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위지혁의 각성. 만독불침(萬毒不侵)(2)
근신하는 동안에도, 남량에 관한 소문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백매화.
매화검선의 후계자이자 화산의 신성.
화산 최고의 검학인 매화천수검을 익힌 천재.
은영단의 일백 자객과 대결하여 살아남았으며.
투연회에서 청량검화 남궁월을 상대로 승리하고.
흑영대를 도와 무림맹에 잠입한 마교의 간자를 처단.
그 과정에서 초절정의 고수인 양봉, 잔혈검객 장제 등을 쓰러뜨렸으며.
무림맹주 고경홍의 아래에서 10개월간의 수련을 거친 뒤, 폭혈검객 장태정을 잡으며 화려하게 날아올랐다.
고금을 통틀어도 약관의 나이에 이 정도 명성을 쌓아 올린 무인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만큼 남량이 당금 강호에 일으킨 풍운(風雲)은 거대했다.
‘나를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네놈은 하늘 위로 날아오르겠다, 이 말이냐.’
절대 두고 볼 수 없다.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함께 가라앉을 것이다.
당경은 살기가 충만한 눈으로 남량을 노려보았다.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남량은 날아드는 비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몸을 움직였다.
쇄애액!
비수가 아슬아슬한 간격을 두고 남량을 스쳐 지나갔다.
잠시 사자금강을 펼치며 달려들까 생각도 했지만…….
‘금방 끝내면 재미없지. 오랜만에 자극 좀 팍팍 줘야겠다.’
남량은 천양신경의 능력을 쓰지 않고 본신의 힘만으로 당경을 상대하고자 마음먹었다.
쇄애애액!
두 번째 공격이 날아든다.
이번에는 다섯 자루. 이전보다 빠르고 날카로웠다.
남량은 눈을 번득이며 두 자루를 피한 다음, 나머지 세 자루는 검을 휘둘러 쳐 냈다.
쇄애애애액!
여유를 부릴 틈도 없이 세 번째 공격이 짓쳐 들었다.
이번에는 사방에서 곡선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거기다 개수도 여덟 자루로 늘어났다.
“흠.”
남량은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채채챙! 먼저 세 자루를 차단한 다음, 뒤로 몸을 빼며 또 세 자루를 튕겨 냈다. 그리고 마지막 두 자루는 허리를 젖혀 피해 냈다.
“몸 풀기는 이 정도로 해 두지.”
남량은 검을 고쳐 쥐며 당경에게 말했다.
“슬슬 당가의 비기를 꺼내라.”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다.”
새 비수를 꺼내 든 당경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우우웅-!
비수에 내력이 깃들며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당경은 이전과 다른 자세를 취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어디 이것도 막아 보거라.”
당경이 비수를 허공에 흩뿌렸다.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비수가 날아들었다.
쇄애애애액!
남량은 단번에 날아드는 비수의 개수와 방향을 파악했다.
‘열 자루. 각각 두 자루와 세 자루가 거리를 두고 직선으로 날아들고 나머지는 두 자루씩 각각 좌우를, 한 자루는 위를 노리고 있군.’
퇴로마저 차단해 오는 상승의 암기술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별로 위협적이지 않아.’
카카캉! 카캉!
남량은 좌측으로 몸을 날리며 비수를 쳐 냈다.
바로 그때, 날아들던 비수들이 일제히 곡선을 그리며 남량을 추격해 오기 시작했다!
‘이건……. 추혼비접!’
과거 유계성의 저택에서 붙었을 때도 사용했던 수법이었다.
그땐 분명 한 자루밖에 사용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쪽도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이건가.’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싸움이 될 것 같다.
남량은 매화천수검 3초식, 매농낙화 초식으로 검막을 펼쳐 날아드는 비수를 전부 튕겨 냈다.
그리고 당경은 남량의 대처를 미리 예상했다는 듯, 다음 수를 준비했다.
우웅!
그의 손에 들린 작은 단검 크기의 비도(飛刀)가 짙푸른 빛을 내뿜었다.
콰콰콱-!
당경의 손을 벗어난 비도가 유성처럼 빛을 내며 엄청난 기세로 남량을 향해 쇄도했다.
쩌엉!
매화의 검막이 사정없이 찢겨 나간다.
남량은 고개를 틀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허공에 흩날렸다.
“소란을 들었으니 곧 사람이 몰려들겠군.”
남량은 객청 뒤쪽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전력을 다한 한 수. 그걸로 마무리를 짓자고.”
“바라던 바다.”
당경은 또다시 자세를 바꾸며 내력을 끌어모았다.
슈슉!
남량은 바닥을 박차며 매서운 속도로 당경을 향해 돌진했다.
당경이 손에 들린 비수를 던진 것과 거의 동시였다.
‘비수가 하나?’
방금 전 일격보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 대체?
그 순간, 한 자루였던 비수가 순식간에 아홉 자루로 불어났다.
구환살(九幻殺).
당가의 최고 비기 중 한 가지가 발현된 것이다.
남량은 눈을 부릅뜨며 불어난 비수를 응시했다.
‘나머지 여덟 자루는 허상……. 실제가 아니다.’
통찰안을 쓸까 생각도 했지만, 그만두었다.
절체절명의 상황이 아닌 이상, 능력에 의존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집중해라.’
기감을 극도로 끌어올리자, 허상과 실제가 구분되기 시작했다.
채챙!
검을 휘둘러 비수를 쳐 낸 남량은, 그대로 당경의 목을 노렸다.
당경은 품에서 비도를 꺼내 들고 마지막 수를 펼쳤다.
“오너라!”
