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화산 전투(4)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구양중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극심한 분노와 슬픔으로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아버지…….’
평생을 그의 애정을 받기 위해 검을 단련해 왔다.
사랑받는 자식이 될 수 없다면, 인정받는 제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라도 아버지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런데 아버지가 죽었다. 나를 구하려다.
왜 나를 차갑게 대했습니까? 내가 친자가 아니라서? 그럼 왜 나를 구하려 몸을 던졌습니까? 당신은 한 번이라도 나를 사랑한 적이 있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떤 존재였습니까?
이 많은 질문을 이제는 할 수도,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아버지. 아버지…….”
늘 입 안에서만 맴돌던 말을, 이제야 불러 보았다.
유라는 어깨를 부들부들 떨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뭐야. 구양중이 네 아버지였나? 어쩐지…….”
장공이 도를 바닥에 끌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마라. 어차피 널 죽인 다음 그놈도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야. 너도 금방 그놈의 곁으로 보내 주마.”
유라의 앞에 선 그가 도를 치켜든 순간이었다.
“그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장공이 흠칫 몸을 떨었다.
“아비를 잃은 자식이 울고 있다. 방해하지 마라.”
등을 짓누르는 거대한 투기에, 장공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암암리에 내력을 모은 다음, 몸을 돌리며 도를 휘둘렀다.
쇄액! 다음 순간, 장공은 자신의 팔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팔이 잘려 나간 자리에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크윽!”
장공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검은 장포를 입고 손에는 거대한 언월도를 든 중년의 사내가 자신의 잘린 팔을 든 채 서 있었다.
장공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 무림맹주……?”
천마가 인정한 무인이자 모든 마인들이 두려워하는 존재.
무림맹주, 남북 십성의 명왕. 고경홍이 그곳에 있었다.
“네놈이 감히 화산을 침공한 걸로도 모자라.”
고경홍이 언월도 자루를 꽉 움켜쥐며 말했다.
“구 대협마저 죽였겠다.”
털썩. 장공은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분노한 고경홍의 투기를 정면으로 받은 결과였다.
‘이런. 나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단 말인가.’
장공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리 위로 고경홍의 언월도가 떨어져 내렸다.
쩌억! 그렇게 칠령귀 최강이라 불리던 장공은, 고경홍의 일격에 의해 몸이 좌우로 갈라지며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래도 죽기 전 최강의 무인인 고경홍을 상대했으니 그에게는 만족스러운 최후였을지도 모른다.
언월도를 거둔 고경홍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구양중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오, 구 대협. 내가 너무 늦었소.’
유라는 구양중의 손을 잡으며 다짐했다.
‘아버지께서 그러셨지요. 영웅의 혼은, 그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는 한 영원히 잠들지 않는다고. 제가 아버지를 평생 기억할게요. 그러니 지켜보세요. 제가 마교를 섬멸하는 모습을.’
***
효초아는 극심한 수치심으로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그는 남북 십성의 상위(上位). 그러니까 명왕과 검성, 검제와 불제 등의 강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십성을 본신의 힘만으로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유우화를 상대할 때에도 수라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본래의 힘만 발휘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콰릉! 콰르릉!
효초아는 유우화를 향해 미친 듯이 뇌전을 쏘아 보냈다.
유우화는 허공을 자유자재로 유영하며 효초아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했다.
월인비의 최고 경지, 비행(飛行)을 펼친 것이다.
효초아는 이를 부득 갈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잘도 피하는군. 하지만 이건 피하지 못할 거다!”
파파팟! 그는 허공답보를 펼치며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양손을 명치 부근에 모은 다음, 뇌기를 집중시켰다.
“만천뇌우(滿天雷雨).”
효초아가 양손을 펼치자 자줏빛 섬광이 번쩍이며 수천 갈래의 뇌전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유우화는 즉시 매화천수검 7초식, 유성초월로 검강의 소용돌이를 일으켜 공격을 상쇄시켰다.
