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무림대회(武林大會)(6)
채채챙!
가볍게 세 합을 주고받은 청랑과 찬야는 떨어져 거리를 벌렸다. 청랑은 눈을 가늘게 뜨며 찬야를 응시했다.
‘찬야.’
청랑이 찬야의 이름을 들은 건, 대략 오 년 전쯤이었다.
한창 남북 십성, 용제(龍帝)의 가르침을 받을 때였다.
하루는 용제가 화산을 방문하고 돌아와 말했다.
“화산에서 엄청난 재능을 가진 검사를 보았다.”
청랑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용제는 본래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청성파 최고의 기재인 청랑조차 칭찬 한 번 들어 본 적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엄청난 재능’이라는 극찬이 나올 줄이야.
“매화검선의 몸이 멀쩡해 그의 검술을 제대로 전해 받았다면 분명 최고의 검사가 되었을 텐데……. 아쉽군.”
용제는 심지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때부터 청랑은 찬야라는 검사가 궁금해졌다.
용제가 인정한 재능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전야제에서 찬야와 마주쳤을 때,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그를 시험해 보았다. 움직임이 제법 뛰어났지만, 자신을 뛰어넘을 재능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했다.
‘결국 스승님의 평가는 오 년 전의 기준일 뿐, 남북 십성의 가르침을 받아 무공을 갈고닦은 나에게는 미치지 못한다.’
청랑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용제의 검법인 청성파의 청운적하검(靑雲赤霞劍)은 무당파의 부드러움[流]과 남궁세가의 날카로움[銳]을 동시에 담은 검이었다.
‘일단 외곽에서 천천히 파고들까.’
신중하게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청랑은 눈을 부릅떴다.
일순 찬야의 모습이 사라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만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찬야가 검이 된 것인가? 아니면 찬야가 사라진 것인가?
한 가지 단어가 청랑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신검합일(身劍合一).
검과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
검의 최고 경지에 들어가는 관문이라 들은 적 있었다.
그렇다면, 찬야는 신검합일의 경지에 들었다는 말인가?
청랑은 이를 악물었다.
“과연, 그리 대단한 재능이란 말인가.”
“응?”
청랑의 중얼거림을 들은 찬야는 눈을 깜빡였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이쪽도 전력으로 상대해 드리지요.”
청랑은 경공을 펼치며 단숨에 찬야의 앞으로 접근했다.
채앵!
검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청랑은 검의 속도를 더욱 높여 휘둘렀다. 찬야는 침착하게 공격을 방어해 냈다.
채채채챙!
검속이 더욱 빨라졌다. 두 사람은 이제 관중들이 눈으로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쇄애애액!
청랑은 찬야의 검을 흘림과 동시에 반격을 가했다. 찬야는 아슬아슬하게 청랑의 검을 피해 내며 거리를 벌렸다.
파파파팟!
청랑은 내버려 둘 생각이 없다는 듯, 바람처럼 달려들어 거리를 좁혔다. 찬야는 냉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역시 보기와는 다르게 거친 면이 있다니까.”
퍼억!
청랑은 찬야의 가슴팍을 걷어차 밀어낸 다음, 청운적하검의 수류운공(水流雲空) 초식을 펼쳐 찬야의 전신 요혈을 노려 왔다.
‘이건 위험하다.’
찬야는 즉시 내공을 끌어올리며 이십사수매화검법의 21초식, 화란춘성 초식을 펼쳤다. 그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날아드는 검격을 모조리 쳐 내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청랑이 빈틈을 노리고 검을 휘둘렀다.
쇄애애액!
찬야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젖혀 검을 피해 냈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렸다. 조금만 피하는 것이 늦었다면 머리가 허공에 떠 있었을 것이다.
과연, 남북 십성의 후계자는 강하다.
찬야는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우웅.
청랑이 검을 수직으로 세우고 검기를 집중시켰다. 큰 초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무대에 돌풍이 몰아치며 찬야의 도포 자락과 머리카락이 거칠게 휘날렸다.
“청운적하검 45초식-.”
청랑이 눈을 번득이며 검을 휘둘렀다.
“운개견일(雲開見日)!”
콰아아앙!
부채꼴로 뻗어 나간 검기가 찬야를 집어삼킬 듯 밀려들었다. 좁은 비무대 위에서는 딱히 피할 곳도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찬야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검을 들었다.
검과 하나가 된 자는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다.
파팟!
찬야는 바닥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동시에 검을 내리그었다.
직후, 청랑의 절기는 찬야의 검에 의해 둘로 갈라졌다.
청랑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쇄애액!
단숨에 파고든 찬야가 청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청랑은 다급히 뒤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나 완벽히 피하지 못해 가슴의 옷자락이 갈라졌다.
“당신은 대체…….”
청랑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승님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당신 같은 인재가 남북 십성의 후계자가 되었다면 분명 더 강해져 있었을 텐데.”
“스승이라면 이미 있습니다.”
찬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남북 십성만큼 훌륭한 스승이 말입니다.”
***
채채채채챙! 채채챙!
유라와 남궁월은 거칠게 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쇄애애액!
남궁월의 검격이 유라의 목을 노려 왔다. 유라는 목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남궁월의 어깨를 찔러 들어갔다.
채앵!
남궁월은 검을 회수해 유라의 검을 막아 냈다.
유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한 거지?’
쉬이익!
유라의 검이 복부를 파고들었다.
남궁월은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제법 흥미가 생기는군. 어디, 조금 더 밀어붙여 볼까.’
남궁월은 검속을 더욱 높이며 유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챙!
