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35화
퍼억! 쩌저저적!
내리찍은 도끼가 거인의 두개골을 가르고 미간을 꿰뚫었다.
온몸에 피와 뇌수를 뒤범벅한 채, 나는 고대신 하나의 머리를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파라슈로 베었는데 육신이 파괴되었다……. 그 자체로 에테르가 물질화한 몸뚱이라도 된다는 건가.’
기존에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현상이 펼쳐진다.
원래대로라면 겉으로 보이는 몸뚱이는 그대로 유지한 채 파라슈가 통과하면서 내부의 영혼만 잘라냈어야 할 터.
하지만 지금은 마치 실체를 베어내기라도 한 듯 겉으로 보이는 육신 자체가 파괴되었다.
게다가 이 머리통 안에서 터져 나온 살점들은 현실계에 존재하는 내 몸에 묻어나왔고 말이다.
그야말로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경계가 붕괴된 형상이다.
이런 모호함이야말로 고대신의 진짜 정체성이라고 해야 할까.
‘뭐가 됐든 확실한 건…….’
그럼에도 난 몸을 멈추지 않는다.
애당초 인식을 넘어선 저 너머의 세계에까지 닿았던 내게, 이 정도의 특이점 따위는 사소한 요소일 뿐.
‘……시바는 이걸로 이놈들을 죽였다는 거지.’
콰아아아!
나는 프리드웬의 갑판을 박차고 나온 반발력에 중력 가속도를 더해 고속으로 급강하하며 아래쪽의 고대신들 사이를 휘저었다.
불과 몇 초 전까지 놈들은 내 위에 있었지만, 이제 놈들은 내 아래에 있다.
난 이것들을 철저하게 짓밟을 것이다.
쐐애액!
좌측에서 거대한 덩어리가 나를 붙잡기 위해 날아온다.
너무 커서 그 형태조차 가늠이 되지 않는 하얀 것.
뭔지는 몰라도 당연히 고대신의 육체의 일부일 것이다.
‘겨우 그런 단순한 몸짓으로…….’
오른손에 쥐어져 있던 파라슈가 검은 외날의 장검으로 변한다.
그리고 나는 아래로 향하고 있던 몸을 위쪽으로 회전시킴과 동시에 좌측의 그 덩어리를 향해 참격을 날렸다.
그 순간, 흑검 아지다하카의 칼날이 붉게 물들었다.
츄아악!
‘……나를 날벌레처럼 잡을 수 있을 것 같나!’
별다른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다.
아무런 권능도 실리지 않은, 그저 손짓에 불과한 저걸 베어내는 데에 화려한 기술 중첩을 구사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베어내려는 순간, 레아의 피로 칼날을 코팅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역시, 이자나기의 눈동자마저 막아낼 정도의 차단력.’
일전의 타카마 시티 폐허에서, 아델이 불안정한 붉은 장막을 펼쳐 이자나기의 눈동자 공격을 막아냈던 게 떠올랐다.
그 눈은 살아 있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무기물과 에너지마저 침식해 부패시키는 극한의 저주.
심지어 한 몸에 붙어 있는 이자나미마저 부패시켜버리는 권능이다.
방금 전의 참격은 그런 힘을 막아낸 배리어를, 도리어 공격 용도로 사용하는, 심플하지만 강력한 테크닉이었다.
후웅! 퍼퍽! 퍼퍼퍼퍽!
그리고 그런 공격을 행사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프리드웬을 주축으로 한 아몬의 황금함대 역시 연속 질량타격 워프를 사용하며 고대신들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다.
-이쪽이다! 앙그라 마이뉴! 놈들이 공격하지 못하는 사각!
아몬의 전언이 들려온다.
기함에 탑승해 전장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는 것이 가능한, 그에게만 보이는 적의 순간적인 허점.
“간다!”
{입자 분열 도약 발동}
나는 프리드웬의 차원 엔진에 연결되어 몸이 입자로 분열되었다.
그러고는 아몬이 지정해 준 좌표로 순식간에 도달.
{흑검 아지다하카 변형 유결부 파라슈}
검을 다시 도끼로 변형한 채, 눈앞에 온몸이 관통당해서 너덜너덜해진 채로 자유 낙하 중인 고대신에게 달려들었다.
