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7화
“레아 씨의 피가 외부 위협으로부터 대상을 보호하는 원리…… 그건 근본적으로는 신우 씨의 불사 능력과 동일해요.”
내 손 위에 작게 펼친 붉은 장막을 마력 시야로 본 유메미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후 극도로 발달시킨 마력 시야로 대기권 위에서 벌어진 나와 태공망 사이의 추격전까지 관측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마탄기의 신격을 통해 여러 가지 세계의 지식을 얻어낸 모양이었다.
“이게 어떻게 그렇게 연결이 되는 거지?”
“애초에 이 권능 자체가 절대 죽지 않는 불멸자의 생명력에서 만들어진 것이니, 같은 원리일 수밖에요. 불가사의 영역에 의해 엔트로피가 강제 조정되어서 비정상적인 정체 현상을 일으키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내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게 받길 원하는 건 파라슈.
난 곧장 빈손에서 파라슈를 소환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유메미는 그것을 장막에 가져다 대었고, 그러자 날카로운 칼로 종이를 자르듯 붉은 장막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신우 씨도 이걸로, 불멸자들을 영멸시켰잖아요. 제 안에 있던…… 바리공주도 그렇고.”
“그래. 이건 신들을 죽이는 무기니까.”
“그 태공망이라는 자가 이것과 같은 성질의 무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자도 당연히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타신편으로 아몬의 기함에 균열을 냈던 것.
그 이전에, 함선 하나가 격추된 것도.
그게 다 태공망의 짓일 거라는 생각은 유메미의 말로 완전한 확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이제 앞으로 저들의 행동 방향에 대해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 태공망은 그걸로 이 부유섬의 붉은 장막을 공격하러 오겠군.”
“맞아요. 그렇게 된다면 우린…….”
그녀가 장막 바깥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도 그녀를 따라 시선을 이동시켰다.
그러자 불타오르는 세상의 모습이 보였다.
고대신이 전투 시작 전에 쏘아 보낸 빛무리가 만들어낸 여파 말이다.
갈라진 땅 사이에서 용암이 치솟아 오르고, 튀어 오른 바닷물은 하늘 끝까지 떠올라 폭우가 되어 내리고 있었으며, 급격한 기후 변화로 강렬한 폭풍이 몰아쳤다.
저긴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저곳으로 쫓겨나게 될 거예요.”
“쫓겨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전에 모든 사람들이 죽겠지. 우리 정도의 신체능력도 없는 일반인들은, 저 대기에서 숨을 쉬는 것도 힘들 테니까.”
척.
나는 다시 유메미에게서 파라슈를 돌려받았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이라고 할까, 유리한 부분이 있다고 할 수는 있겠군.”
“그게 뭐죠?”
“저 녀석들과 우리 사이의 전투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희망.”
“전투 방식이라면……?”
“저 녀석과 나는 정반대의 과정으로 적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어.”
고대신들은 블러드 코팅으로 무장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타격도 줄 수 없다.
그러니 태공망 혼자서 전장을 종횡무진 하며 타신편으로 아군의 블러드 코팅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나서야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있다.
반면 우리 쪽은 모든 함선들이 처음부터 고대신들에게 타격을 입히는 게 가능.
그 대신 완전히 끝장내지는 못하기에, 내가 직접 파라슈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즉, 저쪽은 모두가 불멸자라 마무리가 까다로운 대신 무력화 당하기가 쉽고.
반대로 이쪽은 나와 아몬을 제외하면 모두가 필멸자라 한 번 대미지를 입으면 바로 죽는 대신 그 대미지를 입는 조건 자체가 까다로운 형태인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저쪽은 사실상 태공망 혼자에게 모든 공격력이 불필요할 만큼 과다하게 집중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셈.
“고대신들이 우리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격 가능 여부가 타신편 하나에 달려 있는 이상 한 번에 한 곳을 타격할 수밖에 없어. 죽이진 못해도 한 번에 여럿을 타격할 수 있는 우리에 비하면 크게 불리한 상황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들은 유메미의 눈빛이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저쪽은 어떻게든 신우 씨를 가장 먼저 처치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 걱정이 무엇 때문인지는 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은 기우에 불과할 뿐.
“내가 태공망에게 일대일로 질 것 같아?”
* * *
재출전을 위한 준비가 이어진다.
내게 레아의 정수를 건네기 위해 과도한 생명력을 소진했던 아델이 완치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준비됐습니다, 마스터.”
그녀는 어느새 다시 원래의 성격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물론입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만전의 상태입니다.”
마치 그때 일은 없었던 일인 것처럼, 혹은 다른 인격이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체를 하면서.
오히려 그게 더 티가 날 정도로 말이다.
“저번엔 ‘나만 두고 가지 마’라면서 바짓가랑이 붙잡더니, 상태도 안 좋으면서 억지로 가려는 건 아니지?”
난 그런 아델에게 괜스레 농담조로 지난번 일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에? 아니, 제가 언제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습니까!”
“그때 있었던 기억은 다 나나 보네?”
“그게, 그러니까…….”
칼리의 힘을 현현시킬 때 드러나는 다혈질적인 성격.
완전히 다른 자아가 아니라, 같은 자아인데 성격만 바뀌는 것이다.
그 말인즉, 그녀는 평상시에 그런 불같은 성질을 한껏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한테 화내고 반말했던 게 후회돼?”
“죄, 죄송합니다.”
“사과하지 마. 난 그런 모습도 마음에 드니까.”
