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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108화 (108/164)

<108화>

홍룡표국(紅龍鏢局)(1)

이틀 뒤, 위지혁은 사천의 당가로 떠났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낸 아픔을 쉽게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 그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남량은 홍룡표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수련에 매진했다.

오전에는 이화정과 함께 매화천수검의 비기, 연화세계를 터득하는 데 집중하고, 오후에는 찬야, 유라, 운휘와 대련했다.

탁! 파파팟!

남량과 유라의 목검이 허공에서 격렬히 부딪쳤다.

남량은 실전처럼 전력을 다해 유라를 밀어붙였다.

“뭐 하고 있나! 정신 차려라 유라!”

휘리릭. 퍼퍼퍼퍽!

남량은 날카로운 검격으로 유라의 전신을 마구 두들겼다.

유라는 이를 악물고 차오르는 비명을 삼켰다.

“적은 계속해서 움직인다. 네 일격을 성공시키려면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능력을 더욱 키워야 해.”

남량은 말하면서 ‘낙영용섬, 난참(亂斬)’을 펼쳤다.

낙영용섬의 섬광 같은 일격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유라는 다급히 목검을 세워 막았으나, 이미 늦었다.

퍼퍼퍼퍼퍽!

목검을 놓친 유라가 비틀거리며 연무장 바닥에 쓰러졌다.

남량은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수고했다. 어제보다 움직임이 더 좋아졌어.”

유라는 남량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남량은 신유유합의 능력으로 유라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래도 아직 멀었어. 태광 같은 자들을 상대하려면.”

“빠르게 격차를 좁혀 나가는 중이야. 서두르지 마라.”

유라와의 대련이 끝나자 남량은 찬야를 불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던 운휘가 말했다.

“형님! 찬야가 일다경 전에 측간으로 가선 안 오고 있어요.”

“그럴 줄 알았어. 금방 찾아올 테니 기다려.”

남량은 살벌한 표정으로 목검을 든 채 연무장을 나섰다.

정확히 반 각 뒤, 찬야는 뒷목을 잡힌 채 질질 끌려왔다.

그는 이전에도 두 번 정도 연무장에서 탈주를 시도했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하고 번번이 잡혀서 돌아왔다.

퍼퍼퍼퍼퍽!

남량은 찬야의 머리를 연속으로 내리치며 말했다.

“크악! 남 사제! 이러다 몸의 뼈가 전부 아작 나겠어! 제발 좀 살살 해 줘!”

“걱정하지 마라. 내가 신유유합으로 전부 붙여 줄 테니까.”

“고통! 고통이 문제라고! 끄아악! 내 팔! 내 다리!”

“내 동작을 예측해라! 비명만 지르지 말고 피해!”

운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내가 금강불괴여서 정말 다행이다.’

대련이 끝난 뒤, 남량은 세 명을 불러 말했다.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 너희의 실력은 마교의 간부들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 당장 칠령귀의 한 명과 일대일로 붙게 된다면 십초지적(十招之敵)도 안 될 거야.”

낙양에서 칠령귀의 강함을 실감했던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태광은 칠령귀 중 그 실력이 하위에 위치한 자였다.

“너희는 그동안 수많은 강자들을 상대로 실전 경험을 쌓으며 빠른 속도로 강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고, 적들은 기다려 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결정을 내렸어.”

“무슨 결정?”

유라의 물음에, 남량이 대답했다.

“나는 너희들에게 폭혈기공을 전수할 생각이다.”

찬야는 깜짝 놀랐다.

“폭혈기공이라면……. 유 도장님의 무공 말이야?”

남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폭혈기공은 내공을 일시적으로 증폭시키는 기술이다. 광폭제를 먹은 것처럼 잠깐이지만 한계를 초월하는 힘을 얻게 되지. 지금 너희의 경지는 절정의 끝자락까지 도달해 있어. 만약 폭혈기공을 동반한다면 일시적으로 초절정의 고수들마저 상대할 수 있게 될 거야.”

그동안은 이 무공의 부작용 때문에 일부러 가르치지 않았다.

