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화산 전투(1)
콰르릉! 뇌성(雷聲)이 울리며 화산 깊은 곳에 자색의 벼락이 떨어졌다.
수라동을 지키던 도사들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벼락을 떨어뜨린 장본인은 가면을 쓴 붉은 장발의 사내였다.
도사 백경(白鏡)은 울컥 피를 토해 내며 신음을 흘렸다.
‘마교가 수라의 심장을 노리고 있다. 장문인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음기를 거둔 사내가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그러자 희게 분칠을 한 미형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바로 칠령귀의 수장이자 삼천위의 일원인 효초아였다.
“정말 이곳에 나머지 조각이 있는 건가?”
효초아를 노려보던 백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혼잣말인가? 누구랑 대화하는 거지?’
효초아의 물음에 대답한 건 놀랍게도 그 자신이었다.
그런데 목소리의 높낮이나 말투 같은 것이 묘하게 달랐다.
‘그’는 음산한 웃음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이곳에서 나머지 육신의 기운이 느껴진다.”
“좋아. 화산에 잠든 조각까지 손에 넣으면 네 개로군.”
“마지막 조각도 이곳으로 오고 있는 중이다.”
“화령이 오는 모양이네. 곧 완전한 심장을 얻을 수 있겠어.”
효초아는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손을 뻗어 수라동의 입구를 부수고 걸음을 옮겼다.
백경은 그가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를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는 그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살아남은 놈이 한 명 있다. 네가 들어가면 입구를 무너뜨릴 생각을 하고 있군.”
백경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내 생각을 읽었다는 말인가?
고개를 돌린 효초아는 백경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내가 뒤처리가 깔끔하지 못했군. 미안해.”
파지직! 효초아는 손을 뻗어 한 줄기 뇌전을 날려 보냈다.
백경은 눈을 감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장문인.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
쩌엉! 뇌전에 적중당한 백경이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너무 억울해하지 마라. 내가 수라의 심장을 전부 손에 넣으면 화산의 도사들을 모조리 곁으로 보내 줄 테니까. 하하하!”
효초아는 광소를 터뜨리며 수라동 안으로 들어갔다.
***
운휘와 위지혁은 칠령귀의 풍귀, 관로와 대치 중에 있었다.
두 검사는 눈앞의 적이 전력을 다해도 이기지 못할 상대임을 직감했다.
그들은 남량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순간적으로 내력을 증가시키는 비술(秘術). 폭혈기공을.
우우웅.
운휘와 위지혁의 전신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관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기세가 달라졌다? 무슨 사술을 부린 거지?’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생각했다.
‘흐음. 한 놈은 도사인데 사기(邪氣)가 느껴지고 다른 놈은 기백이 만만치 않군. 자세히 살펴보니 재미있는 놈들이야.’
관로의 시선이 운휘에게 향했다.
‘일단 단순 무식해 보이는 저놈부터 처리해야겠다.’
관로가 마기를 끌어올리며 소선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수십 자루의 칼날이 날아가는 것처럼 기파(氣波)가 밀려들었다.
그가 효초아에게서 받은 무공은 멸사흑천풍(滅私黑天風).
마기의 바람을 일으켜 상대방을 분쇄하는 강력한 마공이었다.
운휘는 다급히 검을 수직으로 세워 방어 자세를 취했다.
관로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비웃음을 내뱉었다.
‘멍청한 것. 그런다고 막아질 것 같으냐.’
콰앙!
다음 순간, 관로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흑풍(黑風)을 받아 낸 충격으로 나가떨어진 운휘가 멀쩡하게 몸을 일으킨 것이다.
‘내 바람을 막아 내다니. 보통이 아니군.’
일격으로 끝내지 못하자 관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운휘의 곁으로 다가온 위지혁이 말했다.
“바람을 일으키는 무공이로군. 운휘, 괜찮아?”
운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난 위력이야. 계속 맞았다간 위험하겠어.”
위지혁은 굳은 표정으로 관로를 응시했다.
‘방금의 일격은 분명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금강불괴인 운휘에게 이 정도 충격을 입히다니…….’