“……예?”
그 순간, 주변에 정적이 내려앉으면서 이목이 한꺼번에 이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아델의 얼굴이 빨갛게 되었다.
다들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그러니까 나한테 마냥 복종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는 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라는 말이야.”
“……아. ……하지만.”
“눈치 보지 않고 자기주장을 밀고 나가는 사람도 필요한 법. 네 안에 그런 마음이 있다면, 억누르지 말고 마음껏 표출해도 돼.”
“……마스터.”
아델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그동안 상황을 불문하고 내 아래에서 전적으로 나를 믿고 따라주었다.
그 덕분에 수많은 난관을 헤칠 수도 있었고.
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꼭. 그러니까…… 앞으로 바뀔 제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나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 나를 아델은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함선 정비 완료됐습니다!”
그때, 맞은편에서 아몬의 수하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왔다.
원래는 악마라고 불리며 기피되던 자들이, 이제는 거의 우리와 완전하게 섞여 옷차림도 구분이 안 갈 정도가 되었다.
“아, 그쪽으로 가지. 작업장으로 안내해 줘.”
“알겠습니다!”
이제 나는 정비가 완료된 함선들을 피로 감싸러 가야 한다.
전에는 블러드 코팅도, 함선 정비도 모두 완료된 상태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이 주어진 만큼, 철저하게 대비해서 나갈 생각이었다.
“그럼.”
나는 아델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여전히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촤르르륵.
손안에서 붉은 액체가 구형의 모양을 유지하며 회전한다.
용혈이 섞인 레아의 피가, 내 의지에 의해 완전히 제어되고 있었다.
정수에 포함되어 있던 모든 혈액이 다 내 것이 된 건 아니지만, 절반 이하의 수준 하에서는 완전 통제가 가능하다.
여전히 생명력을 회복력 이상으로 소모하는 부분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활용도 면에서는 만족할 수 있을 수준.
나는 이 혈액을 작업장에 임시로 정박해 있는 함선들 중 한 군데로 보냈다.
블러드 코팅을 시작한 것이다.
‘여기 있는 함선들을 전부 전투에 내보내면 우린 일전의 전투에서보다도 월등히 큰 우위를 점하게 된다.’
전장의 변수 요소들이 확실해진 상황.
적이 우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태공망이 타신편을 사용하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된 지금.
동시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유효 화력이 더 늘어나면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함선 수가 늘어나는 건 태공망이 상대해야 할 벽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게다가 저쪽은 고대신의 숫자가 더 늘어나는 것 같지도 않고, 딱히 위협적인 무기를 추가로 확보할 방법도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2차전에서 놈들을 완전히 끝장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기…….”
한창 이것저것 생각하며 블러드 코팅을 하고 있던 도중, 뒤에서 누가 다가왔다.
“신우 오빠.”
그녀는 최윤아였다.
“음? 여긴 웬일이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뭔데?”
나는 블러드 코팅을 지속하며 그녀와 대화를 이어갔다.
이 작업에도 집중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딴생각 한 가지 정도를 할 여유는 있었다.
“다음 출전 때는, 저도 같이 갈 수는 있나요?”
“그건 안 돼.”
직접 싸우러 나가겠다는 그녀의 의사.
난 그걸 단호하게 거절했다.
“너한텐 내부 치안 유지라는 역할이 있잖아.”
“하지만 사람들 사이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걸요? 지금처럼 모두가 힘든 시기에 그렇게 이기적으로 굴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고…….”
그녀가 초조해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모두가 중책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실제로도 지금 최윤아는 뭔가를 하기엔 너무 애매한 위치이기도 했다.
수호령 능력은 성장을 멈춘 지 한참 오래전이고, 사격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하나 저 고대신들 사이에서 맨몸을 드러내고 총을 쏘는 것도 그녀에겐 무리.
그래서 결국 우리가 떠나 있을 동안 거너들과 함께 내부의 치안을 유지하라는 역할을 준 것인데.
당연히 그런 한가한 직책은 이름뿐이라고 느껴졌을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100%로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니야.”
난 그렇게 초조해하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너도 언젠가 반드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올 거다. 지금은 힘을 비축해 둬.”
“……제가 약해서 그런 거겠죠?”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는 더 자괴감에 빠지는 것 같았다.
“윤아야.”
“저도 아델 씨처럼 강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도 그녀는 구세계에서 넘어온 초기 멤버들 중, 자신만 혁신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한 데 대해 열등감 같은 심리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델, 레아, 유메미, 셋 모두 마하비드야의 여신격들을 각성했는데, 자신만 그러지 못했으니 말이다.
“너도 충분히 강해. 지금은 그냥 상성이 맞지 않을 뿐이야. 고대신들 앞에서는 맨몸으로 노출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까. 네 기술의 이점을 살리기도 힘든 환경이고.”
당연히 모두가 다 같은 걸 가질 수는 없다.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그저 때와 상황에 맞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알겠어요.”
최윤아는 결국 내 말에 수긍하고 돌아섰다.
물론 진심으로 마음에 와닿아 보이는 뒷모습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체념한 것에 불과할 뿐.
‘괜찮을까…….’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조바심.
실상은 타인과 같은 위치에 서고 싶다는 욕심.
이전에도 그것 때문에 문제를 일으켰던 그녀인데, 혹여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여기서 그런 일이 또 반복된다면 그때는…….’
나는 주먹을 쥐었다.
최종 결전을 앞두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