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질로 신화급 각성자가 되었다 271화
하얀 갑옷을 입은 아후라 마즈다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
레아에 의해 사망한 후로 최초의 조우.
태공망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이걸로 그의 부활을 내 두 눈으로도 명확하게 확인한 셈이다.
“시스템을 조작한 것도 너였나?”
그리고 바로 그가, 지금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시스템이 내게 보상을 주지 않으려 ‘보류’ 메시지를 남김과 동시에 등장.
당연히 이걸 창조한 게 그였기에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세상의 인과관계에 손을 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원래 시스템은 독립적인 관리자의 의지 아래에 스스로를 옭아맴으로써 나로부터의 영멸을 피하기 위해 만든.
아후라 마즈다의 극단적인 회피수단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예 대놓고 시스템을 이용해 모든 것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를 방해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여기까지 쫓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
파캉! 카앙!
내 물음에도 아후라 마즈다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묵묵히 검을 휘두를 뿐.
지금의 그는 전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랐다.
전에는 오만함과 여유로움이 섞여 있는 모습이었다면, 지금은 아예 아무런 감정이 없는 느낌.
그래서인지, 그가 휘두르는 검에서는 어떠한 살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쐐액!
카앙!
‘궤적의 파악이 안 돼.’
그 때문에 그의 검격은 기묘할 정도로 예측이 어려웠다.
제아무리 빠르고 날랜 몸놀림을 보이는 전사라도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는 반드시 살의가 포함되어 있게 마련.
그렇기에 움직임만으로 읽기 어려운 공격을 받아넘기려면 감정을 느끼는 게 중요한데.
지금의 아후라 마즈다에게선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 그렇게 반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전에 비해 훨씬 더 높아진 기량으로 인해 동작을 읽어내는 것마저도 어려웠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물론 이 싸움이 꼭 검을 맞대는 것만으로 이뤄져야 하는 건 아니다.
내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무기들이 있으니까.
{<파슈파타>의 마검 형태를 유지, <유결부 파라슈>, <파성퇴 카트반가>를 동시 소환한다.}
나는 두 손으로 휘두르던 검을 한 손으로 고쳐 잡고, 나머지 한 손에는 도끼를, 어깨 위에는 카트반가를 소환해 냈다.
촤아악!
에너지를 방출하는 검과 에너지를 흡수하는 도끼.
상반된 성질을 가진 두 자루의 무기를 한꺼번에 휘둘러, 아후라 마즈다가 쉽사리 대응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탓!
전술이 먹힌 걸까.
지금껏 내 모든 공격을 검으로 받아치던 아후라 마즈다가 처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신을 죽이는 도끼’인 파라슈를 직접 받아치는 건 부담되었던 모양.
{초신성 폭발 -카트반가 발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어깨 위에 떠 있는 카트반가로부터 별 불꽃 대폭발을 일으키는 마법을 발동했다.
별의 불꽃은 그 순수한 기운을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에너지다.
그것을 사방으로 방출하다 못해 카트반가로 강화까지 했으니, 이것이 발동되는 순간 이 주변 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될 것이다.
파성퇴(破星槌), 별을 부순다는 철퇴인 카트반가가 별 불꽃을 만나 그 진가를 드러낸다.
화아악!
짧은 순간,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발산되기 직전의 흉악한 전조가 이 좁은 지하 감옥 안을 가득 뒤덮었다.
숨이 턱 막히게 만드는 압도감이 카트반가의 전개된 코어를 중심으로 일거에 퍼져 나왔다.
“소멸시켜 주마.”
나는 나직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오른손에 쥔 파슈파타의 칼끝을 그에게 내밀었다.
파아앗.
그러자 아후라 마즈다는 내 일격을 막아내기 위해 몸에서 빛을 방출했다.
아마도 그건 일종의 디스펠 효과를 발휘하는 그의 권능일 터.
물론 별의 불꽃을 막기 위한 능력이니, 단순한 디스펠과는 차원이 다른 성능을 지닌 권능일 것이다.
그래 봐야 그의 대응은 이미 늦었지만 말이다.
{고대 유적의 접근 권한을 발동시켰습니다.}
“……라고 할 줄 알았나? 내가 미쳤다고 여길 다 날려 버릴까?”
