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매화검투(梅花劍鬪)(6)
“후욱. 후욱.”
“헉, 허억…….”
남량은 운휘와 함께 화산 등정을 시작했다.
확실히 운휘의 체력은 나쁘지 않았다.
타고난 것도 있지만 매일같이 기초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시, 처음부터 등정은 무리였다.
절반쯤 가서 운휘는 계단에 엎어졌다.
“더, 더 이상은 못 가겠어…….”
“차차 익숙해질 거야.”
남량이 웃으며 슬쩍 말했다.
“힘들면 포기하든가. 먼저 간다.”
“아, 아닙니다! 멀쩡합니다!”
깜짝 놀란 운휘가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운휘는 그날 이후로 남량을 마치 형님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생각보다 더 순수하고 단순한 놈이었다.
“괜찮으니까 형님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돼. 그리고 네 말대로 일단 내가 사제이기도 하고.”
“그럼 뭐라고 존칭을 해야…….”
골똘히 생각하던 운휘가 말했다.
“남 사제님?”
“아니.”
“남 아우형?”
“이상해. 그냥…… 넘어가자.”
다음은 무공이었다.
현재 운휘가 익힌 무공은 비형권과 화형권, 그리고 매화검(梅花劍) 같은, 지극히 기본적인 무공이었다.
누군가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무공도 발전하지 못하고 기본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랄까.
고인이 된 화성 진인이 운휘의 내공 체계만큼은 확실하게 잡아 놓은 듯했다.
건원청심법(乾元淸心法).
온몸의 기를 순환시켜 운공(運功)을 할수록 탁기를 배출하고 정순한 내력이 쌓였다.
이렇게 높은 경지에 올라 강기(罡氣)를 다루게 되면 도가 최상의 경지인 태청강기(太淸罡氣)를 무리 없이 익히게 될 것이다.
문제는 검술이었다.
검술은 시전자의 성향을 크게 반영한다.
운휘의 성향은 패도적인 면이 강했다.
남량은 화산의 검술 중 호쾌하고 위력이 강한 검술 중, 한 가지를 선택했다.
바로, 칠절매화검(七絶梅花劍)이었다.
보통 화산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상승 무공에 걸맞은 시험을 치러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관문제자는 예외로 원하는 무공의 비급을 바로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무공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역할은 남량이 맡았다.
매화천수검으로 모든 화산의 검술에 통달한 남량은 칠절매화검의 검결을 단번에 파악해 냈다.
칠절매화검은 말 그대로 일곱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암하지전(巖下之電).
뇌봉전별(雷逢電別).
뇌정벽력(雷霆霹靂).
풍창파벽(風窓破壁).
포호빙하(暴虎馮河).
영령쇄쇄(零零碎碎).
허무적멸(虛無寂滅).
시전자의 몸에 무리를 주는 대신, 한 초식이 가히 일격필살(一擊必殺)의 위력을 지녔다 할 수 있는 검술이었다.
남량은 운휘를 직접 지도하며 자세와 움직임, 호흡 등을 하나하나 가르치기 시작했다.
“팔과 다리의 간격을 신경 써. 안 그럼 동작이 불안정하다.”
“근육을 긴장하지 말고 초식의 연계를 부드럽게.”
“발검(拔劍)과 호흡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속도를 높이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집중해!”
남량은 스승 유우화에 빙의된 것처럼 혹독하게 운휘를 가르쳤다.
물론 자신도 운휘의 옆에서 수련을 하며 함께 검을 휘두르고 근육을 단련했다.
둘은 똑같은 외골수였다. 날이 어두워도, 비가 와도 한 번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둘은 화산의 명물(?)이 되어 둘의 훈련을 지켜보는 제자들도 종종 나타났다.
“칠백 이십 사……. 칠백 이십 오…….”
“천 백 사십……. 천 백 사십 일…….”
검을 손에서 놓칠 때까지 휘두르고.
옷이 찢어질 정도로 바닥을 구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벼랑을 오르며.
숨이 차 기절할 때까지 산을 내달렸다.
이제 제자들은 물론이고 매화검수들조차 경이에 차 둘의 수련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챙챙! 채채챙!
“기절하지 마라.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다! 운휘!”
“죽을 것 같습니다, 형님!”
“안 죽어. 죽으면 어쩔 수 없고.”
“……예?”
폭포 아래에서 검을 휘두르는 남량과 운휘. 지켜보던 매화검수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매일 저렇게 훈련하는 거야?”
“대단하군. 우리 때도 저러지는 않았는데…….”
“잘 때도 검을 끼고 잔다는 소문이 있어.”
“오히려 우리가 저들을 본받아야겠군.”
“그런데 왜 사형 쪽이 존칭을 쓰고 사제 쪽이 반말을 하는 거 같지? 원래 반대 아니냐……?”
소문은 계속 퍼져 십대 장로들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산손정(山蓀亭) 정자에서 바둑을 두던 일 장로 노백과 다른 장로들은 집채만 한 바위를 지고 봉우리를 오르는 남량과 운휘를 발견했다.
“저 아이들이…….”
“멀리서 보아도 뜨거운 기개가 느껴집니다.”
“화산의 미래가 참으로 밝군요.”
장로들은 입을 모아 남량과 운휘를 칭찬했다.
일 장로 노백은 진중한 눈으로 두 사람을 응시하며 수염을 쓸었다.
‘뜨겁다. 젊음이란 참으로 좋구나.’
전해지는 열기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노백은 긴 세월 동안, 강호의 변화를 수차례나 목격했다.
그리고 격변(激變)의 중심에는, 언제나 저런 열기를 가진 젊은이들이 있었다.
또 한 번, 저들로 하여금 강호는 격변한다. 노백은 확신했다.
‘죽기 전 재미난 구경을 할 수 있겠군.’
