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카데미의 노예가 살아남는 법-74화 (74/200)

74.

“…뭐라고?”

‘제른을 탈출시켰다고? 그 병력을 뚫고?’

분명 제른이 수레에 갇혀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제른을 이송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걸 뚫린단 말인가?

“설마 파멸학파 쪽에서 습격한 건 아니겠지?”

“파멸학파 측에서는 자신들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다만… 현장에 이상한 점이 있었다고 했는데 흑마법뿐만이 아니라 성마법의 발현 흔적도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성마법의 발현 흔적이 있었다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성마법이라니?

‘설마 레바논 왕국이 개입한 건가? 아냐, 그건 말이 안 돼. 레바논 왕국이 뭐가 아쉬워서 제른을 꺼내 주려 하겠어.’

내가 고민하던 중 볼드 학장이 말한다.

“지금 흑탑 인근에 거주하고 있던 레바논 출신들을 전부 소집하여 조사 중에 있긴 합니다만, 범인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놈들에게는 마인드 브레이커가 잘 통하지 않는지라…….”

“…그렇군.”

나는 볼드 학장의 보고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제른이 탈출했다……. 그럼 이번 일로 가장 이득을 보는 쪽이 어디지?’

당연히 전쟁론자들과 그리고 성녀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일 터.

‘이거… 증거만 없다 뿐이지 파멸학파는 무조건 개입을 했을 것 같은데.’

애당초 그들은 제른과 한배를 탔던 족속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성마법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어떤 미친놈이 그런…….’

순간 미친놈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나는 성마법과 미친놈이라는 단어에 누구보다 적합한 인물 한 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아크 교수가 이번 일에 개입한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최근 흑카데미에서 아크 교수의 모습도 잘 안 보였던 것 같은데…….’

요 며칠간 흑카데미에서 아크 교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탓일까.

아크 교수에 대한 의심이 점점 더 커진다.

‘에이, 아무리 그 늙은이가 순교에 미쳤다고 해도 그렇지, 설마 자국의 성녀마저 순교시키려고 들겠어?’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분명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그 늙은이라면 실행에 옮길 것도 같단 말이지.’

그간 내가 봐 왔던 아크 교수라면 말이다.

‘근데 최대한 성녀의 모습을 숨긴다고 숨겼는데 대체 어디서… 아… 설마 그때 제이나를 본 건가?’

나는 제이나가 메이스로 땅을 다지던 그 당시를 떠올리곤 혀를 찼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흠…….’

“뭐, 크게 상관없을 것 같네.”

“…예?”

“권력을 잃은 그가 뭘 할 수 있겠어? 흑탑에 출입조차 불가할 텐데.”

거기다가 나는 이미 레바논의 오함마가 갖고 있는 힘을 똑똑히 봤잖은가?

“그렇기야 합니다만…….”

“그래도 최소한의 대비는 해야겠지. 레논 부탑주께 이야기해서 흑카데미 경계 병력 좀 더 늘려 달라 그래.”

“알겠습니다.”

볼드 학장이 곧 자리를 뜨자.

“제이나! 잠깐 이쪽으로 와요!”

나는 인부들 사이에 섞여 목재를 운반하던 성녀에게 손짓했다.

“네?!”

나의 부름에 어깨에 굵은 나무를 짊어진 채 달려오는 제이나를 보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 크게 소리쳤다.

“아니, 그 통나무랑 결혼이라도 했어요? 그건 좀 내려놓고 와요.”

쿵-

제이나가 나무를 바닥에 툭 던지자.

“저건 무슨 힘이야, 대체? 정말 같은 사람인 건가?”

“쉿. 입조심해. 흑남님의 고용인이라더군.”

인부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슨 일이에요?”

“제른이 탈출했답니다.”

“제른이요?”

제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이 곤죽으로 만들었던 흑마법사 말입니다.”

“아아! 그 아저씨요? 근데 탈출을 했다고요?”

“네. 이유야 많겠지만 개중에 가장 큰 이유는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 거겠죠.”

그에 배시시 미소를 보이는 제이나.

“그럼 또 만나면 그땐 일어나지도 못하게 만들어야겠네요.”

‘이제는 그냥 대놓고 패겠다고 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도 방법입니다만 당신이 레바논 왕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싫어요.”

단호히 고개를 젓는 제이나를 보며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보였다.

“아니, 대체 왜 안 가려고 하는 겁니까?”

“저는 이곳이 좋아요. 그래서 좀 더 머무르려고요.”

“…예?”

‘흑마법사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이 좋다고?’

내가 어처구니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제이나가 미소를 머금은 채 말한다.

“이곳은 대신전에 비하면 정말 자유로워요. 쓸데없는 예법을 지킬 필요도 없고 잠도 실컷 잘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눈치 안 보고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좋고요.”

