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남량의 각성. 환골탈태(換骨奪胎)(5)
‘초절정? 환골탈태라고? 헛소리! 내 눈은 결코 속일 수 없다. 분명 무언가 술수를 부렸을 터!’
장태정은 남량의 기세를 온몸으로 실감했음에도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는 부정하듯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남량은 너무도 쉽게 장태정의 공격을 피해 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너무 느려서 기다리기 지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리 없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장태정은 더더욱 괴성을 터뜨리며 맹공을 가했다. 남량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장태정의 공격을 전부 막아 냈다.
공격이 막힐수록 장태정은 미칠 것 같았다.
“그럼 어디 이것도 막을 수 있을지 보자!”
장태정은 칼날에 자신의 전 내력을 전부 불어넣었다.
“폭혈대참(爆血大斬)!”
검을 찌르는 동시에 검강이 폭발을 일으키는 장태정의 최고 절기. 더군다나 이런 근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난다면 초절정이 아니라 화경이라도 무사할 수는 없을 터였다.
‘죽여 주마. 백매화-.’
남량은 다가오는 칼끝을 무심히 바라보다 천천히 검을 들어 막았다.
콰아아앙!
폭발이 터지며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었다. 뒤이어 흙먼지가 자욱하게 깔렸다.
검을 내지른 장태정은 자신의 검이 남량의 검을 부수지 못한 것을 보고 절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괴물이야…….”
남량은 손바닥을 들어 장태정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쩌어엉! 엄청난 충격파가 터지며 장태정이 포탄처럼 날아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쓰러진 장태정이 피를 울컥 내뱉으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너희들이 검강을 쓰는 모습을 보고 항상 해 주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
우우웅-.
남량이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자 황금빛의 검강이 화양검의 칼날을 타고 솟아올랐다. 남량은 검을 수직으로 치켜올리며 말했다.
“검강은 이렇게 사용하는 거다.”
남량이 검을 가볍게 내리긋자 황금빛 섬광과 함께 검강이 지면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콰아아앙!
장태정은 다급히 검강을 발출해 막았으나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검이 부서져 버렸다. 거기다 몸을 보호하던 호신강기마저 검강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크어억!”
장태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내상을 입어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압도적이다. 마치 호랑이 앞에 선 하룻강아지가 된 것처럼, 무력함이 장태정을 엄습했다.
그 모습을 본 남량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상대방이 절망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광경을,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분도 오랜만이구나. 절대자의 위치에 서 있는 기분.’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저자가 날 찾아와 준 덕분이었다. 최악의 위기가 도리어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네 덕분에 힘을 얻었으니, 보답으로 매화천수검 최강의 초식으로 끝내 주지.”
매화천수검의 초식은 본래 9개였다. 허나 남량은 지금껏 8초식밖에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마지막 초식인 9초식은 초절정의 내력이 없으면 사용이 불가능한 초식이었기 때문이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남량은 화양검을 두 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원을 그렸다.
『매화천수검 9초식, 천류신화(天流神火) 초식은 만천에 가득한 매화의 낙화(落花). 기(氣)는 매화의 형상을 띠고, 흩날리는 매화 꽃잎은 하나하나가 검(劍)이 되며, 셀 수 없이 많은 검은 거대한 검우(劍雨)가 되어 눈에 닿는 적을 소멸한다.』
그 순간, 장태정은 보았다.
남량의 검끝에서 나선을 그리며 흘러나온 무수히 많은 매화의 꽃잎. 저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닌, 하나하나가 검강의 조각이었다.
매화의 꽃잎은 점차 하늘을 뒤덮었다. 장태정은 그 압도적인 광경에 전의를 상실하고 실실 웃음을 흘렸다.
“아름답구나. 참으로…….”
화아악-.
한데 모인 꽃잎은 이내 거대한 폭우(暴雨)가 되어 장태정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마치 거스를 수 없는 자연재해처럼 웅장하고 위엄이 있었다.
장태정은 마지막으로 남량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천천히 두 손을 펼쳐 최후를 받아들였다.
채앵-.
남량은 장태정의 육체가 소멸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검을 검집에 넣었다. 이내 그의 몸을 두르던 황금빛 기파가 사라지며 본래대로 돌아왔다.
‘이것이 매화천수검의 마지막 초식, 천류신화 초식인가. 유우화와 동정호에서 싸울 때도 보긴 했지만 가히 압도적인 초식이로군.’
전투는 끝났다. 남량은 그제야 자신의 몸이 알몸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방금 온천을 나왔는데……. 하는 수 없지. 다시 들어가서 씻고 옷도 새로 갈아입어야겠다.’
마을로 돌아가던 남량을 장패 일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패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남량은 장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걸음을 옮겼다.
***
남량이 폭혈검객 장태정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중원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소식은 당연히 온 무림인들의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무림맹 맹주전에서 비설로부터 그 소식을 전해 받은 무림맹주 고경홍은 창밖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양봉을 쓰러뜨렸을 때도, 장제를 쓰러뜨렸을 때도 남량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가히 남북 십성을 뛰어넘을 재목이라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장태정을 쓰러뜨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감탄을 넘어 두려움마저 들었다.
‘내가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가 스물다섯이었나?’
범인(凡人)은 물론이고 무공에 재능이 있는 자들도 평생 오르기 힘든 경지가 바로 초절정이다. 고경홍은 고작 스물다섯의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들었고, 고금제일의 재능을 타고난 인재라고 칭송받았다.
‘그런데…….’