노백은 저 멀리 상궁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지 않소, 장문인?’
***
“량아. 이 스승의 말대로 운휘를 네 곁에 들인 것은 좋으나…….”
유우화는 난감한 듯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스승의 말뜻은 믿음직한 동료로서 운휘를 대하라는 것이었지, 노예를 들이라는 것은 아니었단다.”
“…….”
유우화와 남량의 시선이 동시에 한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운휘가 한껏 진지해진 표정으로 상을 차리고 있었다.
운휘와 수련을 같이하며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
전혀 안 그렇게 생겼는데 손맛이 엄청 야무지다.
유우화는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이 채소볶음, 이거 정말 맛있구나.”
“향고(香姑:표고버섯)와 유채(油菜)를 기름에 볶은 것입니다.”
“이, 이것은?”
“채소 위에 돼지고기를 올리고 찐 요리입니다. 간장 등으로 간을 했습니다.”
“참으로 맛있구나. 미미(美味)로다!”
남량은 유우화의 입가에 번진 웃음을 힐끗 쳐다보며 표정을 구겼다.
반년 동안 내가 차린 밥상 앞에서는 가식적인 웃음만 보이더니.
내 따가운 시선을 눈치챘는지 유우화가 애써 표정을 가다듬는 모습이 보였다.
“흠흠. 아무리 그래도 우리 량이가 해 준 밥만 못하지. 암.”
“…….”
정말 고맙다. 개자식아.
어쩜 그리 연기도 형편없는지.
남량은 미소를 지으며 고기 한 점을 집어 유우화의 접시 위에 올렸다.
“많이 드시지요. 스승님. 하.하.하.”
“그, 그래. 너도 많이 먹어라…….”
식사가 끝나고 유우화가 차를 마시는 동안 남량과 운휘는 마당에서 대련을 했다.
두 젊은 검사의 검무(劍舞)는 푸른 달빛, 떨어지는 꽃잎과 맞물려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유우화는 또 한 번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장강의 앞물결이 뒷물결에 밀려나듯, 이제 시대는 새로운 인재들로 인하여 채워질 것이다.
‘매화검투에서 이겨 꼭 강호로 나가거라. 가서 재능을 마음껏 떨치고 돌아오거라.’
스승 된 입장으로 제자의 앞길에 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문득 좋은 생각이 든 유우화는 그날 밤 서신을 써서 전서구에 날려 보냈다.
전서구는 각각 『섬서 포목점』과 『강북 최고의 대장장이』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
며칠 후, 남량과 운휘는 수련용 목검이 떨어져 새로 가져오기 위해 수련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 있던 일대제자 무리가 두 사람의 앞을 막고 나섰다.
남량은 표정을 살짝 구겼다.
“뭐 하는 새끼들이냐?”
그 대답은 운휘의 입에서 들려왔다.
“일대제자 청강(淸姜)과 떨거지들입니다. 질이 아주 나쁜 놈들이지요.”
“한마디로 청서 같은 놈들이라는 뜻인가.”
청강은 운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만 봐도 불쾌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왔다.
놈은 번들거리는 눈을 운휘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소문 많이 들었다. 사파. 요새 수련에 매진하느라 정신이 없다며?”
‘사파’라는 단어에 운휘가 눈살을 찡그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량도 똑같이 눈썹을 꿈틀했다.
그러고 보니 화성 진인의 죽음 이후 운휘의 출신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던 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그게 이놈들이었구나.’
청강이 입꼬리에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말했다.
“그래 봐야 흑도 주제에. 얌전히 찌그러져 있으라고 했어, 안 했어? 네까짓 놈이 열심히 한다고 진짜 화산의 제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딜 족보도 없는 새끼가…….”
청강은 아예 운휘의 어깨를 쿡쿡 찌르며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경고하는데, 설치지 말고 쥐 죽은 듯 살아.”
“싫은데.”
“뭐?”
운휘의 말에 깜짝 놀란 청강이 움찔했다.
운휘는 무심한 표정으로 청강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싫다고. 누구 맘대로?”
“이 사파 새끼가 미쳤나…….”
청강이 욕설을 지껄여도 운휘는 거침이 없었다.
“내가 주목받는 게 싫으면 똑같이 노력을 하든가.”
“어디서 개소리를 지껄여! 누가 너 따위를……!”
청강은 숫제 얼굴까지 붉히며 씩씩거렸다.
운휘는 화룡점정으로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
“알아. 흑도라고 무시했던 놈이 온 화산의 주목을 받으니 배알이 꼴리나 본데…….”
청강이 주먹을 부들거렸다.
운휘는 청강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그만해. 추하다.”
“하하하!”
남량은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보는 이가 절로 통쾌해지는 통렬한 한 방이었다.
반면, 커다란 충격을 받은 청강이 이를 악물었다.
“너 따위 사파 새끼가……. 감히 나를 능욕해? 네가…….”
청강은 허리춤에 찬 검을 뽑아 들고 그대로 달려들었다.
“죽여 버리겠다!”
“멍청한 놈…….”
화산에서 살심(殺心)을 품고 검을 휘두르면 안 된다는 건 둘째 치고.
상대방과 자신의 기량을 가늠도 하지 못하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남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 가라.’
다음 순간, 운휘는 목검을 들어 청강이 검을 휘두르기 전 먼저 초식을 펼쳤다.
파팟!
순식간에 검을 휘두른 운휘는 목검을 내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청서에게 안부나 전해 줘라.”
“뭐라고 지껄이는…….”
이를 부득 갈며 고개를 돌린 청강이 이내 끊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끄아아악!”
남량은 청강의 사타구니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바라보며 또 웃음을 터뜨렸다.
고민이 된다.
이 정도면 고환분쇄 초식을 제대로 만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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