허나 이제는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남은 시간 동안 남량은 세 사람에게 폭혈기공을 가르쳤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남량이 홍룡표국으로 떠날 때가 되었다.

화산을 떠나기 전날 밤, 그는 동료들을 불렀다.

찬야는 가져온 술병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 반년 동안 못 보는데 가기 전에 술 한잔해야지.”

“미안한데 그런 거 아니야.”

남량이 고개를 돌렸다.

“떠나기 전에 해 줄 말이 있어서 불렀다.”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말해 왔지만 너희의 재능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을 정도야. 그런데 문제는, 남북 십성과 같이 힘과 경험을 가진 스승이 곁에 없다는 거다. 너희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같은 스승이 반드시 필요해.”

남량은 품에서 서찰 세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서찰을 펼친 세 사람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찬야가 받은 서찰에는 남북 십성의 검제(劍帝). 태화 진인의 이름이.

운휘가 받은 서찰에는 남북 십성의 도제(刀帝). 팽인호의 이름이.

유라가 받은 서찰에는 남북 십성의 검성(劍星). 남궁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서찰에 적힌 내용이었다.

“한 달 전에 내가 그들에게 서찰을 보냈다. 너희들을 잠시 초청해 가르쳐 달라고. 보다시피 좋다는 답서가 왔어.”

“남 사제…….”

“나름 고민을 해서 정한 거다. 찬야 너는 검의 경지를 추구하고 있으니 깨달음을 얻은 검제에게, 운휘 너는 가장 성향이 잘 맞는 도제에게, 유라 너는 네가 가진 장점을 모두 살릴 수 있는 검성에게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지만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북 십성이 어떤 존재인가. 무림계의 정점에 있는 자들이다.

그런 존재들에게 동료의 가르침을 청한다고 순순히 허락한다?

심지어 같은 문파도, 가문도 아닌 외인을?

그건 남량이 강호를 여러 번 구한 영웅이라 해도 불가능했다.

그래서 남량은 남북 십성들을 설득했다.

찬야와 유라, 운휘의 재능이 결코 후계자들에 뒤지지 않으며 그들을 가르치면 장차 마교와의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할 것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장담한다고.

그의 간절한 설득이 결국 남북 십성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물론 남궁월과 팽자엽, 진공 등 후계자들이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준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남 사제. 너는 왜 이렇게까지 우리를…….”

유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남량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그저 내가 말한 것을 지키려 했을 뿐이다.”

“아…….”

세 사람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답을 찾아 줄게. 강해지게 해 준다고. 그러니 같이 수련하자.’

‘지금처럼 열심히 하면 언젠가 남북 십성에 준하는 검호가 될 수 있을 거다.’

‘평생 내 경지에는 못 올라도, 남들이 오르지 못한 경지에는 오를 수 있게 해 주지. 약속해.’

남량은 정말 그 말을 지키고 있었다.

그 순간, 찬야와 유라, 운휘는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남자의 등을 보고 걷기를 정말 잘했다고.

“망할 놈아. 너에게 진 빚은 평생 갚아도 모자랄 거다.”

유라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기대에 부흥하도록 최선을 다하마. 반드시 강해질 거다.”

찬야도 싱긋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남 사제 말대로 최강의 검호가 되지 않으면 곤란하겠는데? 하하.”

마지막으로 운휘가 가슴을 치며 크게 외쳤다.

“형님. 열심히 할게요. 뼈가 부서지도록 노력할게요. 꼭!”

남량은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웃었다.

“당연히 그래야지. 위지혁도 독공을 전수받으면 엄청 강해질 테니 긴장하는 게 좋을걸? 말했던 대로, 내가 돌아왔을 때 성취가 가장 낮은 놈에게 정신개조술을 할 테니까 말이야. 하하하!”

***

다음 날, 남량은 세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화산을 내려왔다.

그는 홍룡표국으로 가기 전, 맡긴 검을 찾기 위해 대장간으로 향했다.

“자네 왔구만. 검은 연마를 끝내 두었네.”

남량은 구풍이 화양검을 건네받아 뽑아 보았다.