터엉!
허공을 박차는 동시에, 날개에서 별 불꽃을 뿜어 가속한다.
시야에 들어온 목표는 총 6구.
‘한 호흡 안에!’
“흐읍.”
숨을 들이쉬는 순간.
핏-.
소리가 멈춘다.
주변 시공간이 한없이 길게 늘어진다.
빛 입자가 손에 잡힐 듯 점점 느려진다.
좁아지는 시야의 직선 종말점.
그 끝에, 이 무한의 감옥에서 탈출하라는 듯, ‘그 남자’가 고고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난 그것에 손을 뻗었다.
투콰콰콰콰콱!
여섯 번의 궤도 변경.
여섯 개의 두개골 파괴.
킬로미터 단위의 초장거리 이동을, 초 단위로 쪼갠 도약의 횟수만큼 해낸다.
한계를 초월한 고속 이동을 성공시켜 여섯이나 되는 고대신을 한순간에 영멸시킨 것이다.
각 고대신 개체들이 최소 소행성 이상, 최대 위성 크기임을 감안했을 때, 이건 사실상 자력으로 입자 도약을 해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또 다시.’
-방금 뭘 한 거냐! 앙그라 마이뉴, 네놈…….
그때, 아몬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그자가 되어버렸구나!
그가 말하는 ‘그자’라는 건 물론 시바를 뜻하는 것일 터였다.
방금 전의 환상에서 본 남자도 바로 그였고 말이다.
먼 옛날 혼돈에 대항해 고대신들을 죽였던, 신들 중에서도 초월적인 존재로 여겨지는 파괴신 시바.
아몬은 그 시대에도 멀쩡히 살아 움직이던 불멸자였으니, 그때의 시바가 어땠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날더러 처음 시바를 닮았다고 말한 것도 그였다.
‘그래. 이것도 내가 거쳐야 할 과정이야.’
홀로 시공간의 끝에 갇힌 채 무력하게 좌절해 있던 시바의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어쩌면 나도 결국 그런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거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방금 전보다 더 빠르게, 과거의 시바가 도달한 경지를 뛰어넘어.
촤르르륵!
그때, 허공에서 균열 공간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촉수가 튀어나온다.
이곳에 있는 고대신들 중 하나가 나를 향해 사용했을 권능.
그 크기에 걸맞게, 촉수들의 스케일도 평범하지 않다.
저 하나하나가 지상의 대륙 하나를 통째로 휘감아도 모자랄 만큼 크다.
‘흑검 아지다하카, 현월.’
난 그 촉수들을 보자마자 다시 도끼를 검으로 바꿔들었다.
그러고는 가장 빠르게 펼칠 수 있는 기술인 현월을 날렸다.
쉬익!
이어서 그 즉시 자세를 고쳐 잡고.
‘신기일섬.’
후웅!
날아가는 검기를 추격해 따라잡는다.
앞선 현월이 화력정점거리에 도달하기 직전.
‘이중정점파쇄.’
번쩍!
검을 내질러 절삭력의 극에 해당하는 부위를 벤다.
콰우우!
그 순간 두 기술의 지향성 파쇄 파동이 전방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 영향력 범위 내의 촉수들은 내부로부터 폭파되듯 뼈와 살점을 사방으로 튀기며 분해되었다.
“커어어억!”
그리고 이 공격은 왜곡된 공간 너머의 본체에게도 타격을 가했는지, 저 멀리서 괴로워하는 고대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파쇄 파동에 당했다면, 파라슈의 공격에 고스란히 노출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리가 여기서 꽤 멀다는 건가.’
다만 공간 균열의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 위치가 고대신들의 행렬 측면 바깥쪽이라는 것이 문제다.
당장 저 균열 공간 너머로 뛰어들면 그자에게 직접 닿는 게 가능할 테지만, 그러면 아군과 너무 멀리 떨어지게 되는 셈.
프리드웬의 승무원 입자 도약 범위에서도 벗어나, 복귀를 위한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그럼 이 공간 균열이 닫히기 전에 죽이고 돌아오면 돼.’
그래서 난 아예 이 균열을 두 번 통과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당장만 해도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는 저 통로를 말이다.
