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20화
유메미가 양손을 펼치자, 그녀의 몸에 공간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균열들은 아래로 내려가 바닥에 닿았고, 곧 실뱀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기이잉.
곧 균열들은 타카마 시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넓게 퍼졌다.
각 균열의 줄기들은 나아가던 도중에 다시 갈라지기를 반복해, 마치 나무뿌리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 되었고.
그 뿌리들은 발밑의 땅뿐만이 아니라 그 위에 세워진 무수한 빌딩 숲까지 뒤덮었다.
그걸로 그녀는 타카마 시티 전체를 뒤덮은 하나의 나무의 형상이 되었다.
‘만월청영.’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하늘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흑검 아지다하카로 도시를 베어냈다.
피잉.
군더더기 없는 신속의 일검이 공간을 가른다.
쩌저저정.
하지만 그로 인해 발출한 참격은 마치 발톱으로 찢어발기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건 많은 검사들이 최고의 경지로 치는 깔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로지 대상을 최대한 더 악랄하게 파괴하기만을 위한 더러운 무기.
무수히 많은 원한과 복수심을 가득 담고 있는 아지다하카로는 이런 공격밖에 펼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원한을 뿜어낼 적수가 사라진 순간, 이 세계에서 난…. 또 다른 위험이 된다.’
미래가 훤히 보인다.
언젠가 딜레마에 봉착하고 말게 될 미래가.
그 순간에 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인가.
눈앞에서 잔혹하게 분쇄되어 가는 타카마 시티 내부의 마물과 무색인들을 보며, 다가올 그날에 대해 떠올려 본다.
- 도시 내 잔존한 적대적 개체 수 0. 완전 말소에 성공했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유메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카마 시티를 내 공격의 피폭으로부터 막기 위해 공간 방어 능력을 펼치는 동시에, 적대 개체인 마물과 무색인들의 동향을 살피고 있던 그녀가 내게 적의 말소를 확인시켜준 것이다.
“수고했다.”
난 그녀에게 짤막한 한 마디를 하고서 곧장 지상으로 내려갔다.
* * *
“이걸로 도시 안쪽의 안전은 확보됐고…. 바깥 상황은 어떻지?”
나는 그동안 빠른 몸놀림과 은신 능력으로 도시 밖을 활보하며 정찰 정보를 쌓아왔을 라이진에게 현재 상황에 대해 물었다.
“아무것도 없소.”
그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생존자가 없다는 건가?”
“그렇소. 어딘가 내 시야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은신처를 만든 자들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런 게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 외의 5대 세력과 군소 세력들은 전멸했다고 볼 수밖에 없소.”
“이 넓은 대륙에 우리밖에 남지 않은 건가.”
대규모 마물 발생.
아후라 마즈다가 다른 세력에 일으킨 전쟁들.
그리고 균열에서 떨어져 나온 무색인들.
연속해서 발생한 대재앙에 가까운 현상들로 인해 지금 대륙은 거의 멸망 직전이나 다름없는 상태일 터였다.
라이진의 말대로 극소수의 생존자들이 어디선가 운 좋게 살아남은 경우가 아닌 한, 이제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는 집단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 보루라니.”
나는 지하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발전된 마공학도 지금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그 많은 설비들을 움직일 기초시설들이 모조리 붕괴된 지금은, 마법 사용자들이 직접 사용하는 마법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수많은 전투로 인해 숫자가 극히 소수였지만 말이다.
제아무리 대단한 마법사인 유메미라도 이 많은 민간인들을 모두 케어해 줄 만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마물이 아니어도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멸망할 것이오.”
라이진이 지하실로 통하는 입구 너머, 지상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휘이잉.
눈과 함께 세찬 바람이 불어온다.
원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겨울보다도 더 차가운 바람이다.
일전의 균열로 인해 무수히 많은 운석들이 떨어지고 대기의 기온이 급격하게 높아졌다가, 그것이 갑자기 사라지자 반대급부로 기온이 떨어진 덕분이다.
‘여기서 내가 곧장 태공망을 쫓는다면….’
지금 나는 이쪽만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당장 야드가르를 데리고 간 태공망을 쫓아야 한다는 가장 큰 과제를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이곳에 남겨진 사람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기껏 아이를 구해서 데리고 온 세상이 멸망한 세상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 남아 있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 순간, 나 자신이 너무나도 무력하게 느껴졌다.
복수의 대상을 처치하고 적을 부수는 부분에 한해서는 한도 끝도 없이 힘이 강해져 왔는데.
정작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데에는 이리도 무능하다.
과연 내가 이 사람들을 이끌 자격이 있는 것인가.
“마스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델이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좋은 생각이라도 있나?”
난 그녀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고 물었다.
딱히 아델이라고 해서 해결책이 있을 리는 없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문제라면, 차라리 옛 성 터를 가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옛 성 터?”
“그때는 마스터가 가지고 계신 골드로 식량 문제를 전부 해결하시지 않았습니까.”
“골드로…아.”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델이 그 말을 하자 다시 떠올랐다.
예전의 풍경들이.
이 미래 세계로 오기 전 나는 시스템이 정해 놓은 성과 도시 지역에서, 시스템 상의 식량 수급과 설비 발전으로 의식주를 모두 해결했었다.
