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남량의 각성. 환골탈태(換骨奪胎)(3)
장태정의 칼날을 타고 검붉은 검강이 넘실거렸다.
그가 수평으로 검을 휘두르자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반월 모양의 검강이 남량을 둘로 가를 듯 쏘아져 나왔다.
쇄애애액!
남량은 곧장 공중으로 몸을 날렸다.
검강에 잘려 나간 대나무가 우수수 쓰러졌다.
남량은 검을 휘둘러 넘어지는 대나무를 잘게 조각냈다.
조각난 대나무가 장태정을 향해 쏟아지며 그의 시야를 가렸다.
장태정은 이를 부득 갈며 검을 휘둘렀다.
“어디서 이따위 장난질을!”
콰아앙!
그의 검에서 검풍이 터져 나오며 대나무 잔해가 허공에 흩어졌다.
직후, 장태정의 뒤에서 모습을 나타낸 남량이 벼락과도 같은 검격으로 그의 목을 노렸다.
채앵!
장태정은 날렵하게 몸을 돌려 남량의 검을 막아 냄과 동시에 손을 뻗어 남량의 옷깃을 잡으려 했다. 마치 짐승과도 같은 민첩함이었다.
‘잡히면 끝이다.’
남량은 단숨에 내력을 끌어모아 매화천수검의 7초식, 유성초월 초식을 날렸다.
콰드득-!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이미 장태정은 몸을 빼낸 뒤였다.
초절정과 절정의 싸움에서 시간을 끌면 이쪽이 불리하다. 단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화르륵!
남량은 폭혈기공으로 순식간에 내력을 증폭시킨 다음, 바닥을 박차고 장태정을 향해 쇄도했다.
쇄액. 쇄애액!
분홍빛의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장태정을 향해 날아들었다.
장태정은 코웃음을 치며 검강을 날려 정면으로 부딪쳤다.
콰아앙!
검기와 검강이 충돌하며 폭발하는 틈을 타, 사자금강으로 몸을 보호한 남량이 장태정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채채챙!
남량과 장태정의 검이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열 합을 넘겼다. 남량과 장태정의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칼날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번득였다.
파파팟!
남량은 매화천수검의 5초식, 상청도월 초식을 펼쳤다. 화양검이 장태정의 무릎을 노려 갔다.
광동제일검 장제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그 초식이었다.
“흥.”
그러나 장태정은 장제와 다르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다.
쩌엉! 장태정은 호신강기(護身罡氣)를 일으켜 남량의 검격을 막아 낸 다음, 검을 휘둘러 남량을 튕겨 냈다.
공중제비를 돌아 바닥에 착지한 남량이 혀를 찼다.
‘쯧. 초절정의 호신강기는 쉽게 뚫기 힘들겠는걸…….’
기회가 왔을 때 죽이지 못한 게 아쉬웠다.
‘더 강력한 위력의 초식이 필요하다.’
장태정은 욱신거리는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소문은 익히 들었다만, 직접 겪어 보니 오히려 소문이 실제만 못하군. 절정의 경지로 초절정과 대적하는 검객이라……. 검을 섞어 보니 장제를 능히 죽일 만한 실력자임을 알겠다.”
“칭찬받아도 그닥 기쁘지는 않군.”
“영광으로 알거라. 나, 폭혈검객(爆血劍客) 장태정의 인정을 받았으니.”
폭혈검객이라……. 과거에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호남에서 이름을 떨친 사파의 최고수 중 한 명이라고 했던가.
천마였을 당시 기억에 있는 놈이라면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점점 더 희망의 빛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장태정은 또다시 내력을 끌어올리며 말했다.
“매화검선의 제자 남량. 이 장태정의 검으로 네놈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마. 네놈의 명성에도 흠은 가지 않을 것이다.”
“너야말로 나 잡고 옛 명성이라도 얻어 보려고 온 건 아니고? 아들 죽음을 구실 삼아 말이지.”
“그 입 닥쳐라!”
콰앙!
