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56화 (156/164)

<156화>

황성 전투(6)

파파팟! 방월 대사는 지월을 상대하기 위해 황궁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방에서 굉음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다들 전투를 시작한 모양이구나. 서둘러야겠다.’

방월 대사가 종수궁(鍾粹宮) 앞을 지나가는 때였다.

쩌엉! 발밑에서 거대한 얼음벽이 솟아나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방월 대사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저벅저벅. 푸른 장포를 펄럭이며 젊은 사내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는…….’

극음(極陰)의 기운으로 얼음을 생성하는 무공.

그 무공을 사용하는 마교의 간부라면 한 명뿐이다.

방월 대사는 사내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빙군(氷君)인가.”

복마십군의 빙군, 오랑(梧浪)은 손에 든 학우선(鶴羽扇)을 부치며 말했다.

“중요한 순간이다. 지월 님을 방해하지 마라. 불제.”

“지월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군.”

“이 세상을 마도(魔道)로 바꾸는 대업. 그분의 오랜 소망은 이제 곧 실현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

바닥을 박차고 쇄도한 방월 대사가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엉! 거대한 백색의 권강(拳罡)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오랑은 자신의 앞에 얼음벽을 만든 다음, 뒤로 몸을 날렸다.

콰지직! 오랑이 생성한 얼음벽은 방월 대사의 권강에 의해 산산이 부서졌다.

‘역시 강하군. 지월 님에게 힘을 받아 더욱 강해진 빙벽(氷壁)을 일격에 부술 줄이야.’

처억. 바닥에 착지한 오랑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승려들은 불살생계(不殺生戒)라 하여 살생을 금한다고 들었는데…….”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내 기꺼이 파계승(破戒僧:계율을 깨뜨린 승려)이 되어 주마.”

방월 대사가 내력을 끌어올리자, 가사 자락이 거칠게 펄럭거렸다.

이내 그의 전신에서 황금빛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거대한 기파(氣波)를 정면으로 받은 오랑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할 셈인가. 긴장해야겠군.’

방월 대사는 안광을 번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보여 주마. 소림 최강의 비술(祕術)을.”

콰아앙! 한 차례 기파가 터지며 방월 대사의 모습이 이전과 달라졌다.

전신의 피부가 붉게 변하고 등 뒤에 명왕(明王)의 형상이 일렁거렸다.

“염라대왕신공(閻羅大王神功).”

오랑은 눈살을 찌푸리며 방월 대사를 응시했다.

‘염라대왕신공? 들어 본 적 없는 무공이군. 뭐, 결국 흔한 소림의 무공들 중 하나겠지.’

오랑은 자신의 무공인 한빙마공(寒氷魔功)의 ‘빙사(氷射)’를 펼치며 얼음 화살을 쏘았다.

오랑의 얼음은 단순한 얼음이 아닌, 극음의 기운으로 만들어진 얼음이었다.

피부에 닿는 순간, 음기가 몸속에 침투하여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퍽! 퍼억! 방월 대사는 주먹을 휘둘러 날아오는 얼음 화살을 모두 쳐 냈다.

‘멍청한 놈! 이걸로 끝이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방월 대사를 쳐다보던 오랑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다.

음기가 방월 대사의 신체 내부로 파고들지 못하고 흩어져 버린 것이다.

방월 대사는 장삼에 묻은 얼음 조각을 털어 내며 태연히 말했다.

“놀란 모양이군. 염라대왕신공을 펼친 상태에서는 어떤 기운도 내 몸을 파고들 수 없다. 독기(毒氣)든 음기(陰氣)든 말이다.”

“……겨우 한 번 공격을 막아 낸 걸로 자만하기는!”

오랑이 이를 악물고 쌍장(雙掌)을 뻗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거대한 얼음창이 생성되어 그대로 쏘아져 나갔다. 한빙마공의 절기, ‘빙창(氷槍)’이었다.

방월 대사는 진각(震脚)을 내딛으며 정권을 내질렀다.

쩌엉! 눈부신 백색의 섬광이 뻗어 나와 빙창을 부숴 버렸다.

