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무림대회(武林大會)(8)
후두두둑-.
찬야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들며 몸을 일으켰다.
폭발 직후, 검막으로 몸을 보호한 덕분에 멀쩡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시합장에 폭발이라니.
분명 빛의 기둥이 치솟고 하늘이 붉게 물든 건 기억났다.
그럼 이 폭발도 그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찬야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여전히 피처럼 붉은색을 하고 있었다.
‘불길하다.’
찬야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합장은 이미 아수라장으로 변해 있었다.
사방에 비명과 울음소리가 난무했다.
찬야는 아연한 표정으로 신음을 흘렸다.
‘일단 유라와 위지혁부터 찾아야 해.’
두 사람의 안위가 걱정된 찬야가 찾아 나서려는 때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위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야! 여기야!”
찬야가 고개를 돌리자 위지혁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간 찬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해서 다행이다.”
“너야말로 무사했구나.”
“유 사매는 어디 있어?”
“모르겠어. 빌어먹을.”
위지혁이 욕설을 내뱉었다. 그때 한 곳에서 도움을 청하는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의 잔해에 깔린 한 사내가 보였다. 두 사람은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다.
“도사님들! 제발 좀 살려 주세요!”
사내가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구해 줄 테니.”
찬야는 내력을 모아 건물 잔해를 들어 올렸다. 방금 청랑과 격전을 치른 터라 팔이 덜덜 떨려 왔다. 그사이 위지혁이 사내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위지혁이 사내에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네네. 괜찮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직후, 사내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도사님들! 뒤! 뒤! 뒤에 조심-.”
사내의 말이 끝나기도 채 전이었다. 찬야는 등 뒤에서 누군가 달려드는 것을 느끼고 벼락처럼 검을 뽑아 휘둘렀다.
스걱-.
찬야를 습격한 자는 목이 베여 쓰러졌다.
찬야는 일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목을 베는 감촉이 꼭 두부를 베는 듯한…….’
찬야는 쓰러진 사내에게 다가가 그를 살폈다.
그 순간, 찬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뭐야. 이거 시체 아니야?”
옆으로 다가온 위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건 시체였다. 그것도 죽은 지 최소 한 달은 되어 보이는 시체. 그런데 방금 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는가?
찬야와 위지혁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사내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귀신! 귀신!”
두 사람은 비명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직후, 두 사람은 똑같이 비명을 질렀다. 땅에서 뼈만 남은 손이 불쑥 튀어나온 것이다! 심지어 하나가 아니었다. 이어 두 개의 손이 더 튀어나왔는데, 하나는 아직 살점이 군데군데 달라붙어 있었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손 다음에는 팔이, 팔 다음에는 상체가 튀어나왔다.
땅에서 올라온 시체들은 비틀거리며 괴상한 울음을 흘리다 천천히 찬야와 위지혁을 향해 걸어왔다.
“악몽이다. 이건 악몽이야. 누가 제발 나 좀 깨워 줘…….”
“내가 아까 확인해 봤는데, 이거 꿈 아니야. 정신 차리고 싸울 준비나 해.”
찬야와 위지혁은 울먹거리며 검을 들었다.
***
같은 시각,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유라도 움직이는 시체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허억. 허억…….”
시체 세 구를 베어 버린 유라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 남궁월과의 대결로 인해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또다시 검을 휘두르니, 천하의 그녀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 지경이었다.
그때, 다섯 구의 시체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유라는 이를 악물고 삼매진화의 능력을 발현했다.
화르륵!
불꽃을 머금은 검이 시체들을 베고 지나갔다.
갈라진 틈 사이로 불길이 치솟으며 시체들을 태웠다.
그렇게 다섯 구를 더 해치운 유라가 휘청거렸다.
뒤로 넘어지려던 그녀를, 누군가 붙잡아 세웠다.
‘누구지?’
고개를 돌린 유라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의 전투로 망신창이가 된 남궁월이 그곳에 서 있었다.
“버거워 보이는데, 도와 드릴까요?”
남궁월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유라가 대꾸했다.
“그러기에는 그쪽도 상태가 별로인 것 같은데요.”
“하하.”
남궁월은 힘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주변에 있던 시체들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서로 등을 맞대고 검을 들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에 가장 적합한 전술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불사검협.”
“밀리면 가만 안 둬요.”
시체들은 빠른 속도로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궁월은 창궁비연검의 초식을 펼쳐 시체들을 베어 냈다.
유라는 삼매진화의 불길을 퍼뜨리며 시체들을 태워 버렸다.
방금 전까지 서로 검을 부딪쳤던 그들이, 공동의 적을 앞두고 힘을 합쳐 싸우고 있었다.
“빌어먹을. 목을 잘라도 계속 덤벼드는군!”
남궁월은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시체는 반듯하게 쪼개진 뒤에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대체 누가 이런 사술(邪術)을 부리는 걸까요?”
“당장 떠오른 곳이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군요.”
두 사람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흑룡회.”
정확히는 마교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유라는 분노로 이를 부득 갈았다.
‘악랄한 것들. 사술로 시체들을 조종하다니!’
시체들은 쓰러뜨려도 계속해서 밀려들었다.
결국 두 사람의 체력이 한계에 다다랐다.
아니, 이미 한참 전부터 체력은 한계였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을 뿐.
