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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30화 (30/164)

<30화>

지하미궁(地下迷宮)(7)

장사 인형은 신전 석벽에 붙어 빠른 속도로 도망쳤다.

남량은 내력을 끌어모아 참격을 날렸다. 초승달 모양의 검기가 허공을 가르며 쏘아져 나갔다.

쩌저정!

그러나 인형은 남량을 약 올리듯 몸을 틀어 검기를 요리조리 피해 냈다.

제갈경은 경악하여 입을 벌리며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인형이야?”

남량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감탄하고 있을 때냐?”

남량의 안색이 굳어졌다.

이대로라면 장사 인형을 잡기 전에 내력과 체력이 전부 바닥날 터였다.

신전이 요동치는 것을 보니 이곳도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다.

남량은 벼랑 끝에 몰려 있었다.

그렇다면-.

남량은 결국 마지막 수를 꺼내 들었다.

우우웅!

남량의 전신에서 붉은 아지랑이가 불꽃처럼 터져 나오고 밝은 화광(火光)이 주변을 밝혔다.

눈가의 실핏줄이 터지며 흰자위가 붉게 물들었다.

“으윽…….”

남량이 나직이 신음을 토했다.

“앗, 뜨거!”

남량의 등에 매달려 있던 제갈경은 뜨거운 열기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떼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폭혈기공을 쓰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일다경.

그 전에 운공을 멈추고 운기조식을 취하지 않으면 주화입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사활(死活)을 건 남량의 마지막 도박이었다.

남량은 이를 악물고 장사 인형을 향해 달려들었다.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 장사 인형은 더욱 빠른 속도로 도망을 쳤다.

그러나 남량은 놈을 놓칠 생각이 없었다.

“내 보물을 어디까지 가져갈 셈이냐. 뱀 새끼야!”

투콱-!

남량이 손에 든 화양검을 집어 던지자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붉은 불꽃을 흩날리며 쏘아져 나갔다.

콰득. 콰아앙!

칼은 정확히 장사 인형의 몸통 중앙 부분에 박혔고, 칼날이 박힌 부분이 폭발하며 몸통을 이루던 부분이 뭉텅이로 떨어져 나갔다.

그사이 칼을 던진 곳에 도착한 남량은 검을 뽑아 들었다.

그 순간, 고통스럽다는 듯 몸을 비틀던 장사 인형이 머리를 휙 돌리며 남량을 향해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들었다.

“후우-.”

남량은 빠르게 호흡을 고르며 장사 인형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곽!

남량은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장사의 입가를 길게 찢어 버렸다.

장사 인형이 또 한 차례 몸을 크게 비틀었다.

남량은 바닥을 박차고 공중에 솟구치며, 장사 인형의 목을 노렸다.

“매화천수검 1초식-.”

남량의 눈이 번득였다.

“낙영용섬(落英龍閃).”

서걱-!

검끝에서 뻗어져 나온 검기가 반월 형상을 그리며 장사 인형의 머리를 단칼에 잘라 버렸다.

‘입이 찢어지고 머리가 잘려 나가고도 움직일 셈이냐?’

남량은 어디 움직일 테면 움직여 보라는 식으로 장사 인형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망신창이가 된 인형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남량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콱! 콰직.

남량은 여의주의 기운을 찾아 장사 인형의 몸통 부분을 조각조각 베어 버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겉면을 뜯어내고 내부를 살폈다.

‘꼭 진짜 동물 내장을 보는 것 같군.’

몸통 내부의 복잡한 기관을 헤집던 남량은 별안간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크윽!”

“남 소협!”

제갈경이 깜짝 놀라서 남량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나 곧 손바닥에 심한 화상을 입고 손을 떼었다.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

남량은 코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피가 부글부글 끓고 심장이 타는 듯 뜨거웠다. 기혈이 역류(逆流)하며 엄청난 고통이 뒤따라왔다.

운기조식을 해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빌어먹을…….’

남량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잔해 속에 쓰러졌다.

“안 돼!”

제갈경은 대경실색하며 남량의 안색을 살피려 했다.

그러나 몸에 손을 대면 또 심한 화상을 입을게 뻔했다.

‘어떡하지?’

고개를 돌리자 살아남은 미원 인형과 지주 인형이 이쪽을 향해 거대한 군상(群像)을 이루며 짓쳐 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이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제갈경은 이대로 죽을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조금 전까지 헤집던 기관 내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식도(食道)인가? 그렇다면 이쪽 부분을 통해서 여의주가 넘어왔을 터…….’

제갈경은 머리를 굴려 여의주가 있는 부분을 알아냈다.

그리고 손을 뻗어 한 손에 들어갈 만한 구슬 하나를 꺼내 드는 데 성공했다.

구슬에서는 기분 좋은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갈경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 소협. 이거 봐요! 여의주를 찾았어요!”

그러나 남량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이미 주화입마에 들어서고 있었다.

제갈경은 하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남량의 몸을 붙잡아 바로 세웠다.

남량의 몸에 손을 댄 부분이 타들어 가는 듯 따가웠다.

평생 이런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제갈경은 금세 울상이 되었다.

‘나도 시집은 다 갔구나.’

겨우겨우 남량의 상체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 제갈경은 여의주를 들고 살짝 망설이다 남량의 입에 쑤셔 넣었다.

제갈경은 제갈랑이 영약을 복용하는 걸 곁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입에 넣었었다.

여의주도 영물의 내단이며, 영약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입에 넣어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쾅쾅쾅!