창궁비연검의 변화무쌍한 검격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유라의 몸에 상처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날카롭다. 마치 열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것 같아.’
유라는 검에 베이는 와중에도 냉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공격을 읽어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야.’
집중하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초식을 변환하는 찰나의 순간, 방비가 허술해지는 틈이!
마침내 기회를 잡은 유라는 눈을 번득이며 달려들었다.
촤악-!
유라는 남궁월의 검을 피하며 그녀의 어깨를 베는 데 성공했다. 남궁월은 눈살을 찡그리며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확실히…….”
남궁월은 유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이전에 비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것 같군요. 후계자들과 대등하지는 않아도 거의 근접한 수준입니다. 남북 십성의 가르침도 없이 이 정도까지 검기를 연마하다니, 정말 대단해요.”
“…….”
“하지만.”
남궁월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었다.
“제 앞에 서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군요.”
슈웅-!
직후, 남궁월의 신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유라의 뒤쪽으로 이동했다. 유라는 눈을 부릅떴다.
‘축지(縮地)?’
너무 쉽게 배후를 내줘 버렸다. 유라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이미 남궁월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쇄애애애액!
날카로운 검기가 유라의 전신을 난도했다. 창궁비연검의 가장 빠른 초식 중 하나인 풍운어수(風雲魚水) 초식이었다.
“크아악!”
유라는 피를 흩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지켜보던 관중들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남궁월은 몸을 빙글 돌리며 말했다.
“수고했습니다.”
그녀가 검을 회수하고 비무대를 내려가려는 때였다.
화르륵!
밝은 화광(火光)과 함께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깜짝 놀란 남궁월이 고개를 돌렸다.
분명 쓰러뜨렸다고 생각한 유라가, 불꽃을 몸에 두른 채 서 있었다.
“그건 설마……. 삼매진화의 경지?”
남궁월이 처음으로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멋대로 착각하지 마라. 남궁월.”
처억.
유라는 검을 들어 남궁월을 겨누었다.
“아직 시합은 끝나지 않았다.”
잠시 멍해져 있던 남궁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 투지, 마음에 드는군요.”
***
그 시각, 낙양의 지하 깊은 곳에서도 숨 막히는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쇄애애액!
남량이 날린 검강이 백귀 유회를 향해 날아들었다.
유회는 손에 든 장창을 내질러 남량의 검강을 막아 냈다.
유회가 남량을 상대하는 동안, 암영은 비석을 파괴하기 위해 몸을 날렸다.
“어딜 가려고?”
유회가 암영을 향해 한쪽 손을 뻗었다.
촤르륵!
그러자 그의 팔에 달린 쇠사슬이 뱀처럼 쏘아져 나가 암영의 발목을 휘감았다.
“크윽!”
암영은 단검을 꺼내 들고 쇠사슬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나 암영의 단검은 쇠사슬을 베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이럴 수가! 검기를 머금은 칼이 겨우 쇠사슬 따위에!”
유회는 낄낄 웃어 댔다.
“그건 한철로 만든 쇠사슬이거든. 헤헤. 검기는 통하지 않아.”
유회는 손을 휘둘렀다. 쇠사슬에 묶인 암영이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는 입에서 피를 토했다.
“쿨럭!”
유회는 암영을 죽이기 위해 창을 들었다. 직후, 남량이 벼락처럼 몸을 날리며 유회를 향해 쇄도했다.
“낙영용섬.”
섬전과도 같은 일검(一劍)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남량의 일격은 유회가 내지른 창끝에 가로막혀 버렸다.
슈슈슈슉!
유회의 창격이 구불거리며 날아들었다. 남량은 검을 휘둘러 유회의 창을 쳐 낸 다음 뒤로 물러났다. 유회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강하다. 정말 강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한걸? 아무래도 봐주면서 싸울 수는 없겠어.”
우우웅.
유회의 전신에서 검푸른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남량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좋지 않아.’
칠령귀는 사흉마, 복마십군과 함께 삼천위를 보좌하는 최강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들 중에서도 서열이 정해져 있었는데, 백귀 유회는 가장 최하위에 속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남량에게는 버거운 상대였다.
‘진법의 발동을 막기 위해서는 제물들을 죽이거나 진법의 축을 담당하는 비석을 부숴 버려야 하는데…….’
남량 자신은 유회가 가로막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암영은 상당한 충격을 받아 당분간 움직이기 힘들어 보였다.
‘빌어먹을.’
남량은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 유회를 쓰러뜨리고 진법의 발동을 막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우우웅.
그때, 지하 공간이 진동하며 비석에 새겨진 무양이 붉게 물들이 시작했다. 유회가 웃으며 말했다.
“잘 봐 둬. 이제 곧 진법이 발동할 테니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두 손을 높이 뻗으며 무언가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석에서 퍼져 나온 붉은 기운이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끄어억…….”
“으아악…….”
붉은 기운에 삼켜진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며 죽어 나갔다. 남량은 눈앞에 보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잠시 멍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암영은 치를 떨며 유회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그만두지 못하겠느냐!”
유회는 고개를 젖힌 채 광소를 터뜨렸다.
“낙양은 이제 죽은 자들의 도시가 될 거야. 산 사람들이 시체에 물어뜯겨 죽고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또 산 사람을 물어뜯어 죽이고……. 어때, 아주 끝내주는 광경이 될 것 같지 않아? 아아,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군.”
남량은 이를 부득 갈았다.
“그 전에 네놈을 수십 조각으로 잘라 죽여 버리겠다.”
파파팟!
남량은 재차 유회를 향해 달려들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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