 가 달라고 합니다.”
파주 던전이 두 번째 확인한 던전이었다.
강하진이 윤경민을 쳐다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길드들 전부에게 그런 요청이 갔습니다. 길드 연합 역시 같은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럼 다른 쪽은 던전 브레이커에게 아예 맡기는 겁니까?”
“사실 던전 브레이커도 파주 쪽으로 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황수영 씨가 그냥 독단적으로 움직인 모양입니다.”
윤경민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무래도 파주가 뚫리면 바로 서울로 이어지니까 관리청에서 그런 식으로 조치한 것 같습니다.”
“청주는 버리고요?”
다른 던전은 청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곳이 뚫리면 청주에 난리가 날 것이다.
강하진은 냉정히 판단했다.
과연 던전 브레이커가 청주의 던전을 혼자서 해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해.’
아까 확인한 화면으로 판단하면 청주 쪽 각성자가 제법 많고 강하지만 던전 브레이커가 합류한 것만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었다.
반면 파주 쪽은 각성자 관리청이 알아서 전력을 집중하고 있으니 충분히 사태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이 와중에 다른 던전만 안 터진다면 그렇겠지.’
다른 던전이 파주 던전 근처에 있을까? 그것도 터질 만한 던전이 말이다.
결정을 내린 강하진은 윤경민에게 말했다.
“청주 쪽 던전으로 움직인 길드는 던전 브레이커가 전부입니까?”
“충청도에서 활동하는 길드는 전부 청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4개뿐인데다가 다들 중간 규모인지라······.”
그래도 충정도 아래쪽에서 활동하는 길드나 각성자들은 꾸준히 청주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사태가 확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군대도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고 말이다.
“우리 길드는 파주로 갑니다.”
“파주 말입니까?”
윤경민이 의외라는 듯 강하진을 바라봤다. 강하진은 청주 쪽으로 갈 거라고 판단했다.
“네. 파주 쪽은 많이 가니까 비교적 안전할 겁니다. 신입들까지 싹 보내세요.”
“신입들은······ 좀 버겁지 않겠습니까?”
“성장할 좋은 기회입니다. 전부 보내세요.”
얘기를 듣다보니 윤경민은 좀 이상한 점을 찾아냈다.
“보내라고요? 마스터가 이끌고 가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강하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전 청주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