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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307화 (307/348)

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307화

“결국 너도 여기까지 왔구나.”

“여기가 어디지?”

“시공간의 끝. 혼돈을 쫓아내려 발버둥 친 자가 도달하는 마지막 차원.”

그 말로써 나는 내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멸절 파슈파타를 사용하는 게 답이었다는 판단을 말이다.

“그럼…… 결국 내가 성공한 건가? 혼돈을 현세의 외부로 쫓아내는 데에?”

시바 역시 나와 같은 과정을 거쳐서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물론 그도 그랬듯, 나 역시 여전히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저 일시적일 뿐이지만 말이야. 결국 혼돈은 어느 시간대에 이르러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

“……놈을 영원히 제거할 방법은 없는 건가?”

나는 이 질문이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내가 그의 힘과 무구를 이어받은 것은 그가 나로 하여금 혼돈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을 터.

하지만 난 결국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이곳으로 넘어와 버렸다.

그가 생각한 ‘방법’은 사실상 실패하고 만 것이다.

“그런 건 없어. 애초부터.”

그런데 시바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좌절한 상태로 보였다.

“……애초부터?”

“그것에게 있어서 시간은 그저 자유롭게 도달할 수 있는 어느 한 지점일 뿐이거든.”

“그게 무슨 뜻이지?”

시바는 잠시 호흡을 끊고 뜸을 들였다.

그러더니 곧 긴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 둘이 서로 만났다는 건 같은 좌표에 존재하기 때문이지? 우리 둘 중 하나가 저 옆 언덕에 있거나, 이 뒤의 언덕에 있거나, 혹은 하늘이나 지하에 서 있다면 우린 서로 만나지 못했어.”

“전후, 좌우, 상하의 세 가지 좌표를 말하는 거군.”

“그래. 그럼 그 세 가지 좌표만 맞아 떨어지면 우린 서로 만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나?”

“아니지. 시간이라는 좌표가 있잖아.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에 우리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만난 거야.”

“아,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즉, 시간이라는 건 단순히 좌표평면의 네 번째 축에 불과하다는 거야. 다만 우리는 그 네 번째 축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에 종속된 존재’일 뿐이고.”

난 그 대목에서 바로 불길함을 느꼈다.

“……그럼 시간에 종속되지 않은 존재도 있는 건가?”

우리에 대비되는 존재.

그게 누군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맞아. 그게 혼돈이야.”

갑자기, 시바는 하던 말을 끊고서 제자리에서 옆으로 한 발자국 움직였다.

그러고는 자신의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이렇게 옆으로 한 발을 내디뎌 움직인 것처럼, 혼돈 역시 한 발을 내딛는 것만으로 손쉽게 다른 곳으로 움직일 수 있어. 단지 그게 ‘시간축’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본 것, 그리고 세계의 역사에 새겨진 혼돈의 기록은 그저 그 녀석의 한 발자국에 불과했어.”

“그런…….”

“혼돈의 통제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을 한 건 내 오만이었지. 그건 우리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우리에겐 영겁의 시간과도 같은, 인류의 탄생과 소멸, 신의 세대교체 같은 사건의 사이들도 혼돈에겐 찰나에 불과하거든.”

“…….”

“아니, 애초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우리와는 다를 테니 찰나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겠군.”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신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들고 불멸자가 되는 걸 뛰어넘어 별을 멸망시킬 수도 있는 힘까지 얻었건만.

그런 걸로 할 수 있는 게 내가 상대해야 할 적의 발을 조금 밀어내는 것뿐이라고?

대체 어디까지 가야하는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런 감정을 시바는 이미 겪었던 것인지, 그에게선 좌절의 향기가 가득 묻어나왔다.

“……잠깐.”

그때, 나는 그에 대해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럼, 태공망과 혼돈을 없애기 위해 했다던 계획은 뭐지? 그런 거라면 왜 굳이 날 여기까지 끌어들인 거야?”

시바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그가 이미 이걸 알고 있다면 내게 일어난 일들이 말이 되지 않는다.

태공망이 했던 말들도 의미를 알 수 없고.

혹시, 이것도 시간축 변화에 의한 왜곡 같은 것일까.

“그건 무슨 소리지?”

그러나 시바는 지금 내가 한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다시 되물었다.

“태공망이 계획을 세웠다니?”

“당신과 태공망이 함께 계획을 세워서 나를 혼돈을 제거하기 위한 병기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닌가?”

“……그런 기억은 없는데.”

“그게 아니라면 대체 왜 내게 당신의 무구들이 주어진 거지? 나는 당신과 만난 적도 없고, 시기상으로도 접촉이 불가능하니, 어떤 연결점도 없지 않나?”

난 어쩌면 이제 와서 그에게서 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 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내게 일어났던 모든 일들과 주변 사람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시바의 태도는 완고했다.

“태공망이 나와 함께했던 친우였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난 혼돈과 맞붙은 이후로 그와 어떠한 교류도 한 적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수 없었지.”

“그럼 이 힘은 뭐야?”

화륵.

나는 손바닥에서 별의 불꽃을 피워냈다.

아지다하카가 그것을 내 몸안에서 계속해서 삼킨 탓에 총량은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재로 만들기에 충분할 만큼의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게 왜 내게 들어온 거지? 당신이 날 선택한 게 아닌 이상…….”

“그건 나도 모르지. 나 역시 긴 시간 혼돈과 맞서면서 우연히 얻어낸 불꽃이었으니까. 네가 그런 의지를 가졌으니, 그것이 스스로 너를 선택한 게 아니겠나? 나도 혼돈의 정체를 알았을 때 언젠가 나와 같은 일을 행할 자가 나타날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고 말이야.”

