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39화 (139/164)

<139화>

무림맹 전투(2)

쩌엉! 양악의 검이 팽인호의 도신에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팽인호는 도를 거두며 동시에 질풍 같은 권격을 날렸다.

뻐억! 주먹을 막은 양악이 한참을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직후, 따끔한 고통이 느껴지며 팔뚝에서 피가 튀었다.

은신한 채 접근한 비설이 비수로 팔을 그은 것이다.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다. 역시 흑영대주.’

쉬익! 팽인호는 팔을 뻗어 비설의 목을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이대로 힘을 주어 목을 부러뜨리려는 순간, 그는 멈칫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마교대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다. 내가 이들을 어찌 죽이단 말인가?’

그때, 유풍검대 대주 홍익수와 풍림검대 대주 송세양이 각자 측면을 노리고 검을 찔러 왔다.

팽인호는 결국 비설을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대도를 휘둘러 공격을 막아 냈다.

반격할 틈도 없이, 다섯 명의 대주가 동시에 합공을 해 왔다.

팽인호는 분노에 찬 노성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그 분노는 전우들이 아닌 탄영을 향한 것이었다.

‘망설이지 마라. 내가 망설이는 동안 얼마나 많은 무인들이 죽어 나갈 것인가. 본가의 식솔들과 무림의 명운을 위해서라도 나는 해야만 한다!’

마음을 정한 팽인호가 내력을 일으켰다. 거대한 기파(氣波)가 터져 나오며 적들이 주춤거렸다.

“으아아!”

괴성을 지른 팽인호가 엄청난 속도로 대도를 휘둘렀다.

오호단문도의 맹호격천(猛虎擊天) 초식이 펼쳐졌다.

푸확! 달려들던 홍익수의 가슴이 갈라지며 피가 솟구쳤다.

스르륵 무너져 내린 그가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대협…….”

홍익수를 일도(一刀)로 베어 버린 팽인호가 대답했다.

“그대의 식솔들은 내가 책임지고 보살피겠네. 안심하게.”

팽인호는 몸을 빙글 돌리며 오호단문도의 뇌호광란(雷虎狂亂) 초식을 펼쳤다.

퍼억! 도강에 적중당한 송세양이 바닥에 쓰러지며 말했다.

“무림을 부탁드립니다. 대협.”

팽인호는 이를 악물며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걱정 말게! 내가 반드시 탄영을 쓰러뜨리고 말 테니!”

한 명을 죽일수록 팽인호의 분노도 깊어졌다.

그는 안광을 번득이며 계속해서 도를 휘둘렀다.

쇄애애애애액!

그가 한 차례 도를 휘두를 때마다, 누런 도강이 벼락과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질풍검대 대주 조도하와 열풍검대 대주 허주학이 그의 손에 쓰러지며 말했다.

“대협을 믿고 있겠습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스걱-. 팽인호는 도를 수평으로 휘둘러 추풍검대 대주 적위경의 허리를 양단했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쇄애액! 풍운검대 대주 추교영이 정면으로 검격을 내질렀다.

고개를 살짝 돌려 검격을 피한 팽인호가 그의 목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는다.’

우득! 섬뜩한 소리가 울리며 추교영의 몸이 축 늘어졌다.

팽인호는 그의 시체를 조심스레 바닥에 눕히며 말했다.

“수고했네. 편히 잠들게.”

대주들을 모두 처리한 팽인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 남은 건 총대주와 흑영대주. 둘뿐인가.’

콰앙! 바닥을 박차며 튀어나간 그가 양악을 노리고 수직으로 도를 내리쳤다.

쩌엉! 양악은 공격을 막았으나 충격으로 바닥에 파묻혔다.

콰직! 팽인호의 수도(手刀)로 양악의 명치를 찔렀다.

울컥 피를 토한 양악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고개를 돌린 팽인호는 비설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차라리 천마와 싸우는 게 낫지…….”

비설은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시게. 금방 편하게 해 줄 테니까.”

터엉-! 팽인호는 이를 악물고 비설을 향해 쇄도했다.

***

쇄애액! 낭연청의 절기, 흑살검이 날아들었다.

남량은 침착하게 사자금강을 펼쳐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날아드는 검강의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사자금강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결국 남량은 공중으로 몸을 띄워 공격을 피했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콰아아아앙! 흑살검이 날아간 곳에 위치해 있던 거대한 궁전 하나가 폭발하며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착지한 남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마의 힘이, 청아를 강하게 만든 것인가.’

쇄애액! 엄청난 속도로 달려든 낭연청이 남량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검을 휘둘렀다.

속도와 파괴력 모두 화경의 경지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순식간에 다가온 칼날을 응시하며, 남량이 이를 악물었다.

어떡하지?

‘여기서 지체할수록 상황은 더 불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럼 내 손으로 청아를 죽여야 한단 말인가? 아니야. 그건 절대…….’

생각하던 남량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전투 중에 생각이 깊어졌다.’

사락. 낭연청의 검이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었다.

휙! 고개를 숙이며 아슬아슬하게 검을 피한 남량은, 화산파의 소엽퇴법(掃葉腿法)으로 낭연청을 물러나게 했다.소

‘일단 청아를 제압한 다음 방법을 찾아보자.’

남량은 수라로 변한 직후,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깜짝 놀란 낭연청이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혈마의 힘을 얻어 한층 강해진 그녀였지만, 수라화한 남량의 움직임을 잡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남량은 최대한 힘을 조절해 검을 내리쳤다.

