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매화검투(梅花劍鬪)(11)
푸확-!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남량이 아닌 다른 일대제자였다.
“왔군.”
공월 진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찬야와 운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부정하듯 외쳤다.
“설마 그럴 리가…….”
“빌어먹을!”
운휘는 이를 부득 갈며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형님! 뭐 하고 있어!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데! 형님의 등을 따라가기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뭐? 형님이 떨어진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내가 형님 없이 혼자서 강호로 나갈 것 같아?”
“운휘…….”
찬야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운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미 승부는 결정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 절망의 그늘이 드리웠다.
바로 그때!
파앗-.
안개가 사방으로 흩어지며 망신창이가 된 남량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
“남 사제!”
“이럴 수가!”
참가자들이 깜짝 놀라며 입을 쩍 벌렸다.
특히나 위지혁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부들거렸다.
‘저놈이……. 남량이 혁련 사숙을 이겼단 말인가?’
“그렇지!”
운휘는 주먹을 불끈 쥐며 탄성을 터뜨렸다.
“뭐 하고 있습니까 형님! 얼른 올라오지 않고!”
“헉헉…….”
남량은 이를 부득 갈며 필사적으로 달렸다.
혁련위와의 대결로 인해 몸에 피로가 쌓였다.
발을 옮길 때마다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기정까지 올라온 것도 반쯤 정신력이었다.
그러나 이제 슬슬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선 참가자를 따라잡지 못한다.
방법이……. 방법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지. 반쯤 도박이지만.’
하기정까지 오르는 봉우리는 화산에서도 가장 가파른 절벽이었다.
올라오는 길을 제외하고는 발을 디딜 곳도 없는, 바윗덩이에 불과했다.
만에 하나 떨어지기라도 하면 매화검수라고 해도 절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남량은 이기기 위해, 길에서 벗어나 절벽을 딛고 오르기 시작했다.
“놈! 죽으려고 환장했느냐! 어서 다시 내려가지 못할까!”
깜짝 놀란 공월 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나 남량은 그의 말을 가뿐히 무시했다.
“저런 멍청한 놈이…….”
보다 못한 공월 진인이 직접 나서려는 찰나.
운휘가 그의 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형님을 방해하지 마십시오!”
파파팟!
남량은 미끄러지려 하면 곧바로 몸을 날리기를 반복하여 절벽을 올랐다.
그 모습이 보기 힘들 정도로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았다.
찬야와 운휘, 심지어 위지혁과 공월 진인까지 손에 땀을 쥐고 남량을 응시했다.
‘거리가…….’
‘거리가 좁혀지고 있다……!’
이제 결과는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가 먼저 하기정으로 들어올 것인가.
‘하지만 아직 저쪽이 조금 더 빨라!’
찬야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때, 갑자기 남량이 검을 빼 들었다.
깜짝 놀란 공월 진인이 버럭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 매화검투의 규칙을 잊은 건…….”
공월 진인이 채 말을 끝맺기도 전이었다.
남량이 칼날에 검기를 모으는 것과 동시에 바위를 박차고 몸을 띄웠다.
그리고 허공에서 몸을 빙글 돌리며 허공에 대고 검을 냅다 휘둘렀다.
쩌저정-!
검기가 허공에서 폭발하며 그 충격으로 남량의 몸을 거세게 튕겨 냈다.
그제야 남량의 의도를 알아차린 공월 진인이 탄성을 내뱉었다.
‘검기의 충격파를 이용해 몸을 날린 것인가!’
참신하다. 아니, 미친 방법이다.
까딱 잘못하는 순간 황천길인 것을.
대체 젊은이의 어디서 저런 담력이 나온단 밀인가?
‘도대체가 끝을 알 수 없는 놈이로다.’
“크윽!”
남량은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는 속도에 몸을 맡겼다.
포탄과도 같은 속도로 날아온 남량이 하기정 기둥에 부딪혔다. 쾅!
남량은 검을 놓치고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형님!”
“남 사제!”
찬야와 운휘가 다급히 달려와 남량을 부축했다.
찬야는 퍼뜩 고개를 돌리며 결과를 확인했다.
“결과는?”
“…….”
공월 진인은 말없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하기정의 코앞에서 멈춘 제자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그, 그렇다면…….’
공월 진인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시(子時:23∼01시). 매화검투 종료.”
“…….”
“통과자는 찬야, 위지혁, 유라(劉羅), 운휘. 그리고 남량이다.”
퉤-.
입가에 고인 침을 뱉어 낸 남량이 중얼거렸다.
“……인생은 언제나 목숨을 걸고 하는 도박이지.”
***
남량은 격전의 피로로 잠시 매월관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이후 남량으로부터 혁련위에 대해 들은 찬야와 운휘는 크게 분노했다.
“충격이군. 매화검수의 자리에 있는 자가 그런 치졸한 짓을 하다니.”
“그 새끼 어디 있어? 콱 죽여 버리게.”
“진정해라.”
남량은 이번 사건에 대해 상부에 보고했다.
계율원에서는 즉시 혁련위를 구속해 조사에 착수했다.
당연히 혁련위는 강경하게 혐의를 부정했다.
남량 또한 이렇게 쉽게 놈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참고 기다리다 보면, 이번 일을 사주한 자가 스스로 허점을 드러낼 것이다.