시바는 자신과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하지만 내겐 그의 말이 틀렸다고 할 만한 증거가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태공망은 네가 준 파라슈를 자신의 무구로 변형시켜 가지고 있었어.”

{유결부 파라슈 소환}

나는 그에게 도끼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그리고 별 불꽃은 이 안에 들어 있었지. 태공망은 명확히 말했다. 네가 나에게 이것을 전하라 부탁했다고.”

“태공망이?”

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 녀석은 지금도 살아 있는 건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수한 시간을 거슬러, 아후라 마즈다가 세상을 리셋시킨 후에까지 살아남은, 나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신.

놀랍다면 놀라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바는 이에 대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이군. 그 신화전쟁 이후로는 별 탈이 없었나 보네. 다른 신들도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혼돈과 맞선 시기, 그 이후의 세상의 모든 일들에 관해서 말이다.

신세대 신들이 악마들을 지옥으로 내쫓고, 폭정을 일삼다 내게 몰살당하기 직전 아후라 마즈다에 의해 세계가 리셋되기까지.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런 정보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얻지 못한 채 이곳에 유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까마득한 시간 동안 말이다.

그는 이 완전히 차단된 세계 속에 갇힌 자일 뿐이었다.

“……내가 당신을 잘 안다는 것, 그리고 내게 마궁의 마지막 조각 하나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 거지?”

“그건 물론 네 안에 들어 있는 나의 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말이다.”

“……젠장.”

이걸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는 혼돈이라는 존재는 무슨 수를 써도 막을 수 없는 우주의 진리와도 같다는 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금 시점에서의 시바가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는 것.

이자는 자신이 살았던 그 시대의 상황들과 자신이 가진 힘, 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그대로 좌절한 채 이곳에 갇혀서 아득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뿐.

이자의 한계를 뛰어넘지 않는 한, 난 그저 그가 겪었던 일들을 답습하는 데 그칠 것이다.

실제로 여기까지 도달한 과정만 보아도 그렇다.

“넌 잘했어.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 쉬어도 되잖아.”

그는 나를 이곳에 주저앉히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적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을 깨닫고 무기력하게 웅크리고 있는 자.

그게 지금의 시바였다.

“복잡한 얘기는 우선 나중으로 밀어두자. 이쪽으로 와. 저쪽엔 내가 꾸며놓은 집이 있으니까. 거긴 여기보다는 조금 더 괜찮을 거야.”

그가 내게 손짓하며 따라오라고 했다.

저곳에 따라간다고 뭔가 특별히 위협이 되는 게 있는 건 아니었다.

감각으로 느끼기엔, 그의 말대로 정말 조촐한 집과 휴식터가 있었다.

물론 여전히 척박한 땅임은 변함이 없어서 살기에 좋은 곳은 전혀 아니었지만 말이다.

“가자고.”

그의 표정은 깊은 좌절에도 불구하고 밝아 보였다.

오랜 시간 동안 말동무도 없이 혼자 있었을 그의 앞에, 자신과 같은 길을 걸은 친구가 생긴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망은 없는 건가…….’

그렇게나 운명에 저항하기 위해 맹렬하게 싸웠던 개척자가.

대천세계의 주재자라 불릴 정도로 신계와 하계를 넘나들며 우주적 존재인 혼돈에 맞서던 신 중의 신이.

지금은 이렇게 좌절에 짓눌린 초라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지금껏 내 앞을 밝혀줄 빛이라 믿었던 그가 이런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미안하지만, 난 여기에 있을 수 없어.”

결국 난 결심했다.

스스로 이곳을 벗어나기로.

스스로 어둠에 휩싸인 길을 개척하기로.

“……그런 걸 상대로 끝까지 싸울 셈인가?”

“하는 데까지는 해보려고.”

시바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나를 보면서 웃었다.

“좋군. 내게도 그런 무모함이 원동력이던 시절이 있었지.”

그는 굳이 나를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온 나였기에, 마음을 막으면 꺾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솔직히 말해서, 여길 빠져나갈 방법은 나도 몰라.”

사실 그가 좌절한 것은 혼돈의 압도적인 힘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또한 동시에 이 공간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야말로 시공간의 끝.

여긴 단순히 광활한 우주의 한가운데 같은 게 아니라, 아예 원래 우주와 격리된, 전혀 다른 물리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고차원적 존재인 혼돈이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당장 나는 고차원을 논하기엔 한낱 시간축에조차 얽매일 수밖에 없는 미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시바도, 여기서 탈출한다는 명제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기도 힘든 것이다.

“그래도 빠져나가겠다면, 말리지는 않아.”

“뭐든 시도는 해봐야지. 차원을 뛰어넘는 거라면 그전에도 해본 적이 있으니까.”

“……그래. 성공하길 빌지.”

시바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난 그의 손을 맞잡았다.

“만약……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다시 돌아와 줄 수 있겠나?”

“가능하다면.”

그는 나와 함께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마음속으로 이미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일 터다.

“그래, 그럼 떠나기 전에.”

대신 나에겐 다른 것을 넘겨주었다.

“이걸 가져가라.”

그의 손에서 빛무리가 흘러나와 나에게로 전달되었다.

별의 불꽃과 동종의 힘.

그러나 지금껏 내가 사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농도로 압축된 에너지였다.

{진 멸절 파슈파타의 프라나가 각인된다.}

“이건……?”

“그게 내가 도달한 마지막 경지다. 네 자신마저 사정없이 부숴버릴지도 모르는 순결한 파괴 그 자체.”

권능의 이전이 끝난 후, 그는 그것의 개방주문을 가르쳐 주었다.

“기억해라. 마하 프랄라야 파슈파타스트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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