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위지혁의 각성. 만독불침(萬毒不侵)(5)
끼이익.
낡은 창고의 문을 열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따라오너라.”
당지황은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남량과 위지혁은 서로 눈빛을 교환한 다음,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우릴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한참을 내려오자 썩은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지하실에 도착한 당지황은 가볍게 지풍(指風)을 날려 초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사방이 환해지며 지하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허억!”
지하실을 둘러보던 위지혁이 짧은 비명을 질렀다.
지하실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동물의 사체들. 그것도 몸의 일부분이 녹아내리고 부패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까 그 썩은 냄새는 이것들 때문이었군.’
남량은 눈살을 찌푸리며 당지황을 응시했다.
위지혁은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물었다.
“여기는 대체 어딥니까?”
“내 연구실이다.”
당지황은 지하실 벽으로 걸어갔다. 벽에는 커다란 곰 한 마리가 쇠사슬에 사지가 결박당한 채 죽어 있었다.
촤르륵.
쇠사슬을 풀어 곰의 사체를 바닥에 던진 당지황이 멍하니 서 있는 위지혁을 향해 손짓을 했다.
위지혁은 불안한 표정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어쩔 생각이지?’
당지황은 위지혁의 손을 붙잡고 쇠사슬을 칭칭 감기 시작했다. 위지혁이 당황하며 소리쳤다.
“왜왜, 왜 이러십니까?”
“입 다물고 있어라.”
당지황은 방금 전 곰처럼 위지혁의 사지를 꽁꽁 묶어 버렸다.
위지혁은 사슬에 묶인 채 짐승의 사체들을 응시했다.
‘나도 똑같이 죽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러자 몸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했다.
“두려우냐? 끌끌.”
당지황은 품에서 수십 개의 침을 꺼내 탁자 위에 가지런히 펼쳐 두었다.
“너는 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 남아 있도록.”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위지혁은 남량이 함께 있다는 것에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왜 저를 사슬로 묶는 거죠?”
“다 이유가 있으니까.”
당지황은 침의 상태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반 시진 동안, 이 침들을 통해 내 독기를 혈도로 밀어 넣을 것이다. 너는 밀려드는 독기를 정순한 도가 정통의 내력에 녹아내리게 만들어라. 반 시진 동안 네 몸속으로 수천 가지의 독이 파고들 것이니, 아마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순간이 될 것이다. 사슬은 네가 자해하거나 도망치려는 걸 막기 위함이다. 알겠느냐?”
위지혁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 그럼 죽는 거 아닙니까?”
“멍청한 놈. 가능성이 없다면 그동안 뭐 하러 짐승들을 죽여 가며 연구를 진행했겠느냐?”
당지황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덧붙였다.
“뭐, 네놈 정신력이 이 짐승 놈들보다 못한다면 애석한 일이다만.”
“…….”
위지혁은 대꾸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건 최강의 독인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로, 먼저 시전자의 몸을 만독불침(萬毒不侵)의 상태로 만드는 시술이다. 독공을 익히는 자들은 자신이 다루는 독에 익숙해져야 하지만 독의 위험성 때문에 다룰 수 있는 독은 매우 제한적이며 익히기도 까다롭다. 독수를 익힌 술사들이 항상 장갑을 끼고 다니는 이유도 신체가 독기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지. 만약 네가 만독불침의 신체를 만들게 된다면 그 어떤 극독도 마음대로 다스리고 조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떠냐. 생각만 해도 기대되지 않느냐?”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데.’
강해지고 싶어서 선택한 길인데, 졸지에 독사(毒死)하게 생겼다. 몸의 떨림이 더욱 거세졌다.
그때, 남량이 품에서 목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가주님. 시전자의 내력 크기에 따라 성공할 확률이 달라집니까?”
“물 한 잔에 먹물을 부으면 색이 검게 변하겠지만, 강물에 부으면 녹아 없어질 뿐이다. 같은 이치다.”