특히 알포드 성은 모든 생산 활동을 한 곳, 그러니까 무기 생산으로 돌려놓아도 될 만큼 온갖 자원들을 충족시켰으니,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회가 극도로 발달된 여기서는 굳이 그런 걸 이용할 필요가 없었다.
중세 수준에 머무는 기술력과 경제 구조인 시스템에 비하면 이곳의 생산 능력은 훨씬 더 복잡하고 압도적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중세 수준이라도 의식주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저렇게 지하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떠는 상황만큼은 해결할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을 모두 살리는 게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과연 지금도 그 시스템이 작동할까?’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아직도 성주 시스템이 작동되는가 하는 것.
그때에 비해 지금은 세상이 엄청나게 많이 바뀌었다.
공성전 시스템 같은 건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더 나아가 아후라 마즈다가 시스템 자체를 엉망진창으로 휘저어 놓은 덕에, 작동하더라도 이상을 일으킬 가능성도 충분히 높다.
“아델. 나와 같이 가자.”
“알겠습니다.”
그 모든 사항들을 대비하려면 직접 가서 알아보는 수밖에.
그래서 우선 아델을 데리고 가장 가까운 옛 성 터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잠깐만.”
그대로 떠나려던 찰나, 우리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레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우, 나도 데리고 가 줘.”
“네가 움직이면 사람들 보호는 어떻게 하고?”
“어차피 위협은 다 제거됐잖아. 유메미도 있고. 지금 당장 내 역할은 아무것도 없어.”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그녀가 민간인들을 직접 보호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전의 균열 침투에서 제외된 탓인지 역할을 맡고 싶어 하는 눈치기도 하고.
“알겠어. 같이 가자.”
그래서 난 그녀를 동행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나와 아델, 레아 세 사람은 새로운 보금자리인 옛 성 터를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지도상으로는 여긴가.’
그렇게 우리는 타카마 시티에서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성 포인트를 찾아냈다.
그곳은 산꼭대기에 위치한 지역으로, 과거에 우리 클랜 영역 내에 있던 곳은 아니었다.
“이런 위치라면 사람들이 살기 위한 도시보다는 철저한 방어용 군사 요새였을 것 같은데.”
레아가 그 성 터의 험준한 지형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위치가 베스트입니다. 아무리 위협이 줄어들었다곤 해도, 마물들이 창궐하고 있는 건 여전하니 말입니다.”
“아델의 말대로야. 이왕이면 지형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여기가 정착하기 좋겠지. 게다가 아무래도 현 시대의 마물들은 그 옛날의 공성 보호막으론 막을 수 없으니.”
“그렇네. 이젠 사람들이 직접 자기 몸을 보호하는 법도 알아야 할 테고….”
“음?”
나와 아델은 동시에 레아를 쳐다봤다.
방금 그 말은, 마치 자신은 더 이상 사람들을 지켜주지 못할 거라는 의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자리를 비워야 할지도 모르잖아. 아직 상대해야 할 적도 남았고. 그…트롤. 그런 일들로 내가 신경 쓰지 못할 때는 그래야 할 거라는 거지.”
“…뭐, 그 말도 맞군.”
언제까지고 레아가 자신의 심장을 찔러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건 그녀에게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일이기도 하고, 실제로 불가능한 일이기도 한 일이니 말이다.
“어쨌든 아래로 내려가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보자.”
“알겠습니다.”
“응.”
아무튼 그런 것들은 나중에 자세히 고려해보기로 하고.
우리는 저 옛 성터가 있는 지면 쪽으로 접근했다.
* * *
가까이 다가가자, 마치 유적지처럼 남아 있는 성벽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주변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야생이다 보니 많은 수의 마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것들에 의해 상당 부분 파괴되긴 했지만 잔해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여긴가.”
땅 위에 착지하자, 무성히 자라난 수풀로 뒤덮인 성터가 더 자세하게 드러냈다.
지면에는 곳곳에 집터로 추정되는 자국들이 남아 있었고, 이따금씩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집기 같은 것들이 땅에 버려져 있기도 했다.
“그야말로 고고학의 현장이군. 이런 유적이 누구에게도 도굴되지 않고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니.”
“아무래도 마물 때문에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지구였다면 이런 노다지를 내버려뒀을 리가 없었을 텐데.”
이 말대로 정말 여긴 문화재의 노다지나 마찬가지였다.
지나간 문명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땅이라니.
그것도 심지어 마치 누가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땅 위에 툭, 하고 물건들이 떨어져 있는 것들도 종종 보였다.
“아니, 잠깐만….”
그런데 레아가 이 현장을 보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원래 살던 시대에서 여기까지…대략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했지?”
“300년 정도.”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세상의 역사가 묻힐 정도의 대재난이 벌어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었지. …잠깐.”
그 이야기를 듣자, 난 그녀가 왜 그런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곤 이 물건들은 너무….”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식기구를 집어 들었다.
식기는 나무 재질이었다.
“너무 최근에 버려진 느낌이야.”
수십 년에서 백 년 단위의 시간이 흘렀다면, 나무 재질의 식기가 흙바닥 위에서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리가 없다.
다른 환경이라면 모를까, 이런 숲 속에서 저런 건 20년 정도만 지나면 완전히 분해되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그 말인즉.
“불과 얼마 전까지 여기서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는 뜻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