천뢰살(天雷殺).
당가의 비기 중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술수였다.
당경의 손에 들린 비도가 강기를 머금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남량의 검은 당경의 손이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스걱-!
남량은 당경이 비도를 내지르기 전,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주룩.
당경의 목에 혈선이 그어지며 피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쨍그랑.
그의 손에서 빛을 잃은 비도가 떨어졌다. 손으로 목을 감싼 당경이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흠.”
검을 내린 남량은 그의 앞으로 다가가 말했다.
“마지막 한 수는 아쉬웠다. 조금 더 빨랐으면 좋았을 텐데.”
“나도 그렇게 생각했…….”
“전력을 다해 임했으니 이제 만족하나?”
당경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군. 도망치지 않고 나와 상대해 줘서…….”
그 말을 끝으로 당경의 숨이 끊어졌다.
“좋은 승부였다.”
남량은 반쯤 떠 있는 그의 눈을 마저 감겨 주었다.
뒤늦게 소란을 듣고 당가의 무사들이 모여들었다.
***
다음 날 아침, 당서군은 남량을 찾아와 용서를 구했다.
“이번 일은 집안사람을 잘 다스리지 못한 나의 탓일세.”
“아닙니다.”
“당경은…….”
당서군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전 근신이 풀렸더군. 그리고 자네가 이곳에 와서 묵고 있다는 소식을 어찌 듣게 된 모양이야.”
“…….”
“자네와 당가 사이에 있었던 일은 나 역시 알고 있다네. 허나 당가는 자네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네.”
남량은 고개를 들어 당서군을 지그시 응시했다.
독왕의 아들이자 차기 당가의 가주로 낙점된 인물.
허나 그 성정은 익히 알던 당가의 모습과 달라 보였다.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가의 뜻은 잘 알았습니다.”
남량의 미소에 당서군도 마음이 한결 놓인 듯했다.
“그래. 오늘 떠날 생각인가?”
“갈 길이 멀어서요.”
“아쉽군.”
그때, 방문이 열리고 당서군의 시종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오라…….”
시종이 남량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첫째 공자님과 둘째 공자님께서 화산의 찬야, 유라 도장과 비무를 하려 하십니다.”
남량이 당서군과 방 안에서 대화를 하고 있을 때. 나머지 일행은 떠날 준비를 하고 객청 입구에 모여 있었다.
그때 한 무리가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누구지?’
찬야는 고개를 돌려 일행의 선두에 선 두 젊은 청년을 응시했다.
쌍둥이로 보이는 청년들은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으며, 당가의 문양이 수놓인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당가 사람인가.
그들 중 한 명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산의 제자들이 또 왔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군.”
다른 한 명은 눈을 돌리며 말했다.
“매화검선의 제자는 어디 있지? 백매화 말이다.”
찬야는 냉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초면에 인사도 없이 반말이라…….”
이건 대놓고 화산을 무시하는 태도였다.
위지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들은 당서군의 아들이자 남북 십성, 독왕의 후계자인 당룡(唐龍), 당호(唐虎) 형제다. 보다시피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놈들이지.”
위지혁이 처음 당가에 왔던 때, 저들은 똑같은 태도로 위지혁의 심기를 건드렸다.
위지혁은 그들에게 비무를 청했고, 결과는 형제 모두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손끝 하나 건들 수 없었다.’
그때의 모욕을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저들의 태도를 참다못한 유라가 나서서 말했다.
“무례하군. 초면에 인사도 없이 하대를 하는 것이 당가의 법도인가?”
그러자 동생인 당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화산의 불사검협인가? 계집애들은 춤출 때나 검을 휘둘러야지.”
“……!”
“우린 백매화에게 비무를 청하러 왔을 뿐이다. 나머지는 관심 없어.”
당룡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듣자하니 너희 백매화의 명성이 천하를 진동시킬 정도라던데. 그 명성이 실제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 볼 것이다.”
“건방진…….”
참다못한 유라가 일갈하려는 때였다.
“하하하하!”
가만히 듣고 있던 찬야가 폭소를 터뜨렸다.
당룡과 당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물었다.
“뭐가 웃기지?”
“당연히 웃길 수밖에. 뭐? 남 사제의 명성이 실제인지 확인해 본다고? 하하하!”
찬야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뭔가 단단히 착각하는 모양인데, 네놈들은 남 사제에게 그걸 확인해 볼 자격이 없어.”
“뭐라고?”
“너희들은 나와 유 사매 선에서 충분하거든.”
찬야는 고개를 돌려 유라에게 물었다.
“안 그래? 유 사매.”
“네놈들이 남 사제의 앞에 대서려면 백 년은 이르다.”
유라는 입가에 냉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주제를 알아야지.”
짝짝짝! 찬야가 박수를 치며 연신 감탄했다.
“이야! 멋지다! 그동안 남 사제 옆에 붙어 있더니 도발하는 능력이 아주 수준급이야! 종남파 놈들의 허접한 도발에 넘어가던 사매는 이제 기억도 안 나!”
“……입 좀 다물어.”
유라는 찬야를 힐끗 노려보았다.
당룡과 당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남북 십성의 후계자도 아닌 것들이! 네놈들이야말로 주제를 모르는군!”
“따라와라! 지금 당장 승부를 내자.”
“어떡할래? 사매.”
찬야가 유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유라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없이 비무를 했다간 나중에 한 소리 들을 것 같긴 하다만…….”
유라는 남량의 방을 잠깐 응시한 다음, 짐을 풀었다.
“화산을, 도인을 무시하는 놈들의 태도는 좀 고쳐 놓을 필요가 있겠군.”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