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그게 무슨 소리야? 케르베로스가 있는데 독을 어떻게 풀어?”
“그게… 케르베로스가 기습을 받은 사이에 독을 풀었다는 것 같아요.”
‘케르베로스가 기습을 당했다고?’
케르베로스 정도 되는 악마는 임프들과 달리.
죽음에 이르는 공격을 받아도 다시 소환하는 게 가능하다.
‘임프들이야 인간계에 분신을 보낼 힘 자체가 없어서 본체가 왔으니 소멸된다고 쳐도 케르베로스를 소멸시킬 수는 없으니까. 그렇단 건…….’
즉, 독을 푼 놈이 잠시간의 시간을 벌기 위하여.
케르베로스를 공격했다는 말이 될 터.
“범인은 잡았고?”
“그게… 아직 교수님들이 확인 중이라고 하셔서요.”
“못 잡았다는 거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어떤 미친놈인지는 몰라도 학생들을 모조리 독살하려고 작정한 놈인가 보네.’
그렇지 않고서야 조리장을 기습하고 독을 풀 생각을 했겠는가?
‘가만… 그렇단 건…….’
“오늘 매점은 못 열겠다.”
“…네? 왜요?”
“그 미친놈이 매점에다가도 독을 풀 수 있다는 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나는 헐레벌떡 매점으로 달려가.
매점장인 호밀을 찾았다.
“호밀! 호밀!”
“랄프 님, 오셨습니까? 근데 왜 그리 숨을 헐떡이시는 건지…….”
“매점에 찾아온 사람은 없었지?”
나의 물음에 호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예, 아직 준비 시간인지라……. 그런데 어쩐 연유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흑카데미에 독살 시도가 있었다.”
“…예?”
나의 말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호밀.
“세상에……. 범인은 잡혔답니까?”
“아직. 그러니까 오늘부터 범인이 잡히기 전까지 매점이랑 흑카지노 영업은 중단해.”
“허… 그렇게 한다면 매출에 큰 지장이 생기지 않을까요?”
호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영업 좀 안 한다고 당장 큰 타격은 입지 않아. 오히려 매점을 이용하던 학생들이 독으로 죽으면 그게 더 문제야.”
“허… 알겠습니다. 모두 집합!”
호밀이 한창 상품을 진열하던 하인들과 흑카지노의 담당 하인들을 불러 모으는 사이.
‘하… 골 때리네. 독살이라……. 그런 미친놈들은 이제 좀 없어졌나 했더니 어떻게 매년 이런 개 같은 일이 생기지?’
나는 의자에 앉은 채로 고민에 잠겼다.
‘범인을 빨리 잡는다면 좋겠다만, 만약 점점 시간이 길어진다면 운영에도 지장이 생길 거야.’
매점의 상품들은 며칠 방치를 하면 썩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뭐, 그것들이야 크게 아깝지는 않은데 매점 운영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귀찮네.’
결국 범인을 잡건 아니면 확실하게 독에 대처를 하건.
나도 나름의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범인을 잡기는 쉽지 않을 거고……. 독을 감지하는 그런 마도구는 없나? 아니면 매점에 케르베로스를 하나 놔둬?’
하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악마랑 계약 좀 하려고 하니까 어째선지 펠기누스가 계속 반대를 했으니까.’
자신의 계약자가 다른 허접한 놈들과 계약하는 꼴은 못 보겠다는 게.
펠기누스의 반대 이유였다.
‘하긴… 펠기누스에게 있어 케르베로스는 그냥 골목의 강아지 정도로 보이겠지. 그런데 그런 강아지랑 자신이 동등한 취급을 받으면 화가 나긴 하겠네.’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많은 악마들이랑 계약하기 힘들다는 게 다 이유가 있었어.’
그렇다면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가만… 레나에게 악마 소환 연습을 시킨다고 하면서 케르베로스와 계약을 하게 하면… 음… 그건 좀 그런가?’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래. 돈을 이용하면 되잖아? 흑탑의 악마학파 흑마법사들 중에서 케르베로스와 계약한 흑마법사를 고용하면 되는 것 아냐?!’
* * *
며칠 뒤.
‘좋아. 일이 잘 해결돼서 다행이네.’
나는 흑카데미의 복도를 걸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매달 금화 서른 닢을 주겠다고 하니까 바로 내 손을 덥석 잡았었지.’
어제, 나는 악마학파의 흑마법사와 무사히 거래를 끝마쳤다.
‘매점과 흑카지노의 경계 근무를 서고, 문을 닫을 때는 퇴근한다. 그러면서 금화 30닢? 솔직히 괜찮지.’
내가 생각해도 꽤나 괜찮은 조건이었던 건지.