제이나가 핏줄이 솟은 손으로 통나무를 슬쩍 들어 보이며 웃는다.

“그 힘은 그냥 당신이 안 쓰고 있던 거였잖습니까.”

“당연하죠. 이 모습을 보이면 신관들이 절 이용하려고 들걸요?”

‘하긴… 그 괴물 같은 힘을 보고 나면 장담하건대 당신을 전장의 선봉장으로 세우려고 할걸?’

“그래도 언제까지고 이곳에 있을 수는 없을 텐데요.”

나의 말에 씁쓸히 웃는 제이나.

“그래서 적당히 머무르다가 때가 되면 가려고요.”

‘오오, 그래? 알아서 가겠다고 하면 뭐… 더 보챌 필요는 없겠지.’

물론 저게 제이나의 본심인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어 남는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그만한 괴력을 갖고 있어도 아무런 짓도 안 했으니 조금은 믿어 줄까.’

그녀가 악의를 품고 있었다면 적어도 학생들 대부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터.

“그렇다면야 더는 재촉하지 않겠습니다. 적당히 즐기시다가 떠날 때가 되거든 미리 언급만 해 주시죠.”

“네, 그럴게요. 근데 지금 어디 가시는 거예요?”

제이나의 물음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는 나지막이 답했다.

“한 달 후면 흑립 유치원이 얼추 완성될 것 같으니 미리 교수들을 뽑으러 갑니다.”

“그래요? 알겠어요. 다녀와요.”

그 말을 끝으로 로브를 두른 제이나는 다시금 통나무를 이고는 공사 현장으로 향한다.

‘거참… 이상한 여자야.’

* * *

나는 사전에 레논 부탑주와 약속한 시간에 맞추어 흑탑으로 이동했다.

“흑남님,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그래요? 교수직에 관심이 있는 흑마법사들을 모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내가 웃으며 감사를 표하자.

레논 부탑주 역시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젓는다.

“하하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나는 레논을 따라 텅 비어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말한 대로 잘해 놨네.’

방 중심에 의자 세 개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 맞은편으로는 면접자들이 앉을 의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물 배치를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교수를 선임하는 건 또 처음입니다.”

내가 면접관으로 부려 먹기 위해 데려온 볼드 학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자.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원래는 어떻게 뽑는데?”

“그야… 흑탑에서 마땅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자나 다른 이의 추천을 받아 뽑았었습니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뽑으니까 콘스 같은 인성이 파탄 난 놈들이 들어오지.’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는 안 돼. 그렇게 뽑으니까 인성 파탄 난 교수가 들어오는 거지.”

“인성… 말입니까?”

“그래. 실력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상식이라는 틀 안에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할 것 아냐.”

내 말에 볼드 학장은 어안이 벙벙하여 나를 바라봤으나.

나는 아랑곳 않고 회의실 밖에 대고 소리쳤다.

“들어와!”

그러자 검은 로브를 두른 흑마법사 다섯 명이 우르르 회의장 안으로 들어온다.

면접자들이 의자에 앉는 사이.

“여기 흑남께서 말씀하셨던 정보들입니다.”

레논 부탑주가 내게 양피지 몇 장을 건넨다.

‘흠… 제법 정리를 잘해 놨네.’

양피지 안에는 내가 요구한 대로 면접자들의 이름과 가문을 비롯하여.

그들의 활동 이력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저는 포르보른 가문의 장남…….”

그 와중 한 면접자가 입을 떼자.

“아, 가문은 됐습니다. 자기소개도 생략하겠습니다.”

나는 단칼에 그의 말을 잘라 버렸다.

“예?”

“지금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은 모두 레논 부탑주님께서 심사숙고하셔서 모신 분들입니다. 그러니 가문이나 이름의 무게에 대해서는 따지지 않겠습니다.”

나는 다시 양피지를 흘끔 살피고는.

첫 번째 면접자를 보며 질문했다.

“가론다, 당신은 왜 흑립 유치원의 교수가 되려고 하는 거죠?”

“저는 어린아이들에게 흑마법을 가르쳐 유능한 흑마법사를 만들겠다는 흑남님의 이념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이념에 따르고자 유능한 흑마법사들을 키워 내어 흑탑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호오… 내 이념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

나는 흘러나오려는 실소를 삼키고는 덤덤히 질문을 이어 갔다.

“좋습니다. 그럼 만약 당신이 흑립 유치원의 교사가 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생각입니까?”

“먼저 살인과 시체에 익숙해지게 할 겁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죽음에 익숙해지면 그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흑마법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가론다의 대답이 끝나자 나는 괜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저게 정답에 가까운 대답이긴 해.’

최고의 흑마법사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단계긴 했으니까.

