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현세귀환록-72화 (72/203)

# 72

현세귀환록

072. 수련(2)

유연하고 빠른 신체를 사용하여 전방위적 공격을 하던 정시아는 잠시 물러서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그녀는 이제 대련을 끝낼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자, 이제 마지막이야!”

정시아의 마지막이라는 말에 최강훈은 눈을 빛냈다. 이제껏 참고 참아왔던 그녀를 쓰러뜨릴 마지막 공격 기회가 곧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한 달 동안 그녀와 대련을 해왔던 최강훈은, 언제부터인가 그녀가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 나면 좌우를 고속으로 이동하며 시야를 흐트러뜨린 후 가슴 쪽에 나선 형태의 장(掌)으로 공격하는 것을 마지막 일격으로 삼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도 정시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수십 번을 고속 이동하면서 최강훈의 시야를 흩뜨리며 다가왔다.

어차피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정시아의 이동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기에 최강훈은 정시아가 최후의 일격을 노리는 그 타이밍에 맞추어 카운터를 날릴 생각만 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최강훈의 근처로 다가온 정시아에게, 최강훈은 눈을 빛내며 타이밍에 맞춰 추측성의 카운터를 가했다.

처음 보는 공격이었다면 타이밍조차 맞추기 힘들 만큼 빠른 공격이었으나 이미 이 공격에 수차례 이상 쓰러진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강훈은 타이밍을 잘 알고 있었다.

보통의 공격으로는 큰 충격조차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최강훈은 좌측으로 일보를 옮기며 전력을 다하여 마나를 실은 강한 정권을 꽂아 넣었다.

팡-!

하지만 정시아의 타이밍은 평소와는 달랐다. 최강훈의 주먹은 허공에 파열음을 내는 것으로 그 목적을 다 해 버리고 말았다.

퍼~억!

그리고 평소보다 한 박자 늦게 들어온 정시아의 장이 최강훈의 가슴을 때렸다.

카운터를 치려다가 오히려 카운터로 가슴을 맞은 최강훈은 자신의 힘까지 실려서 평소보다 훨씬 더 멀리 튕겨 나가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휴우…… 큰일 날 뻔했네. 역시 한 방이 있는 녀석이라니까. 근성도 있고.’

정시아가 그 마지막 공격의 타이밍을 어긋나게 한 것은 그녀가 최강훈의 공격을 예측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고속 이동을 하며 공격을 가하려던 마지막 순간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최강훈의 눈을 본 정시아는 마치 웅크리고 있는 맹수를 본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뭔가 섬뜩해서 공격의 타이밍을 한 박자 늦추지 않았더라면, 저렇게 쓰러진 것은 오히려 자신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정시아는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최강훈이 쓰러지고 나자 이제껏 대련하는 공간을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이 점점 흩어지면서 둘이 대련하던 그 넓었던 공간이 점점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공간이 줄어듦에 따라 100여 미터나 나가떨어진 최강훈 역시 여전히 쓰러진 채로 정시아의 5미터 정도까지 가까이 왔다.

푸른 공간은 유리엘이 둘의 대련을 위해서 펼친 공간 왜곡 결계였고, 결계를 거두자 왜곡된 공간이 바로 돌아오면서 최강훈이 가까이 온 것이었다.

이내 푸른 기운은 다 사라졌고 이제는 그 푸른 기운 때문에 잘 보이지 않던 주위가 보였는데, 익숙하게 보이는 이곳은 강민의 집 앞마당이었다.

강민과 유리엘은 마당의 벤치에 앉아서 이제까지의 대련을 모두 지켜보았는데 기절한 최강훈이 일어나지 않자 유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나 최강훈에게 다가갔다.

그래도 최후의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일으켜 치명상을 피했는지, 최강훈의 상처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정시아의 공격에 살기가 없었던 것도 최강훈의 상처가 심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였다.

여전히 기절해 있는 최강훈에게 다가간 유리엘이 가벼운 웨이크닝 마법을 걸어 최강훈을 깨웠다.

“끄응…….”

유리엘의 마법을 받은 최강훈은 신음을 내며 바닥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런 최강훈에게 유리엘은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그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리며 말했다.

“오늘도 졌구나. 강훈아. 호호호.”

“그러게요, 누님. 으윽…… 이번엔 성공할 줄 알았는데. 젠장.”

그래도 충격이 컸는지 최강훈 신음을 내뱉었는데, 그것보다는 최후의 일격을 성공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더 컸는지 아까워하며 바닥을 쳤다.

그런 최강훈을 보는 정시아는 이번 그와의 일전 덕분에 자신의 버릇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치 자신이 알고 피한 척 최강훈을 놀렸다.

“이런 게 페이크라고, 페이크~! 알겠냐, 멍청아! 그래놓고 오빠는 무슨, 흥!”

최강훈은 정시아의 놀림에도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말처럼 자신은 그녀의 페이크에 완전히 넘어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말과 달리 그녀가 실제로 페이크를 쓴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최강훈이 일어나서 다가오자 강민이 그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떠냐?”

어떠냐는 강민의 물음에 최강훈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제는 시아가 뱀파이어의 능력을 안 써도 버티기조차 힘드네요. 그간 수련을 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계속되는 패배에 최강훈 역시 답답했는지 허탈한 표정으로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런 최강훈의 표정을 본 강민이 이어서 물었다.

“네가 시아한테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아무래도 신체의 반응속도와 마나량이 부족해서가 아닐까요?”

“그럼 만약 내가 너 정도의 신체 반응속도와 마나량으로 제한하여 시아와 대련한다면 시아를 이길 수 없을까?”

“그, 그건…… 아니겠지요…….”

헤이안의 쇼군과 대결에서 본 강민의 강함을 떠올린 최강훈은 강민의 물음에 당연히 아니라는 대답을 냈다.