위지혁은 태광의 압도적인 무력을 마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흥미가 생기는군. 얼마나 버틸지 보자.”
차갑게 중얼거린 관로는 소선을 허공에 두 번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바람이 응집되며 두 개의 구체를 만들어 냈다.
“흑풍. 쌍두사(雙頭蛇).”
콰앙! 바람의 구체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었다.
운휘와 위지혁은 곧장 측면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바닥을 굴러 자세를 잡은 운휘에게, 관로가 쇄도했다.
“흑풍. 압살(壓殺).”
관로가 소선을 내리치자 묵직한 풍압(風壓)이 느껴졌다.
운휘는 칠절매화검의 풍창파벽(風窓破壁) 초식으로 검을 휘둘러 관로의 공격을 받아 냈다.
직후, 운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악!”
한 번 공격을 막았을 뿐인데, 전신의 진기를 전부 쓴 듯했다.
머리가 띵해지고 팔다리가 미친 듯이 떨렸다.
마치 하늘이 아래로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이었다.
‘도제의 밑에서 수련하기 전이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
관로는 운휘를 둘로 쪼개 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격이 막히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단단하다. 마치 금강석을 친 것 같군.’
그사이, 위지혁이 관로의 배후를 잡는 데 성공했다.
‘운휘가 벌어 준 기회야. 전력으로 공격한다.’
위지혁의 검신에서 녹색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검이 옥빛 궤적을 그리며 관로를 노렸다.
쩌엉! 관로는 몸을 돌리며 소선으로 검을 막아 냈다.
직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소선을 쥔 손이 검게 물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독이다. 이놈의 검에 독기(毒氣)가 서려 있어!’
위지혁은 관로가 당황한 틈을 타 초식을 전개했다.
파파파파파팟!
검의 잔상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관로의 전신 급소를 찔렀다.
매화영롱검 22초식, 암향추월(暗香追越)이었다.
관로는 혀를 차며 위지혁의 찌르기를 피해 물러났다.
‘기가 차는군. 도사의 몸으로 독공을 익혔단 말인가?’
위지혁은 거리를 좁히며 집요하게 관로를 공격했다.
‘거리를 벌리면 조금 전처럼 검은 바람이 날아들 것이다.’
위지혁이 분전하는 사이, 충격에서 벗어난 운휘가 가세했다.
‘어중간한 공격은 저 괴물에게 먹히지 않을 거야.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일격을 날려야 한다.’
우우웅!
검신이 진동하며 푸른 검강(劍罡)이 맺혔다.
운휘는 바닥을 박차고 관로를 향해 유성처럼 쏘아져 나갔다.
칠절매화검 7초식, 허무적멸(虛無寂滅).
빠른 속도로 돌격한 다음, 그 기세로 검을 내리치는 초식.
내력을 남김없이 쏟아 낸 일검(一劍)은, 세상에 자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쩌엉! 관로가 들고 있던 소선이 부러졌다.
운휘의 검이 관로의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칼날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사이에 두고 멈췄다.
검은 바람이 관로의 전신을 감싸며 그를 보호하고 있었다.
“흑풍. 풍신갑(風神鉀).”
관로는 일그러진 얼굴로 운휘를 노려보았다.
“이 개 같은 애송이 새끼가……. 내 소선을 부러뜨려?”
관로는 손을 뻗어 흑풍을 쏘아 보냈다.
쩌엉! 검은 바람이 운휘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크억!”
운휘는 피를 토하며 한참을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금강불괴의 신체가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
“운휘! 젠장…….”
위지혁이 고개를 돌린 순간, 관로의 장풍이 불어닥쳤다.
퍼억! 위지혁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크으으……. 으윽.”
위지혁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을 토했다.
‘빌어먹을. 폭혈기공의 부작용이…….’
내공이 역류하며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주화입마의 신호로구나. 어서 빨리 운공을 해야 하는데…….’
관로가 위지혁을 향해 걸어왔다. 이대로 있으면 주화입마로 죽기 전에 그의 손에 죽을 판국이었다.
“제법 버텼다. 화산에 백매화 말고도 이런 재목이 있었나.”