미처 베어 내지 못한 시체 한 구가 남궁월의 목을 향해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쇄애액! 촤악!
허공을 가르며 날아든 일검이 시체의 손목을 날려 버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남궁월을 구해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청랑이었다. 그는 유라와 남궁월을 향해 말했다.
“저도 돕겠습니다!”
당장 한 사람의 손길이 급한 차였다. 청랑이 합류하자 그만큼 남궁월과 유라에게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들었다.
뒤이어 포훈과 팽자엽, 진공, 당룡 당호 형제가 합류했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들이 손을 보태자 제법 단단한 방어진이 만들어졌다.
“잠시만 저를 지켜 주세요. 운기조식을 해서 내력을 조금이라도 회복할 테니!”
“알겠소!”
그들은 남궁월이 운기조식을 끝낼 동안 그녀를 보호했다.
운기조식이 끝나 어느 정도 내력을 회복한 남궁월은 벌떡 일어나 검을 쥐었다. 그녀는 시체들을 마구잡이로 베며 말했다.
“불사검협! 어서 운기조식을 취해요! 당신의 능력은 시체들을 상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유라는 남궁월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것에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한편, 무림맹 총대주 양악은 칠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림맹 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밀려드는 시체들을 막아 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그는 높은 곳에 있어 무림맹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가히 지옥도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땅을 파고 올라온 시체들이 사람들을 물어뜯어서 죽였다. 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똑같이 시체가 되어 움직였다.
그렇게 생겨난 수천, 수만의 시체들이 밀려드는 광경은 마치 붉은 파도처럼 보였다.
“총대주님!”
그때 그의 곁으로 흑영대주 비설이 다가왔다.
악양은 조금 밝아진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비 대주. 외부에 이 사실을 알리셨습니까?”
비설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틀렸습니다. 저 정체불명의 붉은 장막이 낙양 전체를 가로막고 있어 도저히 나갈 수가 없어요. 전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완전히 갇혀 버렸습니다.”
“그럴 수가…….”
양악의 표정이 굳었다. 그가 침착하게 물었다.
“허면 방도가 없겠습니까?”
비설이 빠르게 말했다.
“저 붉은 장막은 필시 어떤 진법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진법에는 핵심이 있고, 그것을 파괴하면 진법을 부술 수 있습니다. 지금 모든 대원들을 동원해 진법의 핵심을 찾고 있어요. 그리고…….”
퍼억!
비설은 바로 옆에서 달려드는 시체의 머리를 장풍으로 날려 버린 다음, 말을 이었다.
“맹주님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계십니다.”
“……아!”
“낙양 전체를 뒤덮은 진법이니 맹주님이 계신 곳에서도 분명히 보일 것입니다. 그분이 오시면 이 상황을 극복해 낼 수 있어요. 총대주님은 그때까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이곳을 지켜 내셔야 합니다.”
아직 희망은 있다. 양악은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반드시 지켜 낼 것입니다! 반드시!”
***
남량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로 반쯤 무너진 천장이 보였다.
‘결국 혈천마화대법이 발동한 것인가.’
유회와 싸우던 도중, 비석에서 폭발하듯 붉은 빛의 기둥이 솟아오르며 주변으로 충격파가 터졌다. 남량은 즉시 암영을 끌어당긴 다음 사자금강의 능력을 발현했다.
충격의 여파로 잠시 기절한 듯했다.
‘암영은 어디 있지?’
남량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행히 암영은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암 조장. 정신 차리십시오.”
남량은 암영의 몸에 진기를 약간 불어넣으며 그를 깨웠다.
정신을 차린 암영은 남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남 도장. 자네가 나를 살렸구만. 고맙네.”
남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암영이 물었다.
“헌데 여기는 어디인가?”
“비석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럼 진법이 발동했단 소리인가.”
암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지금 낙양은 완전히 시체의 바다가 되어 있겠군.”
그때 한 무리가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검은 무복을 입은 흑영대와 매화 문양의 도포를 입은 운휘였다. 그들은 남량과 암영을 발견하고 외쳤다.
“조장님!”
“형님!”
남량은 곁으로 다가온 운휘에게 물었다.
“운휘. 네가 왜 여기 있어?”
“형님이 날이 밝도록 돌아오지 않으셔서 하는 수 없이 탈락자인 제가 찾아 나설 수밖에요. 그러다 흑영대를 만나서 같이 왔어요.”
흑영대는 부상을 입은 암영을 부축했다.
암영은 다급한 어투로 대원들에게 물었다.
“지금 바깥의 상황은 어떠한가.”
“낙양 전체에 시체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총대주께서 맹의 대원들을 지휘해 시체들을 막고 계십니다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남량은 고개를 돌려 흑영대와 암영에게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진법의 핵을 찾아 파괴해야 합니다.”
“그래. 조를 나누어 수색하도록 하세.”
“칠령귀가 핵을 지키고 있으니 찾는다면 무리하게 덤비지 말고 신호를 보내십시오.”
“알겠네. 대원들 중 두 명은 밖으로 나가 이 사실을 비설 대주에게 알리도록 하고, 나머지는 진법의 핵인 비석을 찾는다.”
“존명.”
남량은 운휘와 함께 진법의 핵심을 찾아 움직였다.
역사에 남을 악몽의 밤.
낙양혈사(落陽血史)의 시작이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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