‘훌륭하다. 역시 대단한 솜씨로군.’

남량이 멍하니 검신을 바라보고 있는 때였다.

구풍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옷이 잘 어울리는구만.”

“감사합니다.”

남량은 웃으며 검을 도로 집어넣었다. 구풍이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

고개를 돌린 남량은 동쪽 하늘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하남성 개봉(開封)으로 갑니다.”

***

홍룡표국(紅龍鏢局)은 하남성 개봉에 위치한 표국으로, 전국적으로 이름난 표국은 아니지만 수십 차례 표행을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실패가 없어 주변의 신임을 받는 곳이었다.

최근, 천하 오대 상단 중 한 곳인 미령상단(美鈴商團)에서 북해와의 교역 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홍룡표국에 의뢰를 넣었다.

안전한 운반으로 명성을 떨친 홍룡표국이었지만, 그들에게도 북해는 결코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변수도 많아지고 준비해야 될 것도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홍룡표국은 북해로 떠날 준비를 마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표물이 또 들어온다! 어서 받아! 기록 확실하게 하고!”

“표사(鏢師)에 지원하러 왔다고? 그럼 저쪽으로 가시오.”

“인마! 그거 중요한 거니까 조심해서 다루라고 했잖아! 그게 네놈 몸값보다 더 비싼 거야!”

서기가 눈에 불을 켜고 쟁자수들을 다그치는 모습을 보며, 이번 표행을 맡은 대행수 고담(顧談)이 총표두(總鏢頭) 진표(陳漂)에게 말했다.

“다들 예민해 보이는군요.”

“중요한 표행이니까요.”

대행수 고담은 홍룡표국의 국주 장휴(張携)가 가장 신임하는 인물이었으며, 총표두 진표 또한 강호에 명성이 자자한 고수였다.

“이번 표행, 위험하겠지요?”

고담의 물음에 진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미령상단이 북해와의 교역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서 다른 오대 상단의 견제가 심할 터인데……. 분명 저희 표행을 가로막으려 들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고담은 긴 한숨을 내뱉었다.

“에휴. 그래서 이 의뢰는 거절하시라고 국주님께 말씀드렸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 별 이유 없이 표행을 거절했다간 그간 쌓아 온 신용까지 한순간에 잃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진표의 말에 고담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건 알지만 표행에 실패해서 다 죽으면 그게 가장 문제입니다.”

진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저희 표국의 표사들은 최소 일류의 실력자들이며 표두들 중에는 절정 고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구요. 표행의 안전은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다 초절정 고수라도 나타나면 어떡합니까?”

“하하. 대행수께서는 무림에 대해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초절정 고수씩이나 되는 자들은 굳이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 법입니다.”

“그래도……. 마음 같아서는 우리를 보호해 줄 초절정 고수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정말 든든할 텐데.”

고담이 중얼거리는 때였다. 멀리서 보초를 서던 사내가 달려와 말했다.

“대행수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네. 화산파에서 오신 분이라고…….”

고담의 표정이 밝아졌다.

“국주님께서 화산파에 도움을 청하셨다고 했는데, 도와줄 사람이 온 모양입니다.”

진표도 기대에 찬 눈으로 말했다.

“잘되었습니다. 화산파는 강호에 알려진 유명한 검파이니 분명 대단한 인물이 왔을 겁니다.”

“그럼요! 으하하! 역시 하늘은 우리 표국을 버리지 않았어!”

고담이 보초에게 말했다.

“그분을 정중하게 모셔 오게.”

“알겠습니다.”

고담과 진표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우리 표행의 앞날이 밝군요.”

“네. 국주님의 인맥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잠시 후, 보초가 화산에서 온 도사를 데려왔다.

그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고담과 진표의 표정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뭐야. 왜 어른이 안 오고 애가 왔어?’

‘심지어 여자가 온 것 같은데……. 장난하나 지금?’

매화 무늬가 그려진 새하얀 도복 차림의 사내는 두 사람의 불신 가득한 눈빛을 받으며 피식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내는 정중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남량이라고 합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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