위지혁은 비틀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일어나야 한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관로는 비웃음을 내뱉으며 손을 들었다.
“쓸데없는 발버둥은 그만해라. 이만 편하게 해 주마.”
관로의 손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위지혁은 분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여기까지인가. 운휘만이라도 살리고 싶었는데.’
바로 그 순간, 허공을 가르며 한 줄기 검강이 날아왔다.
콰앙!
관로는 곧장 흑풍을 날려 검강을 막아 냈다.
“네놈은 또 누구냐.”
위지혁은 관로의 앞을 막아선 사내를 멍하니 응시했다.
“혀, 혁련 사숙. 사숙이 어찌…….”
그는 바로 이건의 사제였던 매화검수 혁련위였다.
매화검투에서 부정을 저지른 일로 근신 처분을 받았던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혁련위는 침착하게 말했다.
“피해라. 여긴 내가 막고 있으마.”
“사숙. 안 됩니다! 그자는 사숙이 상대할 수 있는…….”
“나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사형과의 약조를 지킬 것이다.”
“네?”
혁련위는 대답하지 않고 관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관로는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굴 막겠다고? 주제도 모르는 놈이…….”
카앙! 관로는 풍신갑으로 혁련위의 검을 막은 다음, 벼락처럼 빠른 동작으로 장력을 내쏘았다.
퍼억! 장력에 적중당한 혁련위가 울컥 피를 토했다.
관로는 혁련위의 목을 붙잡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사숙……. 사숙! 빌어먹을! 사숙을 내려놔라!”
“지혁아…….”
혁련위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힘겹게 말했다.
“사형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부탁했다. 너를……. 너를 지켜 달라고……. 그분은 마지막까지 너를 걱정했…….”
“사숙!”
“반드시 살아남도록 하거라. 반드시…….”
가만히 듣고 있던 관로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물겨워서 더는 못 들어 주겠군.”
콰직!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한 차례 부르르 떨던 혁련위의 몸이 축 늘어졌다.
관로는 혁련위의 시신을 대충 던지며 말했다.
“걱정 말거라. 너도 이놈 곁으로 보내 줄 테니.”
위지혁은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부릅뜬 그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
그 시각, 원로원에서의 전투도 끝이 났다.
“크윽, 쿨럭…….”
찬야는 검으로 몸을 지탱한 채 기침을 했다. 그때마다 입에서 피가 튀었다.
고개를 돌리자,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채 쓰러진 매화검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강하다. 매화검수가 전부 달려들었는데도 이길 수 없단 말인가…….’
초반 그들은 완벽한 매화검진을 펼치며 마휘란을 몰아붙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찬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전혀 몰랐어. 놈이 진법의 약점을 찾고 있었을 줄은…….’
결국 매화검진을 파악한 마휘란이 반격을 시작했고, 진형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 명이 죽자 찬야가 그 자리를 대신하며 분전했으나, 결국 진법은 무너지고 한 명씩 차례대로 쓰러졌다.
이화정은 홀로 마휘란과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커억!”
이화정은 마휘란의 검에 복부를 찔리며 비명을 토했다.
“이화정 사숙!”
찬야가 폭혈기공을 사용한 채 마휘란을 향해 쇄도했다.
마휘란은 이화정을 발로 차 넘어뜨린 다음, 찬야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가 효초아에게서 받은 무공은 마광유영검(魔光遊泳劍).
검은 섬광을 번득이며 날아드는 그의 검격은, 마치 악몽과도 같았다.
채채챙!
세 합 만에 찬야는 어깨와 다리를 깊게 베이고 말았다.
휘청거리는 그에게,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검에 재능이 있군. 아쉽지만 죽어라.”
찬야는 떨어지는 칼날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미안. 남 사제. 다들……. 먼저 갈 것 같다.’
푸욱! 칼이 심장을 파고드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이건 내 소리가 아니야.’
눈을 뜬 찬야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광경을 마주했다.
일 장로, 노백이 자신의 몸으로 마휘란의 검을 받은 것이다.
“하, 할아버지…….”
멍하니 중얼거리던 찬야가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할아버지-!!!”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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