내가 내민 칼끝, 아니, 손등이 가리킨 진짜 대상은 아후라 마즈다가 아니라 그 뒤의 철창에 갇힌 하비.
이걸로 다시 한번 손등의 표식을 발동시킨 것이다.
애초에 이 막대한 힘으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바보 같은 짓을 내가 할 이유가 없다.
지금 나에게 있어 불멸자의 육신을 얻어내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그렇게 했다가 하비를 죽이기라도 하면 일이 너무 복잡하게 꼬이기 때문이다.
‘아후라 마즈다, 저 녀석도 하비를 보호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역시 하비를 죽게 내버려 두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아까 전부터 느낀 거지만, 지금 이 녀석이 가진 힘의 크기라면 얼마든지 하비를 소멸시킬 수 있을 터.
내 목적을 방해하려면 그것만큼 빠른 수단이 없겠으나, 어째선지 그는 그런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결국 그 또한 지금 하비를 보호하려 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그걸 역이용해 허점을 찌른 것이다.
스르륵.
카트반가로부터 발산되려던 별의 불꽃은 아후라 마즈다가 방출한 강렬한 빛에 휘감겨 사라졌다.
그러나 내 손등의 표식에서는 여전히 흑청색 불꽃이 새어 나오고 있다.
이건 공격 용도로 사용한 별 불꽃과는 별개로 시스템에 의해 발동되는 것이니, 저 빛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숨겨진 시나리오 차원 <최초의 불멸자>를 개방합니다.}
{관리자가 경고를 보냅니다!}
{시나리오 차원에 진입합니다.}
{경고…… 경……고…….}
시스템은 또다시 나를 방해하려 했지만 그 이상은 한계.
제아무리 관리자라도, 법칙에 어긋난 행위를 몇 번이고 반복할 수는 없다.
그동안 보상을 대가로 수많은 ‘인과조정행위’를 해온 관리자.
이제 더 이상은 약속한 보상의 지급을 미룰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난 수많은 방해에도 불과하고 결국 진입하고 말았다.
지금껏 이 안에서 꽁꽁 감추어져 있었던, 바로 그 ‘고대 유적’ 내부에 말이다.
* * *
300년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누구 하나 접근하지도, 그 존재를 알아내지도 못했던 고대 유적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하비의 영혼 속에 각인된 시나리오 세계.
‘최초의 불멸자’라 불리는 존재가 봉인되어 있는 외부 차원이었다.
‘초원 위의 성…… 여기가 그곳인가.’
내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거대한 열대 기후의 초원과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황금의 성이 나타나 있었다.
겉보기에는 단순히 고대 중동의 어느 한 지역을 시스템이 재현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 이건 재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실존하는, 단지 차원계가 다른 또 하나의 공간일 뿐.
시나리오 세계라고 이름이 붙여지긴 했지만,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과 동기화된 진짜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비의 불사 능력의 실체.’
하비가 절대 죽지 않았던 것, 그리고 그 녀석이 3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 있던 것 역시 이 공간의 존재 덕분이었다.
이 안에 숨겨져 있는 ‘최초의 불멸자’가 바로 그 능력의 근원인 셈이다.
태공망은 내게 그것을 빼앗아 불멸자로 각성하라고 했다.
그가 건네준 두루마리를 사용해서 말이다.
‘입구가 어디지?’
곧장 황금 성 앞쪽으로 다가간 나는, 금세 여기에 출입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드넓은 초원 자체가 사람이 먹고살 만한 게 있는 곳이 아니다 보니, 딱히 거주민도 없는 성에 들락날락할 출입구가 존재할 필요 자체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고대 유적’인데, 아예 문이 없을 줄은 몰랐다.
‘위에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이 거대한 황금 성은 위가 완전히 막힌, 언뜻 보면 피라미드처럼 보이기도 한 구조물이었다.
그래서 벽을 뛰어넘어 상부에서 진입하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나.’
화륵.
난 결국 조금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카트반가를 소환해 별 불꽃을 그 안에 담았다.
‘조금 부숴도 상관없겠지.’
