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늙다리 마법사의 말에 나는 있지도 않은 심장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카데미의 관계자 외에는 없을 텐데… 어떻게 이 늙은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거지?’
아카데미의 교수들이나 학생들이 감옥에 들어올 일은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다른 하인 중에 누군가가 말한 건가? 하여간 어딜 가나 입 싼 새끼들이 있네. 잠깐… 그렇다면…….’
“저한테만 이런 제안을 한 게 아니겠네요.”
“부정하지 않겠네.”
“…….”
늙다리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건… 지뢰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더 이상 정보라고 할 수 없었다.
‘하물며 이 늙은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야.’
이 지하 감옥의 실험체들에게 밥을 주는 당번은 매일 바뀐다.
‘이 늙은이가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거의 모든 하인들이 이 늙은이의 말을 들었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개중에는 늙은 마법사를 몰래 풀어 주겠다고 약속한 놈이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어차피 이 마법사는 최대한 떡밥을 던져 두고 한 놈만 걸리라는 마음으로 그런 거겠지. 나한테 이런 제의를 한 걸 보면 아직 미끼를 문 놈은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확실하지도 않아.’
어쩌면 이미 다른 누군가와 작당을 했으면서.
모른 척 나에게 떡밥을 던진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가? 관심 없나? 애당초 자네도 좋아서 이런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네. 당연히 남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삶을 보내고 싶겠지. 나는 그런 자네의 바람을 이뤄 줄 수 있어.”
내가 아무런 말도 않자.
늙다리 마법사는 머리를 감옥 창살에 바짝 붙이며 말을 이어 갔다.
“애당초 자네가 이 아카데미를 나가지 못하는 건 결국 심장이 없어서 아닌가? 자네가 날 도와준다면 내가 새로운 심장을 만들어 주겠네.”
‘…굉장히 매력적인 제안이야.’
솔직히 아카데미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밖에서 뭘 하건 간에 매일 시체를 만지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하지만 이 달콤한 속삭임에는 독이 섞여 있다.
달콤한 말을 내뱉는 마법사조차 모르는 독이 말이다.
“됐어요. 전 지금 생활에 만족해요.”
“으허허허허허, 정말 괜찮겠나? 다시는 없을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못 들은 걸로 하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마저 빵을 돌렸고.
“후회할 텐데… 후회할 거야……. 으허허허허허허!”
늙은 마법사는 내가 감옥에서 나갈 때까지.
개소리를 지껄여 댔다.
“후우…….”
[후회할 텐데… 후회할 거야……. 으허허허허허허!]
감옥에서 나오자.
괜히 늙다리 마법사가 반복하여 지껄이던 말이 머릿속을 울린다.
‘아냐, 잘한 거야. 그래… 잘한 거야. 어차피 감옥에 갇힌 실험체한테 무슨 재주가 있겠어? 심장은 뭐 아무나 만드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날 흔들려고 했던 거겠지.’
나는 흔들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는 아카데미를 빠져나갔다.
‘오늘 일은 다 끝냈으니 이제 숙소로 돌아가서 쉬자.’
커다란 호수의 물결을 따라 굽이지는 검은 성.
그 옆으로는 비교적 초라해 보이는 통나무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성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숙소도 벽돌집 정도로 바꿔 주면 좀 좋아?’
아카데미 안에서는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교수들만이 잠을 잘 수 있었기에.
나는 아카데미 옆에 자리하고 있는 통나무집들 중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걱-
내가 통나무집 안으로 들어서자.
“오, 랄프! 왔어?!”
“뭐야, 카드 중이야?”
“지금은 자리 꽉 찼으니까 옆에서 구경하라고.”
얇은 모포 위로 룸메이트들이 신중하게 카드를 놓으며 나에게 인사해 왔다.
“으으… 아이고, 삭신이 다 쑤시네…….”
“스켈레톤 수리 좀 그만하고 싶다…….”
몇 녀석은 고된 일과에 지쳤는지 벌써 잠을 청하기도 했다.
‘나도 밥만 먹고 껴 볼까…….’
솔직히 몇 년간 카드만 해 온 탓에 지겹긴 했지만.
달리 놀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돈이라도 걸면 좀 더 재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월급도 못 받는 신세니까.’
“랄프! 다 먹었으면 얼른 들어와! 한 자리 비었다!”
“그래, 간다.”
난 빵으로 얼른 끼니를 해결하곤.
카드 판의 빈자리로 들어가 카드를 쥐었다.
그렇게 카드에 몰두하길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에잇(8) 투 페어. 까 봐.”
“에잇(8) 투 페어라고? 난 잭(J) 투 페어.”