‘지금이다!’
효초아는 유우화의 움직임이 멈춘 틈을 타, 자전마공 최강의 초식을 발했다.
그가 공중에 손을 뻗자,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자색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자전마공의 뇌신강림(雷神降臨). 이 절기의 위력은 천하의 명왕조차 막아 내지 못할 것이다. 이걸로 끝내 주마.’
콰르르르릉!
벼락에 적중당한 유우화가 아래로 추락했다.
효초아는 폭소를 터뜨리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내가 널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웃기는 소리…….”
직후, 효초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번개에 타 죽었어야 할 유우화가 멀쩡히 몸을 일으킨 것이다.
그는 입가에 고인 피를 뱉어 내며 중얼거렸다.
“방금은 위험했다. 제법 아프던데.”
“네놈. 대체 어떻게…….”
“검막을 펼쳐 막았다.”
유우화는 매화천수검 1초식, 낙영용섬으로 검을 휘둘렀다.
섬전과 같은 일검이 효초아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효초아는 피가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었다.
유우화는 검을 늘어뜨린 채 다가오며 말했다.
“목을 노리려 했는데……. 그새 피한 건가.”
“크윽……. 내 앞에서 감히 건방 떨지 마라!”
파팟! 유우화는 효초아의 뇌전을 피하며 그에게 쇄도했다.
‘선천진기가 빠르게 소모되고 있다. 내 목숨도 멀지 않았군. 천만다행히도 놈은 수라의 힘을 쓰지 않고 있어. 놈이 마음을 바꾸기 전에 끝을 내야 한다.’
유우화는 매화천수검 8초식, 단천열화를 펼치며 전방위로 참격을 쏟아 냈다.
콰콰콰콱! 근처의 나무와 바위가 잘려 나가며 효초아의 어깨와 팔목 등에서도 피가 튀었다.
“이런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효초아가 방어 마공인 마강벽(魔罡壁)을 펼쳐 몸을 보호했다. 검은 마기가 그의 주변을 둘러쌌다.
“그걸로 내 검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차갑게 내뱉은 유우화가 몸을 띄우며 그대로 검을 내리쳤다. 매화천수검의 4초식, 뇌전포화였다.
콰르릉!
강기도 우습게 막는 마강벽이 단 일격에 부서졌다.
효초아는 울컥 피를 토하며 정신없이 뒷걸음질 쳤다.
‘매화검선의 경지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유우화는 낙영용섬 진(眞)으로 효초아의 목을 노렸다.
쇄애애액! 빛살과도 같은 검격이 쏘아져 나갔다.
효초아는 기겁하며 뇌전을 일으켜 공격을 막아 냈다.
쩡! 충격으로 바닥을 구른 그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강하다! 정말 강해. 내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수라의 힘을 빌리기로 결심했다.
‘네 힘이 필요하다. 저놈을 죽일 힘을 나에게 다오!’
-잘 선택했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유우화가 효초아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다음 순간, 그는 효초아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바람에 밀려 뒤로 날아갔다.
“크윽!”
유우화는 공중에서 몸을 빙글 돌려 충격을 해소한 뒤, 바닥에 착지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본 그가 눈을 부릅떴다.
‘저건…….’
효초아의 외형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칠흑 같은 피부와 머리에 돋아난 뿔.
붉게 변한 눈동자와 주변에 흐르는 검은 안개까지.
사람이 아닌 지옥의 악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결국 괴물이 되어 버렸군. 네놈.”
유우화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효초아가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수라의 힘이다. 이 세상을 파멸로 이끌 강력한 힘이지. 이것만 있으면 남북 십성도, 탄영도, 지월도. 그 무엇도 두렵지 않아. 내가 바로 세상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아니. 너는 내 손에 죽는다. 바로 이 자리에서.”
유우화는 효초아를 향해 쇄도하며 검을 휘둘렀다.
