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매화검투(梅花劍鬪)(9)
“……너 말이야.”
“응?”
“왜 자꾸 여기 처오는 건데!”
운휘는 남량의 옆에 앉아 밥을 먹는 찬야를 향해 버럭 소리쳤다.
찬야는 매월관에서 나온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남량의 암자에 출석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 알았는지 운휘가 밥을 지을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났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허락 없이 운휘의 밥을 훔쳐 먹으니, 당연히 찬야를 대하는 운휘의 언행이 고울 리 없었다.
찬야는 수저로 닭과 채소가 들어간 죽을 맛있게 퍼먹으며 싱긋 웃어 보였다.
“네 밥이 너무 맛있어서 그래. 칭찬이야.”
“네 칭찬 따위 필요 없으니까 꺼져 버려.”
“그릇 비었다. 한 그릇만 더 떠다 줄래?”
“네가 직접 떠다 먹……어가 아니라! 자연스레 그릇 내밀지 말고 꺼지라고 새끼야!”
운휘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성질을 냈다.
찬야는 운휘의 말을 무시하고 남량에게 물었다.
“나중에 수련할 때 같이해도 돼?”
“아니! 절대 안 돼! 미쳤냐?”
운휘가 정색하며 남량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님. 그렇죠? 저런 새끼 뭐가 이쁘다고…….”
“이쁜데?”
“네?”
운휘가 충격받은 표정을 지으며 휘청거렸다.
남량은 찬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든든한 노예……. 물주가 생겼는데 이쁘지. 너도 앞으로 찬야랑 좀 친해져.”
빈말이 아니라, 요새 정말 찬야가 예쁘게 보였다.
정식으로 노예 계약(?)을 맺은 뒤, 남량은 본격적으로 찬야의 집안 재력을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매년 표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과 재정, 운용 가능한 자금의 액수까지.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요새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다.
“들었지? 나랑 친해지도록 노력해.”
찬야는 개처럼 남량을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운휘는 이를 부득 갈았다.
‘얄미워 죽겠네. 개새끼.’
남량이 찬야를 마음에 들어 한 부분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운휘의 연습 상대였다.
남량은 매일같이 운휘의 수련이 끝나면 찬야와의 대련을 시켰다.
남량에 비해 실력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찬야와의 대련은 오히려 운휘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되었다.
거기에는 찬야를 싫어하는 운휘가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달려든 덕도 있었다.
물론 한 번도 찬야를 이기지는 못했지만.
퍼억!
찬야는 바닥에 엎어진 운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걸로 7번째 패배네. 아쉬웠어.”
“저, 저 시벌 새끼…….”
둘의 대련이 끝나면, 2 대 1로 남량과의 대련이 이어졌다.
남량은 대련 도중에도 틈틈이 두 사람의 단점을 지적하며 수련을 지도했다.
“찬야. 검기에 집중하느라 동작이 굼뜨다.”
“운휘. 공수 전환이 느려. 더 빠르게 움직여!”
“끊임없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틈이 보이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들어와!”
정신없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여유로운 남량의 모습에, 찬야와 운휘는 충격과 자극을 받았다.
‘이 정도로 차이가 났을 줄이야…….’
‘지지 않아. 반드시 따라잡는다!’
“으아아아!”
“우오오오!”
두 검사는 기합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매화검투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모든 도관이 문을 닫고, 누구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매화검투의 무대는 바로 이 화산 전체.
매화검투에 참가하는 참가자들은 화산 초입에 모여 한 명씩 두루마리를 받는다.
두루마리 속에는 자신이 향할 동굴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그곳에 도착해 미리 기다리고 있는 매화검수와 대련을 한다.
매화검수와 대련을 해 인정을 받은 제자는 통과. 동굴을 나와 화산에서 가장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과거 황제들이 장기를 뒀다는 정자, 하기정(下埼亭)이 있는데, 그곳에 먼저 도착하는 순서대로 등수가 정해진다.
또한, 절대 어겨서는 안 되는 규칙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참가자 간에 공격 금지.
둘째. 참가자 간에 도움 금지.
셋째. 금창약이나 영약 등, 검을 제외한 물품 소지 금지.
이 세 규칙 중 하나라도 어길 시, 자동으로 탈락 처리된다.
또한 하기정으로 올라오는 길목에는 도사들을 배치해, 혹여나 있을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남량은 도복을 단정히 갖춰 입고 암자를 나왔다.
유우화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대체 어딜 간 거지?’
뭐, 딱히 상관은 없지만.
설마, 내 저주가 먹힌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이제 그놈 수발드는 것도 안녕이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 슬슬 웃음이 나왔다.
“낄낄낄……. 죽어라……. 죽어라…….”
그 모습을 지켜보던 찬야는 운휘에게 슬쩍 물었다.
“남 사제 말이야. 혹시 정신병 같은 게…….”
“없어. 아마도.”
“아마도……?”
“가끔 저러셔. 일종의 습관이랄까.”
“아하.”
겨우 정신을 차린 남량이 칼을 챙기며 말했다.
