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희망을 위한 찬가 - 파블로프는 우리의 미래일 수 있는가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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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이다. 은결은 평범하게, 다시 말해 어금니가 건재한 사람처럼 식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은결의 어금니는 여전히 나고 있는 중이다. 그의 잇몸은 허전하게 비어 있었다. 그러나 어금니가 다시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래서 은결은 친구들에게 사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점심을 먹지 않거나 식단을 바꾼다는 것도 요상한 일이니 만큼, 은결은 특단의 조취를 대신 취했다. 어금니 모양의 역장을 잇몸에 발생시켜 이빨을 대신하는 것이다. 거울보고 며칠간 부단히 연습했다. 처음에는 꽤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쓰다 보니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런데 내가 어제 엑스페리먼트라는 영화를 봤거든, 굉장히 재밌더라고. 그런데 그 영화가 실화라던데, 진짤까? 그- 뭐더라 무슨 미국 대학에서 실험했다던데.”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을 한 숟갈 떠먹으며, 민성이 어제 방영했던 개그 프로그램에 대한 담소에서 영화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동물원 삼총사는 이름도 못 들어본 영화라서 침묵했다. 하지만 TV라곤 안 보는 덕에 꿔다 논 보릿자루 역할을 하던 은결은 반갑게 재깍 답했다.
“진짜야. 스탠포드 대학에서 있었던 감옥실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지. 평균적인 학력과 환경을 지닌 무작위의 사람들을 둘로 나눠 한 쪽을 수인으로, 한쪽을 감시자로 나눴더니 시간이 지나며 진짜 수인과 간수의 관계처럼 억압-피억압의 관계로 바뀌었고, 폭력사태에 준하는 사건도 일어났다는 얘기지.”
“에? 좀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랬지?”
늑대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은결에게 물었다. 은결은 아랫입술을 내밀며 ‘음’하는 침음성을 내고는 입을 열었다.
“거기 참여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변화까지야 나도 모르겠다만... 하여간 이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은 두 가지지. 한 가지는 구조가 인간의 성품을 결정한다는 거야. 사회적 맥락 가운데 어디 위치해 있는가에 따라 그 개인의 행위가 결정된다는, 빈 서판(타블라라사)류의 환경결정론이고-”
“다른 한 가지는?”
“-그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었고, 특별히 성품에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교육으로도 주어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인간에게 있어 악은 본성적인 것이란 결론이지.”
“뭐야. 다 암울한 결론이잖아. 밥이 넘어가다 목구멍에서 걸리겠다.”
고릴라가 갑자기 무거운 화제로 넘어간데 대해 불만스럽게 툴툴댔다. 은결이 피식 웃으며 고릴라를 달래듯이 말했다.
“뭐, 에리히 프롬같은 학자는 그 사태를 위압적인 과학주의가 횡행하던 시절에 있었던 실험이기 때문에 실험을 진행하는 학자들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그런 사태를 초래한 것일 뿐, 그 자체로 사람이 구조에 그렇게 약하게 함몰되거나 본성의 악이 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어. 나는 그것이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 아니었던가, 하고 생각하지만. 이번에 이라크 사태 때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니까. 이라크군 포로들을 학대한 걸로 전에 많이 시끄러웠잖아. 그게 스탠포드 감옥 실험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했거든.”
은결을 제외하곤 시사에 관심 없는 일당이었지만, 이라크 사태와 그에 수반한 여러 가지 사건에 대한 이야기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부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포로 학대사건도 물론 거기 포함된다.
“흠, 그럼 너는 그 두 가지 중에 어느 쪽이라고 생각해?”
인상을 찌푸리며 고릴라가 물었다.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
그래. 나는 진정으로 알지 못한다. 라고, 은결은 자신의 말을 속으로 다시 한 번 곱씹으며 대답을 이었다.
“하지만 구조에 쉽사리 함몰되는, 만물의 영장이랍시고 잘난 척 떠들어봐야 오롯한 주체로서도 서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든, 어떤 교육으로도 개인의 악을 분명하게 떨쳐낼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든, 고릴라 말처럼 양자 모두 그다지 희망적인 얘기는 아니잖아?”
은결은 말을 끊었다. 그는 식판에 남은 마지막 밥을 그러모아 숟가락에 담고는 입안에 넣었다. 역장의 어금니가 기묘한 감촉과 더불어 밥알을 곱게 뭉갰다. 은결은 잘 씹혀진 밥을 삼켰다. 뭉개진 밥알의 덩어리가 식도를 넘어갔다. 그는 말을 이었다.
“최악의 경우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악한데다가 우리가 속해 있는 시스템이 그 악을 부풀리고 있는 거겠지. 가령, 아무런 거리낌 없이 타인을 짓밟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일등주의가 진리인양 이야기된다거나- 말야. 그것만 아니라도, 나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으음, 만일 네가 말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야기를 듣던 민성이 진중한 안색으로 물었다.
“그때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라는 말이 ‘사람만이 문제다.’로 바뀌어야 하겠지.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오피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잊지 말고 이 빚을 갚아 주겠나?’라는 소크라테스의 유언을 곱씹으면서 말이야.”