그사이, 코앞까지 닥쳐 온 미원 인형이 제갈경을 향해 커다란 주먹을 휘둘렀다.

“꺄악!”

제갈경은 남량을 제 몸으로 감싸 안으며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콰르릉-!

그 순간, 남량의 전신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 소리와 함께 휘황찬란한 황금빛이 터져 나왔다.

황금빛은 순식간에 어두운 신전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으며, 거친 폭풍과 번쩍거리는 섬광을 동반했다.

달려오던 인형들은 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氣波)에 밀려 나가 저들끼리 부딪히고 부서졌다.

제갈경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거센 바람을 옷소매로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인형들을 깃털처럼 날려 버리던 거센 기파는 그녀에게는 아무런 충격을 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전신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빛이다. 따스한 빛…….’

눈부신 빛줄기에 표정을 살짝 찌푸린 제갈경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는 짧게 탄성을 내질렀다.

“……아!”

어느새 남량이 정신을 차린 채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있었다.

“남 소협!”

반가움에 미소를 지으며 그를 부르던 제갈경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아.’

제갈경은 저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으며 황홀한 눈으로 남량을 응시했다.

남량의 주변은 은은하게 빛이 반짝이고 있었고, 반쯤 뜬 두 눈에서는 정광이 번득였다.

우웅. 웅.

남량이 숨을 내쉬자 황금빛 불꽃이 일렁이며 남량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남량 본연의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마치 하늘의 천신(天神)이 잠시 강림한 듯한 착각이 들었다.

“괜찮아요?”

제갈경의 물음에, 남량이 대답했다.

“덕분에.”

남량은 살짝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폭혈기공으로 역류하던 기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안정되어 있고, 대신 그곳으로 여의주의 신력(神力)이 도도한 강물처럼 거침없이 흐르고 있었다.

남량의 몸은 흘러나오는 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밖으로 내뿜었다.

그것이 지금 남량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휘황찬란한 황금빛 기의 파도였다.

“고맙다. 덕분에 살았어.”

남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전해져 왔다.

“이제 죽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줘요.”

제갈경이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치며 투정을 부렸다.

남량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이 지긋지긋한 지하미궁도 이제 안녕이다.”

남량은 허공에 대고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화양검이 허공을 날아 남량의 손에 들어갔다.

“우선, 거슬리는 것부터 치워 버려야지. 감히 날 괴롭혔겠다?”

스윽-.

남량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지하 바닥이 갈라지며 앞을 막아서던 인형들이 산산조각이 나 그대로 소멸했다.

“확실히…… 힘이 넘치는군.”

남량이 중얼거렸다.

제갈경은 입을 쩍 벌린 채 그 광경을 바라보다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냥 내가 먹을 걸 그랬나?”

남량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서라. 배탈 난다.”

담담한 척하고 있었지만, 남량도 매우 난감한 상태였다.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신력을 다스리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지금도 제어가 불가능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신력을 마구잡이로 쏟아 내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원하던 신물을 손에 넣었지만, 이걸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이것은 남량에게 또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생각하자.’

남량이 가볍게 내력을 뿜어내자 남량을 향해 떨어지던 잔해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남량은 제갈경을 들어 품에 안은 뒤, 천천히 몸을 띄웠다.

제갈경은 깜짝 놀라며 팔로 남량의 목을 휘감았다.

“날 수도 있어요?”

“그것뿐이겠어?”

남량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꽉 붙잡아.”

제갈경은 겁에 질린 얼굴로 남량의 목을 감은 손에 힘을 주었다.

콰앙!

다음 순간, 남량과 제갈경을 감싼 황금빛 불꽃이 천장을 부수며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

한편, 찬야와 운휘는 미친 듯이 달려서 마침내 지하미궁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들의 손에는 죽은 제갈세가 사람들의 시신이 들려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은 시체와 함께 차가운 바닥에 엎어져 숨을 헐떡였다.

“형님, 제대로 따라오고 계신 걸까?”

운휘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남 사제잖아. 절대 쉽게 안 죽어.”

찬야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어스름한 푸른빛과 차가운 새벽의 냉기가 느껴졌다. 슬슬 날이 밝고 있었다.

보초를 서고 있던 무림맹의 무사들이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거기 누굽니까? 뭐 하는 거죠?”

“네? 아, 그게…….”

당황한 찬야가 최선을 다해 변명을 꺼내려고 하는 때였다.

콰아앙! 우르릉!

한 차례 땅이 우르르 진동하며 천둥 치는 소리와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한 번에 들려왔다.

깜짝 놀란 무사들과 찬야, 운휘가 고개를 돌렸다.

복룡산의 한 봉우리가 무너지며, 그 사이로 황금빛 빛줄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은 마치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 위로 승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요, 용이다!”

“말도 안 돼!”

마침 잠에서 깬 제갈세가의 사람들도 전부 그 광경을 보았다.

‘저기는 분명 지하미궁이 위치한……!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제갈랑은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지하미궁의 입구로 달려왔다.

그들이 입구에 도착하자 산의 일부가 무너져 입구가 막힌 채였고, 입구 앞에는 남량 일행이 지친 기색으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으며, 실종된 제갈세가 사람들의 시체들이 있었고, 제갈경이 정신을 잃은 남량을 끌어안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제갈랑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

“경아. 이게 다 어찌 된 일이냐?”

제갈경은 기절한 남량을 힐끗 쳐다보며 애체를 고쳐 썼다.

“제가 다 설명드릴게요.”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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