‘다만… 어린애들한테 살인부터 시킨다는 게 좀 걸리네. 이 부분은 좀 더 심도 있게 고민을 해야겠어.’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다른 면접자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고.

“저는 일정 주기마다 학생들에게 강한 체벌을 내리려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교수의 말을 잘 듣지 않겠습니까?”

“저는 매주 아이들의 음식에 미약한 독을 섞어 사람을 의심하는 법을 기르도록 하려 합니다.”

“그럼 저는 방금 면접자들이 말한 그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살인에 무감각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철혈의 흑마법사를 만든다? 흐음…….’

면접자들 대부분은 모두 비슷한 의견을 보인다.

“…좋습니다. 그럼 베스토, 당신은 어떻죠?”

내가 다섯 번째 의자에 앉아 있는 흑마법사를 보며 묻자.

“저는 다른 면접자들과는 생각이 다릅니다.”

베스토는 지그시 내 눈을 마주치며 답한다.

“호오, 그래요? 그럼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교육할 생각이죠?”

“사람의 죽음을 접하기에 아이들은 너무 어립니다. 더욱이 흑카데미가 있는 이상 언제고 죽음을 접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저는 기초를 튼튼히 만들 겁니다.”

“어떻게 기초를 다지시겠다는 거죠?”

나의 물음에 베스토가 대답한다.

“시체에서 양질의 흑마력을 뽑아내는 걸 시작으로 다양한 흑마법들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가르치려고 합니다. 심화 과정은 흑카데미에서 배울 테니까요.”

‘이제야 뭔가 조금 사람다운 대답이 나오네. 베스토라…….’

“대답 잘 들었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합격 여부는 여기 계신 레논 부탑주가 알려 드릴 겁니다.”

나는 베스토를 눈여겨보고 면접자들을 모두 내보내고는.

다음 면접자들을 불렀다.

그렇게 면접을 보기를 몇 시간.

‘…어질어질하네.’

나는 마지막 면접자들을 내보내고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어떤 인간들은 어린아이들에게 효율적인 고문 방법에 대해 가르치겠다고 했고.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자기의 시험을 통과한 생존자들만 가르치겠다고 하는 면접자도 있었다.

‘물론 흑마법사라면 실력적 향상을 위해서라도 그런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게 맞는 길이긴 해. 하지만… 좀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흑립 유치원은 더 체계적이고 뛰어난 흑마법사 육성을 위해 설립하는 기관이다.

나도 그 부분은 충분히 인지를 하고 있었으나.

‘이 부분을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막상 현실을 맞닥뜨리니 어이가 없네. 씁…….’

내가 갖고 있던 상식과 흑립 유치원의 창립 이념이 이렇게 격하게 충돌할 줄은 몰랐다.

“어떠셨습니까?”

레논 부탑주의 물음에 나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예상외로 다들 열정이 가득하군요.”

“그렇지요?”

“다만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내가 힘이 빠진 채로 대답하자.

레논 부탑주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고민이라니요?”

“면접자들 대부분이 살인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셨는데,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마냥 동의를 할 수 없겠더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레논 부탑주가 말꼬리를 흐리자.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대화를 이어 갔다.

“저는 나름 흑카데미에서 오래 생활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당연히 많은 학생들이 입학하고 졸업하는 걸 또 보기도 했고요.”

“그렇지요.”

“모든 학생들이 그런 건 아닙니다만 제가 본 일부 학생들은 살인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살인에 대한 큰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저는 그 부분이 걱정이 되는군요.”

나는 볼드 학장과 레논 부탑주를 보며 계속 말했다.

“흑카데미의 학생들도 정신적 충격을 받는 경우가 허다한데, 하물며 더 어린 원생들이 그러한 충격을 감내할 수 있을지 전 모르겠습니다. 레논 부탑주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의 물음에 레논 부탑주는 우두커니 나를 보다가 입을 뗀다.

“지극히 당연한 생각입니다. 누군가를 죽인다는 건 그 목숨에 따라올 원한과 절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흑남께서 그러한 고민을 하시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가는 레논 부탑주.

“또한 살인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흑마법사들은 의외로 많습니다.”

“…그래요?”

“예, 흑남께서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내가 살인을 싫어하는 흑마법사들을 봤었다고?’

“…제가요?”

“언데드 공방에 있던 흑마법사들 말입니다.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살인에 익숙지 않거나 거부감을 느낀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아…….”

나는 그제야 레논 부탑주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레논 부탑주는 그런 나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짓는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흑마법사가 아닌 게 아닙니다. 그들도 엄연히 흑탑에 소속된 흑마법사들이지요. 혹시 흑남께서는 그들이 덜떨어진 흑마법사들이라 보십니까?”

“그럴 리가요? 그들은 훌륭한 흑마법사들입니다.”