장태정이 포탄처럼 남량을 향해 짓쳐 들었다. 놈의 살기가 폭풍처럼 남량을 덮쳐 왔다.
‘빌어먹을. 피부가 다 저릿거리는군.’
슈슈슈슉!
장태정의 검격이 마치 해일처럼 남량의 전신을 뒤덮었다.
남량은 힘겹게 장태정의 검격을 막아 내며 매화천수검 1초식, 낙영용섬 초식으로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장태정은 허리를 젖혀 남량의 검격을 여유롭게 피해 냈다. 남량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신속의 검격을……. 이렇게 가볍게 피해?’
그 순간, 남량은 허벅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장태정의 손에 들린 검이 남량의 허벅지를 찌르고 있었다.
“이 새끼……. 검을 한 자루 더 숨기고 있었구나.”
“적당히 상대해 주려 했지만, 네놈의 경지가 높아 이렇게 한 것이니 이해하거라.”
쩌엉!
장태정의 검을 막아 낸 남량이 주욱 밀려나며 이를 악물었다. 한쪽 다리가 욱신거리며 한순간 중심이 무너졌다.
장태정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맹공을 걸어왔다.
남량이 신유유합 능력으로 치료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폭검세(爆劍勢)!”
장태정의 검끝에서 기의 폭발이 터지며 눈앞이 훤해졌다.
남량은 즉시 사자금강을 펼쳐 장태정의 절기를 막아 냈다.
쿠콰쾅-!
남량은 폭발의 여파를 뚫고 매화천수검 2초식, 옥녀유영 초식을 전개해 장태정을 공격했다.
카카카캉!
좀처럼 예측하기 힘든 공격에도 장태정은 철옹성처럼 빈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합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남량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폭혈기공의 부작용이 오기 시작한다…….’
남량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눈치챈 장태정이 검을 더 세차게 휘둘렀다. 파파파팟! 수십 갈래로 나뉜 검강이 남량을 집요하게 노려 왔다.
남량은 아슬아슬하게 검강을 피해 내며 매화천수검 4초식, 뇌전포화 초식으로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콰앙!
그러나 장태정의 호신강기는 그것마저도 막아 내고 말았다.
채앵! 장태정은 남량의 검을 튕겨 내며 말했다.
“이게 최강의 초식인가? 그럼 더 볼 것 없군.”
슈왁! 장태정이 검을 아래에서 위로 추켜올렸다.
남량은 재빨리 몸을 날려 피했으나, 이마가 찢어지며 피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린 피가 시야를 가렸다.
그사이 남량의 뒤편으로 이동한 장태정이 검을 휘둘렀다.
‘막지 말고 피해야 한다. 피해야…….’
바로 그때, 장태정이 찔렀던 허벅지가 또다시 욱신거리며 월인비를 펼치는 것이 늦어졌다. 남량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매화천수검 3초식, 매농낙화 초식으로 검막을 둘렀다.
장태정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상처가 깊어 이전과 같은 경공술은 힘든 모양이군. 그 이상한 황금빛 방어막도 제약이 있는 모양이지?”
쩌저정!
장태정의 검강이 남량의 검막을 부수며 충격을 가했다.
남량은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충격과 함께 날아가 대나무를 부수고 바닥에 처박혔다.
“크억! 컥…….”
남량은 입에서 선혈을 울컥 내뱉으며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큰일이다. 기혈이 역류하는 와중에 내상마저 입었어.’
지금이라도 폭혈기공을 해제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지금 폭혈기공을 해제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량은 이를 악물었다.
“정말 보여 줄 것이 없는 모양이군. 붉은 아지랑이가 사라지면서 초절정에 근접했던 내력도 서서히 흩어지고 있지 않은가.”
장태정은 김이 팍 샜다는 듯 말했다.
“네 실력은 전부 확인했다. 이제 더 이상의 전투는 의미 없는 발버둥에 불과해. 어쩔 것이냐? 목숨을 구걸하며 빌어 보겠느냐?”