쩌엉! 충격을 받은 낭연청이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남량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손으로 검을 막은 남량은 낭연청의 팔을 붙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자하신공의 선기를 청아의 몸 안으로 밀어 넣으면 세뇌를 풀 수 있을지도 몰라. 해보자.’

남량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고 선기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자색의 기운이 퍼지며 낭연청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그때, 수라가 머릿속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멍청한 놈. 그랬다간 그 여자는 죽게 된다.

깜짝 놀란 남량이 선기 주입을 멈추고 수라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청아가 죽는다니?’

-여자의 얼굴을 잘 봐라.

수라의 말대로 낭연청의 얼굴을 살핀 남량이 움찔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보였다.

-이미 혈마의 기운이 이 여자의 몸과 동화되어 버렸다. 계속 선기를 주입했다간 소멸하고 말 거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다. 그냥 죽여라.

“닥쳐라! 내가 청아를 어떻게…….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남량은 그답지 않게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리쳤다.

‘두 번은 안 된다. 두 번이나 청아를 떠나보낼 수는 없어!’

그가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는 때였다.

머릿속으로 낭연청이 전음을 보내왔다.

-교주님.

눈을 부릅뜬 남량이 아래 깔린 낭연청을 바라보았다.

“청아! 정신이 든 것이냐?”

-제 몸은 아직 혈마의 힘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아마 교주님께서 흘려보낸 정순한 기운 덕분에 잠시나마 의식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아, 그래. 다행이다. 잠시만 기다리거라. 내가 곧 세뇌를 풀어 줄 테니까.”

-아닙니다. 교주님. 탄영을 죽이지 않는 한, 저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오직 교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잠시 침묵하던 낭연청이 말했다.

-저를 죽이고 탄영에게 가십시오.

“……뭐?”

충격을 받아 멍한 표정을 짓던 남량이 버럭 소리쳤다.

“그런 소리 마라! 내가 너를 죽게 놔둘 것 같으냐!”

-그래야만 합니다.

“찾을 수 있다. 분명 방법이…….”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방법은 없다는 것을.

그러나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정인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빌어먹을. 자하신공을 손에 넣으면 뭐 해. 수라의 힘을 얻으면 뭐 하냐고! 청아를 구할 힘이 없는데! 나는 너무나 무력해…….’

남량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눈물을 흘렸다.

낭연청은 남량의 우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울지 마십시오. 저 때문에…….

“제발 내 곁에 있어 다오. 청아.”

-교주님. 이제 더는 위광으로 살지 마십시오. 복수를 마치고 나면 남량으로 살아가시는 겁니다. 저는 알고 있습니다. 천하를 바라보고 계셨지만 한편으로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고 계셨다는 것을요……. 이번 생에서는 그 꿈을 부디 이루십시오.

“청아…….”

-그리고 저를 너무 오래 기억하지 마시고 아파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교주님의 기억 한구석에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크으윽!”

남량은 낭연청을 끌어안으며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나도 너를 만나 행복했다.”

화륵! 남량과 낭연청의 몸이 자색 불꽃에 휩싸였다.

낭연청을 지배하는 혈마의 기운이 소멸하며, 아주 짧게나마 그녀는 자신의 몸을 되찾았다.

“교주님…….”

낭연청은 남량의 등을 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사람은 죽을 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고 했던가.

그녀는 명월루 창고에서 위광을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던 그가, 어쩐지 자신의 저치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공자,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위광의 손을 잡고 마교에 들어와 무공을 익히며 그를 지켰던 나날들은,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과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그래. 이런 최후도 나쁘지 않아.’

사라락. 몸이 손끝부터 천천히 소멸하기 시작했다.

낭연청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당신을 사모합니다. 죽어서도 그건 변치 않을 겁니다.”

“청아, 청아…….”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남량은 바닥에 엎어진 채 절규했다.

“으아아아-!!! 탄영!!!”

현경의 경지에 다다른 강자의 포효는,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멀리서 그의 절규를 들은 유라는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렸다.

“남 사제……?”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찬야가 말했다.

“방금 그거 남 사제 목소리 아니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젠장, 불안해 죽겠네.”

맹주전 쪽을 응시하는 두 사람을 향해, 위지혁이 다급히 외쳤다.

“너희들 뭐 하고 있어! 여긴 전장이라고! 정신 바짝 차려!”

“그래!”

다시 전투에 집중하며, 유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남 사제. 꼭 무사해라.’

한참을 절규하던 남량은 바닥에 떨어진 낭연청의 검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절정의 경지에 들던 날, 선물해 준 검이었다.

“어찌. 마음에 드느냐?”

“교주님이 주시는 건 뭐든 마음에 듭니다.”

“그래? 내가 보름 동안 고민해서 준비한 것이다. 하하하.”

한참을 웃던 위광이 낭연청에게 물었다.

“내가 너에게 검을 선물해 준 이유를 아느냐?”

낭연청은 고개를 저었다. 위광이 말했다.

“앞으로도 그 검으로 나를 지키라는 의미에서 주는 것이다. 평생 동안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말거라. 알겠느냐?”

낭연청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남량은 젖은 눈으로 칼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너와 함께 살고 싶었다. 복수가 끝나면, 너와 함께 살고 싶었어.’

그는 손을 뻗어 검의 손잡이 부분을 어루만졌다.

낭연청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청아. 나는 너를 죽는 순간까지 잊지 않을 것이다. 너를 계속 기억할 것이야.”

남량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맹주전 쪽으로 향했다.

“하늘에서 지켜보거라. 내가 탄영을 죽이는 모습을.”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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