보통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한, 공상에 가까운 발상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아까 전, 한 호흡에 여섯 구의 거대신을 베어버린 그 기동을 재현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나는 다리와 날개에 힘을 모았다.
욱씬.
“큭.”
그런데 그때, 다리 한쪽에 격렬한 통증이 엄습해 왔다.
‘피를 너무 많이 사용한 상처가…… 하필 이때.’
레아의 피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않은 채 대량의 블러드 코팅을 남발한 후유증.
그 상태로 격렬한 전투를 벌인 건 물론이고, 한계를 초월하기까지 했으니 무리가 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주인인 레아조차 그랬듯이, 아무리 강력한 자가 재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걸 견디는 건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있어.’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은 고대신을 하나라도 더 죽여야 하는 타이밍이다.
이들이 아무런 전술도 없이 우리가 가진 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턱대고 덤벼든 지금이, 이 전쟁에서 우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채 싸울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여기서 몸을 사리겠답시고 물러나게 되면, 적은 다음에 반드시 더 철저한 전술을 구사하며 우릴 죽이려 들 것이다.
레아의 피가 언제까지고 우리를 막아줄 거란 보장도 없다.
‘물러서면 진다. 지는 건 곧 죽음이다.’
나는 다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끌어안은 채 스스로를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인대가 파열되고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졌지만, 용혈을 경질화시켜 다리에 박아 넣는 것으로 억지로 붙들었다.
몸에 남아 있는 모든 힘들을 최후까지 짜내어 동력원으로 삼았다.
‘간다!’
터엉!
나는 끝끝내 허공을 박차고 균열 안으로 돌입했다.
* * *
귀가 먹먹한 느낌이다.
소리가 완전히 차단되고 원래의 공간으로부터 괴리되는 것 같았다.
주변 풍경들도 길게 늘어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어둠속에 갇혔다.
‘이 안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의식이 영원에 빠지는 건가.’
아까는 시바가 내게 손을 내밀어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멀어져 가는 탈출구를 놓치고 말았다.
물론 이건 내가 인지하는 의식적인 나.
실제로 내 몸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균열 너머로 날아가고 있을 터였다.
그것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하지만 내 의식은 이 안에 갇혀 있는 상태.
만약 이대로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다면, 나는 그 끝에서 정신이 붕괴된 채 현실로 돌아가겠지.
외부에서 보기엔 고속 이동을 시전한 내가 갑자기 바보가 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럼 난 그대로 죽임당한다. 설령 부활한다 해도 레아의 정수를 잃겠지. 어쩌면 영멸당할 수도 있을 테고. 나와 싸우기로 했다면 그 정도의 준비는 했을 게 분명해.’
어느 쪽이건, 여기서 나가지 못하면 나는 죽고 이 전쟁은 패배한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어떻게든 나간다. 반드시.’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날개에 더 많은 힘을 주입하고, 속도를 극한으로 높였다.
통로가 멀어지면 더 빨리 쫓아가 붙잡으면 그만.
이미 한 번 성공했던 초월이다.
다시 성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기이이잉.
날개의 불꽃이 더 짙어지면서, 분출음이 격렬해졌다.
그러자.
‘보인다. 출구가.’
저 멀리 조그만 점이 보인다.
하얀 빛이 새어 들어오는 점.
그곳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크기는 더욱 커졌다.
출구.
앞으로 나아가면, 나는 그 속도에 다시 한번 도달하는 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번쩍!
거대한 몸통의 거대신이 전신이 파열된 채로 둥실 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난 그 머리통을 향해 손에 쥐고 있는 도끼를 휘둘렀다.
쩌억!
터엉!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시 왔던 반대 방향으로 돌진.
공간 균열을 열어낸 고대신이 파라슈에 의해 죽어간다.
아주 짧은 시간, 저것이 완전한 영멸에 도달하기 전에 균열을 통과한다.
슈하아악!
‘닿는다. 또 한 번. 신속에.’
방금 전의 주변 공간의 광경이 펼쳐지고.
이번의 나는.
팟!
이전의 암흑에 빠지는 일 없이, 완벽하게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됐다! 이제 익숙해진……!’
그리고 거기서, 난 아몬의 다급한 목소리를 마주했다.
-앙그라 마이뉴! 아군 함선이 격추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