“알겠습니다.”
남량은 목함을 열고 안에서 매화단 한 알을 꺼냈다.
“삼켜. 도움이 될 거야.”
위지혁은 입을 벌리고 매화단을 삼켰다.
매화단이 혀끝에서 녹아내리며 환단의 영력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위지혁은 운공을 통해 영력을 어느 정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운공이 끝나자 당지황이 침을 들며 말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당지황은 그 전에 위지혁의 입에 질긴 소가죽을 물렸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혀를 깨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독기를 사용하는 도사라……. 흐흐. 만약 성공하면 이 당지황은 당가. 아니, 무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니 잘 버텨 내 다오. 내 최고의 작품이 되는 그날까지.”
위지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가오는 침을 응시했다.
‘버틴다. 반드시 버텨 낼 것이다!’
남량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버텨라. 반드시 버텨서 강해져라.’
침을 전부 놓은 당지황이 두 손을 펼쳤다.
직후, 그의 손이 점차 녹빛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손끝에서 독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우우웅.
독기가 침을 타고 위지혁의 몸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지금부터 반 시진.’
독기가 스며들자 위지혁의 피부가 검게 변색되기 시작했다.
위지혁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곧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윽!”
몸 안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누군가 칼로 내장을 마구 쑤시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크아악!”
위지혁은 짐승 같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를 결박한 사슬이 거칠게 흔들렸다.
“위지혁! 정신 차리지 못해!”
남량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순한 내력이 담긴 외침에 번쩍 정신을 차린 위지혁이 빠르게 눈을 굴렸다.
몸 안에 흐르는 독기를 흡수해야 한다.
끊임없이 내력을 돌린다. 도가의 정통한 내력과 매화단의 영력이 더해진 순수한 내력에 아주 조금씩 독기를 흘려서 녹여 내린다. 보통은 금방 중독되어 죽게 되겠지만…….
‘독왕의 연구를 믿자.’
그래. 지금은 그를 믿는 수밖에 없다.
위지혁은 혈도를 따라 내력을 운반하며 독기도 함께 운반했다. 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독기를 조금씩 제어하기 시작했다.
일주천을 끝내자 독왕의 말대로 아주 조금씩 독기가 흡수되는 것이 느껴졌다. 정순했던 내력이 혼탁해져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도사라고 불릴 수는 없겠군.’
도(道)를 닦는 도사가 독공을 쓰다니.
고통으로 정신이 아득해진 와중에 웃음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할 것이다.
힘에 미쳐 사도의 길을 걷는 자라고.
그래. 마음껏 비난하고 헐뜯어라.
힘을 얻어서 동료들과 함께 걸어갈 수만 있다면, 그들의 짐이 되지 않고 같이 싸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니까.
그게 내가 걷고자 하는 도(道)다.
“으으으으-!”
위지혁은 눈이 뒤집힌 채 소가죽을 악물었다.
어느새 독기가 그의 안면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남량은 눈살을 찌푸렸다.
‘독기를 흡수하는 속도보다 당지황이 독기를 밀어 넣는 속도가 더 빠르다.’
적어도 위지혁이 내력을 더 쌓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나? 남은 매화단을 전부 먹였어야 했나?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남량은 위지혁을, 그의 의지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우우웅!
대략 반각 정도 흘렀을 때였다.
힘겹게 버티고 있던 위지혁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위지혁!”
빌어먹을. 실패다!
그렇다면 당장 해독을 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위지혁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목 위까지 검게 변색되었던 피부가 조금씩 원래의 색을 되찾아 가고 있었다.
‘설마…….’
남량은 고개를 돌려 당지황의 표정을 살폈다. 당지황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그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위지혁이 독기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남량은 표정을 찡그리며 고개 숙인 위지혁에게 중얼거렸다.
“새끼가……. 놀랐잖아.”
그러나 남량의 입가에도 어느새 당지황과 같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이걸로 마교 놈들을 상대할 최강의 ‘무기’를 하나 더 손에 넣은 셈이다.