또 한 차례 공격이 막히자, 오랑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이, 이런…….”

“이제야 알겠느냐? 네놈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럼 이제 내 차례다.”

방월 대사는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오랑을 향해 돌진했다.

“크윽. 아직 안 끝났다!”

오랑은 한빙마공 최강의 절기인 ‘빙성(氷星)’을 펼쳤다. 직후, 오랑의 머리 위로 태산만 한 얼음 운석이 만들어졌다.

“어디 그 잘난 무공으로 이것도 막아 보시지?”

오랑이 얼음 운석을 내던졌다. 방월 대사는 낙하하는 운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염라대왕신공 오의-. 염마멸권(閻魔滅拳).”

방월 대사가 주먹을 내지르자, 거대한 충격파가 터지며 붉은 기운이 뻗어 나갔다.

쩌엉! 콰아아아앙! 방월 대사의 일권(一拳)은 얼음 운석을 부수는 데 성공했다.

운석이 사라지자, 오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럴 수는 없어……. 이건 거짓말이야!”

그는 얼음칼을 생성해 방월 대사의 어깨를 내리쳤다.

콰직! 수도(手刀)를 세워 얼음칼을 두 동강 내 버린 방월 대사가 말했다.

“이건 네놈들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한 업보(業報)다.”

다음 순간, 방월 대사가 내지른 주먹이 오랑의 명치에 작렬했다.

퍼억! 오랑의 명치에 어른 머리만 한 구멍이 생겼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죽기 전, 지월이 있는 황궁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렸다.

“지월 님……. 부디 염원을 이루시기를…….”

오랑은 마도세계의 문이 열리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으며 죽음을 맞이했다.

염라대왕신공을 해제한 방월 대사는 떨어지는 괴물들을 응시하며 탄식을 흘렸다.

“저것들은 인세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 지월, 감당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구나.”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승은 멸망할 것이다.

방월 대사는 지친 몸을 이끌고 황궁으로 달려갔다.

***

한편, 노학개는 만안궁(萬安宮)에서 들려오는 무림인들의 비명 소리에 그쪽으로 달려갔다.

만안궁에 도착한 그는, 눈앞에 선 적을 발견하고 입을 벌렸다.

달랑 바지 하나만 걸친 사내는, 키가 10척을 족히 넘을 정도의 장신. 아니, 거인이었다.

노학개는 이 거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거군(巨君). 왕호(王浩).

아무런 능력도 없이 오직 신체 하나로 복마십군의 한 자리를 차지한 사내.

실제로 마주하니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무식한 덩치였다.

마침 노학개를 발견한 왕호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 개방의 방주 맞지? 손에 든 죽장이랑 허리춤에 찬 타구봉, 옷차림을 보니 알겠다.”

왕호는 양손에 무림인 한 명씩을 들고 있었다. 붙잡힌 두 사람이 외쳤다.

“노 대협! 구해 주십시오!”

“기다려라. 지금 구해 줄…….”

노학개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왕호가 손에 힘을 주었다.

콰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두 사람의 몸이 축 늘어졌다.

무인들의 시체를 바닥에 내던진 왕호가 히죽거렸다.

“늦었어. 이미 죽어 버렸다고. 흐흐.”

분노한 노학개가 죽장을 던지고 강룡십팔장의 자세를 잡았다.

“이 자식. 각오해라.”

“좋다. 어디 한번 신나게 싸워 보자!”

왕호는 쿵! 쿵! 발자국 소리를 내며 달려와 주먹을 내질렀다.

거대한 주먹이 노학개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노학개는 즉시 보법을 펼치며 왕호의 주먹을 피했다.

콰앙! 왕호의 주먹이 떨어진 자리가 움푹 파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착지한 노학개가 왕호를 응시했다.

‘엄청난 위력이지만 움직임을 보았을 때 괴력을 제외하면 놈은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다.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어.’

파팟! 노학개는 왕호의 주먹을 피해 그의 지척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강룡십팔장의 ‘풍룡격타(風龍擊打)’ 초식으로 일장(一掌)을 날렸다.