어차피 이 안에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닐 테니, 화끈하게 파괴해서 목표물까지 직접 다가갈 작정이었다.
그거야말로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고.
{검은 혜성 -카트반가 발산}
내 어깨 위에 떠 있던 카트반가의 코어가, 목표를 가리키는 내 손가락 앞으로 위치를 옮겨 조준선을 정렬했다.
화륵!
그러고는 흑청색의 불꽃을 쏘아냈다.
두꺼운 광선 궤적을 남기며 쇄도하는 별 불꽃의 마탄.
콰우우우!
착탄 지점으로부터 사방에 퍼지는 파동이 발생하며, 거대한 불기둥을 일으켰다.
불의 색깔은 검지만 내뿜는 빛은 은은한 푸른빛인, 기묘한 화염이 피어오른다.
그것이 매끈한 황금의 성 겉면을 불태우며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파캉!
당연하게도 성 외부에는 공격을 방어하는 결계가 둘려 있긴 했지만, 그건 순식간에 깨졌다.
지금의 내가 내뿜는 별 불꽃은 그런 어중간한 방어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침입자 감지.
-위협을 차단합니다.
-손상된 구조물을 수복합니다.
그러자 저 거대한 성 아래에서 감정 없는 기계음이 들려왔다.
그곳을 자세히 내려다보니, 둥글둥글한 로봇 같은 것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물건을 이리저리 나르는 게 보였다.
‘여긴 아예 기계 문명이라도 되는 건가?’
안에서는 어떠한 생명의 징후도 느껴지지 않는다.
단 한 명, 내가 노리고 있는 바로 그 자인 ‘최초의 불멸자’를 제외하고선 말이다.
그러니 이 성의 주민들은 모두 저 기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화륵. 쐐애액!
어쨌든 나는 별 불꽃의 날개를 펼쳐 구멍 속으로 빠르게 진입했다.
휙! 휘휙!
그러자 성안으로부터 수십 자루의 투창들이 날아왔다.
로봇들이 나를 격추시키기 위해 던진 것이다.
‘생긴 건 하이테크의 산물인 주제에, 무기는 낡았군.’
아무래도 군사 분야는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실 이곳은 그 오랜 시간 동안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영역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전쟁도 없고, 다른 문화에 영향을 받지도 않은 곳이라 성을 유지하는 용도의 기술 외에는 발전할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고생했으니 이제 그만 잠들어라.’
{달 그림자 검식 -현월}
쉬쉬익!
난 투창들을 모두 피하며 안쪽으로 진입한 다음, 그 고철 덩어리들을 향해 검기를 날려 한꺼번에 동강 내버렸다.
오랜 시간 동안 저 안쪽의 주인에 의해 개조되고 이용되어온 로봇들.
어차피 결국은 그가 사라지는 순간 존재 의미가 없어지는 도구일 뿐이었다.
콰쾅! 콰쾅!
그리고 나는 그대로 성안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내달렸다.
벽을 부수고, 땅을 파헤치며, 복잡한 미로 같은 길을 전부 무시하고서.
황금 성 지하에 잠들어 있을 바로 그 존재, ‘최초의 불멸자’를 향해 똑바로 내달렸다.
-경고. 침입자가 지하 5층을 돌파했습니다.
-경고. 침입자가 격벽을 파괴했습니다.
-경고. 침입자가 지하 17층을…….
경고음이 연달아 울리며 서로 겹치다 못해 무슨 말인지도 모를 정도로 뒤섞인다.
본래는 정직하게 길을 따라가며 돌파하라고 배치된 온갖 함정과 장애물들이 있었지만, 내 앞에서 그것들은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시스템의 의지마저 거스르는 별 불꽃의 소유자인 나에게 그런 빤한 제약은 소용없다.
쾅!
-경고. 침입자가 최하층에 도달했습니다.
그렇게 지하 100층까지 눈 깜짝할 사이 도달한 나를 맞이한 것은, 이곳에서의 내 최종 목표인 세계 최초의 불멸자.
“……나의 길가메시여.”
길가메시.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지키겠다.”
……의 잠든 나체를 정성스럽게 쓰다듬는 짐승 인간.
엔키두였다.
“누구도 감히 너를 손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