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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79화 (79/164)

<79화>

찬야의 각성. 신검합일(身劍合一)(5)

쇄애애액!

무당파의 묘리를 담은 소성의 청운검(淸雲劍)이 유려한 궤적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찬야는 떠올렸다.

신검합일에 들었던 순간의 감각을.

정신은 무아(無我)의 경지에 다다르고, 육체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동작을 취했던 그 순간을.

그리고 차분히 몸을 움직였다.

스팟-!

찬야는 최소한의 동작으로 몸을 틀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 냈다.

소성은 몸을 빙글 돌리며 재차 연격을 가했다.

파파팟!

이번에도 찬야는 반격하지 않고 소성의 검을 피하기만 했다.

한 차례 초식의 전개를 마친 소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왜 반격을 하지 않지?”

“…….”

“나와 싸울 마음이 없는 거냐?”

찬야가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고 회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쯤은 소성도 충분히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이유를 묻자, 찬야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저는 최선을 다해 비무에 임하고 있습니다만?”

“그런데 왜…….”

“그보다, 더 빠르고 강한 초식은 없습니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찬야는 신검합일에 발을 들였다. 그때의 감각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큰 자극이 필요했다.

문제는, 소성이 찬야의 말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강한 초식이 없느냐고……?”

소성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이를 갈았다.

이건 도발이다. 대놓고 자신을 무시하는 행위가 틀림없었다. 공격을 피하기만 한 것도, 자신의 검이 결코 닿을 수 없음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 같으니!’

소성은 차가운 시선으로 찬야를 응시하며 말했다.

“좋다. 원한다면 보여 주마. 청운검의 진수를!”

“네. 감사합니다.”

찬야는 싱긋 웃으며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그 태도가 소성의 분노에 채찍질을 가했다.

“네놈이!”

소성의 칼날을 타고 검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검기는 부드러운 물결처럼 흐르다 곧 거센 파도가 되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상대할 생각이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부터 최강의 초식으로 끝장을 낼 것이다.

콰콰콱-!

소성이 검을 휘두르자 거센 격류(激流)가 터져 나오며 그대로 찬야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청운검의 절기인 노도일섬(怒濤一閃)이었다.

‘너는 이 파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쓸려 버릴 것이다.’

그리고 압도적인 승리로 유서휘에게 당당히 후계자 자리를 얻어 내고 말리라.

소성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한편, 찬야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려오는 검기의 파도를 덤덤히 응시하고 있었다.

‘강하다.’

소성이 낭인회의 젊은 신성이라더니, 그 명성대로 훌륭한 일격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 일격을 어떻게 받아쳤을까?’

아마 이쪽도 강력한 초식을 펼치거나 공격을 흘려내며 회피하는 쪽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파도가 다가올수록 점차 마음은 차분해지고 몸에 불필요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검을 움직이기에 더없이 완벽한 상태.

찬야는 고개를 들어 파도를 바라보았다.

소성의 절기는 더없이 강력하지만, 지금 찬야의 눈에는 허술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파고든다.’

찬야는 천천히 바닥을 박차고 파도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켜보던 낭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

‘피하거나 맞서지 않고 파고든다고?’

‘무모하다. 저건 자살 행위야!’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나 그건 신검합일에 들지 못한 자들이 보는 시선일 뿐.

남량이 보는 시선은 그와 달랐다.

“검과 하나가 된 자는 세상에 베지 못할 것이 없다. 그것이 물체가 아닌 기(氣)라고 할지라도.”

남량은 고개를 돌려 유서휘를 쳐다보았다.

찬야를 보는 그의 시선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저 나이에……. 신검합일의 경지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

거침없이 기의 파도에 뛰어든 찬야는 천천히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

기의 파도가 마치 환상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소성은 경악에 찬 눈으로 갈라지는 파도를 응시했다.

검으로 무형(無形)의 기를 베어 내다니.

그게 실제로 가능한 것이었던가?

허나 눈앞에 드러난 광경은 결코 허상이 아니었다.

그가 전력을 다해 날린 절기가,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도저히 믿을 수도, 믿고 싶지도 않은 광경이었다.

“안 돼……. 절대 질 수 없어-!”

소성은 자신의 패배를 부정하듯 내력을 모조리 끌어내며 찬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후계자의 자리는 내 것이다! 낭인회의 신성인 내가 마땅히 그 자리를 가져야 맞는 것을! 어디서 너 따위가 내 자리를! 내 영광을 가지려 들어! 절대 안 돼!’

소성은 발악하듯 검을 휘둘렀다. 수없이 많은 검의 잔상이 허공을 가득 채우며 찬야를 노려 왔다.

그러나.

그가 만들어 낸 검기는 찬야의 옷깃에도 닿지 못하고 그가 휘두르는 검에 종잇장처럼 부서져 버렸다.

왜 닿지 못하는 것인가?

대체 왜? 어째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마치……. 어른과 아이가 싸우는 꼴이 아닌가.

그 순간, 소성은 자신이 넘지 못할 ‘벽’을 마주했다.

“아아…….”

소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력한 절망감이 엄습했다.