“가자.”
세 사람은 화산을 내려갔다.
화산 초입에 도착하자 참가자들이 모여 있었다.
대충 봐도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추운가? 다들 대나무처럼 떨고 있네.”
운휘의 말에, 찬야가 대답했다.
“사시나무겠지.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냐?”
“넌 시험 도중에 내 칼에 맞아 죽을 줄 알아.”
“그럼 바로 탈락이야. 나랑 남 사제랑 강호에 나가는 동안 여기서 수련 열심히 하고 있어.”
“그냥 지금 죽여 버릴까?”
……여기 두 새끼 빼고.
“그런데, 우리 실력에 매화검수랑 붙어서 이길 수 있어?”
운휘의 물음에, 찬야가 대답했다.
“당연히 불가능하지. 우리가 하는 건, 이기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정’을 받는 거야. 통과 기준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니 크게 다치거나 죽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돼.”
“흥. 그래도 뭔가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
“그럼 달려들어서 뒤지시든가.”
댕……. 댕…….
그때, 화산 너머로 매화검투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미리 받은 두루마리에 적힌 대로, 참가자들은 화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화산 입구에 적힌 ‘천위지척(天威咫尺:하늘의 위엄이 눈앞에 있다)’의 현판을 넘으며, 남량이 말했다.
“나중에 보자. 다들.”
“누가 가장 빨리 들어오는지 내기할까?”
“찬야 놈, 콱 떨어져라.”
셋은 각자의 상대를 찾아 흩어졌다.
***
유독 그날은 화산 전체에 운무(雲霧)가 자욱했다.
남량은 연신 지도를 살피며 빠르게 산길을 내달렸다.
‘대충 여기 어디쯤인 것 같은데…….’
근처에 느껴지는 기를 따라 방향을 잡으니 곧 동굴의 입구가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가자 밝은 횃불이 동굴 안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삼매화 도복이 그려진 도포를 입은 매화검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젊군.’
눈을 감고 있던 젊은 매화검수가 눈을 떴다.
확실히 매화검수인지라 뿜어내는 기의 농도가 다르다.
이 정도면 절정을 넘어 초절정(超絶頂)에 들어선, 혹은 초절정에 준하는 경지가 분명했다.
“왔나?”
“이대제자 남량이라 합니다.”
남량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매화검수는 묘한 눈빛으로 남량을 응시하다 나직이 말했다.
“적파검 혁련위라 한다.”
혁련위는 자신의 도포 자락을 쥐고 흔들어 보였다.
“심사 기준은 간단하다. 내 도포에 구멍이 나거나 눈에 보일 정도로 찢어지면 너의 승리다. 그 즉시 대련을 멈추고 동굴을 나가도 좋다.”
심사 내용은 생각보다 더 간단했다.
남량은 초장부터 단번에 몰아쳐 빠르게 끝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시작할까? 너는 일 초가 아쉬울 테니.”
남량과 혁련위는 서로 검을 뽑아 들며 자세를 잡았다.
당연히 제자들이 도전하는 입장이니 혁련위는 선공을 양보했다.
“후우-.”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남량이 몸을 움직였다.
파팟!
동굴은 폭과 넓이가 제한되어 있어 남량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슈각-!
남량은 단숨에 혁련위의 지척으로 접근, 빠르게 두 번의 검격을 날렸다.
“제법이군.”
혁련위는 공중에 몸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직후, 혁련위의 표정이 급변했다.
바닥에 있을 남량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새 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내, 내가 움직임을 놓쳤다고?’
방심한 것도 아니다. 분명 제대로 상대하고 있었는데도 기척을 놓쳤다.
혁련위는 당황하며 몸을 돌렸다.
채채챙!
순식간에 검격이 오갔다.
혁련위는 당황하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공격을 차단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때, 남량이 동굴 천장에 발을 디딘 채 거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바닥에 착지한 뒤에 달려들 것이라 예상했던 혁련위는 또 한 번 당황을 금치 못했다.
‘생각보다 더 빨리 끝나겠다.’
남량은 천장을 박차고 떨어지며 검을 내리쳤다.
카캉!
두 검이 충돌하며 불똥이 튀었다.
남량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매화천수검의 초식을 펼쳤다.
“낙영용섬.”
슈악-!
그 순간, 남량의 신형이 사라지고 혁련위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혁련위는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자신의 도포 자락을 내려다보았다.
놀랍게도 도포 왼쪽 끝자락에 길게 검상이 나 있었다.
매화검수들은 대회 특성상, 방어나 제지를 제외하고는 공격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약 그런 제약이 없었다면, 남량이라고 해도 이렇게 쉽게 도포 자락을 베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남량이 혁련위의 도포 자락을 베는 데까지 시간은 단 일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매화검투 역사상, 가장 빠른 시간에 통과한 사례였다.
‘끝났군.’
검을 검집에 갈무리한 남량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한 수 배웠습니다. 그럼 이만…….”
“…….”
그 순간.
쩌엉-!
남량이 가슴팍에 충격을 받으며 뒤로 날아갔다.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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