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디언스의 신입 길드원 2 >
가디언스의 면접 일정이 모두 끝났다.
오늘 면접을 진행한 네 사람은 길드 본부 근처에 있는 작지만 괜찮은 술집에서 술잔을 나눴다.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하진이 먼저 그렇게 인사를 하자, 황수영과 정아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도 재미있었어요. 놀라운 일도 경험하고.”
두 사람, 아니 윤경민까지 세 사람의 반짝이는 시선이 일제히 강하진에게 집중되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보신 거예요?”
정말 궁금했다. 하지만 강하진은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해주지 않았다.
엿보기 스킬이 있어서 시스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었다.
그건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비밀이었다.
“정말······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 맞긴 한 거죠?”
정아연이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걸 보니 왠지 웃음이 났다.
“왜요? 내가 무슨 악마라도 되는 거 같아요?”
정아연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그 반대 같아서요.”
“반대? 그럼 천사 말인가요? 제가 얼굴이 좀 되긴 하지만 천사까지는······.”
“아뇨, 아뇨. 그보다 더 위요.”
위? 그럼 신?
“하하하. 재미있는 농담이네요.”
강하진은 웃어 넘기려고 했지만 정아연은 여전히 진지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강하진 씨는 던전 세상이 선택한 존재가 아닐까 하고요.”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과거로 돌아올 일도, 그리고 엿보기를 비롯한 다양한 스킬을 얻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건 회귀하기 전에도 해당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때도 세상의 중심에 있는 각성자였으니까.
단순히 레벨로만 규정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바로 강하진이었다.
지금도 사실 레벨은 아직까지 그렇게 높지 않다.
대신 다양한 스킬의 숙련도가 높고, 칭호를 많이 얻어서 전투력이 높을 뿐이지.
강하진은 황수영을 슬쩍 쳐다봤다.
사실 레벨은 황수영이 아직도 더 높다.
예전 황수영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녀는 300레벨이 넘은 상태였다. 강하진은 고작 200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데 황수영은 몸을 사리지 않고 정말 열심히 사냥을 한다. 게다가 레벨이 올라가는 속도도 굉장히 빨랐다.
아무래도 가이아의 선택을 받은 자에 담긴 효과 중 하나인 듯했다. 시스템 정보에 출력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레벨 제한이 한 단계 정도는 풀려 있을 수 있다.
관련 호칭은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황수영도 마침 강하진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마치 광채라도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저기 있잖아요.”
황수영이 저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경우가 별로 없기에 다들 흥미롭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저기요.”
“말씀하세요.”
“조만간 우리 던전 브레이커도 신입 길드원 모집할 거거든요?”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다들 왜 황수영이 저런 태도인지 알아차렸다.
“저도 한 번 도와드렸으니까 강하진 씨도 한 번, 어때요?”
강하진이 윤경민을 쳐다봤다.
“그런 일이라면 우리 윤 이사님이 훨씬 잘 하실 겁니다.”
황수영이 고개를 홱 돌려 윤경민을 바라봤다. 윤경민은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고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얼른 말했다.
“전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다른 길드 파견까지 가는 건 무리입니다. 오늘 뽑은 길드원 정리도 해야 하고, 조만간 시작할 새 사업 준비도 해야 하고,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랍니다.”
황수영은 어떠냐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강하진을 바라봤다.
“나중에 시간이 맞으면 가도록 하죠.”
“아우, 시간이야 우리가 맞춰야죠. 귀하신 분을 모시는 건데. 되는 시간 미리 알려주시면 거기에 모든 일정을 딱 맞출게요.”
강하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황수영은 희희낙락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의 일이 정말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회귀 전의 황수영은 이런 식으로 길드에 대한 애착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다.
오직 자신의 성장과 발전만을 위해 달리는 사람이었다.
길드는 말하자면 그 성장의 발판과 도구 정도였다.
진짜 길드에 애착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윤경민이었다.
