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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검황-4화 (4/164)

<4화>

매화검투(梅花劍鬪)(3)

이틀 후, 방식이 정해졌다.

“일대제자 중 한 명을 선발하고 비무의 자리를 마련하도록 하겠다. 이대제자들은 그를 쓰러뜨리면 매화검투에 참여할 자격이 주어진다.”

선발된 일대제자는 청서(靑暑)라는 사내였다.

그는 일대제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성정이 거칠고 비열해 사형제들이 기피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청서에게는 귀찮은 일을 맡긴 대가로, 한 명의 이대제자도 비무를 이기지 못했을 경우 매화검투를 치르지 않고 특별히 강호행을 떠날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 정도면 적당하겠나?”

구양중의 말에 유우화와 이건은 두말없이 찬성했다.

“적당합니다.”

“네.”

“그럼 제자들에게 공표하도록 하지.”

구양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식을 들은 남량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쉽군.’

애새끼 한 명 두들겨 주면 끝난다.

유우화가 잘 해낸 모양이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은 전혀 반대였다.

“젠장. 아무도 올라오지 말라는 소리잖아…….”

“맞아. 청서 사숙은 악랄하기로 유명한데.”

“결국 청서 사숙만 좋은 일 해 주는 꼴이군.”

제자들은 하나같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

수련관(修鍊館) 앞마당에 간단한 비무대가 차려졌다.

비무대 앞에는 이대제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생각보다 많이 참여했군.’

이대제자들에게는 좀처럼 어려운 기회 아닌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대전 순서는 제비뽑기로 추첨했다.

남량의 번호는 삼 번. 생각보다 빨랐다.

어차피 금방 끝낼 거, 빠를수록 좋다.

그때, 나를 향한 수많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주변에 도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뭐야, 장로들에 매화검수들, 심지어 장문인까지 와 있어?

겨우 이대제자들의 비무인데 수뇌부가 잔뜩 몰려왔다는 것은…….

남량의 시선이 유우화를 향했다.

유우화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남량은 저들이 온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 때문이구나.’

매화천수검의 계승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건가.

그들의 관심은 오직 하나였다.

과연 화산제일검의 명맥을 이을 자가 나타날 것인가.

화산의 미래가 달린 중대한 일이니 관심과 기대가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좋은 상황이다.

이 자리에서 저들에게 확실히 보여 주는 편이 나았다.

장차 화산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검사가 누구인지를.

한편, 남량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자가 있었다.

바로 이번 대련의 상대인 일대제자 청서였다.

청서는 덩치가 크고 눈매가 부리부리했다.

그는 조금 전부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처음 이 제안을 부탁받았을 때는 그저 좋았다.

강호행을 고대했으나 쟁쟁한 동문들 때문에 매화검투는 일찍 포기했던 차, 생각지도 못한 기회였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듣자마자 기분이 썩어 들어갔다.

‘그러니까, 나를 그 애새끼의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상대로 생각하고 있단 말이야?’

그렇잖아도 성정이 불같고 자존심이 강한 그였다.

자신이 겨우 이대제자 따위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임을 알자 분노가 솟구쳤다.

심지어 놈의 대련을 보기 위해 화산의 수뇌부가 전부 행차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청서는 깊은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다.

‘잘 보고 있어라. 그 기대를 절망으로 바꿔 줄 테니까.’

처음은 대충 가지고 놀다 끝내 줄 생각이었지만.

더러운 기분을 풀려면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래. 적어도 팔다리 하나 정도는 가져가야겠다.

청서는 살기등등한 눈으로 손에 쥔 목검을 만졌다.

내공을 쓰지 못하는 대련에서도 팔다리를 부수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대련 중에 감정이 격해져 일어난 실수라고 하면 누구도 큰 벌을 내리지 못할 터.

남량을 노려보는 청서의 입꼬리가 비릿했다.

“첫 번째 순서부터 호령하겠다.”

첫 번째 이대제자가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둘은 정중히 예를 갖춘 뒤 비무를 시작했다.

‘쓰레기들 따위에 낭비할 시간 없다.’

청서는 처음부터 봐주지 않고 몰아쳤다.

한 합에 세 번의 검격이 들어갔다.

퍼퍼퍼퍽!

이대제자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지켜보던 제자들이 눈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다음.”

청서는 기다릴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이어진 두 번째 비무.

이번에도 청서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퍽! 쩌억!

횡으로 옆구리를 후려친 다음, 검등으로 목을 올려쳤다.

이대제자는 코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그대로 혼절했다.

남은 참가자들은 들것에 실려 내려가는 제자를 보며 겁에 질려 부들거렸다.

“틀렸어. 참가하는 게 아닌데…….”

“지금이라도 포기할까? 젠장.”

“하필이면 저런 또라이가 상대라니…….”

그리고 마침내 남량의 차례가 되었다.

***

“저기 봐, 저 녀석이…….”

“그래. 매화천수검을 계승한 제자다.”

비무를 구경하던 일대제자들, 그들 가운데 남량을 가장 신경 쓰는 사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위지혁(韋持赫).

