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검황-132화 (132/164)

<132화>

무림학관(武林學館)(2)

스르륵. 검은 연기가 담장을 넘어 학관 내부로 들어왔다.

보초를 서던 무인은 이상함을 감지하고 동료를 불렀다.

“이, 이보게. 저기…….”

“음? 왜 그러나?”

고개를 돌린 동료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

연기가 화톳불의 불빛을 집어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보였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순간, 연기가 빠르게 뻗어 나와 두 사람의 몸을 휘감았다.

연기에 노출된 피부가 검게 변색되더니, 이내 부식되기 시작했다.

두 보초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비명 소리를 들은 다른 보초들이 그쪽으로 달려왔다.

“지광이! 운철이!”

“자네들! 무슨 일인가!”

지광, 운철. 두 보초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소리쳤다.

“다가오지 말게! 검은 안개에 다가오면 안 돼!”

“어서 관생들을 데리고 도망치게! 어서-.”

두 사람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온몸이 문드러져 죽었다.

보초들은 동료의 죽음에 경악할 틈도 없이 건물로 달려갔다.

검은 연기는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

처음 비명 소리가 들리기 직전, 마기를 감지한 남량이 눈을 번쩍 뜨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마교의 습격인가.’

그는 침의에 장포만을 걸친 채 화양검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보초들이 달려오며 목청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다.

“다들 일어나시오! 죽음의 연기가 오고 있소!”

“죽기 싫으면 어서 북쪽으로 대피하시오!”

죽음의 연기? 눈살을 찌푸린 남량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 연기를 발견한 그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건 분명……. 마연항의 연기.”

한때 천마였던 남량은 마교의 기물(奇物)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절로 싸늘해졌다.

‘또 사람들을 희생시킬 셈인가.’

천음선녀 때도, 낙양혈사 때도, 최근 옥룡교 때도 그랬다.

놈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학살도 주저하지 않았다.

남량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으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렸다. 남량은 마기가 몰려오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명 근처에 있겠지. 이 일을 꾸민 놈이. 어디냐.’

남량은 천양신경의 능력 중 하나인 통찰안(洞察眼)을 사용해 주변을 살폈다. 이내 그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학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 저곳인가.’

마침 소란을 듣고 매화오절이 모여들었다.

“남 사제!”

남량은 사자금강을 펼쳐 도망치는 관생 한 명을 구해 준 다음,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관생들의 대피를 도와라. 도가의 정순한 내력이 보호하고 있으니 연기 속에서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알았어. 그런데 남 사제는?”

“나는 연기가 더 퍼지는 걸 막는다.”

돌아서서 가려는 그를, 유라가 붙잡았다.

“남 사제! 나도 따라가겠다. 아무래도 예감이 안 좋아. 놈들은 분명 네가 가유를 처리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을 거다. 허술하게 준비했을 리 없어.”

“놈들이 어떤 함정을 준비했든, 부숴 버리면 그만이야.”

남량은 유라의 어깨를 두드려 준 다음, 바람처럼 사라졌다.

근심 어린 표정을 짓던 유라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나는 남 사제를 따라간다. 너희들은 관생들을 대피시켜.”

“알았어. 조심해.”

파팟! 유라는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

남량은 빠른 속도로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녹색 장포를 걸친 단정한 외모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남량은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기억해 냈다.

‘도철 윤손.’

윤손은 남량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소문대로 대단한 미색이군. 백매화.”

“탄영은 어디에 있느냐.”

“네놈 시체를 바치면 주인님께서 기뻐하시겠구나.”

“탄영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아주 자신만만하군. 허나 이건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윤손은 비릿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양옹이 미리 설치해 둔 진법을 발동한 것이다.

남량의 머릿속으로 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봉인진이다. 인간. 어서 이곳을 벗어나라.

‘봉인진?’

남량은 즉시 수라화를 시도했으나 변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에 금색 막이 둘러져 있었다.

윤손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이제 알겠느냐? 이 공간 안에서 네놈은 수라의 힘을 사용할 수 없다. 자, 이제 어떡할 것이냐?”

남량은 쯧, 하고 혀를 차며 생각했다.

‘잘도 이런 함정을 준비했군. 유라의 말대로였어.’

수라의 힘을 쓸 수 없는 지금, 윤손과 싸우는 건 위험했다.

‘하는 수 없다. 기회를 봐서 이곳을 벗어나는 수밖에.’

그때, 등 뒤에서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장검을 늘어뜨린 채 낭연청이 서 있었다.

윤손이 남량을 비웃으며 말했다.

“끌끌. 나와 싸우면서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날 생각을 하고 있었지? 멍청한 놈. 그렇게 쉽게 보내 줄 것 같았더냐?”

낭연청은 살기를 내뿜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너는 여기서 죽는다. 백매화.”

말을 마친 직후, 그녀가 절기, 흑살검을 쏘아 보냈다.

콰앙! 남량이 있던 자리에 폭발이 일어나며 먼지가 치솟았다.

지켜보던 윤손은 아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시체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 순간, 먼지가 걷히며 늙은 거지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한 손에 누런 빛깔의 타구봉(打狗棒)을 들고 있었다.

“묵직하군. 흑살검이라. 과연 대단하구만.”

거지는 뻗었던 손을 회수하며 입을 열었다.

낭연청은 거지를 노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는 설마, 남북 십성의…….’

윤손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불청객이 들어왔군. 네놈은 누구냐.”

거지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아, 우린 초면이던가? 소개하지. 이 몸은 개방의 십만 방도를 이끄는 수장, 노학개라고 하네.”

“남북 십성의 금왕(金王)?”