케르베로스와 계약하지 않았던 흑마법사들도 앞다투어 이 일을 맡고자 손을 들었었다.
‘후… 이제 적어도 독 때문에 걱정할 일은 없겠어. 대체 어떤 놈이 음식에 독을 뿌렸는지 몰라도 찾으면 이 비용은 모두 받아 내야지.’
내가 고개를 저으며 계속 복도를 거닐던 중.
“거기! 너무 높게 달지는 말고! 그래, 딱 허리쯤! 그래!”
하인들이 흑카데미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언가를 설치하고 있다.
‘뭘 하는 거지?’
나는 호기심이 들어 슬며시 하인의 옆으로 다가갔다.
“뭐 하는 거야?”
“허억… 흐, 흑남님… 그게 말입니다…….”
“편하게 말해, 편하게.”
나는 웃으며 그를 진정시켰고.
조금 진정한 하인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입을 뗀다.
“그게… 학장님께서 이걸 흑카데미 곳곳에 달라고 하셔 가지고 말입니다.”
하인이 내게 보인 건.
둥그스름한 백색의 구슬 같은 것이었다.
“이게 뭔데?”
“콘스 교수님의 말씀으로는… 사전에 독을 확인하는 데 탁월한 물건이라고 하셨습니다.”
‘독을 확인하는 데… 탁월한 물건?’
“오호… 그래?”
‘며칠 전 식당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교수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었겠지.’
아마도 저 구슬은 교수들이 나름대로 고심하고 내놓은 결과물일 터.
‘오, 마침 볼드 학장이 오네. 저게 뭔지 물어볼까?’
때마침 하인들의 일 처리를 보러 온 것인지.
볼드 학장이 내 쪽으로 걸어온다.
“흑남님, 여기 계셨습니까?”
“그래. 근데 저 흰 구슬은 뭐야?”
“아아… 저건 백탑의 마도구입니다. 주변에 독이 퍼지면 검은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백탑의 마도구? 그런 것도 수입해 와?’
나는 문뜩 호기심이 들어 질문을 던졌다.
“백탑과는 원수 관계 아니었어?”
“원수라고는 해도 거래가 없는 편은 아닙니다. 가끔 은퇴한 백탑의 노마법사들이 흑탑에 찾아오기도 하니까요.”
‘은퇴한 백탑의 노마법사들이 흑탑에 온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내가 질문을 하려던 찰나.
헛기침을 한 볼드 학장이 말한다.
“잠시 말이 샜습니다. 여하튼 적어도 백탑 놈들은 암살에 굉장히 민감한 마법사들입니다.”
“암살에 민감하다고?”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볼드 학장.
“과거 성마전쟁이 벌어졌을 당시, 백탑은 레바논 왕국의 편을 들었었습니다. 솔직히 저희 입장에서 백탑의 마법은 껄끄러운 게 많았었고, 그래서 투입했던 게 암살자들이었습니다.”
볼드 학장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계속 말을 이어 간다.
“아무래도 전사들보다는 힘이 없는 마법사들이 암살을 하기 더 쉬우니까요. 그렇게 성마전쟁 때 암살당한 백탑의 마법사들의 숫자만 몇천이 넘습니다.”
“몇천이라… 많이도 죽였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뒤로도 각 왕국들이 백탑을 견제하고자 왕왕 암살 의뢰를 한 탓에, 백탑의 마법사들은 암살에 아주 치를 떨게 됐습니다. 결국 저 마도구 역시 그런 역사가 있어 나오게 된 일종의 결과물인 셈입니다.”
‘오호… 평범한 마도구에도 나름대로 만든 이유와 역사적인 배경이 존재하는구나.’
“그렇군.”
“흑탑에서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흑탑에서 봤다고? 잠깐… 아! 근데 그건 흰색이 아니었는데?”
나의 말에 볼드 학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마도구들은 구식인지라 색이 조금 다를 겁니다.”
“그것들은 붉은색이긴 했지.”
‘여하튼 저걸 흑카데미 곳곳에 붙여 둔다면 더 이상 독살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진작 좀 붙여 놓지. 아니면 좀 일찍 알려 주든가.’
나는 속으로 혀를 차고는 모른 척 말을 던졌다.
“그보다 혹시 여분이 있나? 남는 게 있으면 매점이랑 흑카지노에도 좀 붙여 두고 싶어서 말이야.”
“그게… 죄송합니다……. 당장은 흑카데미에 사용할 것도 모자란 탓에…….”
볼드가 송구스러워하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됐어. 흑카데미가 우선이지.”
* * *
내가 악마학파의 흑마법사를 고용하고 몇 주가 흘렀다.
‘조용하네.’