풍수검(風水劍)이라는 별호로 강호에 알려진, 뛰어난 무예 실력과 성품으로 명성이 높은 제자였다.

현 일대제자들 가운데 차기 매화검수이자 장문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저 녀석이…….’

남량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위지혁은 화산의 모든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인재였다.

당연히 자신이 장문인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의 스승인 이건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매화천수검을 계승한 제자가 나타났다.’

‘그럴 리가…….’

위지혁은 덜컥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설마, 그놈이 내 자리를 노리고 있는 것인가?

매화천수검을 익힐 정도라면 당대의 기재(奇才)가 분명할 터.

당연히 화산에서 주목할 터이니 알려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확실하지 않다.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겠다.’

그래서 일부러 이 자리에 나왔다.

‘어디 보여 봐라. 네 자질을.’

위지혁은 팔짱을 낀 채 비무대에 올라서는 남량을 응시했다.

비무대 위로 올라간 남량은 화가 잔뜩 난 청서를 마주했다.

앞선 두 차례의 비무를 보았다.

실력의 차이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필요 이상으로 상처를 입힌 것과, 고통을 느끼는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하던 모습.

한눈에 봐도 질이 떨어지는 놈임을 알 수 있었다.

‘길게 끌 것 없겠지.’

한 수로 끝장낸다.

관자놀이나 목을 적당히 치면 기절할 것이다.

굳이 몸을 많이 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방으로 끝내는 것이 관중들의 뇌리에 더 확실히 박힐 테니까.

그때, 청서가 건들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에 대해서는 얘기 많이 들었다.”

놈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에 남량이 눈을 찡그렸다.

“이대제자 중에서도 가장 뒤떨어지는 둔재였다며? 매화검선의 제자로 들어간 것도 사실은 식모살이였고.”

“…….”

“매화천수검을 익혔다라……. 거짓말이 제법 그럴싸하더구나. 그런데 사제야, 너무 판을 크게 벌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냐? 그 멍청한 판단의 대가로 너는 오늘 팔다리 하나를 잃게 될 거다.”

“아무리 사숙이라지만 예의를 좀 지키시지요.”

남량의 차가운 목소리에 흥이 돋은 청서가 더 질 나쁜 농을 던지기 시작했다.

“아니다. 얼굴도 곱상하게 생겼고 몸도 여리여리하니까……. 깊은 밤에 찾아가서 범해 버릴까? 흐흐.”

“……!”

그 순간, 남량이 실소를 터뜨렸다.

아주 잠깐, 잊고 있었다.

전생의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말이다.

“하하하……. 으흐흐흐…….”

청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너 지금 웃는 거냐?”

“아니, 이런 취급은 난생 처음이라…….”

“뭐?”

성적 희롱이라. 그에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천마로서 군림하던 시절이었다면 그 누가 감히 내게 저따위 저급한 농을 던지겠는가.

남량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멎었다.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만…… 아무래도 네놈 버릇은 단단히 고쳐 주어야 할 것 같구나.’

남량이 목검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사숙이 자초한 일이니 원망하지 마십시오.”

“건방진 놈이 감히 누구한테…….”

청서가 이를 부득 갈며 검을 들었다.

그의 눈과 검끝에서 살기가 일렁거렸다.

예를 갖추는 형식이 끝나고, 비무가 시작되었다.

청서는 바닥을 박차고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팔다리가 아니라 단전을 폐해 버리겠다!’

목을 노리는 베기는 허초(虛招).

진짜는 아랫배를 노리는 찌르기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감상해 주지!’

그 순간, 모두가 청서의 노림수를 알아차렸다.

일부 도사들은 지금이라도 난입해 남량을 구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지만, 구양중의 엄중한 경고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절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비무장에 난입하지 않도록.’

이건은 남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걸로 끝이다.’

위지혁 또한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결국 쓸데없는 걱정이었군.’

그 순간, 남량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헉!”

청서가 당황하는 것과 동시에 남량이 그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매화천수검의 1초식, 낙영용섬(落英龍閃)은 섬전(閃電)의 일검(一劍). 힘과 속도를 한 점에 집중해 폭발하듯 휘둘러 적을 베어 내는 일격필살의 검격.』

“이 자식이…….”

당황한 청서가 다급히 몸을 돌리려는 순간!

파삭-.

사타구니에서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청서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어, 어어……?”

순간 비무장이 고요해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랫도리를 붙잡은 청서가 이내 짐승처럼 괴성을 질러 댔다.

“으아아아아아-!”

“그, 그만! 중지!”

뒤늦게 심사관들이 청서를 향해 달려왔다.

지켜보던 이들은 하나같이 경악에 찬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남량은 목검을 바닥에 던지며 싸늘히 말했다.

“이참에 도사는 관두고 환관 자리나 알아보는걸 추천하지요.”

화산검황

비류(沸流) 신무협 장편소설

(沸流)

발행인ㆍ곽동현 / 발행처ㆍ(주)조은세상

이 책의 저작권은 (주)조은세상과 지은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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