은결은 어깨를 으쓱이며 희극적인 어조로 답했다. 삶을 치료해야할 하나의 병으로 생각했던 위대한 철학자의 유언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의 옥상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다. 옥상 외부에서 바라볼 때 그곳에는 또한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누구나 눈에 담지만 그 곳이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 곳은 현실 가운데 있지만 그곳은 현실과 유리된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은결은 오늘도 진의 역산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손이 기계적으로 움직이며 기호를 끌어당기고 피하고 넘어가고 넘겼다. 무수한 기호와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가 은결의 손가락 아래서 해체되며 원래의 모습을 찾았고, 거꾸로 뒤집어 지며 해체상태로 들어섰다.
갑자기 살기가 느껴졌다. 은결은 발을 돌리며 손을 뻗고 진을 펼쳤다. 본능 같은 동작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복잡한 문양이 허공에서 발생하며 특수한 구조를 취한 역장이 그의 전면에 펼쳐졌다. 하지만 충격은 이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 역장에 닿을 듯 말듯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키리야미의 날이 햇살을 화려하게 쪼개고 있었다.
“무, 무슨 짓이야!”
은결이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손을 내렸다. 역장이 소멸됐다. 쿠로사카도 이어 검을 검집에 수납하며 ‘흐응-’하는 비음을 냈다. 그녀의 눈길이 은결을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훑듯이 살폈다. 은결은 성역할의 역전을 괜히 부끄러움과 더불어 느끼며 한 발자국 뒤로 뺐다.
“너, 강해졌지?”
난데없이, 쿠로사카가 말했다. 은결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에?”
“모르는 척 하긴. 요 며칠간 네게서 느껴지는 힘의 크기가 이전과 현격히 달라서 내가 이상해진 건가 여러 가지로 테스트 해봤지만 내겐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렇다면 네가 강해진 거겠지. 방금 내 검에 대해 보였던 네 반응은, 분명히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고.”
“그, 그런가.”
“어떻게 된 일이지?”
“에-”
쿠로사카의 말을 듣고 은결은 한 손으로 머리를 괜히 긁적였다. 설명 못할 것은 없지만 카미에 얽힌 일이면 히스테릭해지는 쿠로사카고 보니 설명하기 껄끄러웠다. 그런 은결의 태도에 카운터 어택을 먹이듯 쿠로사카가 짧게 말했다.
“설마 카미가 얽힌 일은 아니겠지?”
은결의 동작이 액체질소를 뒤집어 쓴 것처럼 한 순간에 굳었다. 달리 직접적인 말이 없어도 그거면 대답으로 충분했다.
“그게 말야-”
“역시.”
쿠로사카는 한숨을 섞어 짧게 답하고는 타박타박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에? 이걸로 끝이야?”
은결이 쿠로사카의 태도에 놀라며 반사적으로 물었다. 쿠로사카가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은결을 질책했다.
“...마치 내가 네게 잔소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 것 같은 말은 그만둬. 네가 강해졌다는데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할 이유는 없겠지. 지난번 나타났던 괴물과 같은 놈이 또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하지만 네가 어떤 이유로 그렇게 강해졌는가는 알지 못하지만, 카미에 얽힌 일이라면 충분히 주의하는 게 좋아.”
“충고 고마워.”
은결은 순순히 그녀에게 감사했다. 이어 쿠로사카가 물었다.
“그보다, 네가 건내준다던 송신기는 어떻게 됐어?”
“어제 아버지에게 검진 받으면서 물어봤는데, 내일이나 모래 쯤에는 완성될 거래.”
은결은 지난번 현자의 돌의 기본 술식을 운행시킨 이후로 비정기적이지만 수행에게 검진을 비롯한 여러 가지 특수한 시술을 받고 있었다. 그 식을 운행시킨 부작용이 혹시나 있을지 모른다는 수행의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은결은 혹시라도 현재 자신의 상태가 드러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의 운행을 위장해 검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무의미한 일이기도 했다.
“알겠어.”
그런 은결의 대답을 듣고 쿠로사카는 다시 자신의 수련에 들어갔다. 은결도 전신의 신경이 징징 울리는 것 같은 긴장감을 떨쳐내고, 원래 작업에 치중했다.
“한 가지 더 충고하자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쿠로사카가 입을 열었다.
“응?”
“이 정도 살기에 속아 넘어가는 어리숙함도 뜯어고치는 게 좋아.”
“......”
괜히 시비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은결이 갑자기 강해진데 대해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돌아왔습니다. 오랜만에 게임을 열심히 하니 아주 즐거웠습니다.
*역시 사람은 취향을 넘어설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 글이 정보량이 많은 것도, 문제가 다소 수사적인 것도, 주인공이 말발이 좋은 것도, 미소녀가 많은 것도, 애들이 먼치킨인 것도, 다 제가 좋아하는 거죠;
*낮설게 하기에서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저급한 방법입니다. 실제로 저는 이 글에서 딱히 어려운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상적이지 않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있고, 그게 어렵게 느껴지고 있을 뿐이라 여깁니다. 그리고 문학적 깊이와 문체의 완성도는 상당히 분리된 개념입니다. 문장이 취할 듯 아름다운 글도 소설로서의 가치는 낮을 수 있습니다. 가령 당대 최고의 문장가 김훈 씨의 경우는 그 아름다운 문체 때문에 소설을 죽여버리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슬슬 이 글 전체의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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