남량은 노학개에게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참으로 적절한 때에 와 주셨습니다.”

“소문 자자한 수라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구만.”

노학개는 윤손을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개방이 자네들의 행적을 조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네. 마침 자네가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 입을 열어야겠구만.”

“할 수 있으면 어디 해 보거라.”

직후, 윤손이 하늘을 향해 길게 포효했다.

콰드득! 콰득!

그는 곧 신화 속 도철의 모습과 흡사하게 변했다.

짐승의 몸에 털이 수북하게 자라고 머리에 양 뿔이 돋았으며, 송곳니가 길게 늘어나 있었다.

노학개는 태연히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이거 보여 줄 수밖에 없겠구만. 개방이 자랑하는 강룡십팔장(强龍十八掌)과 타구봉법(打狗棒法)의 위력을.”

그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금왕이 윤손을 상대해 준다면…….’

남량은 고개를 돌려 낭연청을 바라보았다.

‘낭연청. 이번에야말로 마무리를 짓자.’

***

한편,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남량의 뒤를 따라온 유라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상대는 낭연청이다. 내가 가세한다고 해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그렇다면 진법을 파괴해 남 사제가 수라의 힘을 쓸 수 있도록 만들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 정도의 진법을 펼쳤다면 분명 술사가 근처에 있을 터였다.

‘그자를 처리하면 진법을 파괴할 수 있다.’

유라는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주변을 살폈다.

곧 희미한 기운 하나가 그녀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거기냐.’

파팟! 유라는 곧장 그곳으로 몸을 날렸다.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

양옹은 가부좌를 튼 채 열심히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때, 등 뒤에서 화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불덩어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양옹은 기겁을 하며 몸을 던져 불덩어리를 피했다.

바닥에 쓰러진 양옹에게, 유라가 다가왔다.

“네놈이 진법을 발동시킨 술사로군.”

양옹은 대꾸하지 않고 품에서 부적 뭉치를 꺼내 던졌다.

부적은 곧 바람, 번개, 불, 바위가 되어 매섭게 날아들었다.

유라는 피식 냉소를 흘리며 검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 냈다.

“이까짓 잔재주로는 내게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모산파 출신 도사답게, 양옹은 또 다른 술법을 펼쳤다.

촤르륵! 바닥에서 솟아난 사슬이 유라의 전신을 휘감았다.

“소용없다고 했을 텐데.”

유라는 삼매진화의 불길을 일으켜 사슬을 태워 버렸다.

저벅저벅. 그녀는 몸에 불꽃을 두른 채 양옹에게 다가갔다.

양옹의 눈에, 그녀는 마치 불의 화신처럼 보였다.

처억. 유라는 검을 높이 치켜들며 싸늘히 말했다.

“죽어라.”

양옹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자, 잠깐! 항복하겠다. 항복할 테니 목숨만 살려 다오.”

푸욱! 유라의 검이 양옹의 가슴을 깊숙이 찔렀다.

울컥 피를 토한 양옹이 유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커억! 분명 항복하겠다고 했는데…….”

“너는 마교와 손잡고 무림학관의 많은 이들을 죽게 만들었다. 죗값을 달게 받아라.”

“비, 빌어먹을……. 네년이 그러고도 도사란 말이더냐.”

한 차례 부르르 떨던 양옹이 이내 축 늘어졌다.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 낸 유라가 고개를 돌렸다.

언덕을 둘러싼 금색 막이 사라지고 있었다.

‘진법을 해제했으니 마음껏 날뛰어라. 남 사제.’

***

그 시각, 남량과 낭연청은 피 튀기는 혈전을 치르고 있었다.

쇄애액! 무형의 참격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월인비로 공격을 피한 남량이 낭연청의 배후를 노렸다.

미리 그의 기척을 파악하고 있던 낭연청이 몸을 빙글 돌리며 흑살검을 내쏘았다.

남량은 낙영용섬 진(眞)의 초식으로 검을 휘둘러 받아쳤다.

쩌엉! 기파가 터지며 두 사람이 뒤로 물러났다.

낭연청은 살짝 떨리는 손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몰라보게 강해졌군. 백매화.’

수라의 힘만 봉인하면 예전처럼 쉽게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헌데 그는 수라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마교 간부과 비슷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전력을 다해 네놈을 죽여 주마.’

낭연청은 최강의 초식 중 하나인 흑살검-유성참(流星斬)의 초식을 펼쳤다.

슈슈슈슈슈슈슈슉!

흑살검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일격필살의 검격을 일시에 쏟아 내는 공격이니, 가히 최강의 초식이라 부를 만했다.

남량도 이에 맞서 자신이 가진 최강의 초식을 꺼내 들었다.

“연화세계.”

우우웅! 수천 자루의 검이 허공에 생성되며 날아드는 참격을 요격했다.

콰앙! 콰아아아앙!

두 검강이 충돌하며 거대한 충격파가 생겼다.

‘시야가 가려진 지금이 기회다.’

스륵. 낭연청은 특기인 지둔술(地遁術)을 발휘해 남량의 등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내며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순간, 남량의 전신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멀리 튕겨 나간 낭연청이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섰다.

고개를 들어 남량을 쳐다본 그녀가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검은 피부에 돋아난 뿔. 남량은 어느새 수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붉은 눈으로 낭연청을 응시했다.

“진법이 풀렸다. 내 동료가 잘해 준 덕분이지.”

방금 전, 유라로부터 진법을 해제했다는 전음을 받았다.

남량은 낭연청을 향해 한 걸음 내딛으며 말했다.

“각오해라. 낭연청.”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