‘아직은 모르지. 겪은 시간이 짧으니까.’
좀 더 겪어보면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왠지 지금 내린 판단이 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황수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이번엔 정아연이 슬그머니 말을 걸었다.
“그런데······ 새 사업을 시작하신다고요?”
대답은 강하진이 아닌 윤경민에게서 나왔다.
“우리 가디언스야 닥치는 대로 일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 아닙니까. 이번에도 그냥 그런 겁니다.”
정아연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윤경민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서 한 일 중에서 평범한 건 하나도 없죠. 그러니까 이번에도 평범한 일은 아니라는 뜻이네요.”
윤경민이 곤란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강하진을 바라봤다. 저 사람이 과연 알아도 되느냐는 표정이었다.
강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직접 말했다.
“슬슬 우리도 유통망을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예? 그럼 우리 A-마켓이랑은 갈라서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A-마켓이랑 같이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슬슬 우리도 규모와 덩치를 키울 준비를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하필 유통망이라는 거네요.”
정아연의 표정에 드러난 초조함을 본 윤경민이 오해가 깊어질까봐 얼른 나섰다.
“우리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려는 겁니다.”
“가디언스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요? 설마 또 새로운 포션을 만든 건가요?”
강하진이 그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포션 같은 건 만들 능력도 안 됩니다.”
“저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력 포션을 만들어 놓고 어떻게 그런 말씀을······.”
“마력 포션을 제가 만든 건 아니죠. A-마켓이 만든 거 아닙니까? 그래서 판매도 거기서 하는 거고.”
“하지만······!”
“전 그저 작은 힌트 하나를 드렸을 뿐입니다.”
작은 힌트라고 하기엔 너무 결정적인 시료이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긴 했다.
포션은 고작 시료 하나 만들 수 있다고 제작이 가능한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강화석도 마찬가지죠. 제가 재료는 갖고 있지만, 그게 있다고 해서 강화석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정아연의 초조함이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그녀도 얘기를 하다 보니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나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라면 이럴 리 없지만 오늘은 여러 일이 복합적인 작용을 해서 판단력이 살짝 흐려졌다.
“앞으로도 아이디어가 있으면 지속적으로 제공할 겁니다. 로열티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안 그래도 마력 포션이 최근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가기 시작하면서 강하진에게 떨어지는 몫도 굉장히 커졌다.
그리고 강하진을 담당하는 정아연도 A-마켓 내에서의 위상이 상당히 올라갔다.
강화석 개발이 끝나면 아마 또 한 번 주가가 오를 것이다.
정아연은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혹시 새 유통망을 만들 때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A-마켓이 아닌 개인적으로 도와드릴 테니까요.”
정아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윤경민과 강하진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빙긋 웃었다.
“보아하니 일은 윤 이사님이 다 하시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연락은 강하진 씨가 해주시면 더 좋겠네요.”
그 뒤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다.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함께하는 시간이 이어지면 관계가 더 편하고 깊어지는 법이다.
지금은 그걸 만들어가는 시간이었다.
* * *
이원중은 뺨을 세차게 꼬집었다.
“으윽!”
더럽게 아팠다. 하지만 그 통증은 뺨으로 스며든 차가운 기운에 의해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물의 정령, 레타우의 힘이었다.
계약을 한 이후 레타우는 본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었다.
정령에게 있어서 계약이라는 건, 정령사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되는 힘이었다.
“으음.”
명치가 약간 뻐근해졌다.
정령이 힘을 쓰면서 마력 통로에 부하가 걸린 것이다.
아픈 건 아니었다. 그저 좀 묵직하게 뭔가가 걸리는 느낌이랄까?
처음에는 조금만 정령이 힘을 써도 명치를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는데, 지금은 제법 괜찮았다.
강하진은 이원중에게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저 뻐근한 정도의 부하를 꾸준히 걸어주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다고 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따랐고.
이원중은 마력통로가 안정되길 기다리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지금 이곳은 가디언스에서 길드원에게 제공하는 숙소였다.