지금 계획이 실패했으니 매우 초조해하고 있겠지.
어디 열심히 노력해 봐라. 금방 찾아내 죽여 줄 테니.
그때, 매월관 의원이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멀쩡합니다.”
“다행이군요.”
남량의 몸 상태를 확인한 의원이 말했다.
“장문인의 전언입니다. ‘몸이 낫는 대로 상궁으로 올라오라.’. 매화검투 통과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알겠습니다.”
의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운휘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칭찬이라도 해 주려고 그러나?”
***
남량 일행이 상궁에 들어서자 위지혁과 유라라는 이름의 여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위지혁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남량을 향해 다짜고짜 짜증을 냈다.
“사형, 사저가 먼저 와 있는데 막내가 가장 늦게 오는 건 어디 법도인가?”
“억울하면 너도 매월관에 실려 가든가. 지 기분 나쁘다고 어디다 화풀이야.”
역시, 운휘는 거리낌 없이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위지혁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았다.
위지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신이 천하니 내뱉는 말마다 유치하기 짝이 없구나.”
“유치는 개뿔. 늦게 왔다고 지랄하는 게 더 유치하거든? 그리고 너는 뭐 얼마나 대단한 집안 자제이셨길래 그렇게 고상을 떨어?”
운휘의 비아냥에 위지혁의 표정이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마냥 매서워졌다.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좋을 거다.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으니…….”
무시무시한 살기가 위지혁의 눈에서 일렁거렸다.
그러나 운휘는 가소롭다는 듯 대꾸했다.
“인내심은 개뿔. 꼴리면 덤비든가. 너도 똑같이 고자 돼서 실려 갈래?”
풉! 옆에서 듣고 있던 찬야가 폭소를 터뜨렸다.
위지혁이 이를 부득 갈며 운휘에게 다가왔다.
“하는 말마다 천박해서 들어 줄 수가 없군. 오늘 네놈에게 예를 알려 주마.”
“어디 알려 줘 봐. 오늘이 네 고환이랑 이별하는 날이니까 마지막 인사도 해 두시고.”
그때, 한쪽에 정좌한 채 망부석처럼 있던 유라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입 닥쳐라. 신성한 상궁에서 떠드는 무례를 언제까지 저지를 셈이냐.”
유라의 말은 낮고 느릿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압감이 있었다.
분위기가 제법인데, 화산에 저런 제자도 있었나?
“그래. 다들 진정하라고. 장문인 들어오신다.”
찬야가 남량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구양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자들은 싸움을 멈추고 일제히 바닥에 착석했다.
털썩.
상석에 자리한 구양중이 제자들을 쭉 둘러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화검투에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구양중이 말했다.
“매화오절로 선정된 너희들은 이 시간부로 화산을 대표하는 후기지수들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그 무게에 맞는 언사와 행동을 보여 주기 바란다.”
“무림맹에 차출된 인원들은 무림맹에 도착하는 즉시 갖가지 임무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면 무림맹에서 너희의 공을 크게 치하할 것이며, 강호에 명성을 쌓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물론 충분한 보상도 이뤄지겠지. 앞서 임무를 나간 선배들도 있으니 그들을 보고 잘 배울 수 있도록 하거라.”
“출발은 열흘 뒤. 그 전까지 준비를 마치도록. 서안(西安)에 위치한 섬서 무림맹 지부에 도착하면 무림맹 본산이 위치한 낙양(洛陽)까지 안내인을 붙여 줄 것이다. 여행에 필요한 여비와 금창약, 벽곡단 등은 너희들이 기거하는 곳에 이미 준비해 두었다.”
말을 멈춘 구양중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매화오절에는 나 또한 거는 기대가 크다. 하나같이 영특한 인재들이니.”
제자들이 입을 모아 외쳤다.
“기대에 모자람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기 전, 술 한 잔 받고 가거라.”
대대로 매화검투의 통과자들에게는 매화주(梅花酒:매화를 넣어 우린 술)를 내리는 전통이 있었다.
술잔을 받아 마신 뒤, 제자들은 상궁을 나섰다.
남량이 마지막으로 나가려는 그때, 구양중의 전음(傳音)이 들려왔다.
『기대하마.』
고개를 돌린 남량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전음을 보냈다.
『기대하십시오.』
***
상궁을 나와 암자로 내려가는데, 낯익은 기척이 느껴졌다.
“왔느냐?”
“스승님.”
한동안 자리에 없었던 스승, 유우화가 그곳에 있었다.
유우화는 남량의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했다.
“소식은 들었다. 장하다.”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남량의 물음에, 유우화가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들떠 보이는 웃음이었다.
“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단다.”
“선물이요?”
“그래. 스승 된 입장으로 제자의 길에 자그마한 선물 하나쯤은 괜찮지 않겠느냐?”
남량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유우화를 응시했다.
유우화가 장포를 걸치며 말했다.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어서 채비하거라.”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나 전체를 어떠한 형태로도 복제하거나 재가공하여 옮겨 실을 수 없습니다.
ⓒ비류(沸流) / Good World Co.,LTD
소설의 새 지평을 열어 가는 (주)조은세상.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하실 작가님을 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