내가 씨익 웃으며 카드를 바닥에 내던지던 그때.
쾅-
돌연 나무 문이 우악스럽게 나가떨어지고.
흑마법사들 몇이 숙소 안으로 들어왔다.
‘뭐, 뭐지? 이 시간에 왜 마법사들이… 잠깐, 교수들도 있잖아?’
이 시간에 하인들의 숙소에 아카데미의 교수가 왔다?
‘이제껏 이런 적이 없었는데…….’
무언가 상황이 심상치 않다.
잡일을 처리하는 흑마법사들이 하인들의 숙소를 방문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교수들이 숙소를 방문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시작해.”
늙은 교수의 말이 끝나자.
확-
돌연 교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하인들의 이마를 잡곤 술식을 외우기 시작한다.
“으으으으으…….”
“얼마 전에 감옥에 들어왔던 늙은 마법사와 말한 적이 있지?”
“…네. 그렇… 습… 니다.”
저주, 마인드 브레이커에 걸린 하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사실을 실토하기 시작한다.
“놈이 분명 이야기를 했을 거야. 새로운 심장을 주겠다고 말이야.”
“맞… 습… 니다.”
“그때 그 제안에 응했나?”
‘설마… 정말 지뢰였어?’
이제야 교수들이 이곳에 방문한 이유를 알았다.
‘사실 그 늙은 마법사는 아카데미에서 심어 둔 거였나? 아니면 어떤 놈이 몰래 심장의 방에 갔다가 걸려서 사실을 실토한 건가?’
어쨌건 교수들이 노리는 건 한 가지였다.
바로 늙은 마법사의 제안을 수락한 하인들을 찾는 것.
“예… 응했… 습니다…….”
“그래?”
서걱-
그리고 그러한 하인들을 찾아내어 처단하는 것.
‘이런 니미… 미친놈들…….’
카드가 놓여 있던 모포 위로 핏물이 튀기고 바닥이 빨갛게 물들어 가던 그때.
확-
한 손이 나의 이마를 붙잡는다.
‘콘스 교수…….’
“으으으으으…….”
정신이 몽롱해진다.
세상이 투명해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이 나의 정신을 잠식한다.
“…새로운 심장을 주겠다고 말이야.”
그 와중, 콘스 교수의 목소리가 몽롱하게 울려오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 다.”
“그때 그 제안에 응했나?”
“아닙… 니다. 거절했… 습니… 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 모릅니다…….”
나의 대답이 끝나자.
어째선지 콘스 교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 듯했다.
‘저 싸가지… 없는 년이… 왜 웃… 어? 어?’
콘스 교수가 싸가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서야.
난 그제야 마인드 브레이커에서 풀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우… 무슨 마법이…….’
그리고 익숙하디익숙한 피 냄새가 진동하자.
난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동료였던 녀석 중.
절반가량이 목이 달아난 시체가 되어 있었다.
‘하…….’
무섭지는 않았다.
이미 시체라면 질리도록 봐 왔으니까.
하지만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녀석들이 주검이 되어 있던 탓일까.
“우욱… 우웩…….”
난 정말 오랜만에 토악질을 해 댔고.
“운이 좋네. 만약 그 제안을 받았다면 죽었을 텐데.”
콘스 교수는 그런 나를 보며 무심히 말을 걸어왔다.
“우욱… 후……. 설마 아카데미에서… 판 함정이었던 건가요?”
“그래. 한번쯤은 걸러야 할 시점이었으니까.”
‘그러니까 흑심을 품은 놈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딴 짓을 벌였다? 이런 시발 것들이…….’
그래, 애당초 이상했다.
아무리 아카데미의 교수진이 걸출한 흑마법사들이라고 해도.
마법사를 납치해 온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었다.
‘그 마법사도 아카데미에서 변장시킨 흑마법사였겠지. 이런 시팔 놈들… 시팔 것들…….’
지뢰를 피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이런 함정을 판 아카데미 측의 농간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체들은 잘 정리해서 문 앞에 둬. 실습에 쓸 거니까.”
“알겠… 습니다.”
하지만 난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아. 화를 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야.’
콘스 교수가 나가자.
‘시발… 시발!’
난 살아남은 룸메이트들과 묵묵히 피를 닦아 냈다.
* * *
다음 날.
“빨리 움직여! 조금 있으면 입학식이야!”
“꽃은 저기에 놔둬!”
“음식들은? 준비 다 끝난 거야? 누가 조리장님한테 가 봐!”
어제의 소란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나를 비롯한 하인들은 입학식을 대비하여 분주히 작업을 진행했다.