사파의 대거두인 장태정을 절정의 경지로 이긴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는 남량이 초절정의 경지에 들었다는 뜻이었다.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고경홍은 손으로 턱을 쓸며 말했다.
“비 대주. 나는 내 힘이 하늘이 내려 준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천마 위광과 마찬가지로 능히 천하를 손에 넣을 힘이라 여겼지.”
비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산을 부수고 강을 베어 내는 경천동지할 능력은 가히 신이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남량을 보면 내 재능이 그저 평범할 정도로 보인단 말이지. 그래서 두렵기도 해.”
“남 소협은 진정한 협인(俠人)입니다. 그가 악인의 길로 빠질 걱정은…….”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고경홍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항상 생각했다. 내가 이런 힘을 얻은 이유는, 어디까지나 천마 위광에 맞서 세상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악(惡)과 선(善)은 마치 빛과 그림자처럼 균형을 이루지. 악이 강해지면 비로소 선도 강해지는 거야.”
“그 말씀은…….”
“하늘이 남량이라는 인재를 내려 준 것은, 그만큼 거대한 악이 어딘가에서 세상을 집어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난 그것이 두렵다.”
“곧 닥쳐올 혼란은 이전의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예상하시는군요.”
비설의 말에 고경홍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안휘성 합비에 위치한 남궁세가.
세가의 회의를 하는 장소에서 소식을 전달받은 남북 십성, 검성 남궁천은 탁자를 치며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월아. 들었느냐? 네가 그토록 존경하던 백매화가 마침내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젊은 용이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야. 어찌 생각하느냐?”
그의 곁에 앉아 있던 남궁월은 흥분으로 손이 덜덜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와 다시 검을 섞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제가 목표로 삼는 사람이 위로 올라갔으니 저에게도 잘된 일입니다.”
“이걸로 나머지 후계자들도 아주 다급해지겠군. 곧 무림대회에서 만나게 될 테니.”
남궁월은 화산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곧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남량이 사파의 대거두를 쓰러뜨리고 화려하게 비상했다는 소식은 비단 남궁월뿐 아니라 수많은 무림인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사천 청성산에 위치한 청성파.
소식을 들은 백상은 남량과 내기를 해 처절하게 당했던 지난날의 역사(?)가 떠올라 이를 부득 갈았다.
“그놈이 제법 설치는군요. 허나 대사형만큼은 다르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겁니다.”
등을 돌리고 서 있던 젊은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백상 사제. 나를 치켜세우는 짓은 그만하시게. 그는 이미 남궁세가의 여걸인 남궁월 소저마저 이겼고 사파의 거두인 장태정을 쓰러뜨렸어. 내가 그자의 상대가 될 것 같은가?”
“하, 하지만 사형!”
청성파의 장문인이자 남북 십성의 일원인 용제. 그의 하나뿐인 후계자 청랑(淸浪)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래도……. 궁금해지는군.”
매화검선의 후계자, 남량이라.
힘을 겨루는 걸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가슴이 격동했다.
“무림대회가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시간이 없구나.”
뿐만 아니라 제갈세가를 비롯한 나머지 오대세가. 구대문파 등에서 축하의 의미로 서찰을 보내왔다.
화산파의 장문인, 구양중은 본래 감정의 변화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그때만큼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 아이가 장태정을 꺾었단 말이지? 하여튼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날이 없구나. 남량을 보면 풍운아(風雲兒)라는 단어가 이보다 더 어울리는 사람이 없다.”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장문인.”
일 장로 노백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큰일을 해냈으니 남량이 돌아오면 상이라도 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네. 내 그 아이가 원하는 상이면 무엇이든 들어줄 생각이야.”
그때 밖에서 젊은 도사 한 명이 남량의 소식을 들고 왔다.
“장문인. 장로님. 지금 남량이 화음현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오오! 그래. 화산에 도착하면 바로 상궁으로 오라 전하거라. 화음현에 도착했다면 화산까지는 금방일 터.”
“어, 그것이 말입니다만…….”
젊은 도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했다.
“금방 화산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고, 어디 들렀다 오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 녀석. 아무래도 제 스승을 위해 선물이라도 하나 사 들고 오려는 모양이군. 하여간 어찌 이리 흐뭇한 행동만 골라서 하는지. 허허.”
“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젊은 도사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정화문(政和門)으로 간 것 같습니다.”
“정화문이라면……. 화산의 속가 문파가 아닌가.”
일 장로 노백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남량이 거기를 굳이 갈 이유가 없을 터인데?”
“네. 지금 막 서신이 왔는데, 남량이 정화문주에게 부탁을 하나 청했다고 합니다.”
“부탁이라면 무엇을?”
“오다가 만난 산적 무리라고 하는데……. 아무튼 그놈들을 정화문의 문도로 받아들여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놈들이 과거 흑도 문파에 몸을 담았던 놈이라 문제가 되나 봅니다.”
“흐, 흑도?”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하지만 이는 화산의 규율을 어기는 일이다. 노백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장 정화문주에게 서신을 보내 그들을 받아들이지 말라고 전…….”
그때, 구양중이 노백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흑도를 받아 주었다는 것은 곧, 그들의 잘못을 깨우치게 만들고 선한 길로 이끌었다는 뜻이네. 오히려 칭찬을 해야 마땅한 일이지.”
“……장문인?”
“남량, 이 녀석……. 이제 보니 도사로서도 흠잡을 데가 없구나. 돌아오면 더더욱 칭찬해 줘야겠다. 으허허.”
“…….”
노백은 이게 잘하는 짓인가 아리송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장문인이 남량에게 단단히 빠졌다는 것이었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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