길드 본부 근처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 길드원을 위해 처음 길드를 등록하기 전부터 리모델링을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혼자서 살던 자취방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깔끔했다.
현실감이 또 멀어져갔다. 뺨을 다시 꼬집으려다가 말았다.
여기 들어온 지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여전히 실감이 안 났다.
“슬슬 시간이 됐네.”
이원중은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다음 힘차게 걸었다.
오늘은 그동안 받은 신입 길드원 교육과 훈련을 점검하는 날이었다.
‘던전에 들어간다니.’
길드 본부로 가면서 정령이 눈에 보이게 만들었다.
이제 이 정도로는 마력통로에 아예 부하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 것 같아 꾸준히 사용했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길드 본부에 도착했다.
본부 로비에 이원중보다 먼저 온 사람이 두 명 있었다.
이원중과 함께 합격한 동료 정령사들이었다.
다들 공감대가 많이 형성되어 있기에 반가운 표정으로 눈인사를 나눴다.
이원중이 들어온 걸 시작으로 다른 신입 길드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총 인원이 33명이었다. 정령사를 제외하고도 30명이나 되는 신입을 뽑았는데, 다들 능력이 출중했다.
게다가 절반 정도는 각성자로 활동한 경력도 제법 있었다.
아예 생 초짜는 사실 세 명의 정령사 말고는 없었다.
이원중은 여기 오기 전에 각오를 다졌다.
그동안 수없이 겪었던 일이 또 닥쳐와도 의연하게 버텨내겠다고.
아마 대부분 자신을 무시할 것이다.
자신은 경험도 하나 없고 막 정령사가 된 초짜 각성자일 뿐이니까.
그동안 무시는 하도 당해서 이젠 슬슬 면역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이원중은 살짝 긴장한 채, 동료 신입 길드원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 중 하나가 이원중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하고 마음을 다지는데, 그 사람이 너무나도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해왔다.
“이번에 정령사 되신 분이죠? 반갑습니다. 전 허무영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이원중은 살짝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주 인사를 했다.
“아, 예, 이, 이원중입니다.”
“그게 물의 정령인가요? 우와 정말 예쁘네요.”
물의 정령을 보겠다고 여자 길드원들이 모여들었다. 어디에서도 무시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좋은 사람들만 모아놨을까, 의문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막상 사냥을 시작하면 태도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 이원중이 사냥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
이원중은 던전에 들어가서 그 사실을 말하면 사냥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어······ 사실 전 아직 정령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사냥에 거의 도움이 안 될 겁니다.”
죄송하다는 말을 붙이려는데 허무영이 말을 툭 끊고 들어왔다.
“에이, 당연하죠. 우리도 미리 얘기 들어서 다 알고 있어요. 표정 보니까 걱정 많이 하신 모양이네요? 하하. 안 그러셔도 돼요. 어차피 나중에는 우리가 훨씬 더 도움을 많이 받을 게 분명한데요, 뭐.”
“아니, 그래도······.”
허무영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원중은 자신이 딴 세상에 온 줄 알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 함께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즐겁게 길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좋은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길드원 선발 기준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인성이었으니까.
이원중은 자신과 함께 정령사가 된 사람들을 찾아봤다.
그들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새삼 자신을 정령사로 만들어준 강하진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에 사무쳤다.
잠시 후, 그들은 던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사람은 강하진이었다.
설마 길드 마스터가 직접 나올 줄은 몰랐기에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이원중은 강하진을 보자마자 또 주눅이 들어 간신히 폈던 어깨가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내려간 어깨는 던전 사냥이 끝날 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강하진은 한 마디로 굉장했다.
자신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새삼 저 사람이 날 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강하진을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쳤다.
이원중은 얼른 시선을 피했다.
어깨가 또 내려갔다.
아무래도 이 소심증은 당분간 나아지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기분은 굉장히 좋았다. 희망과 목표도 생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