“그렇겠지. 그러니 네가 단순히 신체 능력과 마나량 때문에 시아에게 진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시아를 이기기는 더 힘들 것이다.”

강민의 단정적인 말에 최강훈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강민에게 되물었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신체 능력과 마나량이 패배의 주요 원인이었는데 강민의 말은 그게 아니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까, 형님?”

“신체 능력과 마나량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시아를 이기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향후 마스터가 되기는 더 힘들 거야.”

최강훈이 꿈꾸고 있는 경지인 마스터에도 오르기 힘들다는 말에 최강훈은 다소 충격을 받은 얼굴로 강민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님?”

“내가 네 성장이 멈출 때마다 모든 걸 말해준다면, 앞으로 네 모든 성취는 스스로 이루기 힘들겠지. 스스로 고민해 봐.”

강민의 말이 맞았기에 최강훈은 더 묻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 형님.”

그런 최강훈의 모습에 강민은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의 실마리 정도는 던져주었다.

“한 가지 정도 말해준다면, 신체를 쓰는 단순 수련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마나 그 자체에 집중해서 수련해 봐. 그게 시아를 이길 수 있는 길이고, 마스터에 오르는 길이니 말이야.”

사실 무(武)에 대한 재능은 최강훈이 정시아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물론 뱀파이어이자 피의 각성까지 받은 정시아가 신체적인 능력이나 마나량에서는 최강훈을 훌쩍 뛰어넘겠지만, 동일하게 마스터가 된다고 가정하면 최강훈이 신체 능력이나 마나량이 떨어지더라도 최강훈이 이길 확률이 높았다.

마스터의 단계에서는 신체 능력이나 마나량보다는 마나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그 경지에서의 실력 차이로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최강훈의 무의 재능은 그런 것을 의미하였다.

물론 마스터 밑의 단계에서도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면 낮은 등급의 능력자가 높은 등급의 능력자를 이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마스터 이전의 단계에서는 실질적으로 보이는 신체 능력과 마나량이 좀 더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체감하지 못할 뿐이었다.

결국 강민의 말대로 마나에 집중에서 수련하는 것만이 최강훈이 나아갈 길이었다.

최강훈에게 하나의 실마리를 던져준 강민은 정시아를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당분간은 강훈이와 대련은 쉬도록 해.”

피의 각성 이후에 실력이 부쩍부쩍 늘고 있는 정시아는 최근 최강훈을 두드리면서 오는 쾌감이 상당했다.

게다가 아직 관계 설정의 초반이니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최강훈에게 각인시켜 주고 싶었기에 강민의 말에 당연히 반발하였다. 물론 그 반발이라는 것은 그녀가 자신 있어하는 애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아잉~ 오빠~ 강훈이랑 대련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었는데 조금 더 하면 안 될까?”

정시아는 강민의 팔에 매달리며 콧소리까지 내며 말했다. 처음과 같은 마스터과 수하의 관계였다면 상상하지 못하였을 테지만 지금 그녀는 최강훈과 같은 가족과 비슷한 상태였기에 애교를 듬뿍 담은 앙탈을 부렸다.

정시아의 애교 어린 앙탈에 강민은 피식 웃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더 이상 강훈이 괴롭혀 봤자 둘 다 실력이 늘 것 같지는 않으니 그렇지.”

지금 둘의 대련은 어느 정도 패턴이 굳어져, 최강훈이 뭔가를 깨닫고 굳어진 패턴을 깨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대련은 둘 모두에게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히잉…….”

정시아의 콧소리 섞인 투정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강민이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아직 백작급인데 후작급이 되고 싶지 않아?”

지금 정시아의 상태는 상당히 많이 갈무리하긴 하였지만 아직도 끓어오르는 진혈의 기운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한 상태였다.

만일 이 기운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한다면 A+등급 능력자인 후작급 뱀파이어도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한창 강해지는 것에 재미가 붙은 정시아는 강민의 말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진짜?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는 거야?”

인간보다 5배 정도 오래 사는 뱀파이어는 능력이 상승하는 속도 역시 인간보다는 훨씬 느린 편이었다.

인간이 단전을 활용하여 빠른 속도로 마나를 쌓을 수 있는 것에 비해, 뱀파이어는 정시아와 같이 피의 각성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진혈에 마나가 쌓이며 강해지는 것이기 일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남작급에서 백작급으로 능력이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후작급을 이야기하는 강민에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각성한 진혈의 기운을 모두 받아들이진 못했잖아. 그러니 네가 하기에 따라서 충분히 강해질 수 있지.”

“그럼 듀크급도 가능한 거야?”

“듀크급이라면 마스터급일 건데, 마스터급은 단순히 노력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그 이상이라면?”

“마스터급에 오를 시점에서 네가 가진 것에 따라 다르니 지금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야. 그리고 그런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고.”

“히잉, 말해주지.”

“말해도 소용없다고 이 녀석아.”

강민은 정시아의 머리를 꾹꾹 누르면서 말했다. 그런 강민에게 정시아는 더 애교를 부리면서 달라붙었다.

“아포아포~ 나 아프게 했으니까 말해줘, 말해줘~ 응? 오빠~ 응?”

정시아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자 유리엘을 돌아보며 그녀를 좀 떼어 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리엘은 그저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하며 혼자서 해결해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결국 정시아의 애교에 강민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마스터의 단계로 가는 것은 지금 네게는 무리일 거야. 마스터가 아닌 단계와 마스터의 단계는 마치 패러다임의 변화처럼 극적으로 나타나거든. 마스터 전까지는 당연했던 모든 것들이 마스터 단계에서는 의문투성이가 될 것이고, 밑의 단계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마스터 단계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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