찬야는 치솟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스스로가 놀랄 정도로 완벽한 움직임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 신검합일.’

마음속으로 그려 내는 동작을, 몸이 그대로 따른다.

검이 수족처럼 뜻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검사에게 희열을 주는 순간이 또 있을까?

찬야는 웃었다.

처음으로 무도(武道)를 걷는 기쁨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우우웅.

찬야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솟아올랐다.

더없이 완벽한 동작으로 검을 휘두르며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을 펼치니, 화산의 정수가 그의 손에서 그대로 재현되었다.

파도가 사라지고 흩날리는 매화의 꽃잎이 그 자리를 채웠다.

“이십사수매화검법 10초. 백화난만(百花爛漫).”

시야를 가득 뒤덮는 매화의 꽃잎을 바라보며, 소성은 체념한 듯 눈을 감았다.

‘결국 나는 다다를 수 없는 곳이었던가…….’

미약하게 남아 있던 그의 기가 사그라들었다.

채앵!

찬야의 검이 소성의 손에 들린 검을 쳐 내 떨어뜨린 다음, 그의 목에 가 닿았다.

남량은 미묘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화산의 검…….’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지켜보던 낭인들의 표정에도 어느새 화산의 검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이 드러나 있었다.

유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살다 보니 저놈이 화산의 명성을 드높이는 걸 다 보는군…….”

“그러게 말이다.”

남량이 피식 웃으며 동감했다.

쨍그랑.

허공을 날아간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소성은 손발을 부들부들 떨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심사를 맡은 낭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무는……. 찬야 도장의 승리요!”

찬야는 검을 집어넣으며 고개를 숙인 소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그러나 소성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낭인들은 찬야를 향해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며 그의 무위를 칭찬했다.

남량은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찬야를 흐뭇한 표정으로 응시했다.

‘수고했다. 찬야.’

이걸로 찬야도 자신의 경지를 넘어섰다.

***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

떠나는 날, 직접 배웅을 하러 나온 유서휘가 물었다. 그는 남량 일행을 위해 말까지 직접 준비해 주었다.

“사천으로 갑니다.”

사천의 당가. 그곳에서 위지혁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자식……. 분명 당가랑 척을 졌을 텐데 왜 위험하게 그곳으로 간 거야?’

정확히는 남량 자신과 위지혁이 당가의 일을 방해하며 사소한(?) 충돌이 있었던 걸로 기억했다.

그때 분명 당씨 성을 지닌 초절정의 고수가 ‘이날을 잊지 않겠다.’라면서 경고까지 했을 텐데…….

‘살아 있겠지……?’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유서휘는 말에 오르는 찬야에게 다가가 물었다.

“계속 화산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 것이냐?”

“네. 처음부터 마음이 변한 적은 없었어요.”

찬야는 말의 고삐를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저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승님.”

“네가 화산의 제자로 남아 있어도 나는 네 스승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찾아오거라.”

“꼭 그럴게요. 하하.”

남량 일행은 인사를 마친 뒤 말을 몰아 길을 달렸다.

유서휘는 말없이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응시했다.

그때, 그의 곁으로 다가온 장탁이 나직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무 생각도 안 하네.”

유서휘는 몸을 돌리며 옅은 웃음을 흘렸다.

“곧 무림에 매화가 한가득 피어나겠군.”

“봄은 지나갔는데요?”

“아니.”

유서휘는 장탁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봄은 이제 곧 다가올 것이야.”

***

사천으로 가는 도중, 남량 일행은 산속에서 하룻밤 야숙을 하기로 했다.

유라는 홀로 공터에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쇄액! 쇄애액!

그녀의 검이 섬뜩한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검이 지나간 자리로 잡초가 휘날렸다.

그때, 그녀가 있는 곳으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찬야?”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찬야였다.

“아직까지 안 자고 뭐 해?”

“유 사매에게 볼일이 있어서.”

“볼일?”

“뭘 모르는 척하고 그래. 흐흐.”

찬야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내가 사매한테 꼭 갚아야 될 일이 있었지, 아마?”

갚아야 될 일이라…….

잠시 그를 바라보던 유라가 냉소를 지으며 물었다.

“비무 신청이냐?”

“미리 말해 두지만, 결과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거야.”

찬야는 자신만만하게 외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번에는 내가 반드시 사매를 이길 거거든.”

“아니.”

유라도 마찬가지로 검을 뽑아 들며 덤덤히 말했다.

“이번에도 내가 이긴다.”

두 자루의 검이 달빛을 받아 싸늘하게 빛났다.

파팟!

찬야와 유라는 서로를 노려보다 일시에 바닥을 박차고 맹렬하게 돌진했다.

채채챙!

두 검객이 격돌하며 흙먼지가 흩날렸다. 나무 위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남량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다니까. 혈기가 넘쳐.”

그래. 계속 그렇게 서로 자극을 받고 부딪치며 나아가라.

능히 마교의 대적들과 싸울 힘을 기를 때까지.

남량은 나무에 등을 기대며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때 날아든 검기가 남량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잘려 나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아래로 떨어졌다.

“…….”

이 새끼들이.

오랜만에 손수 단련을 시켜 줘야겠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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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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