언데드 공방이 없다면 누가 그 방대한 언데드들을 만들어 내겠는가?

그들 역시 흑탑의 흑마법사들이었다.

“다만, 제가 우려하는 건 교육의 질입니다. 제 걱정 때문에 원생들의 교육과정을 망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예?”

내 말에 레논 부탑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하하하하! 걱정이 너무 과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린다.

“물론 원생들이 죽음에 익숙해진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일 겁니다. 하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어 가는 레논 부탑주.

“죽음에 익숙해지면 전장에서 큰 도움이 될지는 모릅니다만,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강해지는 경우는 제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크게 개의치 않으셔도 될 겁니다.”

“…….”

레논 부탑주의 잔잔한 조언에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중.

볼드 학장이 넌지시 우리의 대화에 끼어든다.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는 흑마법사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흑남님께서 그런 고민을 하시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흑카데미에서도 살인을 한 뒤로 스스로 나간 학생들도 몇 명 있었잖습니까? 오히려 저는 원생들의 정신 보호를 위해서라도 살인은 교육에서 빼야 된다고 봅니다.”

볼드 학장이 내 의견에 동의를 표하자.

레논 부탑주도 나를 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어차피 흑립 유치원의 원장이자 총 관리자는 흑남이십니다. 흑남님이 원하는 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래. 레논 부탑주의 말이 맞아. 어차피 흑립 유치원은 내가 운영하는 곳이야. 그리고 처음 운영되는 곳이기도 하고. 어떤 교육과정을 수립하고 어떤 교수들을 초빙할지는 전적으로 내 권한이야.’

나는 마침내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는.

레논 부탑주와 볼드 학장에게 나의 의견을 꺼내 놓았다.

“교육과정에서 살인은 빼겠습니다. 어차피 흑카데미에 들어가서도 배울 걸 굳이 어렸을 때 배우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시지요.”

“그리고 지금 흑립 유치원도 흑카데미의 운영 방식을 본떠서 파멸, 악마, 저주학파로 나누어 운영을 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 * *

한 달 뒤.

텅 빈 부지였던 곳에 꽤나 그럴싸한 성이 들어섰고.

그 밑으로는 볼드 학장과 교수 몇이 긴장한 채로 자리하고 있었다.

‘후우… 괜히 떨리네.’

오늘은 원생들을 흑립 유치원에 입학시키기에 앞서 접수를 받는 날이다.

‘몇 명이나 오려나.’

분명 호기롭게 시작한 일이긴 했으나.

막상 접수를 받는 날이 오니 나는 괜히 긴장이 됐다.

‘레논 부탑주가 많이 홍보해 줬다고는 해도… 막상 한 명도 안 오면 어떡한다…….’

누구도 걸어 보지 않았던 길에 발을 내민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많이도 안 바란다. 정원이 500명이니까 한 200명만 와라.’

내가 속으로 반타작을 외치고 있던 그때.

“라, 랄프 님! 저, 저기 좀 보십쇼!”

볼드 학장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흑카데미 입구 방면을 가리킨다.

“왜 그러는…….”

나는 볼드 학장이 가리킨 곳을 보고는 순간 말을 잃었다.

‘저건…….’

딱 봐도 몇백 명은 족히 넘는 흑마법사들이 흑립 유치원이 있는 방면으로 뛰어오고 있었고.

“양보 좀 합시다! 그쪽이 길을 막으면 제가 못 가잖아요!”

“걸음이 느리면 뛰세요! 왜 제 탓을 해요! 우리 아이가 흑립 유치원에 못 들어가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욧?!”

달리는 군중 사이로 여인의 날카로운 음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저 인파는 설마… 진짜로?’

내가 어안이 벙벙하여 멍하니 군중들을 바라보던 중.

쾅-

어느새 내 앞까지 도달한 흑마법사들이 양피지를 테이블에 탁 놓으며 소리친다.

“여기, 흑립 유치원 입학 접수하는 데 맞죠?”

“아… 예, 허허… 맞습니다.”

볼드 학장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은 우악스럽게 양피지를 볼드 학장의 손에 들리며 소리친다.

“이곳에 들어가면 제 몫을 다 할 수 있는 흑마법사가 되게 해 준다고 들었어요! 맞죠?! 우리 아이 꼭 좀 흑립 유치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이봐요! 비켜요, 좀!”

“아니! 내가 먼저 온 것 안 보여요?!”

“먼저 오면 다야?! 우리 아이는 장차 탑주의 자리에 오를 재능을 갖고 있다고! 괜히 우리 아들 장래 초 치지 말고 얼른 나와!”

접수처는 학부모들의 고성과 욕설로 아수라장이 됐고.

나는 그런 흑마법사들을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어우… 다들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엄청나시네. 흑마법사의 미래는 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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