‘어제 그 꼴을 보고도 일을 해야 한다니… 진짜 빌어먹을 신세다.’
하지만 나의 속내는 달랐다.
전날 밤, 시체를 치우고 난장판이 된 방을 정리해야 했던 탓에.
제대로 된 수면조차 취하지 못했다.
‘그 난리를 부리고 갔으면 적어도 잠이나 실컷 자게 해 줘야 할 것 아냐.’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하인의 삶인 것을.
‘심장만 되찾을 수 있다면… 여기에서 도망치는 것도 가능할까?’
“랄프! 뭐 하고 있어?! 거기에 쓰레기가 있잖아?! 정신 안 차려?!”
“예, 치울게요.”
하인장의 호통에 난 그제야 다시 작업에 몰두했고.
“차랑 과자는?!”
“지금 다 준비됐다고 합니다!”
“그럼 얼른 가져와!”
어느덧 연회장 안은 방문객들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후… 숨 돌릴 시간이 없네.’
연회장 정리는 일의 시작에 불과하다.
‘방문객들이 모두 떠나는 그때까지 이곳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니까.’
입학식에 입학생만 오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가문의 기사들이 붙지만, 종종 학부모가 함께 오니까 인원이 두 배는 더 많겠네.’
내가 찻잔 세팅을 끝내고 겨우 한숨을 돌리려던 그때.
“이제 입장한다. 다들 자리에서 대기해!”
하인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이제 시작인가…….’
나는 나의 지정석인 기둥 옆에 서서 커다란 문을 주시했다.
그그그그긍-
곧 연회장의 문이 열리자.
“브루스가의 브루스 님과 차남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하인장이 준비한 양피지를 보며 소리쳤고.
검은 가죽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와 소년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온다.
‘브루스 가문이면 페른 왕국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암살자 가문이지. 장남도 아카데미에 보내더니 차남까지 데리고 올 줄이야…….’
보통 자식 중 한 명은 가문의 명맥을 잇게 하려고 할 것인데.
브루스가는 특이하게도 장남과 차남 모두 흑마법사로 키우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암살로는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들어서 흑마법사로 전향하려는 건가?’
하지만 난 곧 브루스 가문 일행에게서 관심을 거두었다.
“슬레이어가의 킬롱과 장남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시련의 탑의 부탑주님과 차녀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혈탑의…….”
브루스 가문을 시작으로.
대륙의 음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온갖 가문들의 손님들이 연회장으로 들어온 탓이었다.
‘후… 암살자 가문에, 흑탑에 버금간다는 혈탑의 자제에……. 올해도 편히 지내기는 글렀네.’
나는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의 면면을 살피며.
바삐 머리를 굴렸다.
‘가만있자… 최근 혈탑이랑 흑탑의 관계가 어떻지? 최근에 던전 설립을 두고 다퉜다고 했던 것 같은데……. 브루스가는 척진 가문이 있었나?’
각 가문이 갖고 있는 은원 관계를 파악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다.
‘그래야 혹시나 1학년이 미친 짓을 벌이더라도 대비를 할 수 있지.’
가문 간의 은원 관계가 진득하게 얽혀.
아카데미 안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일은 너무도 흔했다.
‘죽이려면 원수 새끼만 죽이든가. 왜 옆에 있던 애꿎은 하인들까지 죽이는 건지…….’
애먼 똥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인은 각 가문의 은원 관계를 기억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빌어먹을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내가 조용히 찻잔을 드는 방문객들을 보며 주먹을 쥐던 그때.
“흠… 어…….”
갑자기 당혹한 기색이 역력한 하인장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뭐지? 왜 저러는 거지?’
보통 하인장이 당혹해하는 일은 잘 없었기에.
난 그의 상태를 예의 주시 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지?’
“…….”
어째선지 아카데미의 흑마법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하인장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린 것처럼 보였다.
“레바논 왕국의… 아크 신관… 장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뭐? 신관장?’
신관장이라 함은 신성 왕국 레바논에서 종교 전파를 위해.
다른 왕국에 설치한 신전의 장 아니던가?
‘아니, 그보다… 신관장이 여기에는 왜 온 건데?’
대륙의 공적인 흑마법사를 양성하는 공간에 신관장이라니?
‘하인장이 착각한 건가? 그래, 그렇겠지. 신관장이라니… 말도 안…….’
내가 도무지 지금의 사태를 납득하지 못하던 그때.
“허허, 올해는 입학생들이 많은 모양이군요. 모두 레바논 님의 은총 덕입니다.”
하얀 사제의 의복을 입은 노인이 연회장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