물론 장태정은 남량을 살려 줄 생각이 없었다. 이건 그저 승자의 오만이자 패자를 향한 조롱에 가까웠다.
그걸 잘 아는 남량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느냐. 나는 지옥과 같은 시산혈해를 넘으며 패왕의 자리에 앉은 몸.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똑바로 일어선 남량은 꼿꼿이 허리를 펴고 말했다.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며 빌지 않는다.”
화륵-.
남량은 신유유합의 능력을 이용해 허벅지와 다른 외상을 치료했다. 그리고 옷을 찢어 검과 손을 단단히 묶어 고정시켰다.
“와라. 오늘 죽어야 한다면 네놈을 저승길 길동무로 삼으리라.”
남량은 시뻘건 귀화(鬼火)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장태정을 응시했다.
오싹. 장태정은 순간 전신의 피부가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째서냐. 어째서 떨리고 있는 것이냐. 이미 내 승리는 정해져 있는데 대체 어째서-!’
장태정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남량은 장태정의 행동을 발견하고 냉소를 지었다.
“왜, 나와 함께 죽는 건 두려우냐? 겁쟁이 자식.”
“……곧 죽을 놈이 입 하나는 아직 살아 있구나!”
장태정은 분노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칼날을 타고 모인 검강이 쏟아지는 폭우처럼 남량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남량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강을 응시하며 마지막 힘을 짜내었다.
“흐아압!”
콰콰콰쾅!
정신력을 집중해 매화천수검의 8초식, 단천열화 초식을 펼쳤다. 참격의 폭풍이 일어나며 검강의 위력을 최소화시켰다.
파파팟!
월인비를 펼쳐 검강을 피해 낸 남량에게 장태정이 따라붙었다.
채채채챙!
장태정은 압도적인 내력의 차이로 남량을 밀어붙이며 남량의 어깨와 옆구리 등에 검상을 남겼다.
그러나 남량도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 통찰안으로 장태정의 움직임을 읽어 간간이 반격을 했다.
촤악!
남량이 날린 검격이 장태정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장태정은 뺨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질기기가 쇠심줄 같구나.”
남량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끝까지 발버둥 치면 천운이 내릴지도 모르잖아?”
“그딴 걸 헛된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쩌엉!
장태정이 날린 장력이 남량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남량은 당하는 와중에도 몸을 틀어 피해를 최소화했다.
“크윽-.”
바닥을 나뒹군 남량은 간신히 중심을 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숨을 돌릴 틈도 없이 장태정의 검강이 바닥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쿠구구-.
그와 동시에 남량이 쓰러진 곳의 지면이 전투의 충격으로 무너지며 아슬아슬하게 검강이 비껴갔다.
장태정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정말 천운이 따라 주는 놈이군. 허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천운도 쓸모가 없다.”
장태정은 바닥을 박차고 남량에게 날아들어 검을 내질렀다.
푸욱-!
장태정의 검이 남량의 아랫배를 찔렀다. 급소를 노린 완벽한 치명상이었다.
남량은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릿해지며 몸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이 천마가 또 복수를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허망하게…….’
푸슉! 장태정은 검을 뽑아 들며 남량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내 직접 목을 베어 내 아들의 무덤에 들고 갈까 했으나, 그래도 최선을 다해 싸운 상대 검객에 대한 예의를 지켜 주마. 편히 잠들거라.”
남량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무너지는 흙더미 속에 깔렸다.
남량은 아래로 떨어지는 와중에도 억울함을 금치 못했다.
‘멍청한 놈. 결국 두 번째 기회도 놓치고 말았구나.’
환생한 이후, 강해져서 복수하기 위해 단련해 온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녀석들……. 운휘, 찬야, 위지혁, 유라. 비록 내 복수를 위한 검으로 키웠지만 한때는 동료의 정을 나누었던 아이들…….
‘얼마나 강해졌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군. 아쉽다.’
몸이 점점 더 가벼워졌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고통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인가. 염라여.’
남량은 마지막까지 화양검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바로 그 순간!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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