나도 그렇고, 볼드 학장도 그렇고.
나름대로 독에 대해 방비를 한 덕일까.
독살 사건 이후로 흑카데미의 상황은 비교적 조용하게 흘러갔다.
‘확실히 마도구가 효과가 있긴 한 모양이야.’
흑카데미 곳곳에 마도구를 붙인 뒤로 더 이상 이렇다 할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덕분에 나도 내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요 몇 주간은 정말이지 너무 바빴다.
‘학생들이 한동안 매점만 이용한 탓에 진짜 너무 바빴었지. 흑마력은 왕창 올라가서 좋았지만.’
매점 관리를 시작으로, 흑카지노 관리.
나아가 왕왕 흑탑에 들러 흑혼해 듀오까지 관리하는 것에 이어.
수업과 흑마법 그리고 검술 수업까지 병행을 한 탓에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거기다가 신성력 착즙기에 사용할 신성력 있는 물건들도 구해야 하고……. 어우…….’
마침 곧 대형 도굴꾼 길드 ‘삽과 곡괭이’가 흑탑에 방문한다고 하니.
그 시기를 맞춰 흑탑에 가 봐야 할 것 같다.
‘놈들이 신성력이 있는 물건을 잔뜩 들고 오면 좋겠는데.’
나는 들고 있던 주판을 툭툭 건드리며.
다시금 상념에 잠겨 갔다.
* * *
한편, 같은 시각.
콘스 교수의 집무실 안.
똑똑-
누군가가 조용히 그녀의 집무실을 두드린다.
“누구… 음, 의외군요. 당신이 왜……. 일단 들어와요.”
콘스 교수가 순순히 문을 열어 주자.
누군가가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는다.
“당신들이 무슨 일이죠?”
“분하시지요? 원통하시지요? 제가 당신의 마음을 다 압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갑작스러운 질문에 콘스 교수가 싸늘한 눈으로 상대를 응시한다.
“전 하인장 랄프 말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힘써 키우고 가르쳤는데 결과는 어떻지요? 놈은 당신에게 모욕만 주고 매몰차게 당신을 버렸죠.”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상대가 정곡을 찔러 오자 콘스 교수의 눈가가 싸늘해진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우리의 위대한 신께서는 모르시는 게 없으시지요.”
“당신들의 신이 당신들에게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콘스 교수가 딱 잘라 말하자.
상대의 입가가 서서히 올라간다.
“괜찮습니다. 저희는 교수님의 행동에 대해 따지고자 찾아온 게 아니니까요. 저희는 그저 콘스 교수님을 위해 조언을 해 드리고자 찾아왔을 뿐입니다.”
“조언이요?”
“흑남을 죽이는 겁니다! 아주 잔혹하게요! 시체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놈을 길길이 찢어발기는 게지요!”
상대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흘리는 콘스 교수.
“그게 조언인가요? 뭐, 좋아요. 조언이라고 치죠. 근데 왜 내가 그쪽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 거죠? 그것도 위험만 가득한 조언을요?”
콘스 교수는 상대를 응시하며 덤덤히 말을 이어 간다.
“이미 그는 흑남이 됐고 마신 베논께 힘을 부여받았어요.”
“하지만 당신을 이길 수는 없겠지요. 그렇잖습니까?”
“…….”
아니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진심으로 랄프가 자신의 발밑이라 생각했던 건지.
콘스 교수는 이를 꽉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당연하죠.”
“하지만 놈은 언제고 당신을 능가할 겁니다. 그러니 그 전에 죽이는 편이 좋겠지요?”
그에 콘스 교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상대를 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뗀다.
“이봐요, 아무래도 당신들은 흑남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요. 내가 왜 당신들의 원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하죠?”
“그야 당신도 우리와 같은 마음일 테니까요. 아닌지요?”
상대의 나지막한 물음에 콘스 교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잠시 침묵에 잠겨 있던 그녀가 다시 입을 뗀다.
“당신들 말대로 놈을 죽인다고 쳐요. 그 뒤에 따라올 베논 님의 분노는 어떻게 감당할까요?”
“베논이라…….”
콘스 교수의 물음에 상대의 입가에서 선명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왜 웃죠? 당신들에게는 베논 님의 분노가 우스운 모양인 것 같네요.”
“우리는 그깟 마신보다 더 위대한 신을 섬기고 있으니 우스울 수밖에요.”
“…더 위대한 신? 당신들이 믿는 신이 대체 뭔데 그러는 거죠?”
콘스 교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상대가 천천히 입을 떼고는.
속삭이듯 한 단어를 말한다.
“위대하신 재앙의 신이지요.”
“…….”
그러자 일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흐르고.
콘스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상대를 보며 묻는다.
“…바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