쩌엉! 노학개의 장력이 왕호의 가슴팍에 명중했다. 왕호는 피를 토하며 밀려났다.

‘놈이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이대로 몰아붙여서 단숨에 끝내자.’

노학개는 곧바로 초식을 이어 나갔다.

그는 강룡십팔장의 ‘구룡난격(九龍亂擊)’ 초식을 펼치며 공격했다.

왕호는 몸을 최대한 굽히며 노학개의 초식을 방어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장력이 왕호의 전신을 가격했다.

왕호는 피부가 찢기고 피가 튀었지만, 결국 버티는 데 성공했다. 노학개는 혀를 내둘렀다.

‘기가 차는군. 호신강기를 두르지 않은 몸으로 내 공격을…….’

노학개는 강룡십팔장의 ‘광룡파격(狂龍破擊)’ 초식으로 왕호의 턱을 올려쳤다.

“크억!”

왕호는 비명을 지르며 휘청거렸다.

‘마지막이다.’

손바닥에 기를 모은 노학개가 강룡십팔장의 ‘폭룡장(暴龍掌)’으로 끝을 내려는 순간!

퍼억! 그는 왕호가 내지른 권격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이, 이건?’

노학개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건 강룡십팔장의 풍룡격타 초식이 분명했다.

개방의 방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을, 놈이 어떻게 구사한단 말인가?

주먹을 내린 왕호가 낄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내가 네놈의 무공을 펼쳐서 놀랐느냐? 이것이 바로 내가 지월 님에게 받은 권능 중 하나. ‘질투(嫉妬)의 권능’이다. 몸으로 한 번 받은 기술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지.”

놈이 가진 이능(異能)의 정체를 알게 된 노학개가 이를 악물었다.

‘질투의 권능……. 결코 어중간하게 따라 하는 정도가 아니다. 내 움직임과 똑같아. 빌어먹을.’

왕호는 강룡십팔장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어디 네놈의 초식을 받아 보거라.”

그는 구룡난격 초식을 펼쳤다. 완벽한 동작으로 펼쳐진 초식에 왕호의 괴력이 더해지니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파파팟! 노학개는 왕호의 장력을 피하며 허리춤에서 타구봉을 꺼내 양손에 쥐었다.

‘무기가 없는 이상 타구봉법까지 따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왕호는 구룡난격 초식에 이어 광룡파격 초식을 펼쳤다.

노학개는 밀려오는 장력을 피하며 왕호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타구봉법의 ‘황룡출동(黃龍出動)’ 초식으로 타구봉을 옆구리에 붙인 다음, 내질렀다.

퍼퍽! 봉격(棒擊)이 왕호의 양쪽 무릎에 적중했다. 뼈가 부서지며 중심을 잡지 못한 왕호가 비틀거렸다.

‘지금이다!’

노학개가 내력을 끌어모으며 질풍처럼 쇄도했다. 위험을 느낀 왕호가 풍룡격타 초식으로 장력을 내쏘았다.

“타구봉법 오의-. 수라난격(修羅亂擊).”

순간 노학개의 타구봉이 여섯 개로 늘어났다.

그가 타구봉을 휘두르자, 왕호가 쏘아 보낸 풍룡격타의 장력이 튕겨 나갔다.

순식간에 왕호의 앞으로 도달한 노학개가 싸늘히 중얼거렸다.

“이만 끝내자.”

“자, 잠깐만…….”

왕호가 다급히 외쳤으나, 이미 늦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노학개의 타구봉이 왕호의 전신을 무자비하게 두들겼다.

마지막으로 정수리를 내리치자, 왕호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쿠웅! 그의 거구가 무너져 내렸다. 타구봉을 내린 노학개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전력을 다했더니 힘들어 죽겠구만. 아이구.”

그때, 마도세계의 문이 열리며 지옥의 악마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노학개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것들을 응시했다.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후우. 술 한 잔이 간절하구만.”

그는 타구봉을 든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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