‘수고했다. 위지혁.’
그 뒤로 일은 한결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우웅.
모든 독기를 밀어 넣은 당지황은 손을 내리며 비틀거리다 의자에 앉았다. 남북 십성인 그도 지칠 정도로 상당히 힘든 작업이었던 것이다.
절그럭.
남량은 위지혁의 사지를 묶은 쇠사슬을 풀었다. 땅에 발을 딛고 선 위지혁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 내력이……. 이전과 달라졌어.”
당지황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제 어떠한 독도 네 목숨을 위협할 수 없다. 그리고 어떠한 독공도 마음대로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
당지황이 손가락을 튕기자 녹빛 구체가 위지혁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퍼엉-!
구체가 터지며 독기가 사방에 퍼졌다. 남량은 내력을 일으켜 독기를 차단했다. 그러나 위지혁은 독기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완벽한 만독불침이로군.”
독기를 거둔 당지황이 껄껄 웃었다.
“무림대회가 끝나면 당가로 오너라. 내 본격적으로 너에게 독공을 가르칠 것이니라.”
위지혁은 당지황을 향해 절을 올렸다.
독왕의 독공을 모조리 전수받게 되면, 위지혁은 최강의 독인(毒人)이며 화산의 검술을 쓰는 전무후무한 독인으로 탄생할 것이다.
뭔가 잡종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량은 도포를 벗어 위지혁에게 던졌다.
“너 지금 알몸이야. 이거라도 덮어.”
위지혁은 만독불침의 경지에 올랐지만 그의 옷은 아니었다.
“고맙다. 남 사제.”
남량은 도포를 걸치는 위지혁을 바라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문파에서 가볍게 넘기지는 않을 거다.”
“이미 각오하고 있어.”
위지혁은 덤덤하게 말했지만 최악의 경우 파문(破門)을 면치 못할 것이다.
당지황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화산의 장문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
“가주님께서…….”
“걱정하지 마라. 네놈 장문인도 이해할 테니까. 현 강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가 바로 그일 것이다. 뭐, 파문당하면 내 아들에게 말해 너를 양자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다. 하하하!”
위지혁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건 진짜 별로인데…….’
남량의 표정 또한 굳어져 있었다.
‘마교와의 전쟁.’
하루가 지날수록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자신을 포함한 매화오절은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
지금 수준으로는 삼천위는커녕, 그 휘하의 간부들조차 상대하지 못할 테니까.
‘시간이 촉박하다.’
어떻게 해야 더 강해질 수 있을까.
남량은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 날 아침, 일행은 떠날 채비를 마치고 객청 입구 앞에서 만났다.
“찬야. 몸은 좀 어때?”
“완전히 해독됐어.”
찬야는 팔을 빙빙 돌리며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런데…….”
일순, 유라가 눈살을 찌푸리며 위지혁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위지혁은 살짝 긴장했다.
‘뭐지? 이 녀석, 설마 눈치챈 건가?’
위지혁은 남량에게 네가 말했느냐고 눈짓을 보냈으나, 남량은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저었다.
유라는 위지혁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소리쳤다.
“위지혁, 너!”
‘젠장!’
위지혁은 이를 악물었다. 최대한 그럴싸한 변명을 만들어 내야 한다.
위지혁이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그때, 유라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좀 씻고 다녀라. 몸에서 이상한 냄새 난다.”
“…….”
“자고로 도인이란 몸도 마음도 정갈해야 하는 법인데…….”
유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찬야는 위지혁의 어깨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확실히 냄새가 좀 나네. 당분간 같이 다니지 말자.”
“…….”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위지혁이 남량에게 물었다.
“남 사제. 이거 혹시…….”
“그래.”
남량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독공 부작용인 것 같다. 수고해라.”
남량은 위지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빠르게 멀어졌다.
홀로 남은 위지혁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품위는 이제…….’
여러 의미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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