터억. 맨손으로 칼날을 붙잡은 효초아가 히죽거렸다.
“흐흐.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공격이구나.”
쩌억! 효초아의 주먹이 유우화의 가슴팍에 틀어박혔다.
“커억!”
유우화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가 비틀거렸다.
효초아는 유우화의 머리를 붙잡고 아랫배를 걷어찼다.
피를 울컥 토해 낸 그가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효초아가 이를 드러내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매화검선을 두 번의 공격으로 쓰러뜨렸으니 나머지 남북 십성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내가 최강이다!”
유우화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방금 전의 일격을 막아 내느라 생명력을 대부분 소모했다.
앞으로 한 번의 공격만 가능할 듯했다.
비틀거리며 일어선 유우화에게, 효초아가 말했다.
“유우화! 화산을 지킨다고 했었느냐? 나는 너를 죽인 다음, 저곳으로 달려가 화산의 도사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찢어 죽일 것이다. 내 계획을 방해했던 네놈 제자는 특별히 팔다리를 하나씩 뽑은 다음 목을 쳐 주지.”
“……량이는 반드시 마교를 멸할 것이다.”
연화검을 수직으로 세운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는 목숨 바쳐 그 길을 열 것이다.”
유우화는 검을 움직여 허공에 원을 그려 나갔다.
직후, 강기의 파편이 꽃잎처럼 흩어지며 허공을 가득 덮었다.
매화천수검의 9초식, 천류신화가 펼쳐진 것이다.
효초아는 유우화를 비웃듯 말했다.
“끝까지 발버둥을 칠 셈인가. 허나 소용없는 짓이다.”
“효초아. 나와 함께 가자.”
유우화는 이 대결의 종전을 선언하듯 검을 아래로 그었다.
그와 동시에 꽃잎이 화우(花雨)가 되어 아래로 쏟아졌다.
효초아는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
수라의 힘을 빌린 남량은 미친 듯이 달려 마침내 화산에 도착했다.
화산을 오르던 그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거대한 기의 충돌을 감지하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빌어먹을. 어째서 이런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거지?’
그가 막 수라동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흙먼지가 걷히며 유우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우……. 스승님?”
남량의 목소리를 들은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평소처럼 환한 미소로 자신의 제자를 반겼다.
“량아. 왔느냐?”
“예, 스승님. 헌데 방금의 폭발은 대체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네게 전할 말이 있었는데, 다행이구나.”
“네? 마지막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
남량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유우화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울컥 새어 나왔다.
“스, 스승님!”
남량은 깜짝 놀라며 달려갔다. 쓰러지는 그를 붙잡은 남량이 눈을 부릅떴다.
유우화의 가슴팍에 검은 기둥 하나가 박혀 있었다.
“동귀어진의 각오로 일격을 날렸는데……. 아무래도 끝장을 내지 못한 것 같다.”
“스승님. 잠시만 버티십시오. 제가 금방 낫게 해 드리겠습니다.”
남량은 침착하게 신유우합의 능력으로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했다. 그때, 유우화가 남량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소용없다. 나는 어차피 생명력이 다해 곧 죽는다. 량아! 그 전에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
“안 됩니다. 스승님.”
“평생 검을 휘두르고 사느라 처자식도 없었던 나였다. 그래서 너를 보면 마치……. 내 자식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
“스승님!”
“갑자기 달라진 너를 보고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너의 성장을 지켜보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었어…….”
“유우화! 이 개자식아! 입 다물어! 금방 치료해 줄 테니까!”
남량은 발작하듯 그의 멱살을 붙잡고 괴성을 질렀다.
“너는 내 자랑이었다. 꼭 살아서 우리의 비원을 이루…….”
유우화는 반쯤 눈을 뜬 채 죽음을 맞이했다.
남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유우화.”
남량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허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유우화.”
남량이 또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유…….”
세 번째, 그의 이름을 부르던 남량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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